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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서울경제 김상용 기자입니다.
앤드루 쿠오모 전 미국 뉴욕주지사가 성추문으로 자진 사퇴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비서 출신 여성이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14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샬럿 베넷(26)이 뉴욕 맨해튼연방법원에 쿠오모 전 지사를 상대로 성희롱과 성차별·보복 행위에 대한 피해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베넷은 쿠오모 전 지사가 반복적으로 성희롱을 했을 뿐 아니라, 자신이 피해 사실을 공개한 뒤에는 보복에 나섰다고 주장했다. 앞서 베넷은 지난해 2월 NYT 등 현지 언론에 쿠오모 전 주지사가 성적으로 접근해왔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베넷은 쿠오모 주지사가 집무실에서 자신과 단둘이 있는 상황에서 이성 교제에 나이 차이가 중요하냐는 등의 질문을 한 뒤 성관계를 하는 분위기로 몰아갔다고 주장했다. 당시 베넷은 "주지사는 나와 동침하려
빌 클린턴 미국 행정부 시절 ‘르윈스키 스캔들’을 수사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탄핵 위기로 몰고 갔던 케네스 스타(사진) 전 특별검사가 13일(현지 시간) 7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CNN 등에 따르면 유족과 지인은 스타 전 특검이 휴스턴 병원에서 약 넉 달간 집중 치료를 받다 이날 수술 합병증으로 숨을 거뒀다고 전했다. 그는 조지워싱턴대를 졸업하고 듀크대 로스쿨에서 학업을 마친 뒤 1975년부터 1977년까지 워런 버거 연방대법원장의 재판연구원으로 근무했다. 그는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가 얽힌 이른바 ‘화이트워터 사건’을 수사하기 위한 특별검사로 1994년 임명되면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는 이 수사에서 큰 성과를 올리지 못했지만 백악관 직원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 추문을 파헤치면서 클린턴 전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그가 입수
도널드 트럼프(사진) 전 미국 대통령이 2020년 대선 패배 당시 백악관을 떠나지 않겠다고 참모들에게 말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CNN은 뉴욕타임스(NYT) 기자인 매기 하버먼이 올 10월 초 출간할 예정인 신간의 일부 내용을 입수했다며 12일(현지 시간) 이같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선 패배 직후 참모들에게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고 위로하면서 뭐가 잘못됐는지 말해달라고 언급했다. 하버먼은 이를 두고 트럼프가 자신의 패배를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고 적었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후 어느 시점부터 자신이 백악관을 떠날 이유가 없다고 얘기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하버먼은 책에서 기술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한 참모에게 “난 백악관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다른 참모에게도 “선거에서 이겼는데 어떻게 떠날
사형 폐지론을 주장하는 미국 대선 후보에 대한 거침없는 질문으로 잘 알려진 흑인 앵커 버나드 쇼(사진)가 별세했다. 향년 82세. 폭스뉴스는 8일(현지 시간) CNN의 대표적인 앵커였던 쇼가 전날 폐렴으로 숨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ABC방송의 의회 출입기자였던 쇼는 1980년 출범한 CNN으로 자리를 옮겼고 2001년 은퇴할 때까지 대표 앵커로서 활약했다. 그는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의 암살 시도 사건을 집중적으로 보도하면서 신생 뉴스 채널인 CNN을 신뢰성 있는 언론사로서 안착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1991년 걸프 전쟁 당시 폭격을 당하는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생중계를 진행하며 전 세계적인 주목을 이끌어냈다. 특히 1988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조지 H 부시 공화당 후보와 마이클 듀카키스 민주당 후보의 TV
1945년 8월 일본에 두 발의 원자폭탄이 투하됐다. 6일에는 히로시마에 리틀보이(Little Boy)가, 9일에는 나가사키에 팻맨(Fat Man)이 떨어졌다. 이로써 일본은 싸울 힘을 잃어버렸고, 한반도에는 힘의 공백이 예견됐다. 8월 9일 소련군의 참전과 더불어 워싱턴의 움직임도 급박해졌다. 8월 11일 저녁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던 미 육군 24군단 하지(John R. Hodge) 중장에게 한반도에 신속 진주하라는 명령이 하달됐다. 왜 하지였을까? 이유는 둘이었다. 미군 가운데 가장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부대가 오키나와에 있는 제10군이었다. 하지만 워싱턴은 10군 사령관 스틸웰(Joseph W. Stilwell)을 택하지 않았다. 장제스의 강력한 반대 때문이었다. 그는 주 중국 미 군사고문단장 시절에 국민당 정부의 무능과 군대 부패를
