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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의 교육이데아
연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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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우리 문화가 이처럼 여러 영역에서 세계적 주목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싶다. 음악과 드라마·영화·뷰티·음식에 이르기까지 연이어 쾌거가 들린다. 정부도 이에 발맞춰 지난해 대통령 직속 대중문화교류위원회를 신설하고 박진영 JYP 대표 프로듀서를 장관급 위원장에 임명했다. 그런데 박 위원장이 대통령에게 브리핑한 것을 보니 글로벌 K팝 팬들의 소비를 진작하는 사업은 다양한데 ‘양성’이 보이지 않는다. 인재 확보 시스템에는 ‘발탁’과 ‘양성’이 있다. 발탁은 오디션·경합으로 검증된 재능을 빠르게 발굴·선발하는 방법으로 비즈니스적으로 가성비는 좋다. 양성은 잠재력과 열정 있는 새싹들의 재능이 발현되도록 키워내는 것이다. 시간과 노력이 더 들어 단기 사업성은 약해 보이나 중장기 영향력은 훨씬 더 크다. 모든 시대와 사회에는 저마다 향유한 문화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로컬에서만 유행되고 글로벌 보편화가 되지 않았다. 문화들이 소비되는 시스템에 그쳤기 때문이다. 18~19세기 유럽 음악이 ‘클래식’이라는 장르로 전 세계 음악교육의 표준이 되고 르네상스가 짧은 전성기를 넘어 미술사의 기준으로 남은 것은 그 문화를 소비만 하지 않고 각국 초
이달 15일 서울대에서 한국IB교육학회 학술대회가 열렸다. 특히 눈길을 끈 세션은 제주 국제바칼로레아(IB) 학교인 표선고와 일본 나가노 요시다고교의 한일 역사 공동 수업 사례였다. 한국과 일본의 고교생들이 양국 역사 교과서를 직접 비교·분석하고 그 차이를 화상으로 상호 발표한 수업이었는데 필자도 그 수업을 직접 참관했다. 일본 학생들은 한국 교과서에서 독일 히틀러, 이탈리아 무솔리니, 일본 히로히토가 나란히 소개된 구도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731부대는 들어본 적도 없었는데 아우슈비츠·난징대학살과 함께 기술된 것도 놀랍다는 반응이다. 한국 교과서에는 일제 강점기 부분에 ‘강제’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고 위안부 피해자 증언·사진도 두 쪽에 걸쳐 자세히 다룬 반면 일본 교과서는 위안부 문제가 해결됐다고 짧게 다루고 ‘강제 연행된 사례도 있다’는 식으로 서술해 한국에 비해 강제성과 범죄성을 모호하게 표현한 점을 주목했다. 자신들이 17세인데 비슷한 나이에 강제 동원된 소녀들의 고통에 대한 안타까움도 표현했다. 한국 학생들은 일본 교과서가 태평양전쟁의 명분과 각종 건설·개발 중심으로 서술된 반면 한국은 강제징용·위안부·신사참배
신임 교육부 장관이 다음 대입 개편까지 수능과 내신의 절대평가 전환을 준비하겠다고 밝히자 교육계가 술렁이고 있다. 절대평가는 교육계의 오랜 화두였다. 2017년에도 수능 절대평가를 일부 과목만 할지 전 과목을 할지 격론이 있었으나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이듬해 공론화 위원회로 넘겨졌고 결국 상대평가 유지와 정시 비율 확대로 귀결됐다. 교육적으로는 절대평가가 지극히 옳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수능과 내신이 모두 상대평가인 나라는 한국뿐이다. 그럼에도 상대평가가 유지된 이유는 비교육적임에도 불구하고 지역·계층 할당의 사회적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지금껏 대입 논쟁은 사실상 선발권 다툼이었다. 합격에 있어서 수능 점수가 기준이면 국가가 대입 선발권을 갖는 것이고, 내신이 결정적이면 학교가 사실상 선발권을 갖는 것이며, 면접·논술 변별력이 결정적이면 대학이 선발권을 갖는 것이다. 한쪽 변별력이 약화되면 다른 쪽이 강화된다. 그런데 모두 선발권인 전형 비율만 논쟁할 뿐 시험이 뭘 평가해야 하는지 논의는 뒷전이다. 선발과 평가는 다르다. 누가 선발권을 갖든 평가되는 시험이 바뀌지 않으면 교육의 여러 근본 문제는 해결
수업 중 스마트기기 금지법이 최근 국회 교육위원회를 통과했다. 내년부터 전국 초중고교에 적용된다. 교원과 학부모들은 일제히 환영했고 언론도 비판이 없다. 인공지능(AI)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 되고, 대통령실에 AI미래기획수석까지 신설된 마당에 교내 스마트기기를 법으로 금지한다는 결정에 비판적 논의조차 실종된 현실은 우려스럽다. 물론 디지털 부작용은 문제다. 그러나 그 해법이 ‘금지법’으로 귀결되는 건 AI 시대 미래 교육 모델로 너무 빈약하다는 생각이다. 이미 세상은 스마트기기 없이는 살 수 없는데 그 부작용을 스스로 통제·조절하는 역량은 어디에서 배울까. 조절력은 강의나 책으로 길러지지 않는다. 실제 환경에 노출된 상태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훈련해야 하는 근육과 같다. 어른이라고 조절력이 절로 생기는 게 아니다. 그런데 학교만 무균실이면 학교 밖 세상에서의 조절력은 어디서 기르나. 가정에 떠넘기자는 건가. 왕따와 학교폭력이 많으니 학교 보내지 말자는 식이고, 교통사고·매연 문제 많으니 자동차를 금지하자는 격이다. 자동차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도로교통법과 운전면허제도를 만든 것처럼 디지털 부작용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역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