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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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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sedaily.com
안녕하세요. 서울경제 박태준 기자입니다.
여명
“최근 쿠팡도 이렇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상품 위탁 판매에서 직접 매입으로, 당일 배송할 수 있는 물류 시스템을 준비 중입니다.” 스타트업으로 출발한 지 불과 5년 후인 2015년 3월 김범석 당시 쿠팡 대표이사가 기자 간담회에서 미국의 아마존과 비교하며 한 말이다.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상상의 영역이었을지 모르나 10여 년 전 30대 후반의 젊은 최고경영자(CEO)에게는 ‘전국 당일 배송’이라는 물류 혁신이 확고한 목표였구나 싶다. 이제는 당일 배송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로켓배송’이 완성 단계에 와 있다. 이미 2년 전 전국 70%가 이른바 ‘쿠세권’이 됐고 내년 100%가 현실화된다. 이를 위해 쿠팡이 투자한 자금은 진행 중인 것을 포함해 9조 원에 달한다. 아마도 필자가 쿠팡이라는 e커머스 기업의 미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그 놀라운 혁신과 성장의 모습을 조금 가까운 곳에서 지켜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코로나19의 공포가 정점을 향해가던 2021년 필자는 유통산업을 담당하는 부서의 부장이었다. 팬데믹에 마트와 백화점을 외면했던 소비자들은 쿠팡의 로켓배송에 열광했고 기존의 유통 공룡들은 놀라운 성장성과 잠재력을 보이
연말 분위기 때문인가 싶다. 퇴근길 강변북로에서 바라보는 서울 여의도 빌딩들의 불빛도 크리스마스트리 전구처럼 따뜻한데 그런 즈음의 칼럼까지 뾰족한 글로 채워야 하냐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위로와 응원이 더 필요한 시간 아닐까. 그래서 이번 칼럼은 50대 월급쟁이라면 누구나 공감했던 드라마의 제목을 빌려 필자의 이야기로 시작해본다. 지금은 자회사 TV로 파견돼 보도본부장 직함으로 일하고 있지만 10년 가까이 그렇게 불렸던지라 여전히 익숙한 ‘박 부장’이라 칭하기로 했다. 드라마의 김 부장처럼 나 역시 ‘서울 자가’에 산다. 비록 26년 된 구축 아파트지만 남산이 동네 뒷산인 데다 시내와 강남 어디든 멀지 않아 주거 만족도는 매우 높다. 게다가 아파트 매매 시점이 2013년, 유례없는 ‘거래절벽’이었던 때라 무릎도 아니고 발등쯤의 가격에 샀으니 부동산 투자는 대단히 성공한 편이다. 하지만 당시 받았던 주택담보대출은 여전히 절반가량 남아 있다. 당시 ‘안심전환대출’ 등의 수혜로 2% 남짓 했던 금리가 지금은 4%를 넘는다. 매월 원리금 부담이 만만치 않은데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아 그 주담대를 다 갚지도 못하고 퇴직할 공산이 크
자동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골목길도 꽤 넓어 보였던 어린 시절, 아이들이 ‘깐부’가 되는 방법은 간단했다. 오른손 엄지를 제외한 손가락 네 개를 이용해 서로 맞잡은 후 남은 엄지손가락을 아래위로 포개면 깐부를 위한 ‘의식’이 끝나고 동맹이 시작된다. 깐부를 얻은 아이들은 든든했다. 구슬치기나 딱지치기에 능한 깐부에게 그 비상한 재주를 전수받을 수 있었고 풍족한 그에게 구슬이나 딱지를 빌려올 수도 있었다. 오징어 게임 시즌1의 오일남 역시 이렇게 말한다. “깐부끼리는 니 거 내 거가 없는 거야.” 그렇다고 모든 아이들이 깐부가 될 수는 없었다. 예닐곱 살의 꼬마들도 누구와 깐부를 먹어야 본인에게 득이 되는지, 서로 주고받을 것이 있는지 기가 막히게 알고 있었다. 결국 재량이 떨어지거나 재원이 부족한 아이들은 그 골목의 동맹에서 배제되기 일쑤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우리는 승부의 세계, 그곳의 비정함을 깐부를 통해 일찌감치 배웠는지도 모르겠다. 궁금하던 차에 깐부의 어원이 뭔지 찾아보니 미국에서 소규모 밴드를 부르는 ‘cambo’에서 시작됐다는 얘기도 있고 관포지교의 관포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 국