제11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로 레바논 출신 프랑스 작가 아민 말루프(Amin Maalouf·사진)가 선정됐다고 7일 토지문화재단이 발표했다. 박경리문학상위원회는 네 차례 예심을 거쳐 후보 작가 47명을 추린 뒤 작품 심사를 통해 최종심에서 수상자를 확정했다. 상금은 1억 원이다. 아민 말루프는 1949년 레바논의 베이루트에서 태어났다. 1971년부터 레바논 일간지 '안-나하르'에서 기자로 활동을 시작한 가운데 1976년 레바논 내전으로 프랑스로 귀화한 뒤 프랑스에서 발행되는 아프리카 시사주간지 '죈 아프리크'에서 일했다. 말루프는 1993년 '타니오스의 바위'로 공쿠르상을, 1999년 '사람잡는 정체성'으로 유럽 에세이상을 받았다. 2010년 아스투리아스상과 2016년 셰이크 자예드 도서상도 수상했다. 2020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국가공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이 다시 대권에 도전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클린턴 전 장관은 6일(현지시간) 방영된 미 CBS 방송과 인터뷰에서 다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노 노(No, no)"라고 대답했다. 그는 "그러나 우리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존중하고, 우리의 제도를 유지하는 대통령을 가질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조 바이든 대통령의 2024년 재선 도전을 지지할 것”이라며 "이길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라고 말했다. 다만 클린턴 전 장관은 6년 전 대선 경쟁자였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관련, 자신이 말한 미 대통령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면서 "만약 그가 (대선에) 다시 출마한다면 철저하게 패배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이어 "이는 공화당
힐러리 클린턴(사진) 전 미 국무장관이 자신이 결정한 가장 대담한 일로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의 결혼 생활을 유지한 것을 꼽았다. 클린전 전 장관은 5일(현지 시간) 미 CBS방송에 딸 첼시 클린턴과 함께 출연해 “결혼 유지 결심이 대통령 도전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클린턴 전 장관은 이날 방송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과 결혼 생활을 유지한 결정과 관련해 “많은 기도와 생각이 필요했다”며 “주변인들과 이야기하고 고심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그러면서도 “후회는 없다. 그것은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클린턴 전 장관의 남편이자 미국 제42대 대통령을 지낸 클린턴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이른바 ‘르윈스키 스캔들’로 곤욕을 치렀다. 1998년 당시 백악관 인턴이던 2
주한 미군 철수 계획에 반대했다가 강제 퇴역한 고(故) 존 싱글러브(사진) 미국 예비역 소장의 동상이 내년 한미 동맹 70주년을 맞아 한국에 세워지게 된다. 5일 한미동맹재단에 따르면 재단은 국가보훈처 및 유가족과 협조해 싱글러브 장군의 동상을 한국에 건립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보훈처는 내년이 한미 동맹 70주년인 만큼 이를 기념하는 차원에서 싱글러브 장군 동상을 세우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싱글러브 장군은 6·25전쟁 참전 용사인 동시에 1977년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의 주한 미군 철수 계획에 반대했다가 본국으로 소환돼 강제 퇴역당한 인물이다. 그는 1943년 로스앤젤레스의 캘리포니아대를 졸업한 뒤 소위로 입대해 ‘그린베레’로 불리는 육군 특전사의 전신인 전략사무국(OSS)과 중앙정보국(CIA)에서 근무했
전 세계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노동의 배신' 작가 바버라 에런라이크(81·사진)가 별세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달 26일 81세 생일을 맞이한 에런라이크는 이달 1일 미국 버지니아주의 한 요양 시설에서 숨졌다. 1941년 미국 몬태나주의 작은 광산 마을에서 광부의 딸로 태어나 세포면역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뉴욕시 정책 분석가와 뉴욕주립대 올드웨스트버리캠퍼스 조교수 등으로 활동했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9년 대학생들의 반전 운동을 내용으로 첫 저서 '롱 마치, 숏 스프링'을 펴내기도 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저작 활동에 나선 것은 1970년 첫 아이를 출산한 뒤 부터다. 출산 과정에서 여성 의료상황의 열악함을 목격하고 이를 고발하는 글을 쓴 것을 계기로 불평등에 저항하고 약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내
