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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행정, 혁신의 길을 묻다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인사는 만사라는 격언은 국정 운영의 성패를 가르는 철칙으로 여겨져 왔다. 특히 정권의 교체기나 국정 동력의 재점화가 필요한 시점에서 단행되는 통합 인사는 정권의 정당성을 확립하고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기 위한 핵심적 기제로 작동한다. 이재명 정부 역시 보수 진영 인사를 과감하게 기용하는 외연 확장형 인사를 단행하며 국정 운영의 포용성을 강조해 왔다. 이는 극한의 진영 대결을 완화하고 전문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이 65%를 기록하며 실용주의적 행정 역량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높은 상황이나, 이러한 높은 지지율 이면에는 인사 검증의 원칙이 흔들릴 때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위기 요소들이 잠복해 있다. 특정 인물의 발탁은 해당 정부가 도덕적 허용의 범위를 어디까지 설정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만약 통합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기용된 인물이 공동체의 보편적 가치에 반하거나 도덕적 논란을 보유하고 있다면, 이는 정부의 정체성을 오염시키는 행위로 변질될 위험이 크다. 1. 절차적 공정성: 65% 지지율을 지탱하는 국정 운영의 첫 관문 행정
최근 우리 사회는 기이한 풍경을 목격하고 있다. 국내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대기업의 30대 연구원들이 사표를 던지고 강남의 의대 입시 학원으로 몰려든다. 다른 한편에서는 억대 연봉을 벌 수 있다는 광고를 믿고 뛰어든 플랫폼 노동자가 비 오는 밤, 인공지능(AI)이 지시하는 ‘최적 경로’를 따르다 목숨을 잃는다. 한쪽은 유일하게 공정하다고 믿는 시험이라는 문으로 다시 숨어들고, 다른 한쪽은 공정한 보상을 약속하는 알고리즘의 채찍 아래 스러진다. 이 두 장면은 한국 사회가 처한 거대한 유리 미로의 입구와 출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우리가 신봉하는 공정은 흔히 시험이라는 좁은 문을 통과하는 기계적 절차에 매몰되어 있다. 이러한 협소한 인식은 우리 사회를 거대한 유리 미로로 만들고 있다. 유리 미로는 단순히 성장을 가로막는 유리 천장과 다르다. 그것은 입구는 활짝 열려 있는 듯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투명한 벽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특정 지도를 가진 자들만이 출구를 찾도록 설계된 기만적 구조를 의미한다. 영(Young, 2017)은 일찍이 능력주의가 지능과 노력이 결합된 이상적 시스템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새로운 형태의 계
복합적 위기 환경 속에서 공공부문의 경직성과 무사안일주의는 국가 경쟁력을 저해하는 최대 장애물이다. 최근 정부는 소극행정 병폐를 타파코자 총리실을 중심으로 범부처 적극행정협의체를 출범시켰다. 나아가 기존 최고 등급(S등급)을 상회하는 SS등급 고과 신설을 검토 중이다. 이는 탁월한 성과를 낸 공직자에게 파격적 보상을 제공해 공직사회의 동기부여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하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정책현장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적극행정 면책 제도나 사전컨설팅 제도를 운영하고 있음에도, 대다수 공무원은 사후 감사나 악성 민원, 고소 및 고발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을 호소한다. 사전컨설팅 등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대다수의 독자적 적극행정이나 외부의 소송 압박 앞에서는, 여전히 공무원이 고의나 중과실이 없음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무거운 짐을 떠안게 된다. 현장 실무자들 사이에 열심히 일해봤자 손해만 본다는 냉소와 불신이 팽배한 이유다. SS등급 신설이 과거의 나눠먹기식 평가나 무늬만 혁신인 제도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선진 사례의 성과 관리와 보호 시스템을 직시해야 한다. 미국 연방정부는 관리자가 적극적인 지휘권과 인사권을 행사할
혁신 지방차지
