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경영학
1716년 ‘해적공화국’(Republic of Pirates)이 활개를 칠 무렵, 대형 상선이 카리브해에 나타났다. 당시 최강의 해적 연합함대를 이끌던 벤자민 호르니골드는 해적들의 주장을 한사코 물리치며 상선을 공격하지 않았다. 영국 국기를 달았다는 이유다. 호르니골드는 윤리 기준과 애국심이 강해 스스로 해적이 아니라고 여겼다. 비록 영국 왕의 면허장을 받지 못했지만 사략선(私掠船)을 운영한다고 규정하고, 스페인이나 프랑스 같은 적국의 배만 공격했다. 점점 불만이 쌓이면서, 연합함대의 해적들은 총사령관에 대한 신임을 투표에 부쳤다. ‘블랙샘’(Black Sam) 사무엘 벨라미가 추대되고, 호르니골드는 ‘검은 수염’(Black Beard) 에드워드 티치와 함께 연합함대를 떠났다. 1년 남짓 함께 해적질을 계속하던 호르니골드는 1717년 말 의견 차이로 ‘검은 수염’과 헤어졌다. 호르니골드는 영국 왕 조지 1세를, ‘검은 수염’은 전임 앤 여왕을 각각 지지했다. ‘검은 수염’은 ‘앤 여왕의 복수’(Queen Anne‘s Revenge)를 이끌고 떠났다. 18세기 초, 호르니골드는 카리브해의 해적 사이에서 가장 존경받는 우두머리였다. 해적 공동 자치제인 해적공화국을 건설하고, 민주적이고 공정한 해적규약(The Articles of Agreement)도 만들었다. 전투 경험이 많은데다 연합작전으로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의 리더십 아래 ‘검은 수염’과 ‘블랙샘’을 비롯해서, 찰스 베인, ‘캘리코 잭’, 헨리 제닝스, 스티브 보넷, 토머스 바웬처럼 내로라 하는 해적들이 몰려들었다. 바야흐로 ‘해적의 황금시대’(Golden Age of Piracy)다. 정치적인 노선 차이가 이토록 무서울까? 해적에게도 1718년 조지 1세가 해적에게 사면령을 내리자, 호르니골드는 바로 해적생활을 청산하고 동료 해적들을 설득했다. 윤리의식과 충성심이 너무 강해서 그랬을까? 그는 우즈 로저스 바하마 총독의 제안을 받고 해적을 토벌하는 해적사냥군으로 변신했다. 갑자기 배신자로 돌변한 그는 ‘검은 수염’, ‘블랙샘’, 찰스 베인을 쫓아다녔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다가, 이듬해 배가 난파하는 바람에 물에 빠져 죽었다. 향년 39세. 호르니골드의 ‘맏형’ 리더십은 ‘링크드인’(LinkedIn) 창업자 리드 호프만의 네트워킹 경영과 닮았다. 호르니골드가 유명한 해적 선장들과 연대해서 ‘해적공화국’을 설립하고 ‘해적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다면, 호프만은 실리콘밸리에서 창업자와 투자자를 연결해서 스타트업 혁신 생태계를 조성해냈다. 무질서한 오합지졸(烏合之卒)을 끌어 모아, 네트워크와 연대를 기반으로 새로운 시대를 연 전략가인 셈이다. 해적의 대부는 그냥 되는 게 아니다. ‘연결’이다. 호르니골드는 나포한 배를 ‘검은 수염’을 비롯한 다른 해적에게 지휘를 맡기는 방식으로, 한 때 해적선 5척에 해적 350명까지 거느리기도 했다. 호프만은 ‘링크드인’ 창업자답게 ‘페이팔’(PayPal) 마피아로 시작해서 ‘페이스북’(FaceBook)과 ‘오픈AI’(OpenAI)에 이르는 여러 스타트업을 연결하고 투자했다. 단연 ‘최고 네트워커’(Networker-in-Chief)이자, ‘엔젤 투자자의 엔젤’(Angel Investor’s Angel)이다. 원칙을 지키고 윤리를 따르는 성향도 비슷하다. 호르니골드가 민주적인 해적규약을 제정한 것처럼 호프만은 철저하게 ‘인간 중심’(Human-Centered)을 추구했다. ‘AI 윤리·거버넌스 기금’(Ethics & Governance of AI Fund)을 출범시키고, 스탠퍼드 대학에 연구보조금(Hoffman-Yee Grant)을 지원했다. 또 스타트업이 눈앞의 단기적인 수익에 집착해 개인 정보를 함부로 다루고 사회 양극화를 무시하는 ‘단기주의’를 강력하게 경고했다. 호르니골드가 사면을 받아들인 건 신뢰를 뒤집은 기만적인 변절일까, 평소 소신을 지킨 실용적인 판단일까? 연결은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호프만은 ‘신뢰가 없으면 관계도 없다’며, ‘베풀면 신뢰를 쌓는다’고 말했다. 호프만이 주장하는 ‘블리츠 스케일링’(Blitzscaling), 곧 전격적인 폭풍 성장은 강력한 신뢰를 토대로 한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바뀌어 판단에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갖출 수 없기 때문이다.
2025.12.10 15:09: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