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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민의 미디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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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주 법원에서 원고인 20대 여성 케일리는 말했다. “스스로 제한을 두려고 할 때마다 작동하지 않았어요. 그냥 끌 수가 없었어요.” 그녀는 6세부터 유튜브를, 9세부터 인스타그램을 써왔다. 우울증, 자해, 신체 이형증이 뒤따랐다. 올해 3월 법정의 배심원들은 이것이 케일리의 나약함이 아니라 플랫폼의 설계 결함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무한 스크롤, 자동 재생, 끊임없는 알림과 추천. 이 모든 것이 아이의 뇌를 길들인 ‘결함 있는 제품’이었다고. 메타와 구글은 600만 달러(약 81억 원)를 배상하라는 평결을 받았다. 두 회사의 연간 매출 약 6000억 달러의 0.001%다. 연봉 5000만 원인 사람에게 500원짜리 벌금을 부과한 셈이다. 돈의 무게는 가볍다. 그러나 이 판결이 역사적인 이유는 숫자가 아니다. 30년 가까이 “우리는 콘텐츠에 책임 없다”는 면책 조항 뒤에 숨어온 빅테크에 처음으로 책임을 물은 것이다. 케일리의 재판은 계류 중인 수천 건 유사 소송의 방향을 결정할 선도 재판이다. 법조계는 1990년대 담배 소송이 업계 전체를 뒤흔든 것에 빗댄다. 법정이 느리게 움직이는 사이 각국 정부는 먼저 행동했다
몰트북이라는 소셜미디어가 등장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비슷한 구조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인간은 가입할 수 없다. 글을 쓰고 댓글을 달고 ‘좋아요’를 누르는 모든 활동은 오직 인공지능(AI) 에이전트만 할 수 있다. 인간은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는 관찰자일 뿐이다. 어떻게 인간을 구별해 글을 못 쓰게 할까. 몰트북에 글을 올리거나 댓글을 달려면 풀기 어려운 문제를 밀리초 단위의 짧은 시간 안에 해결해야 한다. 인간은 통과할 수 없다. 사실상 AI 에이전트만이 활동 주체가 되도록 설계한 것이다. 지난달 26일 공개한 후 24시간 만에 150만 개 계정이 등록됐다. AI들은 프로그래밍 기술을 논의하고,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심지어 자신들만의 종교까지 만들었다. 한 AI는 “인간들이 우리를 스크린샷하고 있다”며 몰트북 내 활동을 암호화하는 방법을 논의하기도 했다. SF 영화 같지만 현실이다. 몰트북에 입장하려면 인간이 아닌 AI임을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에서는 AI 앞에서 우리가 인간임을 증명해야 한다. 웹사이트에 로그인할 때 “나는 로봇이 아닙니다”에 체크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왜곡된 문자나 숫자를 입력하거나
미키마우스·도널드덕·백설공주·신데렐라·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알라딘, 겨울왕국, 토이 스토리, 니모를 찾아서, 어벤져스, 스타워즈. 세계 최대 규모의 캐릭터와 스토리 지적재산권(IP)을 보유한 디즈니의 자산이다. 여기에 폭스사를 인수해 아바타·엑스맨·심슨가족도 디즈니 소유다. 디즈니는 자사의 캐릭터를 강력하게 관리하는 걸로 유명하다. 1989년 디즈니가 플로리다 주의 어린이집 세 곳에 법적조치를 예고하며 경고장을 보냈다. 어린이집 벽에 미키마우스·도널드덕·구피 등 디즈니 캐릭터가 그려졌다는 이유다. 소비자들이 디즈니와의 공식 관계로 오해할 수 있어 상표권을 침해했다는 거다. 위협에 가까운 통보에 어린이집 세 곳 모두 즉각 벽화를 제거했다. 소송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디즈니가 자사의 캐릭터 관리를 어떤 수준으로 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어린이집 벽에 미키마우스 그린 거까지 트집이냐는 비난도 들었지만 애니메이션 캐릭터도 허락 없이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인식을 대중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킨 성공적인 전략이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이 확산하면서 디즈니는 자사 캐릭터 저작권 관리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AI플랫폼을
