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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여는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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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인 ‘다 공부지요’ 라고 말하고 나면 참 좋습니다 어머님 떠나시는 일 남아 배웅하는 일 ‘우리 어매 마지막 큰 공부하고 계십니다’ 말하고 나면 나는 앉은뱅이책상 앞에 무릎 꿇은 착한 소년입니다 (중략) 날이 저무는 일 비 오시는 일 바람 부는 일 갈잎 지고 새움 돋듯 누군가 가고 또 누군가 오는 일 때때로 그 곁에 골똘히 지켜섰기도 하는 일 ‘다 공부지요’ 말하고 나면 좀 견딜 만해집니다 덕분에 주문 하나를 새로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다 공부지요’, 다섯 음절이 지닌 힘을 생각해 봅니다. 어느 시인의 시 구절로도 알려진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도 위안을 주었었는데 세 음절이나 절약하게 되었습니다. 그뿐인가요? 단순히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공부가 되다니요. 언제부턴가 아프리카 대륙에서 건너온 ‘다 잘될 거야(하쿠나 마타나)’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지만, 올해엔 한층 격조 높은 우리말 주문을 마음에 담아 봅니다. ‘다 공부지요’
정현종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 있는 건 오로지 새날 풋기운! 운명은 혹시 저녁이나 밤에 무거운 걸음으로 다가올는지 모르겠으나,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 아침은 하루가 새로 시작되는 시간이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대지의 눈꺼풀이 열리는 시간이다. 잠든 새들이 깨어나 노래하고 젖은 풀잎이 이슬을 터는 시간이다. 사람들이 하루 동안 달려나갈 길 앞에서 신발 끈을 묶는 시간이다. 아침은 모든 생명을 힘차게 쏘아 올리는 활시위다. 운명이 안개처럼 뒷걸음치는 시간이다. 저녁이나 밤에 발걸음이 무거워졌다고 해서 운명의 무게 때문이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 운명은 운명을 믿는 자에게나 있고, 새날은 새날을 믿는 자에게 있다.
곽해룡 거울을 본 적 없는 어린 송아지는 어미 소처럼 자기 머리에 힘센 뿔이 달려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가끔 송아지는 그 뿔로 괜히 하늘을 들이받는다 그 근사한 뿔을 믿고 겁 없는 송아지들이 오늘도 노란 가방을 메고 씩씩하게 유치원에 간다 거울 보았다고 송아지가 뜸베질을 삼가랴. 믿다 보면 그렇게 된다. 들이받다 보면 그렇게 된다. 근질근질하던 머리통에 고둥 같은 뿔이 돋는다. 눈을 희번덕거리며 오늘은 외양간 기둥 들이받고, 내일은 하늘 기둥을 무너뜨린다. 항공모함 같은 아빠 신 신고, 신전 기둥 같은 엄마 힐 신고 현관 밖 천하를 호령하는 아이들을 보아라. 하늘을 떠받치는 저 나무들도 떡잎 두 장으로 땅을 뚫고 나왔다. 겁 없는 송아지들이 자라서 콧김을 힘차게 내뿜으며 아무도 보지 못한 미래로 질주할 것이다.
