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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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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서울경제 신경립 기자입니다.
만화경
이슬람교를 창시한 예언자 무함마드의 사후 이슬람 세계는 후계자 계승 방식을 놓고 혼란에 빠졌다.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의 추종자들은 예언자의 혈통이 후계자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아랍 부족장 회의 ‘슈라’는 아부 바크르를 초대 칼리프로 선출했다. 4대 칼리프 알리가 661년 살해되자 균열은 새 변곡점을 맞았다. 군사력을 앞세워 5대 칼리프가 된 무아위야가 ‘선출’ 전통을 깨고 아들 야지드를 세습 칼리프로 임명하자 알리의 차남 후세인이 반기를 든 것이다. 후세인이 680년 카르발라 전투에서 처참히 목이 잘리면서 분열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됐다. 결국 알리의 추종 세력은 별도의 종파로 갈라져 나왔다. 오늘날 세계 무슬림의 10% 남짓을 차지하는 ‘시아파’의 출발점이다. 2월 28일 미국·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시아파 ‘맹주’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하자 이란 성지 잠카란 모스크에는 평소의 녹색 깃발 대신 붉은 깃발이 게양됐다. 아랍어로 ‘오 후세인의 복수자들이여(Ya la-Tharat al-Hussein)’라는 글귀가 쓰인 붉은 깃발은 부당하게 살해된 순교자의 피를 상징한다.
“우리가 문을 발로 차기만 하면 저 썩은 구조물 전체가 무너져 내릴 것이다.” 아돌프 히틀러는 1941년 소련 침공을 앞두고 휘하 장군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히틀러에게는 취약한 소련 체제가 독일의 기습으로 금세 붕괴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렇게 1941년 6월 22일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명명된 독일의 군사작전과 함께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독소전쟁’의 막이 올랐다. 3개월 뒤 승리를 장담하던 히틀러의 군대는 스탈린의 ‘붉은 군대’ 앞에 무너졌다. 총 3000만 명의 인명을 앗아가며 1945년 5월까지 이어진 장기 소모전은 나치 독일 패망의 결정적 원인이 됐다. 2022년 2월 24일 새벽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특별 군사작전’ 선포와 함께 러시아가 약소국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접경인 돈바스 지역을 병합하려는 푸틴의 야욕에 유럽 대륙이 또다시 전쟁의 불길에 휩싸였다. 영국 싱크탱크 왕립국방안전보장연구소(RUSI)에 따르면 침공 당시 푸틴 대통령은 10일 이내에 우크라이나를 장악할 것으로 봤다고 한다. 하지만 서방의 지원과 우크라이나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전쟁은 5년째로 접어든다. 오
목요일 아침에
지난해 9월 27일 당시 일본 자민당 총재 유력 후보였던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전보장담당상은 ‘다케시마(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명칭)의 날’ 행사에 “당당하게 장관이 출석해야 한다. 눈치볼 필요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본 시마네현이 2006년부터 매년 2월 22일에 여는 이 행사는 한일 긴장과 갈등의 불씨다.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 정부가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13년 연속으로 차관급 정무관을 행사에 파견하고 우리 정부가 항의하는 일이 반복돼왔다. 이것도 모자라 장관급 행사로 승격을 강행한다면 한일 관계 악화는 불가피하다. 