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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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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서울경제 정민정 기자입니다.
만화경
미국의 경제학자 해리 덴트는 2014년 저서 ‘인구절벽’에서 인구 감소로 인한 경제활동 위축으로 경제위기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생산과 소비의 주축인 40대가 급감한다는 의미에서 ‘인구절벽’이라는 신조어를 썼다. 그는 2018년 한국에 인구절벽이 닥치기 시작할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실제 우리나라의 생산가능인구는 2017년에 정점을 찍은 뒤 감소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내년 우리나라 유치원과 초등학교, 대학이 인구 감소의 직격탄을 맞게 되면서 ‘트리플 인구절벽’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내년에 대학 새내기가 되는 2005년생,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2017년생, 유치원에 들어가는 2020년생은 모두 전년보다 출생아가 크게 줄어든 해에 태어났다. 코로나19까지 덮친 2020년 출생아는 27만 2300명으로 사상 첫 20만 명대를 기록했다. 한국의
16세기 이후 유럽에서는 비버 가죽으로 만든 모자가 유행했다. 귀족들이 우아한 동작으로 비버 모자를 벗으며 인사하는 것이 에티켓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유럽 국가들은 비버 모피를 확보하기 위해 쟁탈전을 벌였고 아메리카 대륙까지 진출해 비버 사냥에 나섰다. 비버는 사냥으로 멸종 위기에 처했다가 20세기 후반부터 개체 수가 늘고 있다. 설치류인 비버는 돌출형 앞니와 가지런히 모은 앞발의 앙증맞은 외모로 동화에도 자주 등장한다. 튼튼한 앞니로 나무 등을 갉아 댐을 만들고 그 중앙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는데 이로 인해 생긴 습지는 생물들의 서식처가 된다. 비버가 수천 그루의 나무를 사용해 캐나다 우드버펄로국립공원에 855m 길이의 댐을 만들었던 일화도 있다. 비버댐이 오염 물질을 걸러낸 덕에 미국 콜로라도 이스트 강의 수질을 개선시켰다는 연구 결과도 있
2009년 7월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교육 개혁 프로젝트 ‘정상을 향한 질주(Race to the Top)’를 발표했다. 그는 “우리의 아들딸들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지 못하면 미국은 21세기에 성공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개혁안에는 ‘차터 스쿨(Charter School)’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학력 성취도에 따라 교사 급여를 차등 지급하는 내용 등을 담았다. 차터 스쿨은 검증된 개인이나 단체가 주 정부와 협약(Charter)을 맺고 학교를 직접 운영하는 일종의 자율형 공립학교다. 일반 공립학교처럼 주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지만 교과 과정 등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차터 스쿨이란 개념을 가장 먼저 내놓은 사람은 미국 매사추세츠주 애머스트대학에서 교육학을 가르치던 레이 버드 교수였다. 버드 교수가 1974년 쓴 논문 ‘차
‘잃어버린 10년’이 새삼 화두로 떠올랐다. 최근 국민의힘 조직강화특별위원회가 조직위원장을 선정하지 않고 보류한 지역구 중 65%가 수도권으로 나타났는데 대부분 적임자가 없어 비워뒀다고 한다. 지난 10년 가까이 잇단 선거 패배로 하부 조직이 무너진 수도권 지역이 많아 좋은 인재 영입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잃어버린 10년’이 국민의힘에 남긴 상흔이다. ‘잃어버린 10년’이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다. 미국은 최강국으로 올라선 반면 영국은 강대국 지위를 잃었다. 국가 채무를 전쟁 전보다 10배로 불어나게 한 데다 선박의 40%를 잃어 국가 경쟁력이 추락했다. 영국에서 1945~1955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칭하는 이유다.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의 대표적 사례다. 재정·무역의 ‘쌍둥이 적자’로 견딜 수
청론직설
