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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신문 명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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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후한 말 조조는 신하 왕수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를 극찬하며 ‘명실상부(名實相符)’라는 말을 남겼다. “몸과 덕을 깨끗이 해 세상의 미담이 됐고 충성과 능력으로 업적을 이뤘으니 세상에 알려진 이름(名)과 실상(實)이 서로 꼭 들어맞는다”는 찬사였다. 이름은 존재를 지칭하는 기호를 넘어 그 존재가 지향하는 본질과 스스로 증명해야 할 책임의 크기를 담아낸다. 1월 22일 ‘관세국경인재개발원’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출발한 관세청 교육기관의 현판을 바라보며 필자가 느낀 감회 역시 그 이름의 무게와 깊이 맞닿아 있다. 관세청은 지금 정체성의 전환점에 서 있다. 지능화되는 초국가 범죄와 급변하는 통상 환경 속에서 관세청은 더 이상 ‘세(稅)를 징수하는 기관’에만 머물 수 없다. 국경 단계에서 국민 안전과 국익을 지키는 ‘관(關) 수호 기관’으로서의 기능과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할 시점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관세청은 ‘AI로 공정 성장을 선도하는 관세청’이라는 비전을 수립했다. 세상을 혁신하고 있는 기술을 활용해 국경 수호와 무역 원활화를 동시에 달성하겠다는 것이 요지다. 하지만 비전을 구현하는 출발점은 결국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다.
도시의 문화 경쟁력은 더 이상 거대한 유산이나 유명 인물의 숫자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오늘날 문화관광 산업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더 갖고 있는가’보다 ‘이미 가진 것을 어떻게 해석하여 이야기하는가’이다. 싱가포르 페라나칸박물관 계단에 놓인 작은 고양이 조각상은 이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때 박물관 주변을 오가며 직원과 방문객의 사랑을 받았던 길고양이를 기억하기 위해 세워진 이 조각상은 대규모 예산이나 화려한 연출 없이도 방문객의 마음에 남는다. 이 소소한 이야기는 박물관 경험의 밀도를 높이고 재방문을 유도하는 감성 콘텐츠로 기능한다. 페라나칸박물관은 싱가포르 다문화 사회의 뿌리를 보여주는 문화인류학 박물관이다. 이곳은 페라나칸 문화를 체계적으로 전시하지만 고양이 조각상 같은 일상의 서사를 통해 ‘살아 있는 문화’도 구현했다. 고양이 조각상 설치를 위해 박물관에서 어떤 논의가 이뤄졌을지 눈앞에 그려진다. 단순한 전시 연출을 넘어 도시가 자신을 설명하는 방식이 어떻게 관람 경험과 관광 만족도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재미있는 사례다. 작은 이야기가 도시 이미지를 감성적으로 ‘리브랜딩’한 경우다. 러시아 에르미타주박물관
“쬐그만 것이 / 노랗게 노랗게 / 전력을 다해 샛노랗게 피어 있다.” 이형기 시인은 그의 시 ‘민들레꽃’에서 척박한 바위틈에서도 제 자리를 지키며 피어나는 생명의 경이로움을 노래했다. 시인은 이 작은 존재가 뿜어내는 생명력이 어떤 자로도 잴 수 없을 만큼 위대하다고 말하며 “한 댓새를 짐짓 영원인 양하고 / 보라 저기 민들레는 피어 있다”고 경탄을 보낸다. 민들레는 어디서나 ‘그냥’ 잘 자라는 듯 보이지만 씨앗 한 알이 바람에 실려 다시 꽃을 피우기까지는 치밀한 생존 전략이 작동한다. 씨앗 꼭대기에 핀 갓털은 공기저항을 극대화해 낙하 속도를 늦추고 작은 바람에도 오래 떠 있으면서 더 넓은 공간으로 이동할 기회를 만든다. 땅에 닿은 뒤에는 자신의 키보다 몇 배나 긴 뿌리를 땅 밑 깊숙이 내려 물을 길어올린다. 민들레의 강인함은 우연이 아니라 이러한 정교한 준비가 뒷받침된 결과다. 글로벌 경제의 거친 들판에서 분투하는 우리 수출입 기업들을 보면 이 민들레꽃이 떠오른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전력을 다해 제품을 만들고 낯선 시장을 개척하는 모습은 시구 그대로 ‘한치의 틈도 없는’ 사투와 같다. 하지만 민들레가 그러하듯 이러한 사