남호섭 쿵쾅쿵쾅 뛰어도 층간 소음 없는 집 이중 삼중 자물쇠 없어도 되는 집 도리어 누군가 와서 오이 하나 애호박 하나 놓고 가는 집 상처 입은 짐승도 이따금 뒤란에 숨었다가는 집 딱새가 알을 낳고 알에서 깨어나는 집 친구 집에서 얻어다 심은 범부채 꽃 피는 집 달빛이 마당 가득 차오르는 집 그런 날 마당에서 박쥐도 보는 집 할머니 할아버지 병 없이 돌아가신 집 단성면 강누(江樓) 마을- 주소가 예쁜 집 큰비와도 물 잘 빠져 하루 만에 뽀송뽀송해지는 집 백 년 넘은 주춧돌과 기둥과 서까래와 기와지붕 의젓한데 마루만 맨날 삐걱삐걱 혼자 노래하는 집 살금살금 걸어도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집. 이중 삼중 자물쇠 걸어도 안심되지 않는 집. 현관문 앞에 전단 놓고 가는 집. 상처 입은 사람이 드나드는 집. 계란판에서 무정란들이 꿈 없이 자는 집. 베란다 화분 꽃 장마철에도 말라 죽는 집. 달빛 대신 가로등이 밤새 들어오는 집. 마당도 없고 뒤뜰도 없는 집. 할머니 할아버지가 안 사는 집. 외국어 이름으로 주소 읽기 힘든 집. 큰비와도 빗소리 들리지 않는 집. 주추도 기둥도 서까래도 없는 집. 화장실에서 담배 연기 올라오는 집. 놀러
권숙월 안산시 단원구 어느 거리에서 장대비가 그린 그림, 모자 쓴 노인과 긴 머리 여인이 모델이다 분홍빛 우산은 폐지 리어카를 밀고 가는 등 굽은 노인 쪽으로 더 많이 기울어져 있다 우산 든 젊은 여인의 휴대폰이며 장바구니 한없이 젖고 있다 경기일보 기자가 카메라에 담은 ‘내 어깨는 다 젖어도’라는 제목의 그림, 저 찬란한 마음이 비 젖은 남루를 분홍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한국사진기자협회 ‘제60회 한국보도사진전 피처 부문’ 최우수상으로 선정된 사진이라고 한다. 옛사람이 ‘시 속에 그림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고 했다. 이 장면은 ‘사진 속에 시가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시를 쓰는 사람이 있고, 시를 사는 사람이 있다. 리어카를 밀고 가는 노인이거나, 분홍빛 우산을 씌워주는 여인이거나, 두 사람을 찍는 기자이거나, 그 사진을 보고 코끝 찡한 독자이거나, 그것을 또 시로 쓰는 시인이거나 모두 시를 사는 사람처럼 보인다.
손택수 아버지 뼈를 뿌린 강물이 어여 건너가라고 꽝꽝 얼어붙었습니다 그 옛날 젊으나 젊은 당신의 등에 업혀 건너던 냇물입니다 무심코 건너려던 강을 차마 건너지 못할 뻔했습니다. 미끄럼 지치려던 두 발을 무르주춤 모았습니다. 어린 당신을 업고 건너던 아버지의 등인 줄 몰랐습니다. 한 줌의 재로 떠내려갔어도 겨울 강의 갑옷이 되어 등 내밀고 있을 줄을 몰랐습니다. 무심히 건너려던 그 강을 유심히 건너겠습니다. 가지런히 모았던 두 발을 힘차게 지치겠습니다. 쾅쾅 굴러도 보겠습니다. 봄바람에 얼음 강 풀리도록 내 아버지 등이라 우겨도 보겠습니다.
연애할 때는 예쁜 것만 보였다 결혼한 뒤에는 예쁜 것 미운 것 반반씩 보였다 10년 20년이 되니 예쁜 것은 잘 안 보였다 30년 40년 지나니 미운 것만 보였다 그래서 나는 눈뜬장님이 됐다 아내는 해가 갈수록 눈이 점점 밝아지나 보다 지난날이 빤히 보이는지 그 옛날 내 구린 짓 죄다 까발리며 옴짝달싹 못 하게 한다 눈뜬장님 노약자한테 그러면 못써! -오탁번 창문을 활짝도 열어놓으셨다. 아내의 미운 것만 보이는 남편과 남편의 구린 짓만 보이는 아내가 사는 집이 훤히 보인다. 두 분 모두 시인이고 교수님으로 존경받는 분들이셨다. 생전 나이 들기 거부하던 천진불 모습 떠오른다. 대웅전 부처님 고요해도 공양간 보살 부산하듯, 천진불 뒷감당하느라 속깨나 썩으셨을 아내 모습도 투명하다. 살수록 예쁜 아내, 볼수록 허물 없는 남편 얼마나 있을까. 쇼윈도 커플 드물잖은 세태를 되비추니 저 댁의 창문이 오히려 맑아 보인다.<시인 반칠환>