극우 성향의 총리 취임 후 처음으로 열리는 올해 행사에 시선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일단 다카이치 총리는 자신의 공언과 달리 예년처럼 정무관을 보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반길’ 일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다카이치 총리가 한일 간 우호적 분위기를 해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지금 한일 관계는 봄의 길목에 놓였다. 올 초 이재명 대통령이 다카이치 총리의 고향인 나라를 방문한 데 이어 3월에는 이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안동에서의 한일 정상회담 개최가 조율되고 있다. 정상 간
1946년 2월 4일 오전 10시, 도쿄 유라쿠초 다이이치생명 건물에 설치된 연합군최고사령부(GHQ) 본부의 대회의실에 25명의 GHQ 소속 미국인들이 모였다. 영문도 모른 채 소집된 이들에게 코트니 휘트니 GHQ 민정국장은 ‘1주일 안에 일본 헌법 초안을 만들라’는 극비 지시를 내렸다. 25명이 밀실에서 9일 만에 작성한 초안은 2월 13일 요시다 시게루 외무상 등에 전달됐다. 일본 정부와의 조율을 거쳐 마련된 최종안은 3월 7일 ‘일본 정부안’으로 공표됐다. 일본이 1945년 8월 14일 연합군에 항복한 순간부터 1889년 제정된 일본제국 헌법, 이른바 ‘메이지 헌법’은 폐기될 운명이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일본 정부는 일찌감치 개헌 작업에 돌입했다. 하지만 과업을 맡은 마쓰모토 조지 국무대신이 작성한 초안은 메이지 헌법과 별 차이가 없는 전근대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마이니치신문의 특종 보도를 통해 일본 측 개헌안을 접한 더글러스 맥아더 사령관이 25명을 소집한 것은 보도로부터 이틀 뒤의 일이었다. 국민 주권을 선포하고 일왕을 상징적 존재로 규정한 일본 헌법은 1946년 11월 3일 공포돼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특히
말레이반도 남단에 위치한 말레이시아 조호르주(州)는 200년 전까지도 빽빽한 정글이었다. 밀림이 개간된 것은 19세기 들어 후추를 재배할 땅을 찾아 중국계 농민들이 이주하면서다. 이후 고무나무와 기름야자를 주요 작물로 재배하면서 조호르는 20세기 말레이시아 농업경제를 뒷받침하는 요지로 자리매김됐다. 조호르는 말레이어로 ‘보석’을 뜻한다. 조호르강 유역에 보석이 많았다는 전설을 전해들은 아랍 상인들이 이 지역을 아랍어로 ‘자우하르(jauhar·보석)’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최근 이 지역이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 수년 사이 글로벌 데이터센터 투자가 집중되면서 조호르가 동남아시아의 인공지능(AI) 인프라 중심지이자 미래 경제를 이끌 견인차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계기는 이웃 나라에서 비롯됐다. 동남아의 오랜 디지털 인프라 허브인 싱가포르가 물, 토지, 에너지 소비량 급증을 이유로 2019년부터 2022년까지 데이터센터 신규 건설을 중단하자 싱가포르와 가까우면서도 땅값이 싸고 전력도 풍부한 조호르가 주목을 끌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세제 혜택과 인프라 확충, 신속한 승인 등 공격적인 투자 유인책으로 그 기회를
청론직설
한국 경제가 저성장 고착화와 재도약의 기로에 서 있다. 정부는 올해를 ‘경제 대도약의 원년’으로 선언하고 지난해 1% 안팎이던 경제성장률이 올해는 2%로 회복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고환율·고물가·고금리 등 ‘3고(高)’ 현상과 특정 산업에 쏠린 불안정한 구조가 고착화하고 중국의 ‘제조 굴기’가 우리의 주력산업 경쟁력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앞날을 낙관하기는 어렵다. 국내 계량경제학 권위자인 유병삼 연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원활한 경제 운용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요인은 장기적 견실성”이라며 “잠재성장률을 높이고 경제 활력을 일으킬 단 하나의 방법을 꼽는다면 기술 수준을 높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 명예교수는 또 “대학 수준은 한 나라의 기술 잠재력을 판단하는 유력한 지표”라며 “그런 점에서 세계적으로 대학 경쟁력을 급속히 키우고 있는 중국에 대해 크게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경고했다. -지금의 한국 경제를 어떻게 진단하나. △경제지표를 보면 경제가 단기뿐 아니라 장기적 측면에서도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경제 규모가 커짐에 따라 잠재성장률이 점차 줄어드는 것이 보통이지만 저하 속도가 빠른 게 문제다. 이제는 기술