2022년 세밑, 총체적 복합 위기의 거센 파고 속에서 나라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국민들에게 힘과 위로가 돼야 할 정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는 실종되고 대결 정치가 만연하면서 여의도 국회는 저주와 증오로 넘쳐난다. 여야가 24일 새벽 국회 본회의에서 가까스로 내년도 예산안을 통과시켰지만 2014년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후 ‘최장 지각 처리’라는 오명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한국 정치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넘어 실존적 위기에 처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 30여 년 동안 냉철한 분석과 대안 제시를 통해 시사평론가로 이름을 알린 유창선 사회학 박사는 26일 서울경제와 만나 “정치가 갈등을 조정하기는커녕 모든 갈등의 근원지가 됐다”고 비판했다. 이어 “상대 진영을 싸워서 이겨 박멸해야 할 악의 세력으로 규정하면서 정치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 가수이자 시인 밥 딜런은 1962년 발표한 곡 ‘에밋 틸의 죽음’에서 억울하게 살해 당한 흑인 소년의 이야기를 읊조렸다. 소년의 죽음은 1950~1960년대 흑인 인권 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이 시기에 성장기를 보낸 흑인들은 스스로를 ‘에밋 틸 세대’라고 규정했다. 1955년 8월 20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 살던 14세 소년 에밋 틸은 사촌들을 만나기 위해 미시시피주 머니시로 향했다. 어머니는 만류했지만 첫 여행을 떠나는 틸은 잔뜩 들떠 있었다. 사흘 뒤인 24일 오후 소년은 사촌들과 어울려 식료품점에 들렀다. 백인 부부 로이 브라이언트와 캐럴린 브라이언트가 운영하던 곳이었다. 풍선껌을 고른 에밋은 실수로 계산대가 아닌 캐럴린의 손을 건드렸고 휘파람을 불었다. 며칠 뒤인 28일 새벽 사촌 집에서 잠자고 있던 에
지난 주말 마을버스에서 어르신 한 분이 또 다른 어르신에게 연신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었다. 자리를 양보해줬다는 이유에서다. 자리를 양보한 할아버지는 “어르신, 괜찮습니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데 거동이 괜찮으세요”라고 물었다. 할머니는 “괜찮아요. 내가 아직 백 살도 안 됐어요. 아흔다섯 살밖에 되지 않아요”라며 해맑게 웃었다. 할아버지는 “저는 아직 애네요. 저는 내일모레면 여든 살이 됩니다”라고 답했다. 두 어르신의 대화를 듣고 있던 승객들은 웃음을 참느라 애쓰는 표정이 역력했다. 기분 좋은 온기가 마을버스 안을 가득 채웠다. 딸아이에게 귓속말을 건넸다. “우리 동네 장수 마을로 지정해도 되겠다. 저렇게 건강한 어르신들이 많으니.” 하지만 현실을 들여다보면 오래 사는 게 축복만은 아니다. 건강한 육체와 적정한 소득, 그리고 안정된 일자리가
1970년 뉴욕, 한 프랑스 청년이 택시에 올라탔다. 청년이 택시 기사와 대화를 나누며 ‘프랑스 하면 딱 떠오르는 게 뭐냐’고 묻자 ‘크리스찬디올’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택시 기사가 명품 브랜드를 망설임 없이 떠올리는 것에 청년은 충격을 받았다. 브랜드의 중요성을 절감한 청년은 그로부터 19년 뒤 글로벌 명품 그룹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의 수장이 된다. 그가 바로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이다. 1949년 프랑스 북부 노르주 루베에서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난 아르노는 명문 에콜폴리테크니크에 입학할 정도로 명석했다. 1971년 졸업 후 부친의 건설 회사에 들어가 1979년 회장 자리에 올랐지만 1981년 사회당으로 정권이 바뀌자 미국으로 떠나 부동산 투자로 사업을 키웠다. 다시 3년 뒤 아르노에게 디올의 모기업인 부삭그룹이 부도 위기에
2005년 밥 아이거는 월트디즈니 최고경영자(CEO)로 지명되자마자 스티브 잡스 애플 CEO에게 만남을 청했다. 아이거는 “모든 음악을 아이팟에 저장해 듣고 있는데 컴퓨터로 TV나 영화를 볼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고 했고 잡스는 “비디오 아이팟을 출시하면 당신 회사의 TV쇼도 올릴 거냐”고 물었다. 아이거는 “예스”를 외쳤고 그 뒤 두 사람은 깊은 신뢰를 갖게 됐다. 아이거는 CEO에 취임한 지 1주일 만에 잡스에게 전화해 “나에게 미친 아이디어가 있다. 디즈니가 픽사를 인수하는 것은 어떤가”라고 물었다. 잡스는 컴퓨터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픽사의 최대 주주였다. 긴 침묵 끝에 잡스는 “세상에서 가장 미친 생각은 아니다”라고 화답했고 이듬해 디즈니는 픽사를 74억 달러(약 10조 원)에 사들였다. 1951년 뉴욕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아
2020년 10월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이 네덜란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반도체 장비 회사 ASML 본사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이 부회장은 페터르 베닝크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최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공급 방안 등을 놓고 긴밀히 협의했다. ASML은 1984년 네덜란드 필립스와 반도체 장비 전문기업 ASM인터내셔널이 합작해 설립한 회사다. 에인트호번 필립스 본사 옆 목재 건물에서 직원 100여 명 규모로 닻을 올릴 정도로 시작은 미미했다. ASML은 2001년 ‘트윈스캔’이라는 기술로 경쟁사를 따돌리면서 현재 위상을 차지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적극적인 기술협력은 경쟁력을 높인 일등공신이다. ASML은 2003년 독일의 광학업체인 칼자이스와 함께 에멀션 방식의 노광장비를 출시했다. 이어 벨기에 아