2026년 6월 3일 치러질 전국동시지방선거는 단순한 정치 일정이 아니다. 이번 선거는 지방자치가 앞으로도 작동할 수 있는 제도와 역량을 갖출 수 있을지, 아니면 지방소멸의 흐름을 막지 못한 채 구조적 쇠퇴로 접어들 것인지를 가르는 중대한 분기점이다. 이미 지방이 처한 현실은 위기 단계를 넘어섰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지방소멸 위험지수에 따르면 전국 228개 기초자치단체 중 118곳, 즉 절반이 넘는 지역이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된다. 이는 2005년 33곳에 불과하던 수치가 20년 만에 네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부산과 같은 광역시에서도 소멸위험 구·군 비율이 40%를 넘고 있다는 점이다. 지방소멸은 더 이상 농촌이나 군 단위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지역 구조 전반의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인구 구조 변화는 재정과 행정 역량을 동시에 압박한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2072년 우리나라 총인구는 3,622만 명 수준으로 감소하고, 수도권 인구 비중은 오히려 53%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비수도권은 급격한 인구 유출과 고령화로 기본적인 행정서비스 유지조차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
위기대응의 정석
지난해 11월 29일 쿠팡이 3367만여 건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실을 공개했다. 성인 국민 대다수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민관합동조사단 조사 결과 해킹은 작년 4월부터 11월까지 최장 7개월간 이어졌다. 쿠팡이 이를 인지한 것은 11월 18일이었다. 사태가 공개된 그날, 실질적 최고 책임자인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의 개인 명의 입장은 나오지 않았다. 이후 며칠간도 마찬가지였다. 쿠팡은 홈페이지에 법인 명의 사과문을 게재했다. 사흘 뒤 해당 위치에 마케팅 배너가 걸렸다는 보도가 이어졌고,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사과문 재게시를 요구했다. 작년 12월 2일 국회 긴급현안질의에는 대리인이 출석했다. 의원들이 김 의장의 직접 사과 의향을 묻자, 대리인은 “한국 법인에서 벌어진 일이고 제 책임하에 있기 때문에 제가 사과드린다”고 답했다. 경계선은 분명했다. 김 의장은 보름 뒤 열린 국회 청문회에 불출석 사유서를 보냈다. “전 세계 170여 개국에서 영업하는 글로벌 기업의 CEO로서 공식적인 비즈니스 일정이 있어 부득이하게 출석이 불가하다.” 12월 30일과 31일 연석청문회에도 같은 방식으로 응했다. 국회 과방위는 김 의장 등
경제학의 역사는 시장의 자율성과 정부의 개입이라는 두 축 사이의 끊임없는 긴장과 조율의 과정이다.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시장과, 시장의 불완전성을 보완하여 사회적 최적을 달성하려는 정부의 역할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그 무게중심을 달리해 왔다. 2026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전개되는 부동산 정책 논쟁은 이러한 학술적 담론이 단순한 이론을 넘어 국가의 통치 철학으로 어떻게 체화되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이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이 천명한 시장이 정부를 이길 수 없다는 발언은 시장의 자생적 질서보다 정부의 정책적 의지를 우위에 두는 강력한 개입주의적 태도를 시사한다. 시장과 정부의 관계를 규정하는 학술적 틀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하이에크(Hayek, 1944)와 프리드먼(Friedman, 1962)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자율적 조절 기능을 신뢰하며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할 것을 강조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스티글리츠(Stiglitz, 2002)는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시장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으며, 정부의 적절한 개입만이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크루그먼(K
‘마루치 아라치’ 인문학
대한민국이 행정통합으로 어수선하다. 하자고 했던 쪽이 이제 그만 하자고 하고, 하지 말자고 했던 쪽이 하루속히 하자고 한다. 중앙에서 보따리를 푼다고 하니 잠잠하던 지역도 덩달아 하나가 되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는 식이다. 너무 급하니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 찬성하는 분들은 아마 그럴 것이다. 지금과 같은 지역 규모로는 수도권에 버금가는 지역을 만들 수 없으니 일단 몸집을 키워야 한다고, 천천히 가자는 것은 지방소멸이 얼마나 심각한지 모르는 한가한 소리라고, 지금도 늦은 판에 답답한 소리 작작 하라고 말이다. 틀린 말씀은 아니다. 하지만 잠시 지방분권의 시각에서 한 번 생각해보자. 지방분권은 제창의 시대에서 합창의 시대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적분하면 연방국가이고, 미분하면 주민자치이다. 지역과 주민이 나라와 국민에 우선한다. 지역이 모여 비로소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보다 큰 나라가 되는 것 뿐이요, 주민이 모여 비로소 국민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보다 큰 국민이 되는 것 뿐이다. 폭설로 243명(현재 우리나라에는 243개의 지방자치단체가 있다)이 산정상에서 길을 잃었다고 가정해보자.