‘미소의 교황’ 요한 바오로 1세(1912∼1978·사진)가 복자(福者) 반열에 오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4일(현지 시간) 바티칸 성베드로광장에서 요한 바오로 1세 교황의 시복 미사를 주례한다. 시복은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성성(聖性)이나 순교 등으로 공경할 만한 이를 ‘복자’로 선포하는 교황의 선언이다. 가톨릭교회는 공적인 공경 대상으로 올려진 이에게 가경자(可敬者)·복자·성인(聖人) 등의 경칭을 부여한다. 복자는 영웅적 성덕이 인정돼 가경자 칭호를 받은 이가 기적 심사까지 통과하면 갖게 되는 경칭이다. 여기서 한 번의 기적이 더 인정되면 성인이 된다. 요한 바오로 1세는 이탈리아 북부 알비노 루치아니에서 가난한 벽돌공의 아들로 태어난 뒤 제263대 교황으로 선출됐다. 그러나 1978년 8월 26일 즉위한 뒤 33일 만인 9월 28일 갑작스
세계 3대 테너로 불리며 오페라계의 슈퍼스타로 군림했던 플라시도 도밍고(81·사진)가 연이은 악재로 씁쓸한 노년을 맞고 있다. 도밍고는 올해로 99회째를 맞은 이탈리아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6월 17일∼9월 4일)에서 지난 25∼26일 이틀에 걸쳐 공연했다. 첫날은 '도밍고 인 베르디 오페라 나이트'에서 직접 주연을 맡았고, 둘째 날에는 오페라 '투란도트'의 지휘자로 나섰다. 이탈리아 북부 베로나의 고대 로마 원형 극장 '아레나 디 베로나'에서 열리는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은 '야외 오페라의 대명사'로 꼽힌다. 하지만 도밍고의 공연은 올해 '아레나 디 베로나'에서 열린 공연 중 최악이었다고 이탈리아 일간 '코리에레델라세라'가 30일 보도했다. 도밍고는 25일 공연 중 자주 가사를 까먹었고, 마지막 오페라 '맥베스' 공연 때는 성량이 딸려 관
인도의 ‘인프라 갑부’인 가우탐 아다니(사진)가 아시아인 최초로 블룸버그가 집계하는 세계 부자 순위에서 ‘톱3’ 안에 들었다. 29일(현지 시간) 블룸버그 억만장자지수에 따르면 아다니는 순자산이 1374억 달러(약 184조 5000억 원)로 세계 부자 순위 3위에 올랐다. 아다니 앞에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밖에 없다. 아다니의 자산은 올해 들어 609억 달러(약 81조 8000억 원) 증가해 세계 부자들 가운데 증가액이 가장 많았다. 이에 따라 올 2월 당시 아시아 최고 부자였던 인도의 라이벌 재벌인 무케시 암바니를 제치고 부자 순위 10위에 오른 데 이어 지난달에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를 밀어내고 4위로 부상했다. 특히 그는 이번에 프랑스 패션그룹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조기 사임설에 휩싸인 프란치스코(사진) 교황이 2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중부 도시 라퀼라를 방문했다. 라퀼라는 가톨릭교회 역사상 스스로 물러난 첫 번째 교황으로 기록된 첼레스티노 5세(1215∼1296) 전 교황의 유해가 안치된 곳이다. 첼레스티노 5세는 1294년 즉위 5개월 만에 사임해 '생존 중 퇴위'라는 첫 사례를 남겼다. 이후 베네딕토 16세가 2013년 건강상 이유로 교황 직무를 내려놓으며 그 뒤를 따랐다. 베네딕토 16세 역시 사임 발표 4년 전인 2009년 라퀼라를 방문해 라퀼라를 방문한 교황은 생존 중 퇴위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교황청이 지난 6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8월 28일 라퀼라 방문 계획을 발표했을 때 사임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끊이지 않았다. 교황은 사임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암 투병 중에도 방한을 희망하다 끝내 별세한 영국군 6·25 참전용사가 전우들이 묻힌 한국 땅에서 영면한다 27일(현지시간) 미 CNN 방송은 이달 영국에서 90세 일기로 별세한 참전용사 제임스 그런디 씨의 유골이 고인의 유언에 따라 유엔군 합동 묘역이 있는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고인은 19세인 1951년부터 한국전쟁에 참전해 '시신 수습팀' 대원으로 활약했다. 한반도 곳곳을 돌며 전장에서 숨진 동료들의 주검을 찾아 부산에 있는 묘역으로 옮기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그는 당시 전우를 매장할 때마다 "반드시 다시 찾아오겠다. 나는 절대로 당신을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다고 한다. 그는 2년여간의 복무 뒤 고국으로 돌아갔지만, 전우들과 약속을 잊지 않았다. 1988년께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