1882년 토머스 에디슨이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발전소를 가동하면서부터 구리는 현대 산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수 소재가 됐다. 구리의 전기 전도성에 일찌감치 주목한 에디슨은 약 2만 4400m의 구리 전선을 매설해 맨해튼에 전기 공급을 시작했고 전화기·모터·발전기 등 거의 모든 전기 발명품에도 구리를 사용했다. 전력 시스템 보급과 함께 1911년 세계 구리 생산량이 100만 톤을 돌파하자 구리 산업계 대표들이 구리 수요 급증에 기여한 에디슨에게 485파운드(약 220㎏)짜리 구리 덩어리를 선물하기도 했다. 그 뒤로 전기 인프라부터 건설·제조 등 산업 전반에 걸쳐 안 쓰이는 곳이 없게 된 구리는 경기를 가늠하는 선행지표로 명성을 쌓았다. 경기에 따라 가격이 오르내리는 구리는 언젠가부터 시장에서 ‘구리 박사(Dr.copper)’로 불리게 됐다. 1929년 대공황에도, 2008년 금융위기 때도 구리 가격은 위기의 전조가 됐다. 이달 5일 런던금속거래소(LME) 현물 구리 가격이 사상 최초로 톤당 1만 3000달러를 돌파했다. 지난해 연간 상승률이 44%에 달하면서 시장에서는 ‘붉은 금’이라는 새 별명까지 생겼다. 글로벌 경기
지난해 2월 덴마크 공영방송 DR가 ‘그린란드의 하얀 금’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덴마크 식민지(현 자치령)였던 그린란드 남부 이비투트의 크라이올라이트 광산에서 약 130년에 걸쳐 진행된 덴마크 기업들의 광물 착취를 다룬 작품이다. ‘하얀 금’으로 표현된 크라이올라이트는 알루미늄 생산에 필수적인 희귀 광물로 19세기부터 주목받다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항공기 제작의 핵심 소재로 각광받았다. 이비투트는 크라이올라이트의 세계 최대 산지였다. 하지만 막대한 채굴 수익은 고스란히 덴마크로 흘러갔다. 광맥이 고갈되자 광산은 1987년 폐쇄됐고 이비투트는 버려진 마을로 남았다. 이비투트가 광산 도시로 번창하던 무렵 미국도 그린란드에 눈독을 들였다. 막대한 자원 보고이자 방어 기지, 북극 항로의 길목이라는 전략적 중요성을 주목한 것이다. 1910년 당시 덴마크 주재 미국 대사는 필리핀 섬과 그린란드를 맞바꿔야 한다는 주장까지 폈다. 1941년 덴마크가 나치 독일에 점령되자 미국은 즉시 그린란드에 군사 기지를 짓고 병력을 주둔시켰다. 1946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1억 달러 상당의 금으로 그린란드를 사겠다고 덴마크에 공식
1982년 9월, 미국 1위 진통제인 타이레놀을 복용한 뒤 7명이 독극물 중독으로 사망한 사건이 벌어졌다. 제조사 존슨앤드존슨의 대응은 신속했다. 제임스 버크 최고경영자(CEO)는 즉시 소비자들에게 타이레놀 복용을 중단하도록 알리고 정보 공개와 소통에 앞장섰다. 독극물은 소매 단계에서 유입돼 사실상 제조사 책임이 아니었지만 버크는 직접 TV에 출연해 자신의 책임을 강조했다. 타이레놀 3100만 병은 전량 회수됐다. 4년 뒤 유사 사건이 재발하자 버크는 아예 캡슐 판매를 영구 중단하고 패키징을 전면 쇄신했다.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CEO의 공개 사과는 당시 경영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진정한 사과와 신속·투명한 정보 전달, 책임 있는 후속 조치에 소비자 신뢰는 금세 회복됐다. 기업 존립 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든 버크의 대응은 오늘날까지도 경영 위기 관리의 ‘교과서’로 회자된다. 기업 경영에서 사고는 피하기 힘들다. 중요한 것은 사후 대응이다. 위기의 순간에 CEO 리더십이 빛을 발하기도 하지만 경영자의 판단 착오가 회사에 두고두고 ‘낙인’을 남기기도 한다. 버크 이후 부쩍 늘어난 CEO의 공개 사과도 진정성과 타이밍
