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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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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서울경제 정민정 기자입니다.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과거 부정과 자기 합리화는 반복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지난 4년은 유독 심했다. 터무니없는 궤변으로 상식을 뒤집고, 위선과 몰염치로 정의를 농락하는 일이 다반사가 됐다. 지난 2015년 2월 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댓글 공작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자 “이명박 정부에서 저질러졌지만 박근혜 대통령도 이 문제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7월 대법원은 ‘드루킹 사건’에 연루된 김경수 전 경남지사에게 징역 2년을 확정했다. 댓글을 조작하는 행위는 여론을 왜곡하고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범죄다. 김 전 지사는 “진실은 아무리 멀리 던져도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믿음을 놓지 않겠다”고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법원의 유죄 판결이 진실의 힘을
만화경
2018년 6월 10일 싱가포르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이 열렸다. 전 세계인의 이목이 ‘세기의 담판’으로 불린 이 회담에 집중된 가운데 네팔 구르카 용병이 철통 경호하는 모습이 생중계되며 눈길을 끌었다. 구르카족은 원래 몽골계였다. 18세기 네팔 중심부를 점령한 몽골족이 인도·아리안 계통과 섞이면서 구르카족이 형성됐다. 구르카가 외부에 처음 알려진 것은 1814년 영국군이 히말라야산맥을 넘어 네팔 왕국을 침입했을 때다. 당시 신식 무기로 무장한 영국군은 구부러진 단검 ‘쿠크리’ 한 자루로 맞선 구르카족과의 전투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고 서둘러 평화조약을 맺었다. 이후 영국은 동인도회사를 통해 높은 급여를 주고 구르카족을 용병으로 채용하기 시작했다. 가난한 부족이었던 구르카에게는 생계
청론직설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거대 여당이 거침없이 입법 폭주를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교육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언론중재법·사립학교법 개정안 등의 상임위원회 통과를 밀어붙였다. 이 과정에서 ‘위성 정당’인 열린민주당의 김의겸 의원, 민주당에서 제명된 윤미향 무소속 의원을 ‘야당 몫’의 안건조정위원으로 활용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지난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 기업 규제 3법, 대북전단살포금지법 등 위헌 논란이 있는 법안들을 야당의 반대 속에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독주 행태는 이제 여의도의 일상이 됐다. 합리적 정치철학자로 알려진 김영수 영남대 정치행정대학장은 23일 대학 연구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지난 1987년 민주화 체제 등장 이후 자유·민주·인권 등 민주주의 핵심 가치가 문재인 정부처럼
1979년 겨울, 구(舊)소련은 본격적으로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해 12월 소련이 내세운 바르라크 카르말이 대통령직에 오르자 조국의 자유와 이슬람 신앙을 지키겠다며 선봉에 선 지도자가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국민 영웅’ 아흐마드 샤 마수드다. 1953년 판지시르주 계곡에 자리한 자갈라크에서 태어난 마수드는 카불대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평범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고향인 판지시르를 근거지로 동지들을 규합해 무장 투쟁에 나섰다. ‘다섯 사자’를 의미하는 판지시르는 힌두쿠시산맥을 중심으로 길게 뻗은 도시로 계곡이 많아 천혜의 요새로 통했다. 당시 소련에서 카불로 이어지는 보급로가 인근에 있어 게릴라군이 공격하기 용이했다. 마수드를 눈엣가시로 여긴 소련은 1980~1985년 수차례에 걸쳐 대대적 공습을 했지만
2018년 8월 1일 미국 하와이 히캄 공군 기지에 미군 전사자의 유해가 담긴 상자 55개가 도착했다.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65년 만에 고국 땅을 밟은 유해를 마이크 펜스 당시 부통령은 최고 예우를 갖춰 맞이했다. 미국은 전쟁 중에 포로가 됐거나 실종된 미군을 찾아내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을 국가의 사명으로 여긴다. 미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Defense POW/MIA Accounting Agency)의 주된 임무다. DPAA의 모토도 ‘그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Until They are Home)’이다. DPAA의 역사는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베트남전을 치르던 미국은 미군 유해의 신원을 확인하는 부대인 JCRC(Joint Casualty Resolution Center)를 태국에 창설했다