미술대학원 수업 시간에 한 학생이 물었다. “잘 팔리는 그림이 좋은 그림 아닌가요?” 훅 들어온 질문에 잠시 당황했지만 대중의 선호와 시장, 예술적 가치의 관계를 설명하며 그날 수업을 마무리했다. 시간이 지난 뒤 정반대의 장면을 마주쳤다. 한 갤러리에서 전시된 그림의 가격을 물었더니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다. 심지어 “그림을 꼭 팔아야 하나요”라고 되묻는 것이다. 하나는 지나치게 시장 중심적이고 다른 하나는 시장을 밀어내는 듯 보인다. 그러나 두 발언은 사실 같은 틈에서 나온다. 예술과 대중성, 가치와 가격 사이에 존재해온 오래된 긴장이다. 가격은 시장이 즉각적으로 보내는 신호인 반면 가치는 제도와 비평·시간이 함께 검증하는 ‘지연된 결과’에 가깝다. 주식시장처럼 예술에서도 가격과 가치는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 긴장은 예술사 전반에서 발견된다. 셰익스피어의 언어는 오늘날 근대 영어의 기준으로 평가되지만 16세기 당대에는 고급 문체라기보다 저잣거리 말에 가까웠다. 박지원의 ‘열하일기’ 또한 생동감은 있으나 당시 기준에서는 비정통으로 여겨져 시비가 벌어졌다. 대중의 언어가 표준말이 되기까지는 사회 문화의 변화와 권
오랫동안 데이터 정책은 보호와 활용이라는 이분법 속에 놓여 있었다. 시민사회에는 활용이 감시로 보였고, 산업계에는 보호가 혁신의 족쇄로 인식됐다. 그러나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정책을 분석하고 자율주행차가 도심을 달리며 의료 AI가 의사가 놓친 질병의 징후를 찾아내는 시대에 데이터는 국가의 경쟁력과 국민의 생존을 좌우하는 핵심 전략자산이 됐다. 이제 데이터를 금고 속에 가두는 방식의 보호는 현실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핵심은 어떤 통제 구조 아래에서 어떻게 쓸 것인가이다. 활용 범위가 넓어질수록 중요한 것은 신뢰다. 국민이 자신의 정보가 안전하게 처리된다는 확신을 할 때에만 데이터는 의료와 교통·AI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보호와 활용은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설계를 통해 함께 달성해야 할 목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AI 학습의 구조적 딜레마와 마주한다. 개인정보보호법의 핵심 원칙은 동의이며 이는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지켜온 강력한 장치였다. 그러나 수천억 개의 파라미터를 가진 거대언어모델이나 자율주행 AI를 학습시켜야 하는 현실에서 이 원칙은 물리적 한계에 부딪힌다. 도로 주행 영상을 학습하기 위해 모든 보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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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단어 하나를 입안에서 오래 굴려보곤 한다. 사전적 의미를 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단어가 지나온 시간의 궤적을 더듬어 보기 위해서다. 단어가 어디서 왔고 어떤 사연을 거쳐 지금 우리 곁에 머물고 있는지 들여다보면 때로는 복잡한 세상의 흐름이 또렷하게 이해될 때가 있다. ‘보세(保稅)’도 그런 단어다. 사람들은 흔히 ‘보세 옷’이라는 말로 이 단어를 친숙하게 쓰지만 정작 관세 용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보세는 ‘관세 부과를 보류한다’는 뜻으로 보세가공제도는 외국 원재료를 세금 부담 없이 반입해 제조·가공한 후 다시 수출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다. 1970년대 원단을 들여와 옷을 만들어 수출하던 우리 기업에 이런 제도는 가공에만 집중하게 해준 고마운 존재였다. 당시 해외로 나가지 못한 물량이 동대문 시장 등으로 흘러들며 ‘보세 옷’이라는 표현이 퍼져나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제는 ‘브랜드가 없는 저렴한 옷’을 가리키는 생활어로 굳어졌지만 그 안에는 사실 한 시대의 수출 전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보세’가 이제 옷감을 넘어 첨단산업의 심장부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
“인공지능(AI) 아트는 과연 예술인가”라는 질문은 더 이상 미술계의 논쟁거리가 아니다. AI로 제작된 작품이 이미 세계 주요 미술관과 비엔날레에 등장하면서다. 질문은 이제 “우리는 이 새로운 예술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로 바뀌어야 한다. 국내에서도 이미 2016년부터 AI 기반 체험형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관객 움직임을 시각화하거나 대화를 주고받는 작품들이 예술 안에서 기술과 인간이 결합하는 방식을 실험해왔다. 아트센터나비와 아시아문화전당이 개최한 미디어아트 페스티벌 등이 AI 아트의 마중물 역할을 해왔다. 현대차의 지속적 후원도 글로벌 기업의 사회적·예술적 책임을 실천한 사례로 평가할 만하다. 해외는 새로운 변화에 더 적극적이다.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모마)은 엔비디아의 후원을 받아 AI로 미술관 소장품 데이터를 학습시켜 제작한 레픽 아나돌의 작품 ‘감독받지 않은’을 2022년 선보였고 이듬해 영구 소장품으로 등록했다. 관람객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변주되는 이미지를 경험하도록 설계된 작품이자 디지털 알고리즘을 하나의 미적 체험으로 작동하게 만든 사례다. 세계 최초 AI 아트 미술관을 표방하며 올해