파이데이아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국내 고립·은둔 청년의 규모를 총인구의 1% 수준인 약 54만 명으로 추산했다. 유례없이 가파른 증가 속도도 문제지만, 더욱 뼈아픈 것은 이것이 우리 사회 중추인 청년층이 소리 없이 ‘증발’하고 있다는 심각한 경고음이라는 사실이다. 먼 나라 이야기 같았던 일본의 히키코모리 현상, 서울연구원이 예견한 ‘탈관계화된 축소사회’는 이제 먼 미래의 디스토피아가 아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마주한 냉혹한 현실이 되었다. 특히 생성형 AI와 초개인화 알고리즘이 고도화된 지금, 고립의 양상은 과거와 질적으로 달라졌다. 청년들은 굳이 타인을 만나 갈등을 겪거나 감정을 소모하지 않아도 된다. AI 챗봇은 언제나 상냥하게 대답해주고, 유튜브 알고리즘은 내가 듣고 싶은 말만 골라주는 ‘디지털 벙커’를 제공한다. 이러한 디지털 초(超)개인주의는 개인에게 안락함을 주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인간 고유의 사회적 근육을 퇴화시키고 있다. 사회발전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인 ‘인간적 유대(Human Bond)’라는 사회적 자본이, 효율성이라는 미명 하에 급격히 소진되고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적 노동을 빠르게 대체해 나가
바야흐로 ‘K-웨이브(K-Wave)’의 시대다. K-팝과 드라마에 매료된 것을 넘어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에 호기심을 갖고 삶의 터전을 옮기려는 외국 청년들이 급증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뜨거운 열망은 한국 사회의 국경 앞에서 차갑게 식어버린다. 글로벌 문화 강국이라는 위상이 무색하게 그들을 맞이하는 우리의 제도적 토양은 여전히 과거의 관성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장의 대학들이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학 관계자들은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는 ‘생활 언어’와 대학 강의를 듣고 리포트를 쓰는 ‘학습 언어’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미 많은 대학이 자체적으로 ‘예비 대학 과정’이나 ‘조건부 입학 제도’를 만들어 유학생들의 한국어 실력과 기초 학력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학들의 노력은 ‘제도의 한계’라는 벽 앞에서 멈춰 설 수밖에 없다. 대학이 아무리 좋은 교육 과정을 설계해도, 그것을 뒷받침할 비자(Visa) 시스템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현장 경험의 불법화’다. 이것은 단순한 행정 규제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착오
1월은 결심의 달이다. 새해 해낼 것들을 나름 비장한 각오로 정하는 달이다. 만약 아직 정한 것이 없거나 추가할 여백이 있다면 일기 쓰기를 권하고 싶다. 왜 굳이 일기 쓰기 일까? 먼저 ‘난중일기’를 살펴보자. 난중일기 속에는 인간으로서의 고뇌, 절망, 원망 등이 녹아 있다. 이순신 장군은 성웅이기에 모든 아픔을 별일 아닌 듯 손쉽게 이겨낸 것이 아니다. 단 한 번의 전투 승리로 전쟁을 마무리한 것도 아니다. 전쟁은 잔인하게 그리고 간혹 지루하게 7년을 끌었다. 이순신 장군은 하루하루 반성하고 대비하면서 버텨낸 것이다. 이순신 장군 역시 한 인간이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책이 난중일기이다. 이순신 장군에게 있어 일기는 전쟁이 주는 압박감, 주변 인간들에 대한 실망감 등 모든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었던 것이다. 만약 이순신 장군이 난중일기를 쓰지 않았다면 자칫 전쟁에서 패해 우리 후손들이 지금 일본어를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난중일기의 특징은 무엇보다 내용이 길지 않다는 것이다. 심지어 ‘맑다’가 전부인 일기도 많다. 일기를 쓴다는 것은 하루를 돌아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내일을 그려본다. 그 종합 결과
지역 소멸이라는 거대한 파고 앞에서 광주와 전남이 생존을 위한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는 대의명분(大義名分)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지역의 경쟁력을 높여 시·도민 모두가 잘 사는 터전을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의 절박한 염원이며, 필자 역시 그 방향성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무엇을(What)’ 하느냐만큼 중요한 것이 ‘어떻게(How)’ 하느냐이며, 더 나아가 ‘왜(Why)’에 대한 냉철한 실증이 전제되어야 한다. 최근 광주·전남 행정통합 논의가 불쑥 튀어나온 방식은 심히 우려스럽다. 시·도지사의 전격적인 선언과 ‘속도전’을 방불케 하는 추진 과정은 마치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위로부터의 개혁’을 답습하는 듯하다. 이는 ‘지방 시대’라는 정부 기조에 편승하여 임기 내 가시적 성과를 내보이려는 단체장들의 조급함이 빚어낸 ‘정치공학적 계산’이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행정통합은 단순한 물리적 결합이 아니다. 지역의 백년대계(百年大計)를 흔드는 고도의 화학적 결합이자, 주민의 삶을 재구성하는 거대한 실험이다. 통합 찬성론자들은 앵무새처럼 ‘해외 선진 사례’를 거론하며 장밋빛 미래를 약속한다. 프랑스의 레지옹 개편이나 일
