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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조리 돌려보는 세상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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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는 제목의 자서전을 냈다. 이 회장은 “미국이 소프트웨어·하드웨어를 다 점령하고 엄청난 돈을 버는 원동력은 세계의 두뇌들을 끌어들이는 용광로이기 때문”이라며 우리도 ‘두뇌 천국’이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2002년 6월 긴급 사장단 회의에서는 “S급 인재 10명이 회사 1개보다 낫다” “업무 절반 이상을 S급 인재를 뽑는 데 할애하라” 등 핵심 인재 확보를 독려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인재 유출로 시름이 깊다. 미국 스탠퍼드대의 ‘인공지능(AI) 인덱스’에 따르면 2024년 한국의 AI인재 이동지수는 -0.36(10만 명당 0.36명 순유출)으로 2023년(-0.30)보다 유출 폭이 커졌다. 우리나라의 인재 유치 매력도 역시 2020년대 들어서도 세계 30~40위권에 머물러 있다. 4년 뒤인 2030년부터 경제활동인구와 취업자가 동시에 감소할 것이라는 고용정보원의 분석은 인재 확보가 더 힘들어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반면 주요 경쟁국은 인재 유치에 사활을 건다. ‘천인계획’ ‘만인계획’을 앞세워 인재 블랙홀을 표방한
중국 베이징(北京), 일본 도쿄(東京)와 달리 서울은 순우리말이다. 건국 초기 난징을 수도로 삼았던 명나라는 1403년 베이핑을 베이징으로 개칭하고 천도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1869년 교토에서 동쪽의 에도(현 도쿄)로 수도를 옮겼다. 서울은 수도를 일컫는 말로 신라의 서라벌이 서벌과 서울로 변화해 왔다는 게 통설이다. ‘서’는 ‘높다’는 뜻이고 ‘울’은 ‘큰 마을’을 뜻한다. 일제강점기 경성은 서민들의 애환이 교차하는 공간이었다. 이광수는 한국 첫 근대 장편소설 ‘무정(1918년)’에서 경성 예찬론을 폈다. “전국서 모여든 경성 청년들은 희망의 씨앗” “경성은 문명의 근원지” “남대문 정거장(서울역)은 세계를 향한 문” 등의 구절이 나온다. 반면 현진건은 소설 ‘운수 좋은 날(1924년)’에서 암울한 경성 생활을 고발한다. 삶에 지친 인력거꾼이 모처럼 설렁탕을 사들고 집에 돌아가지만 죽어 있는 아내를 보고 절망한다. 한 세기가 흐른 지금 서울은 여전히 명암이 엇갈리는 도시다. 더 나은 터전과 직장을 찾아 서울로 몰려들지만 다락같이 오르는 집값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2023년 서울의 주택 시가총액은 2320조 원으
1981년 9월 19일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에 50만 명이 모였다. 최고의 팝 듀오로 평가받는 ‘사이먼과 가펑클’의 재결합 공연을 보기 위해 전 세계의 열혈 팬들이 몰렸다. 사이먼과 가펑클은 1970년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발표 이후 사소한 개인적 다툼으로 불화를 겪고 결국 팀 해체에 이른다. 이들이 11년 만에 복귀 무대에 함께 선 것만으로도 의미가 컸지만 그 장소가 뉴욕의 야외 명소라는 점과 공원 재정 마련을 위한 무료 기부 공연이었다는 점에서 큰 화제가 됐다. 사이먼과 가펑클의 센트럴파크 공연 이후에도 유명 팝스타들의 야외 공연이 심심찮게 열렸다. 미국의 인기 록밴드 ‘비치보이스’는 1985년 필라델피아 시청 인근에서 100만 명의 관객과 함께한 무료 콘서트를 열었다. 영국 전위 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1990년 베를린 포츠담 광장 공연과 전자 음악의 거장인 프랑스 뮤지션 ‘장미셸 자르’의 1997년 모스크바 공연은 팝 역사의 가장 중요한 이벤트 중 하나로 꼽힌다.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코파카바나 해변도 무료 콘서트장으로 여러 번 사용됐다. 1994년 팝 스타 ‘로드 스튜어트’가 360만 명의 관객과 함께