‘프라이버시’라는 개념은 기술 발전과 함께 등장하고 진화해왔다. 19세기 말 언론과 사진 기술의 확산 속에서 프라이버시는 ‘혼자 있을 권리’로 처음 정의됐다. 이는 개인의 삶이 무단으로 노출되는 것에 대한 소극적 방어였다. 이후 컴퓨터와 인터넷이 세상을 연결하면서 프라이버시는 공간의 문제를 넘어 나에 관한 정보가 언제 누구에게 어떻게 쓰일지 결정하는 ‘자기결정권’의 문제로 확장됐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개인정보 보호 제도다. 프라이버시가 가치이자 권리라면 개인정보 보호는 이를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우리는 그동안 개인정보의 수집·이용·제공을 규율하는 틀 안에서 프라이버시를 보호해왔다. 그러나 인공지능(AI)과 데이터 기반 행정이 확산되는 시대에 이러한 보호 방식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오늘날의 위험은 개인정보 유출에 국한되지 않는다. 데이터의 결합과 추론, 자동화된 결정과 예측 행정은 개인이 제공하지 않은 정보까지 만들어내고 그 결과가 개인의 권리와 기회에 영향을 미친다. 그간 개인정보 규율 체계에서 주로 다뤘던 개인정보 처리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사회적으로는 프라이버시 침해로 인식되는 영역이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처럼 겁을 상실한 경우를 가리켜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고 한다. 수술 등 인위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간이 배 밖으로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간이 자연적으로 혹은 질병에 의해 정상보다 거대해질 수는 있다. 난해한 각종 질병을 제외하고 가장 이해하기 쉬운 사례는 무엇이건 많이 먹어 간에 기름이 가득 찬 경우다. 간은 정상보다 150~200%까지 거대해질 수 있다. 입에 풀칠할 여력도 없던 시절에는 꿈도 꿀 수 없었지만 농작물을 풍족하게 수확하는 시대를 맞으면서 생긴 질병이다. 좀 더 구체적인 증거를 찾아보면 조선왕조실록은 물론 일제강점기 기록에도 수없이 많은 아사(餓死) 사례가 있다. 끼니를 때울 음식조차 풍족하지 않았으니 곡물을 기반으로 만들던 술도 소수만이 향유할 뿐 그리 대중적인 마실 거리는 아니었다. 일제강점기 때인 1916년 시행된 ‘주세령’은 일종의 주류 제조 면허제로 술에 아주 높은 세금을 매겨 술을 담그는 것은 꿈도 못 꾸게 했다. 곡물 수탈과 세금 획득을 위한 일거양득 정책이라는 설도 있지만 말이다. 불행히 해방 이후에도 우리의 먹거리는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1970년
한식은 지금 단순한 유행을 넘어 세계인의 일상에 스며드는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다. 과거에는 비빔밥이나 불고기 같은 개별 메뉴에 대한 호기심이 주였다면 이제는 한식 전반을 하나의 정교한 ‘미식 브랜드(Gastronomy Brand)’로 인식하려는 흐름이 전 세계적으로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우리 문화의 저력과 산업적 성장,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적 노력이 맞물려 만들어낸 구조적 성과다. 하지만 진정한 ‘한식의 글로벌 미식 브랜드화’를 위해서는 한 단계 더 높은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한식이 세계인의 일상 속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이 알려졌는가’를 넘어 ‘어떤 깊이와 다양성을 지니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 해답의 중심에 바로 우리 땅 곳곳에 숨겨진 보물인 ‘향토음식’이 있다. 한식의 미식 철학은 자연과의 조화에 기반한다. 제철의 생명력을 오롯이 담아내고 기다림의 미학인 발효를 통해 깊은 풍미를 완성한다. 주식과 부식의 조화로운 어우러짐이 돋보이는 상차림은 건강과 절제의 미를 동시에 보여준다. 이러한 가치가 가장 선명하게 살아 있는 것이 바로 각 지역