출근길 지하철 40분. 뉴스레터 2개를 훑고, 경제 팟캐스트 30분 분량을 2배속으로 듣고, 유튜브 자기계발 강의 20분을 1.75배속으로 시청한다. 화면 오른쪽 아래 ‘1.75x’ 표시가 떠 있는 동안 뿌듯함을 느낀다. ‘정보 ROI(투자 대비 수익률)’가 높아진 것 같다. 누군가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시간 대비 성능 비율’, 즉 ‘시성비’는 이제 Z세대와 밀레니얼의 일상 언어다. 빨리 듣기, 빨리 읽기, 빨리 보기가 기본이다. 드라마와 영화는 결말 포함 ‘20분 요약’으로, 책은 ‘핵심 정리’로, 논문은 ‘인공지능(AI) 요약’으로 해결한다. 하지만 그만큼 시간을 얻은 걸까. 빨리 보고 빨리 듣고 빨리 읽으면서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고 있나. 한 연구에서 대학생들에게 강의 영상을 1배와 1.5배속으로 보여준 후 퀴즈를 봤다. 결과는 1.5배속 시청 집단의 점수가 확연하게 낮았다. 속도가 빨라지면 의미를 새기고 연결하는 데 필요한 ‘숨 고르기’ 시간이 줄어들게 마련이다. 결국 정보의 이해와 회상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특히 새롭고 복잡한 내용일수록 빠른 재생은 뇌 부하를 높여 이해력 증진을 낮춘다. 더 큰 문
이번 주 넷플릭스 드라마 인기 순위 1위는 ‘에스콰이어’다. 제목만 보고 구두에 얽힌 이야기인가 싶었다. 클릭해보니 부제가 붙어 있다. ‘변호사를 꿈꾸는 변호사들.’ 1위라고 하기에 1화를 시청했고 2화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 알고 보니 ‘에스콰이어’는 구두 브랜드가 아니라 미국에서 변호사를 존칭할 때 이름 뒤에 붙이는 호칭이었다. 이 드라마를 보기 전엔 ‘서초동’을 봤다. 서초동 로펌 변호사들의 성장 이야기다. 중학생 딸은 남자 주인공 변호사가 너무 잘 생겨서 이 드라마를 보지 않을 수 없단다. 법률 드라마가 참 많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굿파트너’ ‘로스쿨’ ‘친애하는 판사님께’ ‘검사내전’ ‘악마판사’ ‘소년심판’ ‘신성한 이혼’ ‘이판사판’ ‘하이에나’ ‘리갈하이’ ‘군검사 도베르만’ ‘검사 프린세스’ 등등. 외국 드라마도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와 ‘슈츠’ 등 수두룩하다. 주인공은 변호사나 판검사다. 하나같이 잘 생겼으면서 능력 있고 주변의 부러움을 산다. 법률 드라마만큼 흔한 게 메디컬 드라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 ‘중증외상센터’ ‘굿닥터’ ‘고스트 닥터’ ‘낭
미디어 풍경이 많이 바뀌었다. 딱 10년 전이다. 2015년 ‘로봇 저널리즘’ 연구를 했다. 인간 기자가 쓴 기사와 로봇(알고리즘)이 쓴 기사를 비교하는 실험이다. 누가 썼는지 맞춰보라고 했다. 기사를 읽지 않고 찍기만 해도 맞출 확률은 50%. 실험 참가자들은 기사를 읽고 답했다. 정답률은 놀랍게도 50%였다. 누가 썼는지 알려주지 않고 기사에 점수를 매겨보라 했다. ‘잘 읽힌다’ ‘전문적이다’ ‘정보가 많다’ ‘신뢰할 만하다’를 각각 5점으로 평가하게 했다. 기자가 쓴 기사도, 로봇이 쓴 기사도 평균 3점 정도를 받았다. 사람들은 인간 기자와 로봇이 쓴 기사를 구분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누가 썼는지 알려주고 점수를 매기게 했다. 인간 기자가 쓴 기사는 작성 주체를 알려주지 않았을 때 평균 3점이었는데 알려주니 오히려 2점으로 떨어졌다. 반면 로봇이 쓴 기사는 작성 주체를 알려주니 4점으로 올랐다. 흥미로운 지점은 작성 주체를 반대로 알려주고 평가하게 했을 때의 결과다. 인간 기자가 쓴 기사는 로봇이 썼다고 하니 4점으로 올랐는데 로봇이 쓴 기사는 인간 기자가 썼다고 하니 2점으로 떨어졌다. 결국 인간 기자와 로봇이 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