‘더는 숨지 않아, 당당히 빛날 거야(I’m done hidin’, now I’m shinin)’ 벌써 4주째 ‘빌보드 핫100’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 ‘골든(GOLDEN)’ 가사의 한 대목이다. 국내 엔터테인먼트사의 연습생 출신 작곡가가 만들었다는 이 노래는 가사의 다른 구절처럼 ‘더 높이, 높이, 높이 날아오르고(We’re goin’ up, up, up)’ 있다. 어쩌면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케데헌의 인기 역시 폭발적이다. 올 6월 말 출시된 이 작품은 두 달여 만에 조회 수 2억 9000만 회를 돌파하며 ‘오징어 게임’을 넘어섰다. IBK투자증권은 케데헌의 지식재산권(IP) 가치를 1조 원 규모로 추산했다. K팝 걸그룹이자 퇴마사인 ‘헌트릭스’가 비밀스럽게 악귀들과 싸우면서 팬들과 세상을 지키며 ‘혼문’을 완성시킨다는 현대판 ‘전설의 고향’ 같은 스토리에 전 세계가 열광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애니메이션 영화를 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필자도 꽤 재밌게 관람했으니 젊은 층들의 열광은 당연해 보인다. 그렇게 놀
‘소주성’이라 불린 자가 있었다. 지금은 낙향해 책방 주인이 된 ‘문공’이 정권을 잡은 직후 그를 불러들였다. 나라와 백성들의 살림살이를 나아지게 할 방도가 소주성, 그에게 있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소주성이 전권을 휘두른 다섯 해 동안 죄 없는 백성들은 나라 꼴의 놀라운 변화를 겪게 된다. 품삯을 줘가며 한두 명의 인부를 고용해 장사했던 주인장 30만 명이 가게 문을 닫았다. 소주성이 너무 빨리, 너무 많이 품삯을 올린 탓에 수지가 맞지 않자 장사를 접게 된 것이다. 인부들의 살림이 조금 나아진 것도 잠시, 가게 문이 닫히면서 그들도 일자리를 잃었다. 문공의 권력이 사라질 즈음, 그도 그의 일파도 소주성의 내공이 과장된 것이었음을 인정하며 슬그머니 외면했고, 이제는 누구도 그의 종적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소주성을 길러냈다는 ‘학현파’가 요즘 새로운 권력의 주변에서 무언가를 도모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문재인 정부 시절 경제정책의 중심축이었던 소득주도성장, 그 비장했던 시작과 씁쓸했던 끝을 오래전 언젠가의 이야기처럼 적어봤다. 이재명 정부가 ‘소주성 시즌2’로 불릴 법한 위험스러운 실험을 시도하고 있
며칠 전 밀레니엄 직전에 태어난 한참 어린 후배들과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마침 카페가 있던 건물이 올초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제작한 엔터테인먼트사 본사였는데 후배들 모두 그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고 했다. 그뿐 아니라 tvN의 대표작으로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응답하라’ 시리즈 역시 시청하지 않았음을 알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드라마 스토리에 공감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대화중 흥미로웠던 것은 “혹시 ‘응답하라 2002’가 만들어진다면 그건 보고 싶다”는 그들의 대답이었다. 한일 월드컵이 있었던 2002년에도 그들은 네댓 살에 불과했을 텐데 그때의 이야기에는 공감할 수 있을까. 후배들은 말했다. “또렷하지 않지만 그해 여름, 온 나라가 축제 같았던, 아파트의 층간소음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꼬마들의 기억에도 남아 있을 만큼 2002년 대한민국은 뜨거웠다. 지금도 그 순간 ‘붉은 악마’였던 우리들이 거리 곳곳을 메웠던 웅장한 에너지가 느껴질 정도다. 10일 축구 국가대표팀은 월드컵 3차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쿠웨이트를 완파하며 11회 연속 본선 진출권을 따냈다