길었던 하루 끝에 현관문을 열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건 세차게 흔들리는 꼬리와 눅눅한 코끝의 온기다. 어디를 다녀왔는지, 어떤 사람을 만났는지, 피곤한지 즐거운지. 말 대신 코로 묻는 반려견과 살다 보면 냄새는 누군가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작은 단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대한민국 국경의 최전선에도 그런 단서를 놓치지 않는 코끝이 있다. 공항과 항만에서 사람과 화물이 뒤섞인 거대한 냄새의 파도를 묵묵히 훑는 마약 탐지견이다. 마약 밀수 수법은 해마다 더 교묘해진다. 진공 포장은 물론 커피 가루로 위장하거나 향수로 냄새를 덮기까지 한다. 이렇게 스며든 마약은 한 사람의 삶을 파괴할 뿐 아니라 가족을 무너뜨리고 공동체의 안전을 갉아먹는다. 이때 등장하는 든든한 파수꾼이 바로 마약 탐지견이다. 탐지견은 사람보다 약 40배 많은 후각세포를 갖고 있으며 뇌의 33%가 후각 처리에 집중돼 있다. 수영장 20개를 채울 만큼의 물속에서도 단 한 방울의 미세한 성분을 골라내는 이들의 능력은 인공지능(AI) 분석이나 X레이 장비가 미처 닿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메운다. 그래서 탐지견은 그 존재 자체로 밀수 시도를 꺾는 강력한 심리적 저지선이
미술 시장에서 작품의 명성과 가격을 움직이는 힘은 언제나 눈에 보이는 거래만은 아니다. 그 이면에는 작품을 해석하고 역사 속에 위치 짓는 학문적 비평 연구의 언어가 존재해왔다. 뉴욕과 런던, 베를린의 미술 시장은 단순한 자본의 집합이 아니라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된 비평과 연구의 토대 위에서 작동한다. 반면 오늘날 한국 미술계에서 이 중요한 매개의 역할은 점차 사라지고 있는 듯하다. 해외 사례를 보면 미술 관련 연구는 미술 시장의 외곽이 아니라 핵심 인프라임을 보여준다. 미국에서 ‘아트포럼’과 ‘옥토버’가 더 이상 시장을 즉각적으로 움직이는 매체는 아니지만 작가와 작품을 제도와 역사 속에 위치시키는 영향력만큼은 여전히 유효하다. 민간 미술관의 소장품 연구에 관한 열의와 그 규모 또한 말할 나위가 없다. 독일 역시 미술관 큐레이터와 미술사가의 연구가 전시 기획과 출판으로 이어지며 작가의 위치를 장기적으로 안착시키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작품의 가치는 단기적 유행이 아니라 해석의 축적을 통해 형성돼간다. 일본 또한 미술관과 대학, 출판계가 긴밀히 연결된 연구 구조가 기본이다. 국공립 미술관의 경우 장기간 연구
세계 최대 전자·정보기술(IT) 전시회인 CES 2026의 상징적인 변화는 인공지능(AI)이 더 이상 화면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생성형 AI를 넘어 이제 AI는 로봇과 모빌리티라는 신체를 입고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보고, 듣고, 움직이며 인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피지컬 AI 시대의 개막이다. 올해 CES 전시장에서는 로봇이 인간을 대하는 태도가 주목받았다. 자율주행 로봇들은 사람이 다가오면 속도를 줄이고 길을 가로지르는 대신 잠시 멈춰 양보했다. ‘사회적 주행(Social Navigation)’ 기술이다. 과거의 로봇이 최단거리를 계산하는 효율성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자신의 움직임이 위협이 되지 않는지 사회적 비용을 계산한다. AI의 경쟁력이 연산 속도에서 공존의 능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AI가 거실·사무실 등 물리적 실재로 들어올수록 이용자의 불안은 성능이 아닌 신뢰의 문제로 직결된다. 텍스트를 생성하는 AI의 실수는 재질문으로 해결되지만 50㎏짜리 로봇의 판단 착오나 침실을 돌아다니는 로봇청소기의 사생활 영상 유출은 돌이킬 수 없는 문제를 낳는다. 피지컬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는 결국 프라이버
‘토의 간’은 이해조 선생이 1912년 매일신보에 연재한 작품이다. ‘수궁가’ ‘별주부전’으로 알려진 판소리 이야기를 우리글로 전환해 사람들에게 읽을거리를 제공했다는 문학사적 의미도 있지만 간 수술을 하는 의사 입장에서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수궁가나 별주부전에서 와병 중인 용왕과 용왕을 위해 살아 있는 토끼의 간을 구하러 가는 신하 별주부의 관점이 부각됐다면 20세기 초반에 이르러 발간된 토의 간에서는 실제 간을 제공해야 하는 토끼의 시점이 부각됐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이 이야기에서 토끼의 등장은 별주부의 기망 행위로부터 시작된다. “토 선생, 용궁에 가면 감홍로(한국식 전통 소주의 일종)도 있소.” 별주부의 미끼에 넘어간 토끼는 수궁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간을 내어달라는 용왕의 참요구를 듣게 되고 죽기 전 최후진술을 하라는 용왕의 말에 간을 몰래 감춰두고 왔다는 잔꾀를 발휘해 수궁을 탈출한다. 토끼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황당한 일이다.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기는커녕 술이나 준다는 거짓으로 꾀어내 깊은 바닷속으로 데려갔으니 말이다. 서구에서는 1957년 이러한 내용을 ‘환자 개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