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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치 아라치’ 인문학
지난 겨울, 중학교 벗들과 용산에서 망년회를 했다. 자리가 없어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던 중, 5층쯤 되는 건물의 술집을 겨우 찾아 들어갔다. 술도 깰 겸 나간 베란다에서 본 풍경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경사진 산에 자리 잡은 집들이 철거된 상태로 바로 눈 앞에서 돌무지 무덤처럼 널브러져 있었고, 맨 위에 교회 건물만이 홀로 흐린 달빛에 빛나고 있었다. 교회를 그저 무덤덤하게 바라보며 종교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아온 나조차 묘한 신비로움에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후 술자리로 돌아와 40년 전 철부지 시절의 추억을 안주 삼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일상으로 복귀했다. 그러다 최근 대학원 은사님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그때 본 곳이 한남 3구역임을 알게 되었다. 그때의 전율이 되살아나면서 몇 가지 이야기가 떠올랐다. 미국 대학원 재산권법(Property Law) 수업에서 토지 수용과 관련한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민간 업자가 토지를 수용하는 사례였는데, 수용 대상이 된 마을 사람들은 할아버지 때부터 살아온 집이라며, 할아버지가 앉아 계셨던 의자가 바로 여기 있다며 총을 들고 민병대를 결성하면서까지 결사 반대한다.
대한민국이 행정통합으로 어수선하다. 하자고 했던 쪽이 이제 그만 하자고 하고, 하지 말자고 했던 쪽이 하루속히 하자고 한다. 중앙에서 보따리를 푼다고 하니 잠잠하던 지역도 덩달아 하나가 되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는 식이다. 너무 급하니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 찬성하는 분들은 아마 그럴 것이다. 지금과 같은 지역 규모로는 수도권에 버금가는 지역을 만들 수 없으니 일단 몸집을 키워야 한다고, 천천히 가자는 것은 지방소멸이 얼마나 심각한지 모르는 한가한 소리라고, 지금도 늦은 판에 답답한 소리 작작 하라고 말이다. 틀린 말씀은 아니다. 하지만 잠시 지방분권의 시각에서 한 번 생각해보자. 지방분권은 제창의 시대에서 합창의 시대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적분하면 연방국가이고, 미분하면 주민자치이다. 지역과 주민이 나라와 국민에 우선한다. 지역이 모여 비로소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보다 큰 나라가 되는 것 뿐이요, 주민이 모여 비로소 국민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보다 큰 국민이 되는 것 뿐이다. 폭설로 243명(현재 우리나라에는 243개의 지방자치단체가 있다)이 산정상에서 길을 잃었다고 가정해보자.
1월은 결심의 달이다. 새해 해낼 것들을 나름 비장한 각오로 정하는 달이다. 만약 아직 정한 것이 없거나 추가할 여백이 있다면 일기 쓰기를 권하고 싶다. 왜 굳이 일기 쓰기 일까? 먼저 ‘난중일기’를 살펴보자. 난중일기 속에는 인간으로서의 고뇌, 절망, 원망 등이 녹아 있다. 이순신 장군은 성웅이기에 모든 아픔을 별일 아닌 듯 손쉽게 이겨낸 것이 아니다. 단 한 번의 전투 승리로 전쟁을 마무리한 것도 아니다. 전쟁은 잔인하게 그리고 간혹 지루하게 7년을 끌었다. 이순신 장군은 하루하루 반성하고 대비하면서 버텨낸 것이다. 이순신 장군 역시 한 인간이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책이 난중일기이다. 이순신 장군에게 있어 일기는 전쟁이 주는 압박감, 주변 인간들에 대한 실망감 등 모든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었던 것이다. 만약 이순신 장군이 난중일기를 쓰지 않았다면 자칫 전쟁에서 패해 우리 후손들이 지금 일본어를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난중일기의 특징은 무엇보다 내용이 길지 않다는 것이다. 심지어 ‘맑다’가 전부인 일기도 많다. 일기를 쓴다는 것은 하루를 돌아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내일을 그려본다. 그 종합 결과