2018년 4월 30일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정부의 인터넷 검열을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러시아 당국이 ‘텔레그램’을 차단하자 이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온 것이다. 저항의 뜻으로 텔레그램 로고 문양의 종이 비행기를 날렸고, 통신 감독 기관 ‘로스콤나드조르(Roskomnadzor)’의 해체를 요구하는 피켓도 들었다. 러시아의 통신·정보기술·미디어 전반에 대한 관리·감독 업무를 맡는 로스콤나드조르는 2008년 12월 설립됐다.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총리로 물러나 사실상 ‘상왕’ 노릇을 하고 있었다. 푸틴은 장기 집권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로스콤나드조르를 설치했다. 푸틴은 2018년 다시 대통령에 선출된 뒤 로스콤나드조르를 통한 언론 통제를 노골화했다. 2019년 3월 푸틴은 ‘가짜 뉴스 금지법’과 ‘모욕 콘텐츠 차단법
어릴 적부터 단짝 친구였던 벤 코언과 제리 그린필드는 1978년 오래된 주유소를 개조해 아이스크림 가게를 차렸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제공한 통신 강의로 아이스크림 제조법을 배워 창업에 나섰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파리만 날리다 2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인공 색소 등 유해 성분을 넣지 않은 친환경 아이스크림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또 초콜릿 시럽을 배합하거나 견과류를 넣는 등 다양한 메뉴로 사람들의 입맛을 공략했다. 창업 3년 만에 ‘세계 최고의 아이스크림’이라는 타이틀로 타임지 커버를 장식한 ‘벤앤제리스(Ben&Jerry’s)’ 얘기다. 창업자들은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 이상으로 사회에 긍정적 메시지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1988년 ‘비즈니스의 힘을 이용해 사회·환경 문제를 해결하자’를 1호 강령으로 정한 이유다.
무림의 호걸들이 중원을 차지하기 위한 혈투에 나서고 있다. 2022년 3월 대선을 8개월 앞두고 출사표를 던진 야권 잠룡들 얘기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들이 처음부터 ‘역심(?)’을 품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현재 야권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년 전 그에게 임명장을 주며 “살아 있는 권력도 엄정하게 수사해 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조국 사건’을 계기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2018년 1월 최재형 전 감사원장 임명 당시 청와대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권익 보호, 국민 기본권 보장을 위해 노력해온 법조인”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의혹 감사 결과를 발표한 후 여권의 공격을 받게 되자 임기를 6개월 남겨 놓고 감사원을 떠났
1975년 7월 핀란드 헬싱키에서 유럽과 북미의 35개국이 참석하는 유럽안보협력회의가 열렸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동서 진영이 처음으로 유럽의 안보와 냉전 종식 문제 등을 논의하고 매듭짓는 자리였다. 당시 헬싱키 회의를 앞장서 추진했던 국가는 구(舊)소련이었다. 독일의 통일을 막고 동유럽 위성국가들의 국경을 유지하려는 의도에서다. 국경선 존중, 경제·과학·기술·환경 협력, 인권 보호, 후속 조치 등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고 ‘헬싱키협정’으로 구체화됐다. 1978년에는 이 협정의 인권 조항이 잘 지켜지는지 감시하는 국제 인권 단체 ‘헬싱키워치’까지 생겼다. 유대인 출신이자 출판 업계 거장으로 이름을 날린 로버트 번스타인이 주도해 만든 단체다. 번스타인은 ‘헬싱키워치’ 활동에서 성과를 거둔 뒤 미주(아메리카워치)와 아시아(아시아워치) 지역으로 보폭
검찰 개혁을 누구보다 염원했던 이가 있다. ‘조국 흑서’로 불리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의 공저자인 권경애 변호사이다. 지난 2019년 당시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권 변호사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쓴 검찰 개혁 논리를 회의 자료로 활용했다. 권 변호사는 2019년 서울지방변호사회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및 검경 수사권 조정 태스크포스(TF)에서 활약하면서 문재인 정권의 든든한 응원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무법과 위선이 판치는 세상을 목격하고 깊은 배신감과 환멸을 느꼈고 세상에 진실을 알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는 조 전 장관이 출간한 ‘조국의 시간’에 대항해 ‘무법의 시간’이라는 책을 내며 다시 한 번 화제의 중심에 섰다. 권 변호사는 12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조국 사