미국 과학자 피터 글레이저는 1968년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우주태양광발전이라는 개념을 발표했다. 지상 3만 6000㎞의 정지궤도에서 인공위성으로 태양에너지를 모아 극초단파 형태의 전자파 빔을 지구로 쏘면 지상 안테나로 받아 전기로 변환·배전하는 혁신적인 방식이다. 지상과 달리 우주 공간에서는 밤낮 없이 햇빛을 받을 수 있다. 과학계에서는 극초단파가 아닌 레이저빔으로 에너지를 지상에 전송하는 방안도 제안됐으나 실용화에 이르지 못했다. 기술 돌파구는 미국이 먼저 열었다. 캘리포니아공대 연구진이 2024년 우주 공간에서 위성으로 태양광발전을 해 극초단파로 지상까지 송출했다. 이듬해 8월에는 미국 국방부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레이저빔을 공중의 거울로 반사시켜 8.6㎞ 떨어진 태양광 패널까지 쏴 전기를 생산하는 시험을 마쳤다. 이제는 빅테크까지 뛰어들어 기술 실증을 넘어선 상용화에 시동이 걸렸다. 스페이스X를 창업한 일론 머스크가 이달 초 100만 개의 위성을 띄워 태양에너지로 가동하는 우주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이 회사가 로켓 재활용 기술과 초소형 위성 대량생산 체계 등을 융합하면 우주태양광발전 비용
1946년 2월 4일 오전 10시, 도쿄 유라쿠초 다이이치생명 건물에 설치된 연합군최고사령부(GHQ) 본부의 대회의실에 25명의 GHQ 소속 미국인들이 모였다. 영문도 모른 채 소집된 이들에게 코트니 휘트니 GHQ 민정국장은 ‘1주일 안에 일본 헌법 초안을 만들라’는 극비 지시를 내렸다. 25명이 밀실에서 9일 만에 작성한 초안은 2월 13일 요시다 시게루 외무상 등에 전달됐다. 일본 정부와의 조율을 거쳐 마련된 최종안은 3월 7일 ‘일본 정부안’으로 공표됐다. 일본이 1945년 8월 14일 연합군에 항복한 순간부터 1889년 제정된 일본제국 헌법, 이른바 ‘메이지 헌법’은 폐기될 운명이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일본 정부는 일찌감치 개헌 작업에 돌입했다. 하지만 과업을 맡은 마쓰모토 조지 국무대신이 작성한 초안은 메이지 헌법과 별 차이가 없는 전근대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마이니치신문의 특종 보도를 통해 일본 측 개헌안을 접한 더글러스 맥아더 사령관이 25명을 소집한 것은 보도로부터 이틀 뒤의 일이었다. 국민 주권을 선포하고 일왕을 상징적 존재로 규정한 일본 헌법은 1946년 11월 3일 공포돼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특히
한국은행은 2011년 금융회사들의 ‘김치본드’ 투자를 사실상 금지시켰다. 기업들이 원화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외화를 대출받는 편법 수단으로 김치본드를 활용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한국은행은 ‘외국환 거래 업무 취급 세칙’ 개정안을 마련했고 그해 7월부터 시행했다. 이에 따라 외국은행 국내 지점 등 외국환 업무 취급 기관들은 김치본드에 투자할 때 사용 목적을 반드시 확인해야 했고 원화 환전 목적으로 기업이 발행하는 채권에는 투자할 수 없게 됐다. 김치본드란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김치와 채권을 의미하는 본드(Bond)의 합성어로 국내 발행 외화 표시 채권을 뜻한다. 김치본드와 비교되는 ‘아리랑본드’는 우리나라에서 원화를 조달할 목적으로 외국 기업이 발행하는 채권을 말한다. 김치본드는 액면 금액이 1000만 달러 등 외화로, 아리랑본드는 100억 원 등 원화로 표시된다. 기업들은 달러 금리가 원화 금리보다 낮은 경우 김치본드를 발행하면 일반 채권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기업들이 낮은 금리를 활용해 발행한 김치본드의 달러 자금을 원화로 전환하기 위해 팔면 원·달러 환율은 하락할 수 있다. 달러 대비