지난해 6월이었다. 날이 좋았던 초여름 아내는 뜬금없이 봉하마을에 가자 했고, 그렇게 떠난 1박 2일의 짧은 여행에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처음 방문했다. 평일 낮의 봉하마을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봉분을 대신한 너럭바위 옆으로 국민 참여로 놓인 1만 5000여 개의 박석들이 저마다의 글귀로 그를 추모하고 있었다. 기념관에서 육성과 영상으로 생전의 대통령을 만났다. 최루탄 분말이 하얗게 쌓인 아스팔트 길에 홀로 앉아 있는, 제16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직후 국민들에게 손을 흔드는, 봉하마을로 내려온 뒤 자전거를 타고 논길을 달리는. 육성만을 듣게 조성된 어둑한 전시실에서는 그의 노래도 들을 수 있었다. 살짝 취한 듯 기분 좋아 보이는 그는 “오늘은 노래를 한 곡 하겠다”며 양해를 구한 뒤 선창한다.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와, 너와
장막을 걷어라 / 나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떠보자 창문을 열어라 / 춤추는 산들바람을 한 번 또 느껴보자 가벼운 풀밭 위로 나를 걷게 해주세 / 봄과 새들의 소리 듣고 싶소 울고 웃고 싶소 내 마음을 만져주오 /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 미세먼지 탓에 눈이 시린 것보다 답답한 마음에 가슴이 시린 날이 길어지던 어느 날부터 오래된 이 노래를 흥얼거리게 됐다. 희망인지 체념인지, 아니면 그 경계의 어디쯤에서 막연한 혼란에 시달렸기 때문인지. 우리나라 포크송의 대부 한대수가 1969년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처음 불렀다는 ‘행복의 나라로’는 알려진 대로 군사정권 시절 금지곡이었다. 이 노래를 ‘금지’한 사유가 ‘행복의 나라’가 북한을 의미했다는 황당한 분석도 있는데, 이보다는 당시 정권이 ‘가사대로라면 대한민국이 행복의 나라가 아니다’라는 해석
미국 워싱턴DC로 이어진 도로 주변의 한 시골 마을. 구덩이에는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군복을 입은 서너 명의 무리와 그들에게 붙잡힌 기자들이 마주한다. 빨간색 선글라스를 쓰고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군복의 사내가 기자들에게 묻는다. “그래, 너는 어떤 미국인인데? (Ok, What kind of an american are you?)” 지난해 제작돼 국내에서도 연말에 개봉한 미국 영화를 봤다. ‘시빌워(civil war)’. 영화 속 미국은 제목처럼 ‘내전’ 중이다. 위헌적인 방법으로 3연임에 성공한 대통령과 그를 지키려는 연방정부, 이들로부터 독립된 국가를 세우고자 하는 연합군들 간의 전쟁이다. 연합군도 텍사스와 캘리포니아가 연합한 서부군, 19개 주가 연합한 플로리다 동맹으로 나뉘며 복잡한 전황 속에 대통령과의 인터뷰를 위해 워싱턴DC
내려가고 있다. 수면에서 굴절된 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 중력이 물의 부력을 이기는 임계 아래로. 더 내려가고 있다. 굉음 같은 수압이 짓누르는 구간, 어떤 생명체도 발광하지 않는 어둠을 통과하고 있다.(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中)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는 폭력의 무게와 억압의 깊이를 이렇게 전하고 싶었던 걸까. 알 수 없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다. ‘임계 아래 어둠’에서 공포감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새해 첫날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칼럼은 녹록치 않은 삶 속에서도 해돋이를 바라볼 때의 그것처럼 ‘희망’을 이야기 하는 것이 맞다. 아무리 나라와 가계의 살림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더라도, 수년 동안 지속된 혼탁한 정세를 풀어낼 약간의 실마리조차 찾을 수 없더라도, 믿기지 않는 참사에 비통함 뿐이라도, “우리는 저력이 있으니 한번 해보자고”
여섯 살 되던 해였다. 계절은 명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얇은 티셔츠 하나만 입고 있었다 하니 늦봄이나 초여름쯤이었을까. 그 건물의 주인이 자신의 할아버지였던 미국에 살며 잠시 한국에 온 또래의 친구를 만난 게 화근이었다. 친구를 따라 2층을 지나 철제 계단을 오르고 드디어 옥상에 도착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밴드 다섯손가락의 명곡 ‘이층에서 본 거리’ 가사는 진짜 2층에서 내려다 본 풍경을 그대로 메모한 게 아닌가 싶다. ‘길거리 약국에서 담배를 팔 듯/ 세상은 평화롭게 갈 길을 가고/ 분주히 길을 가는 사람이 있고/ 온종일 구경하는 아이도 있고’ 하지만 나의 구경은 오래가지 못했다. 평생 처음 내려다 본 동네 풍경에 너무 빠졌던 것인지 외부인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았던 옥상의 난간이 너무 낮았던 탓인지. 그렇게 나는 추락했다. 한나절 혹은 하루