지방정부가 급격히 변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인공지능(AI)이 복지, 안전, 도시관리, 세무행정까지 지방행정 전 영역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기존 공무원들이 직접 처리하고 의사결정하던 방식에서 데이터 기반 행정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인구 감소와 고령화, 재정 제약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AI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지방정부의 생존전략이 되고 있다. 가장 빠른 변화가 나타난 분야는 복지행정이다. 경상북도 경주시는 ‘초거대 AI 기반 위기가구 발굴·관리’ 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부산광역시 영도구는 생성형 AI를 활용한 복지상담 챗봇 ‘영도 복지위키’를 운영하며 주민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AI 돌봄서비스 플랫폼’을 통해 독거노인 대상으로 비대면 돌봄 로봇을 보급하고 있는 충청남도 당진시 사례도 있다. AI를 통해 기존 방식으로는 찾아내기 어려웠던 복지 사각지대를 조기에 발견하고, 공무원은 현장 확인과 맞춤형 연계에 보다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안전 분야에서도 변화는 두드러진다. 충남은 클라우드 네이티브 환경 전환과 AI 기반의 스마트 포트홀 관리 시스템을 도입했고, 경북 영주시는 드론 촬영을 활용해 행
광장은 뜨겁다. 주말마다 도심은 서로 다른 깃발과 구호를 든 인파로 뒤덮인다. 이것은 단순한 인상이 아니다. 최근 수년간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등의 국제 조사에서 한국은 빈부 격차와 이념 등 주요 갈등 항목에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갈등 공화국’이라는 오명이 국제적인 통계로 입증된 셈이다. 표면적으로 한국 사회는 의사 표현이 넘쳐나는 듯 보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진정한 ‘소통’은 실종됐다. 광장에는 자기주장만 쏟아내는 거대한 ‘목소리’들만 공명할 뿐, 상대를 이해하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숙의(Deliberation)’는 자취를 감췄다. 지금 우리 사회의 공공정책 결정 과정은 합리적 토론의 장이 아니라, ‘진영 논리’의 전장(戰場)으로 변질되었다. 정책의 타당성이나 사실(Fact) 관계보다 “누가 제안했는가”가 찬반을 가르는 유일한 기준이 된다. 정부는 반대편을 설득할 생각 없이 일방통행하고, 야당은 대안 없는 반대로 국정의 발목을 잡는다. 내가 지지하는 진영의 정책은 선(善)이고, 상대방은 타도해야 할 악(惡)으로 규정되는 이 적대적 공생 관계 속에서 행정의 본질은 길을 잃었다. 이러한 혼란을 잠재우고 갈등을 넘어설 해법은
지난 6월 스스로 30년간의 공직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많은 분들이 걱정하면서 만류했고 조직에서 나가라고 하지도 않는데 굳이 그만두려는 이유를 궁금해했다. 자진 퇴직의 이유를 하나하나 열거하자면 108개도 넘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죽음이었다. 살다보면 이유 없이 나를 좋아하는 분과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는 분이 간혹 있다. 이모 선배는 이유 없이 필자를 좋아해 주셨던 분이었다. 대기업 이사까지 한 후 홀로 고향으로 내려가 거동이 불편한 노부모를 모신 분이었다. 노인 아들이 노인 부모를 봉양하는 이른바 노노(老老)봉양을 실천한 것이다. 때마다 지역특산물인 대추도 보내주시고 직접 농사지은 것이라면서 고구마를 보내주시곤 했다. 필자가 감사한 마음으로 약간의 사례라도 하려고 하면 손을 절레절레 흔드시며 완강하게 거절했다. 그냥 하염없이 주시려고만 했지 뭔가를 일절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마른 하늘의 날벼락처럼 이 선배가 숨졌다는 부고 문자가 왔다. 처음에는 믿지도 않았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아침에 그의 아버지가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어떤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그야말로 느닷
대입시험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일명 수능에 이르렀다. 가끔 재미삼아 국어와 영어 수능문제를 풀어보곤 한다. 학력고사 세대에겐 낯선 문제 유형이어서 답을 틀리기는 하지만 솔직히 못풀 정도로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단 시간이 없다. 없어도 너무 없다. 지문의 양을 보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지문을 다시 읽는 순간 찍을 수밖에 없는 문제가 빤히 기다리고 있다. 결국 아는 문제를 틀리도록 만드는 아주 저질의 문제구조다. 속독 능력을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시간이 충분하면 충분히 맞출 수 있는 문제를 내놓고 시간으로 공격해 들어온다. 이것을 대학에 진학해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는 문제라고 저렇게 버젓이 낸다.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할 뿐이다. 마루치 아라치를 추억하며 살아가는 학력고사 세대야 그렇다 치더라도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공지능(AI)과 로봇과 경쟁하며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에게 이따위 문제로 줄을 세운다. 공자께서 “가르치지 않은 백성을 전쟁터로 보내는 것은 그들을 내다 버리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5지 선다형 문제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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