1986년 2월 이탈리아 팔레르모 지방법원에서 마피아에 대한 세기의 재판이 시작됐다. 재판은 특수 제작된 8각 형태의 벙커 법정에서 진행됐는데 기소된 마피아 보스와 조직원 707명 중 476명에게 유죄가 선고됐다. 1992년 1월 대법원에서 최종 선고가 내려지기까지 6년 동안 이어져 ‘막시 재판(Maxiprocesso·대재판)’이라고 불린다. 막시 재판을 이끈 검사가 조반니 팔코네다. 팔코네는 1939년 마피아의 본거지인 이탈리아 시칠리아섬 팔레르모에서 태어났다. 화학 공장 관리자였던 부친 덕에 정규 교육과정을 마치고 검사가 된 팔코네는 1980년 마약 밀수 조직에 대한 수사를 맡으면서 반(反)마피아 전선의 선봉에 서게 됐다. 어린 시절 친구이자 동료 검사인 파올로 보르셀리노와 함께 치안 검사 모임인 ‘반마피아연합’에서도 활동했다. ‘반마피아
2011년 5월 베일에 가려 있던 기업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세계 최대 원자재 공룡’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던 글렌코어가 런던과 홍콩의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것이다. 단숨에 100억 달러를 조달했는데 그해 기업공개를 단행한 기업 중 최대 규모였다. 창업자 마크 리치는 1934년 벨기에에서 태어난 유대인이다. 1941년 미국으로 건너가 무역 회사에서 일했고 1974년 자신의 이름을 딴 무역 회사 ‘마크리치앤드코’를 세웠다. 1970년대 석유 파동 당시 중동에서 원유를 사들여 미국 회사에 비싼 가격으로 되팔면서 막대한 이윤을 남겼다. 하지만 이란·쿠바 등과 거래하는 과정에서 불법 의혹이 드러나 사기, 조세 포탈 등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됐다. 그는 검찰 기소를 피해 스위스로 도피했다. 1994년 회사 임원진이 국제 수배자가 된 창업자에게 경영에
2008년 3월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생일 파티 도중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베어스턴스가 파산할 위기에 처했다는 앨런 슈워츠(베어스턴스 사장)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은 다이먼 회장은 인수 팀을 급파했다. 다이먼은 얼마 안 가 베어스턴스 인수를 결심한다. 이어 9월에는 저축은행인 워싱턴뮤추얼을 인수해 미국 전역의 소매 금융 네트워크를 확보한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승부사의 기질이 발현되는 순간이었다. 다이먼은 1956년 미국 뉴욕의 그리스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증권회사 시어슨에서 주식 중개인으로 일했다. 다이먼이 터프츠대에 재학할 당시 시어슨의 인수합병(M&A) 전략을 주제로 쓴 리포트가 샌디 웨일 시어슨 최고경영자(CEO)의 눈에 들면서 웨일과 인연을 맺게 된다. 다이먼은 하버드대에서 경영학 석사학
운동권 출신인 김영환 전 과학기술부 장관은 지난 4월 부인 전은주 씨와 함께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증을 반납해 눈길을 끌었다.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73명이 민주화운동유공자예우법을 발의한 것에 대한 매서운 질책이자 자성이었다. 설 의원 등은 민주화 유공자와 가족에게 취업·교육 지원 등을 하는 것이 ‘셀프 특혜’라는 비난이 들끓자 엿새 만에 법안을 철회했다. 김 전 장관은 9일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이해박는집’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촛불로 태어난 정권이 역설적이게도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있다”며 “전두환·노태우 정권이 끝난 뒤 민주주의 후퇴가 가장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민주화를 열망한 6·10 항쟁 정신에 대한 배반”이라고 질타했다. 그는 “탈(脫)원전은 정치권의 ‘무지의 용기’와 문재인 대통령의 ‘오기의 정
2013년 4월 한국을 방문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가 당시 박근혜 대통령을 접견한 자리에서 주머니에 한 손을 넣고 악수했던 장면이 논란을 빚었다. ‘무례하다’와 ‘문화적 차이다’라는 견해가 맞서면서 정작 그의 방한 목적은 주목을 끌지 못했다. 테라파워 회장이란 직함으로 방한했던 게이츠는 박 대통령에게 “원자력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안전한 에너지 공급원”이라며 4세대 원자로 개발을 위해 한국과 협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는 한국원자력연구원과의 공동 연구가 탄력을 받는 계기가 됐다. MS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게이츠 회장은 ‘제2의 인생’을 찾아나섰는데 그중 핵심은 원전을 통한 기후변화 문제 해결이었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을 거치면서 원자력은 매우 위험한 에너지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하지만 게이츠의 판단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