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레드몬드호텔. LG배 8강전. 공교롭게도 한국의 빅스리가 중국의 빅스리와 맞붙었다. 창하오의 상대는 유창혁, 왕레이의 상대는 조훈현, 마샤오춘의 상대는 이창호였다. 8강전의 다른 한 판은 왕리청과 위빈이 다투게 되었다. 전야제 석상에서 중국의 위빈9단은 독특한 인사말을 했다. “욕심 같아서는 우리 팀이 모두 이겨서 우리끼리 준결승을 치르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가 중국팀에게 제일 약하니까 준결승에 3명이 올라가도 괜찮을 것 같군요.” 그의 겸손이 하늘의 도움을 불렀는지 중국의 빅스리는 모두 패하고 위빈 혼자만 준결승에 진출하게 되고 그는 결승전에서도 승리하여 2억원의 임자가 되는데 그건 나중 얘기이고…. 창하오는 모처럼 흑번이 나왔으므로 기분이 상쾌했다. 상대인 유창혁과 역대 전적 1승1패. 98년 1월 동양증권배에서는 유창혁이 이겼고 99년4 월 춘란배에서는 창하오가 이겼다. 8강전의 전야제가 끝난 후에 중국선수들은 위빈 9단의 방에 모여 전략 회의를 했다. 그 자리에서 유창혁의 바둑에 대해 논의가 있었다. 먼저 마샤오춘이 입을 열었다. “공격을 좋아하고 잘하는 게 사실이지만 유창혁의 바둑은 아주 섬세하고 빠르다. 그런데 한번 꼬이면 정신을못차린다. 기선제압이 중요하다.” 다음은 위빈의 말. “이쪽이 두텁게 두어나가면 유창혁은 힘을 못쓴다. 승부를 서두르지 않고 끈끈하게 밀고나가야 한다.” 창하오가 다음으로 입을 열었다. “힘에는 힘으로 밀어붙이는 거죠 뭐.” 흑5가바로 그런 창하오의 기분을 여실히 보여주는 호전적인 걸침이었다. 보통은 반대쪽(7의 자리)에서 먼저 걸치는 것인데…. 노승일·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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