가발을 쓰고 변장한 중년의 여성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정권의 검문을 피해 9일 새벽 카리브해 연안의 해안 마을에 도착했다. 나무 어선으로 바다를 건너 도착한 섬에는 노르웨이 오슬로까지 그녀를 태워 줄 비행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11일 새벽, 노벨평화상 수상을 위해 오슬로에 도착한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를 향해 사람들은 ‘자유!’를 외쳤다. 베네수엘라 야권 지도자 마차도의 극비 출국 작전을 도운 조력자들 중 가장 의외이면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있다면 아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일 것이다. 마두로 정권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는 트럼프 행정부는 독재에 항거하는 마차도가 의지할 수 있는 외부 세력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마차도는 마두로 축출의 지렛대이자 ‘포스트 마두로’ 계획의 핵심 인물일 것이다. 마차도가 마두로의 눈을 피해 국경을 넘을 즈음 미국 전투기 두 대가 베네수엘라만 상공을 이례적으로 근접 비행했다. 마차도 탈출을 ‘엄호’하기 위한 작전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마두로 축출은 ‘뒷마당’인 중남미에서 패권을 재확립하겠다는 미국 안보 전략의 일환이다. 트럼프 2기의 국가안보전략(NSS)은 ‘수년간 방치된 서반
청년의 검에는 ‘Aut Caesar, Aut Nihil(카이사르)가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교황의 사생아로 태어나 이탈리아 정복을 꿈꾼 풍운아 체사레 보르자는 16세기 이탈리아를 뒤흔든 야망의 화신이었다. 권력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은 그가 로마냐 지방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잔혹한 심복을 총독으로 앞세워 토착 세력을 제거하고 정국을 안정시킨 뒤 총독을 잔인하게 처형해 시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대중적 지지를 얻은 일화는 유명하다. 사자의 용맹과 여우의 간교함을 갖춘 그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은 마키아벨리는 보르자를 이상적 군주의 모델로 삼아 ‘군주론’을 집필했다. ‘군주는 혐오스러운 일은 다른 이에게 맡기고 인기를 얻는 일은 자신이 직접 해야 한다’는 마키아벨리의 조언은 보르자의 냉혹한 전략을 연상시킨다. 보르자처럼 극단적이지는 않아도 오늘날 정치 지도자들 역시 ‘악역’은 남에게 떠넘기고 자신은 좋은 이미지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 이른바 ‘굿 캅 배드 캅’ 전략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재정 문제를 놓고 민주당과 첨예하게 대치하는 공화당 의원들을 백악관에 초대해 토론을
“게임 때문에 얼굴은 사람인데 뇌는 짐승인 아이들이 늘고 또 죽어가고 있습니다.” 2011년 3월 인터넷 중독 예방을 위해 열린 한 토론회에서 나온 발언의 파장은 컸다. 한 달여 뒤 ‘청소년 수면권 보장’을 이유로 2004년부터 공론화됐던 ‘게임 셧다운제’가 마침내 국회를 통과했다.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만 16세 미만 청소년의 온라인게임이 차단됐다. 하지만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게임 업계의 반발과 개인의 자유 침해 비판이 들끓었고 우회 접속으로 법은 무력화됐다. 어렵사리 시행된 셧다운제는 결국 10년 만인 2022년 1월 1일 공식 폐지됐다. 지금은 게임 대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청소년들을 사로잡고 있다. 폐해도 훨씬 심각하다. SNS 사용이 온라인 공간에서의 집단 괴롭힘(사이버 불링)과 성 착취 등 각종 범죄와 중독으로 이어지다 청소년의 생명을 앗아가는 일까지 벌어진다. 골머리를 앓던 각국 정부 가운데 호주가 가장 먼저 ‘극약 처방’을 내렸다. 이달 10일부터 호주에서는 16세 미만 청소년의 SNS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이 세계 최초로 시행된다. 인스타그램·유튜브·틱톡·페이스북 등 주요 플랫폼이 16세 미