지난해 5월 중국의 최대 음식 배달 플랫폼 메이퇀(美團) 창업자인 왕싱 최고경영자(CEO)가 진시황의 분서갱유를 비판한 당나라 시인의 한시 ‘분서갱(焚書坑)’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려 파문이 일었다. 왕싱이 중국 공산당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얼마 뒤 이 회사는 반독점 위반 혐의로 수천억 원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 받는 고초를 겪었다. 1979년 중국 푸젠성 롱옌에서 태어난 왕싱은 어릴 적부터 컴퓨터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 칭화대 전자공학과에 들어갔다. 우수한 성적으로 전액 장학금을 받고 미국 델라웨어대로 유학을 떠났던 그는 SNS ‘프렌즈터’를 보고 창업을 꿈꾼다. 박사 학위까지 포기하고 귀국해 2004년 중국 최초의 SNS ‘둬둬유(多多友)’를 론칭했지만 시기상조였다. 1년 만에 사업을 접고 중국판 페이
지난해 우리나라 총인구가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감소했다. 지난해(11월 1일 기준) 우리나라 총인구는 5173만 8000명으로 1년 전보다 9만 1000명 줄었다. 총인구가 감소한 것은 통계를 집계한 후 72년 만에 처음이다. 생산연령인구(15~64세)의 급격한 감소를 지칭하는 ‘인구절벽’은 이미 시작됐으며 이보다 파괴력이 큰 ‘인구지진’이 10년 내 밀려올 것이라는 경고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인구 감소는 그 자체로도 국가의 지속성을 위협하지만 재정 부담 증가, 교육 시스템, 생산 인력, 내수 시장 붕괴 등 복합 위기를 초래한다. 인구경제학자로 잘 알려진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14일 연구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인구 보너스의 힘으로 버텨왔던 전략을 인재 보너스 전략으로 바꿔야 한다”며 “고학력 인재가 풍부한 만큼 전체 인구가
1953년 11월 27일 부산 중구 영주동 판자촌에 큰불이 났다. 주택 3132채가 소실됐고 이재민 3만여 명이 발생했다. 이때 구세주처럼 손을 내민 사람이 당시 미 군수사령관인 리처드 위트컴 장군이었다. 그는 상부의 승인 없이 이재민에게 식량과 의복 등 군수물자를 나눠줬고 이 일로 미 의회 청문회에 소환됐다. 그는 청문회에서 “전쟁은 총칼로만 하는 게 아니다”라면서 “그 나라 국민을 위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라고 말했다. 의원들은 기립 박수로 경의를 표했고 장군은 더 많은 구호물자를 싣고 돌아왔다. 1894년 미국 캔자스에서 태어난 위트컴은 1916년 학군사관(ROTC)으로 군 생활을 시작해 제1·2차 세계대전 등 수많은 전쟁에 참전했다. 1944년 노르망디상륙작전 중 연합군 병력과 군수물자 수송을 지휘해 프랑스 최고 무공훈장을 받았다.
핼러윈의 비극,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악몽 같은 그날 이후 벌써 닷새가 지났다. 맑은 공기를 들이쉬는 일상의 몸짓조차 죄스러울 정도로 살아남은 자들은 무겁고 비통한 시간을 버티고 있다. 희생자 대부분이 생을 채 피우지 못한 20대 청년이고 심지어 중고생까지 포함됐다는 사실은 더욱 가슴을 후벼 판다. 돌이켜보면 8년 전 봄도 그랬다. 제주로 향하던 세월호가 전남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면서 승객 299명이 사망하고 5명이 실종됐다. 당시 가슴을 가장 아프게 했던 것은 희생자 대부분을 차지했던 단원고 학생들이 97년생, 꽃 같은 열일곱 살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날 이후 유채꽃 만발한 제주의 찬란한 봄을 맞닥뜨릴 때마다 저절로 터져 나오는 탄성에 흠칫 놀라며 자책해야 했고 충분히 누리지 않음으로 부채 의식을 덜고자 했다. 이제 가을을 지날 때도
미국 고위급 대표단이 4월 솔로몬제도 수도 호니아라에서 머내시 소가바레 총리를 만나 “중국군의 배치가 현실화할 경우 그에 맞게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과 안보 협정에 서명한 것에 대한 항의였다. 협정에는 중국 함정을 솔로몬제도에 파견하고 물류 보급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태평양제도포럼(Pacific Islands Forum·PIF)에 소속된 솔로몬제도 등 남태평양의 섬나라들은 미국의 뒷마당이라고 불릴 정도로 미국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있었다. 하지만 팽창주의를 노골화하는 중국의 입김이 세지면서 이 지역이 미중 패권 전쟁의 주요 무대로 부상했다. 남태평양의 섬나라들이 미국·영국 등이 주도하던 ‘남태평양위원회’에 반대하면서 독립과 협력을 위해 1971년 남태평양포럼을 창설했다. 이어 2000년에 현재의 이름으로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