아내는 비정규직인 나의 밥을 잘 챙겨주지 않는다 아들이 군에 입대한 후로는 더욱 그렇다 이런 날 나는 물그릇에 밥을 말아 먹는다 흰 대접 속 희멀쑥한 얼굴이 떠 있다 나는 나를 떠먹는다 질통처럼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메고 없어진 얼굴로 현관을 나선다 밥 벌러 간다 -이재무 당신을 떠서 온 가족이 먹던 때도 있었을 것이다. 식구들 숟가락이 허공에서 부딪치기도 했을 것이다. 그때는 건더기 그득한 뚝배기에 당신 얼굴이 비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나를 떠먹다니 안쓰럽지만 자초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광활한 식탁에 물그릇 하나 달랑 놓고 밥 말아 자시고 있다니. 당신이 비정규직이라서가 아닐 것이다. 아들 빈자리에 입맛을 잃었거나, 먼저 일하러 간 아내가 ‘반찬 골고루 꺼내 드셔요’ 냉장고 문짝이며 식탁에 붙여놓은 포스트잇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나를 떠먹고 밥 벌러 가는 얼굴 없는 그대여. <시인 반칠환>
밤새 詩三百을 다 써 놓고 가버린 눈 하마 아직아래 햇살 과객 떼로 와서 그 시들 까부르느라 키질 한창입니다 아껴 쓸 가편들은 댓그늘에 숨겨두고 솔수풀 높가지에 걸어 놓은 구절부터 혀끝에 녹여내느라 군침 가득 돕니다 -박기섭 시 삼백을 쓴 게 아니라 장편 서사시를 지운 게 아닐까? 저마다 자신을 주장하던 삼라만상의 언어들이 하얗게 캄캄해지지 않았는가? 아니다. 꿀로 쓴 나뭇잎 글자를 벌레가 오려내듯 햇살이 혀끝으로 녹이는 곳부터 언어가 새로 태어난다. 행간이 사라진 산문의 세상을 지우고 잠든 시의 언어들을 깨운다. ‘아직아래’라는 낱말이 낯설게 돌올하다. ‘아침 식사 전’이라는 지역의 사투리 하나가 병오년 아침을 새롭게 밝힌다. 숫눈의 벌판 위로 붉은 말이 힘차게 뛰어간다. <시인 반칠환>
가진 것 없어도 불안하고 가진 것 많아도 불안한 겨울밤 별안간 개 짖는 소리 누구인가 환한 달전등 비추며 외로움을 훔치러 오시는 이 지아비 첫제사 앞둔 영수네 굴뚝에선 밤 깊도록 연기 피어오르고 가로등 아래 눈발 몰아치듯 외로움이라면 나도 줄 게 있어 개가 다시 짖기를 은근히 기다리네 -조동례 도둑이라도 여간 오래된 도둑이 아니거늘, 아직도 제 버릇 못 고치고 밤을 틈타 오시네. 종일 부릅떠 만물 지키던 태양이 노을 눈꺼풀 내리자 검푸른 밤하늘 번철에 미끄러지는 노른자처럼 오시네. 한때 강물 속으로 일렁일렁 잠영해 오다가 이태백에게 잡힐 뻔한 저 달이 홍길동처럼 가로등 데리고 오시네. 훔쳐도 아무도 기억 못 할 것만 훔치고 새벽녘에 유유히 사라지더니 오늘은 시작도 전에 들켰네. 훔쳐도 외로움을 훔친다니 주안상 차려놓고 기다리겠네.<시인 반칠환>
누군가에게 팔짱을 내주고 싶은 날 그리하여 이따금 어깨도 부대끼며 짐짓 휘청대는 걸음이라도 진심으로 놀라 하며 곧추세워주기도 하면서 그렇게 발걸음 맞춰 마냥 걷다가 따뜻한 불빛을 가진 찻집이라도 있다면 손잡이를 함께 열고 들어서서 내 얘기보다 그의 얘기를 더 많이 들어주고 싶은 날 혼자 앞서 성큼성큼 걸어온 날이 누군가에게 문득 미안해지는 날 -오인태 석양이 뉘엿뉘엿 넘어갈 때에는 누구나 걸음을 멈추게 된다. 한 해가 저물어 가는 계절에는 뉘라도 뒤돌아보게 된다. 가쁘게 달려온 길을 되새기며 숨을 고르고, 주변을 살피게 된다. 12월은 보폭이 빨랐던 1이 2를 만나 새로운 해의 1월과 2월 속으로 여행을 꿈꾸는 달이다. 귓바퀴가 커지는 찻집과 술집에 이야기가 고이는 달이다. 철새들이 먼 길 떠나기 전 전선줄에 앉아 있듯 언제나 마지막은 다시 출발선이 된다. <시인 반칠환>