“사실이 바뀌면 저는 생각을 바꿉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십니까?” 20세기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말이다. 요즘 이 말에 가장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인물이 있다. 일본의 저명한 경제학자 하마다 고이치 예일대 명예교수다. 케인스의 저서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이 출간된 1936년에 태어난 하마다 교수는 고(故)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의 설계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총선 직전이던 2012년 11월 미국에 체류하던 하마다 교수가 물가 목표 설정과 대규모 국채 매입 등 아베노믹스의 골자를 이루게 될 정책 조언을 담은 한 장 반짜리 팩스를 아베 총리에게 보낸 일화는 유명하다. 대규모 금융 완화, 재정지출 확대, 구조 개혁이라는 ‘3개의 화살’을 앞세운 아베노믹스는 미흡한 구조 개혁과 재정 악화 후유증 때문에 훗날 많은 비판도 받았지만 장기 불황의 늪에서 허덕이던 일본 경제에 회생의 숨을 불어넣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마다 교수의 주장이 최근 180도 달라졌다. ‘여자 아베’로 불리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재정 확대와 금융 완화 등 아베노믹스를 계승한 정책을 추진하자 연일
인공지능(AI), 반도체, 바이오, 원자력 등 신성장 산업 육성을 위한 각국의 첨단기술 경쟁이 뜨겁다. 재미 한인 공학자이자 2017년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미국 중부의 명문 주립대인 미주리대 총괄 사령탑에 오른 최문영 총장은 지난달 방한 중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기술 발전을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연구의 민주화’가 이뤄져야 한다”며 “어디서 싹틀지 모를 미래 인재와 혁신 능력을 키우려면 성공률에 따른 점수표를 매기지 않는 정부의 연구개발(R&D) 지원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총장은 “기술 개발과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R&D 역량과 우수 인재 양성 능력을 갖는 대학과 산업계의 ‘윈윈’ 협력이 중요하다”면서 “미주리대는 미국 내 최대 규모의 산학 협력을 통해 재정을 확립하고 지역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글로벌 제약사 노바티스에 방사성동위원소를 독점 공급하는 미주리대는 최근 20㎿ 차세대 연구용 원자로(NextGen MURR) 건설의 초기 설계 파트너로 한국원자력연구원·현대엔지니어링 컨소시엄을 선정해 주목을 끈 바 있다. -미국의 높은 성장 능력이 혁신 역량에서
미국에서 자칭 ‘민주사회주의자’인 조란 맘다니의 뉴욕 시장 당선에 따른 후폭풍이 거세다. 34세 무슬림이라는 점도 파격인데 무상 복지, 부자 증세 등 급진적 공약을 내건 ‘극좌파’가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인 뉴욕의 시장직을 거머쥐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충격에 빠진 일부 기업과 부유층이 ‘뉴욕 엑소더스’를 준비하기 시작한 가운데 월가의 거물들은 태세를 바꿔 맘다니와의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은 “어떤 시장이든 도울 용의가 있다”며 “그(맘다니)가 디트로이트의 부활을 이끈 마이크 더건 시장에게 배우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출신의 더건 시장은 쇠락한 도시의 상징이던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의 극적 재건을 이끈 주인공이다. 2014년 취임 후 12년간 적극적인 기업 투자 유치와 재정 관리, 공공 서비스·인프라 개선에 나서 범죄와 폭력·빈집이 가득했던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변화는 지표로도 확인된다. 지난해 디트로이트 내 살인 사건은 1965년 이래 최저인 203건을 기록했다. 시 예산은 11년 연속 흑자 행진 중이고 신용등급은 2013년 역대급 파산 신청 후 11년 만에 투자등급으로 올라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