3월부터 경남 진주시가 조폐공사의 위·변조 방지 기술을 적용한 생활쓰레기 종량제봉투를 판매한다. 시는 가짜 봉투가 적발된 사례는 없다고 했지만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 등에서는 벌써 위조 봉투가 암암리에 유통되고 있다. 시 단위의 지자체 종량제봉투는 육안으로는 정품 확인이 쉽지 않고 바코드도 단순해 복제가 가능하다. 진주시의 20ℓ 종량제봉투 가격은 장당 590원이다. 2017년 450원에서 31% 인상한 후 9년째 그대로다. 더는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다. 올해 수도권 생활쓰레기 직매립 금지로 소각 등 처리 비용이 급등해 종량제봉투 가격 인상은 불가피해졌다. 위·변조 방지 기술 도입도 이런 변화의 선제 조치로 보인다. 실제로 지자체들의 인상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다. 경기도 광명시는 매년 10%씩 5년간, 평택시는 매년 8%씩 2028년까지 올리겠다고 했다. 쓰레기종량제는 환경정책기본법이 규정한 ‘오염자 부담 원칙’에 따라 1995년 1월 도입됐다. 버린 만큼 비용을 내라는 취지였지만 현실은 다르다. 처리 비용은 치솟는데도 봉투 가격은 정치적 부담 탓에 조금씩밖에 못 올렸다. 2024년 기준 생활쓰레기 처리 비용 가운데 종량제
“우리도 이제는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나라 살림을 설계해야 되지 않겠는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국개발연구원(KDI) 설립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한 말이다. 1962년부터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면서 선진국의 자문에만 의존하지 말고 우리 경제정책을 스스로 연구할 전문가 집단을 육성해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KDI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직접 설립을 지시하고 사재 100만 원을 털어 설립 자금에 보탰는가 하면 KDI 서울 홍릉청사 건설 당시 두 차례나 현장을 방문할 만큼 관심을 보였다. KDI 세종청사 1층 로비에 걸려 있는 ‘번영을 향한 경제설계’라는 친필 휘호도 홍릉청사 개막식에서 남긴 글이다. 한국의 대표적 싱크탱크 KDI가 1971년 설립 이후 올해로 55주년을 맞는다. KDI는 한국이 세계 최빈국에서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막중한 역할을 해왔다. 한국 경제의 굵직굵직한 변곡점마다 KDI가 정책 연구의 중심에 있었다. 연구원들에게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던 1970~1980년대에는 최고의 두뇌들이 모인 최고의 직장으로 불렸다. 1990년대 이후에는 KDI 출신 인사들이 정관계에
한겨울 칼바람이 남해안의 푸른 물살을 가르는 요즘 바닷가 사람들의 손길은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다. 수온이 낮을수록 제맛을 내는 김이 수확의 절정을 맞았기 때문이다.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찬 바다의 기운을 먹고 자란 김은 우리 식탁에서 친숙하게 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이 소박한 반찬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바다의 반도체’ ‘검은 반도체’라는 별명과 함께 몸값이 치솟고 있다. 지난달 말 마른 김 10장의 가격이 1515원을 기록하며 처음 1500원 선을 돌파했다. 얇은 김 한 장 가격이 2년 새 50%나 치솟으며 150원을 넘어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가격 상승의 불씨는 ‘K푸드 열풍’이 지폈다. 지난해 마른 김 수출은 1억 699만 속(1속=100장)에 달하면서 처음 1조 원을 돌파했다. 전남 신안과 완도 등지의 양식장이 쉴 새 없이 돌아가고 면적을 넓혀봐도 해외에서 조미김과 김 스낵을 찾는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세계인의 입맛을 잡느라 정작 우리네 식탁 위 공급망에는 빨간불이 켜진 꼴이다. 김에 대한 기록의 뿌리는 깊다. 일연의 ‘삼국유사’는 신라 시대부터 바다에서 ‘해의(海衣)’나 ‘해태(海苔