너를 기다리는 이 시간 한 아이가 태어나고 한 남자가 임종을 맞고 한 여자가 결혼식을 하고 그러고도 시간은 남아 너는 오지 않고 꽃은 피지 않고 모래시계를 뒤집어놓고 나는 다시 기다리기 시작하고 시간은 힐끗거리며 지나가고 손가락 사이로 새는 모래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소란스런 시간 찻잔 든 손들은 바삐 오르내리며 의뭉한 눈길을 주고받으며 그러고도 시간은 남아 생애가 저무는 더딘 오후에 탁자 위 소국 한 송이 혼자서 핀다 -권지숙 탁자 위 소국은 더 막막했을 것이다. 두꺼운 이중 창호 때문에 가을 나비와 꿀벌들 닝닝거리는 소리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 창문을 열어두었더라도 도깨비도 세다가 날이 새서 돌아간다는 방충망 네모난 눈들이 막아섰을 것이다. 소국이 담겨 있는 화병 속에는 발목조차 없었을 것이다. 당신이 연거푸 모래시계를 뒤집어놓는 동안 혼자서 피기로 했을 것이다. 자신을 위해 피웠지만 그 향기는 온 우주로 퍼졌을 것이다.<시인 반칠환>
나뭇잎은 벌레 먹어서 예쁘다 귀족의 손처럼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것은 어쩐지 베풀 줄 모르는 손 같아서 밉다 떡갈나무 잎에 벌레 구멍이 뚫려서 그 구멍으로 하늘이 보이는 것은 예쁘다 상처가 나서 예쁘다는 것은 잘못인 줄 안다 그러나 남을 먹여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 -이생진 벌레 먹은 나뭇잎은 벌레를 먹은 나뭇잎이 아니다. 개구리 먹은 뱀은 개구리를 먹은 뱀이지만. 벌레 먹은 나뭇잎은 벌레에게 먹힌 나뭇잎이다. 다시 말하자면 벌레가 먹은 나뭇잎이다. 아니다, 벌레 먹은 나뭇잎은 벌레를 먹은 나뭇잎일 수도 있다. 벌레에게 하늘을 열어주느라 손바닥에 구멍이 숭숭 났지만, 날개를 얻은 벌레는 열흘 생애 동안 숲의 미래를 열다 죽어갔을 것이다. 먹는 게 먹히는 거고 먹히는 게 먹는 것일 수도 있다.<시인 반칠환>
밥을 안치려다 쌀을 쏟고는 망연히 바라본다 급물살에 고무신 한 짝을 잃고는 해가 지도록 개울물을 바라보던 어린 시절도 그랬다 산감이 된 아버지 산소 근처에 핀 산벚나무꽃을 바라보는 봄밤도 그랬다 망연하다는 게 더 망연해지는 요즘 쌀을 쏟듯 갑자기 나도 모르게 마음을 어딘가에 쏟아놓고 멍하니 앉아 창밖 소나무나 건넌산 상고대를 보면서 나는 더 망연해진다 -김남극 쏟은 쌀이야 다시 쓸어 담으면 되고, 떠내려간 고무신 한 짝이야 언제나 되살아나는 추억이 되지 않았는가. 떠나간 아버지도 가슴 아리지만 봄마다 산벚나무 꽃으로 되돌아오지 않는가. 망연할 때 망연한 시인이야말로 바라볼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많은 현대인들이 제 때 망연하지 못해 ‘물 멍’이니 ‘불 멍’조차 동경하고 있지 않는가. 지구가 데구르르 굴러 우주의 장롱 밑으로 들어가고 있는데도 제 안의 요지경 속에만 골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시인 반칠환>
잠옷도 벗지 못하고 펄럭이는 나뭇잎으로 하루는 아침마다 새 옷을 갈아입고 도착한다 아침엔 아카시아 꽃의 말을 베끼고 싶어 처음 닿은 햇빛으로 새 언어를 만든다 오늘이라는 말은 언제나 새 언어다 약속 위엔 무슨 색종이를 얹어 놓을까 한 방울 진한 잉크빛 그리움 제 이름 부르면 앞다투어 피는 꽃들은 오늘 하루 내가 가꿀 이름이다 오늘 날씨를 묻느라 새들의 입이 바쁘고 풀의 얼굴 만지며 오는 햇빛의 발걸음이 젖어 있다 초록 위에 푸름을 얹으면 초록이 아파한다 하늘을 닦아 창문에 걸어두고 아껴둔 마음 한 다발 부치려고 우체국으로 걸어간다 그의 손이 썼을 글자들에 남은 온기 살아서 닿았던 눈빛들이 한꺼번에 달려온다 ‘오늘’이라는 말은 내가 쓴 말 가운데 가장 새로운 언어다 -이기철 오늘을 맞이하는 시인이 소년처럼 설레고 있다. 하루가 새 옷을 입고 도착하고, 아카시아가 향기로운 말을 건네고, 이름을 부르면 피어날 꽃들이 기다리고 있다. 어제는 지나간 오늘, 내일은 다가올 오늘이니, 우리를 스치는 건 오늘밖에 없다. 하지만 어제에 사로잡히거나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오늘을 전유하기는 어렵다. 오늘 속에 과거와 미래가 스며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