무엇이 잘못된 걸까, 아니면 필자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걸까.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 교수가 비유한 ‘샤워실의 바보’는 샤워를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뜨거운 물에 데거나 찬물에 놀라 샤워실을 뛰쳐나와야 정상이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의 샤워실에서는 바보들이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여전히 찬물과 더운물을 번갈아 틀어가며 기괴한 합창을 하고 있다. 샤워실에서 들려오는 바보들의 합창에 국민들은 피로감을 넘어 공포에 질려간다. 도대체 어쩌려고 저러는 걸까. 분명한 것은 최근 집값 상승의 주범이 정부라는 점이다. 부동산 시장에서 대패한 문재인 정부 5년이 막을 내린 후 샤워실에 입장한 윤석열 정부는 시작부터 수도꼭지를 180도 거꾸로 돌렸다. 집권 초기 세계적인 금리 인상으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던 시기에 ‘정상화’라는 이름으로 각종 규제를
2016년 브라질 리우 올림픽. 남자 펜싱 에페 개인전 결승에 오른 20대 초반의 대한민국 선수가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앉아 있다. 점수는 13대9, 넉 점 차로 벌어졌고 남은 시간은 3분. 2점만 보태면 헝가리의 노장 임레 게저의 승리다. 패색이 짙어 보이는 상황에서 사내는 주문을 외듯이 중얼거린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후, 할 수 있다.” 휴식을 끝내고 경기는 재개됐다. 14대10.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젊은 선수가 내리 넉 점을 따내며 14대14 동점을 만들었고 마지막 칼날이 상대 선수의 머리를 찌른다. 15대14 역전승. 우리 모두가 기억하는 리우 올림픽 드라마의 주인공 펜싱 박상영 선수의 이야기다. 2024년 파리 올림픽이 종반으로 접어드는 지금 8년 전 올림픽 스타를 소환한 것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관객들이) ‘쟤네 외계에서 왔다고? 얼마나 특별한지, 특이한지 보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매 콘서트마다 저희가 초능력을 녹여내서, 제가 노래하다가, 하늘에서 비가 내려와, 그러면 비가 오고” (무대 중앙의 장치가 가수의 손짓에 맞춰 물을 뿌린다) K팝의 제작 시스템과 글로벌 팬덤(fandom)을 분석한 다큐 ‘케이팝 제너레이션’(티빙, 2023)에 출연한 그룹 엑소의 멤버 수호는 그들의 세계관을 말하며 본인도 쑥스러운지 웃어보였다. 데뷔 12년 차인 엑소의 세계관은 멤버들이 ‘엑소 플래닛이라는 가상의 행성에서 기억을 잃고 지구에 불시착한 초능력자들’이라는 설정이다. 카이는 순간이동을 하고, 세훈은 바람을 일으키며, 수호는 물을 다스린다. 듣는 이들의 손발을 오글거리게 하는 이런 이야기에 진지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팬덤이다. 대중
3년 전 새해가 막 시작된 즈음에 쓴 필자의 칼럼 제목은 ‘어제는 멀고, 오늘은 낯설며, 내일은 두려운’이었다. ‘미스터 션샤인’의 주인공 고애신의 독백을 인용한 제목이었다. 본문에는 이렇게 적었다. ‘드라마 대사 한 줄에 이토록 마음이 시린 것은 시대는 다르나 불안함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당시 문재인 정권의 후반기는 오만과 독선의 협주곡, 그 자체였다. 대화와 타협은 거부당했고 결말은 분열이었다. 회복이 불가능해 보이는 갈등, 그 극단의 시대가 불안했고 미래는 두려웠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특정 진영 어느 한쪽의 팬덤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래서 엄연한 팩트의 자발적 왜곡 혹은 거부가 일상이 된다면. 그런 환경에서 작동하는 민주주의와 대의정치가 정상이라 할 수 있나. 개인적으로는 그런 시대에 ‘글쓰기’ 따위가 얼마나 공허하고 부질없는 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