지난 6월 스스로 30년간의 공직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많은 분들이 걱정하면서 만류했고 조직에서 나가라고 하지도 않는데 굳이 그만두려는 이유를 궁금해했다. 자진 퇴직의 이유를 하나하나 열거하자면 108개도 넘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죽음이었다. 살다보면 이유 없이 나를 좋아하는 분과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는 분이 간혹 있다. 이모 선배는 이유 없이 필자를 좋아해 주셨던 분이었다. 대기업 이사까지 한 후 홀로 고향으로 내려가 거동이 불편한 노부모를 모신 분이었다. 노인 아들이 노인 부모를 봉양하는 이른바 노노(老老)봉양을 실천한 것이다. 때마다 지역특산물인 대추도 보내주시고 직접 농사지은 것이라면서 고구마를 보내주시곤 했다. 필자가 감사한 마음으로 약간의 사례라도 하려고 하면 손을 절레절레 흔드시며 완강하게 거절했다. 그냥 하염없이 주시려고만 했지 뭔가를 일절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마른 하늘의 날벼락처럼 이 선배가 숨졌다는 부고 문자가 왔다. 처음에는 믿지도 않았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아침에 그의 아버지가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어떤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그야말로 느닷
대입시험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일명 수능에 이르렀다. 가끔 재미삼아 국어와 영어 수능문제를 풀어보곤 한다. 학력고사 세대에겐 낯선 문제 유형이어서 답을 틀리기는 하지만 솔직히 못풀 정도로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단 시간이 없다. 없어도 너무 없다. 지문의 양을 보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지문을 다시 읽는 순간 찍을 수밖에 없는 문제가 빤히 기다리고 있다. 결국 아는 문제를 틀리도록 만드는 아주 저질의 문제구조다. 속독 능력을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시간이 충분하면 충분히 맞출 수 있는 문제를 내놓고 시간으로 공격해 들어온다. 이것을 대학에 진학해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는 문제라고 저렇게 버젓이 낸다.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할 뿐이다. 마루치 아라치를 추억하며 살아가는 학력고사 세대야 그렇다 치더라도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공지능(AI)과 로봇과 경쟁하며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에게 이따위 문제로 줄을 세운다. 공자께서 “가르치지 않은 백성을 전쟁터로 보내는 것은 그들을 내다 버리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5지 선다형 문제를 생각
마루치 아라치는 초등학교 1학년 때인 1977년에 개봉한 대한민국 극장판 애니메이션이다. 정식 영화제목은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로 동시대를 살아온 분들이라면 줄거리의 대강을 기억할 것이다. 주제곡 ‘달려라 마루치, 날아라 아라치’는 누군가 선창만 해주면 어렵지않게 따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당시 관객수 16만명 이상을 기록한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흥행에 있어 역사적 영화였다. 당시 부모님과 동행하지 않고 극장에서 벗들과 본 최초의 만화 영화였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도 기억될만한 영화였다. 당시 벗들은 영화관에서 마루치, 아라치와 같은 편이 되어 파란해골단과 용감하게 싸웠고 영화가 끝난 후에는 한참동안 마루치, 아라치의 발차기를 흉내내며 지냈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로 인터넷에 마루치 아라치를 검색해 보았고 다행스럽게도 50년 가까이 지난 영화를 다시 볼 수 있었다. 다시 만난 마루치 아라치는 마치 ‘시네마 천국’에서 토토가 알프레도가 마지막으로 남겨 준 필름(검열에서 삭제된 키스 장면들을 모아놓은 필름)을 다시 보는듯 가슴을 울렸다. 멀리 떨어져 살아 오랫동안 볼 수 없었던 그리운 벗을 준비 없이 갑작스레 만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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