문헌 기록에 설탕이 처음 등장한 것은 약 2300년 전인 기원전 327년이다. BC 4세기 그리스와 페르시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 땅까지 정복에 나섰는데 이때 알렉산더 군대가 사탕수수를 발견한 것이 설탕의 기원이 됐다. 당시 사람들은 사탕수수를 ‘꿀을 만드는 갈대’라고 불렀다. 우리나라에 설탕이 들어온 것은 고려 명종 때 중국 송나라를 통해서다. 고가 수입품인 설탕은 약재로 제한적으로 사용됐고 상류층이 기호품으로 애용했다. 서구 국가들은 설탕에 높은 세금을 매겨 부족한 나라 곳간을 메우는 수단으로 삼는 경우가 꽤 많다. 영국은 1764년 ‘설탕법’을 제정해 서인도산 설탕과 당밀에 세금을 부과했다. 1914년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제1차 세계대전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청량음료 특별세를 제안했다. 1922년 노르웨이 정부가 ‘초콜릿 및 설탕 제품세’를 시행하고 점차 세율을 높여나가자 이에 반발한 국민들이 국경을 넘어 스웨덴으로 ‘설탕 쇼핑’을 떠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현재 영국과 프랑스·이탈리아·멕시코 등 120여 개 국가가 설탕세를 채택하고 있다. 설탕세 효과에 대해서는 찬
한국과 캐나다의 인연은 130여 년 전 캐나다 선교사들의 헌신으로 시작됐다. 최초의 캐나다인 선교사인 제임스 스카스 게일(한국명 기일)은 1888년 개인 자격으로 조선에 입국해 전도와 교육 활동에 매진했다. 그는 ‘춘향전’ ‘구운몽’ 등 우리 전통 문학을 영어로 번역해 세계에 알렸다. 캐나다 장로회는 선교사 윌리엄 존 맥켄지(매견시)가 한국에 간 지 2년 만인 1895년 만 33세의 젊은 나이에 풍토병과 과로로 사망하자 교단 차원의 한국 선교를 결정하게 된다. 이후 파견된 200여 명의 선교사들은 의료·교육 등 한국의 근대화에 공헌했다. 올리버 에이비슨(어비신)은 한국 근대 의학의 아버지로 최초의 서양식 종합병원인 세브란스병원을 설립했다. 평소 “한국 사람으로 죽고 싶다”고 했지만 1935년 미국에 잠깐 갔다가 아내 사망 등으로 인해 영영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하지만 현지에서도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는 등 한국 독립에 힘을 보탰다.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석호필)는 3·1운동의 민족 대표 33인에 더해 ‘제34인’으로 불릴 만큼 일제의 잔혹성과 한민족의 독립 투쟁을 해외에 알린 인물이다. 로버트 그리어슨(구예선) 역
삼성을 세운 고(故) 이병철 창업회장은 전통 예술품 마니아였다. 국보 ‘가야 금관’을 비롯한 각종 한국 고미술품들을 30년 이상 수집해 우리 문화재들의 해외 밀반출을 저지했다. 삼남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도 조선 화가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구입한 1970년대 초부터 삼성가의 수장고를 채워갔다. 그렇게 부친의 1982년 호암미술관 개관을 뒷받침한 후에는 근현대 한국 예술, 서양 미술 등으로까지 장르를 넓혀 자신만의 스타일의 소장품을 모았다. 그가 생전 모은 예술품들은 2만 3000여 점으로 총 가치는 2조 원을 넘어선다. 이들 수집품은 그의 사후 2021년 국가에 기증됐다. 일명 ‘이건희 컬렉션’으로 불린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8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이건희 컬렉션 전시 기념행사에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을 초청해 환담 시간을 가졌다. 부친의 문화유산을 지렛대로 국익을 위한 민간 경제 사절 역할을 한 것이다. 이 자리에는 미국 정관계 인사와 글로벌 기업 경영진을 포함해 총 250여 명이 모였다. 미국의 통상 압박에 직면한 우리 정부와 경제계에 천금 같은 소통 기회였다. 이건희 컬렉션을 기증받은 정부는
지난해 3월 경북 일대를 휩쓴 대형 산불은 5개 시군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영덕읍 석리와 노물리에 걸쳐 있는 해발 180m의 야트막한 천지산(千地山)도 화마를 피하지 못했다. 검게 그을린 산등성이에 최근 희망의 싹이 트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그 희망의 원천은 ‘원전’이다. 이달 26일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신규 원전 2기 건설 계획을 발표하자 영덕군청 신재생에너지팀을 필두로 지역사회가 다시 팔을 걷어붙였다. 사실 영덕에 원전은 눈물과 기대가 교차하는 ‘애증의 이름’이다. 시곗바늘을 돌려보면 2012년 이명박 정부는 석리·노물리·매정리 일대 324만 ㎡를 원전 부지로 확정했다. 지역 이미지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산 이름을 딴 ‘천지원전’으로 명명했다. 계획대로라면 1400㎿급 1호기는 올해 상업운전을 시작하고 2호기는 내년쯤 가동에 들어갔어야 했다. 그러나 2017년 6월 ‘탈원전’ 기치를 든 문재인 정부에 의해 천지원전은 한순간에 백지화됐다. 기대에 부풀었던 지역민들의 실망은 컸다. 수년간 예정지로 묶여 재산권 행사가 봉쇄됐던 토지 소유주들은 말할 것도 없다. 군은 이미 받은 원전 선정 지원금
말레이반도 남단에 위치한 말레이시아 조호르주(州)는 200년 전까지도 빽빽한 정글이었다. 밀림이 개간된 것은 19세기 들어 후추를 재배할 땅을 찾아 중국계 농민들이 이주하면서다. 이후 고무나무와 기름야자를 주요 작물로 재배하면서 조호르는 20세기 말레이시아 농업경제를 뒷받침하는 요지로 자리매김됐다. 조호르는 말레이어로 ‘보석’을 뜻한다. 조호르강 유역에 보석이 많았다는 전설을 전해들은 아랍 상인들이 이 지역을 아랍어로 ‘자우하르(jauhar·보석)’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최근 이 지역이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 수년 사이 글로벌 데이터센터 투자가 집중되면서 조호르가 동남아시아의 인공지능(AI) 인프라 중심지이자 미래 경제를 이끌 견인차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계기는 이웃 나라에서 비롯됐다. 동남아의 오랜 디지털 인프라 허브인 싱가포르가 물, 토지, 에너지 소비량 급증을 이유로 2019년부터 2022년까지 데이터센터 신규 건설을 중단하자 싱가포르와 가까우면서도 땅값이 싸고 전력도 풍부한 조호르가 주목을 끌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세제 혜택과 인프라 확충, 신속한 승인 등 공격적인 투자 유인책으로 그 기회를
‘7선 의원’ ‘킹메이커’ ‘실세 총리’ ‘선거의 제왕’ ‘노회한 지략가’. 25일 별세한 고(故)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전 국무총리)에게 붙는 다양한 수식어들이다. 한국 현대 정치사의 굵직한 분기점마다 핵심 역할을 했던 고인은 1972년 10월 유신(維新)을 계기로 학생운동에 투신한 1세대 운동권이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복역한 뒤 출소한 그는 1978년 모교인 서울대 녹두거리에 인문사회과학 서점인 ‘광장서적’을 열고 책방 주인이 됐다. 광장서적이라는 이름은 소설가 최인훈의 ‘광장’에서 따왔다. 광장서적은 단순한 서점이 아니었다. 1980년대 학생운동과 재야운동의 근거지였다. 당시 출판이 금지된 각종 사회과학 서적을 유통하는 동시에 사상 검열과 정치적 억압을 피해 모여든 청년들의 해방구가 됐다. 이 전 총리는 1979년 사회과학 출판사 ‘돌베개’를 설립하기도 했다. 광장서적은 고인이 1988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동생 해만씨가 경영을 맡았다. 1980~1990년대 대학가에는 서울대 광장서적 외에도 연세대 ‘오늘의 책’, 고려대 ‘장백서원’, 성균관대 ‘풀무질’, 한양대 ‘한마당’, 중앙대 ‘청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