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안법 톺아보기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의무는 현장의 의무와 구분돼야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은 기업이 영위하는 사업에 관하여 대표이사 등 경영책임자가 취하여야 하는 경영상, 관리상의 조치를 정하고 있다. 즉, 기업의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위하여 인력을 충원하거나 예산의 증액, 조직의 개편, 절차·규정·매뉴얼 등의 제·개정 등을 시행하는 것이 중처법에서 정한 의무 내용이다. 이는 현장에서 이행하여야 하는 안전보건조치와는 구분된다. 예컨대 현장의 안전설비가 설치되어 잘 작동 중인지를 확인하는 것은 현장책임자의 몫이고, 경영책임자는 현장에서 안전설비를 잘 구비할 수 있도록 관련 예산을 편성해주는게 그의 일이다. 이처럼 중처법에 따른 의무가 현장에서 취하여야 하는 직접적·구체적인 안전보건조치의무와 구분됨에도 양자를 혼동하는 경우가 종종 발견된다. 대표적인 것이 위험성평가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위험성평가는 산업현장에서 해당 현장의 책임자(안전보건관리책임자 또는 안전보건총괄책임자)의 총괄 관리 하에 실시되는 것임에도, 중처법 위반 사건에서 사고의 원인이 된 유해·위험요인이 위험성평가표에 없으면 곧바로 위험성평가 절차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는 사례가 종종 있다. 현장에서
ESG 길라잡이
EU의 PPWR과 포장재의 미래
유럽연합(EU)의 ‘포장 및 포장폐기물 규정’(PPWR)이 2026년 8월 12일부터 본격 시행된다. 이번 규정은 ‘유럽 그린딜’(European Green Deal)과 ‘순환경제 행동계획’(CEAP)에 따라 2025년 2월 11일 발효되었으며, 기존의 지침(PPWD)을 대체하는 EU 단일 규정이다. PPWR은 EU 시장에 유통되는 모든 포장재가 재사용・재활용 가능하도록 설계될 것을 요구하며, 포장 최소화, 재사용 시스템 확대, 재활용성 등급제 도입, 재활용 플라스틱 의무 사용 등을 핵심 의무로 담고 있다. 포장재는 제품 보호와 물류 과정에서 필수적인 요소다. 포장 제조업은 EU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한데, 2018년 EU 포장 제조업의 매출은 이미 3550억 유로(약 530조 원)에 이르렀다. 하지만 포장재 사용이 급증하면서 환경 부담도 빠르게 확대되었다. EU 집행위원회(EC)가 PPWR 제정을 위해 작성한 2022년 입법영향평가보고서는 포장 분야의 구조적 문제로 ① 포장폐기물의 지속적 증가, ② 재활용을 저해하는 비표준화된 설계・라벨링, ③ 재활용 품질 저하와 낮은 재활용원료 사용률을 지적하며, 이러한 구조적 한계가 자원 낭비와 환경 오염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2023
중남미 이슈와 문화
30년 칠레 통신 패권의 전환
30여 년간 칠레 통신 인프라를 지배해온 스페인 자본이 물러나고 있다. 그 자리를 멕시코 자본이 빠르게 메우면서, 중남미 통신 권력의 중심축이 스페인에서 멕시코로 이동하고 있다. 칠레는 이 변화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무대다. 이는 단순한 기업 간 인수합병(M&A)이 아니라 디지털 인프라 패권의 이동이라는 상징적 사건이다. 1980년대 말 칠레는 군사정권 하에서 기간산업 민영화를 추진했다. 당시 국영 통신사 CTC는 기술 경쟁력이 취약해 외자 유치가 필요했다. 스페인의 텔레포니카(Telefonica)는 1989년 지분 43%를 인수하며 칠레 시장에 진입했다. 스페인은 자본·기술을, 칠레는 제도 안정성과 수요 기반을 제공하며 통신 현대화를 이끌었다. 텔레포니카는 칠레를 교두보로 페루,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브라질로 확장했다. 1990년대 말 중남미 통신시장에서 40% 이상의 점유율을 확보하는 등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누렸다. ‘총칼이 아닌 통신망으로 지배한다’는 신(新)식민주의 논란까지 촉발될 정도였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 4세대(4G)·5세대(5G) 전환에 따른 투자 부담과 포화 경쟁 환경 속에서 텔레포니카의 수익성은 악화되기 시작했다. 이 틈
‘마루치 아라치’ 인문학
30년 공직을 내려놓은 이유
지난 6월 스스로 30년간의 공직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많은 분들이 걱정하면서 만류했고 조직에서 나가라고 하지도 않는데 굳이 그만두려는 이유를 궁금해했다. 자진 퇴직의 이유를 하나하나 열거하자면 108개도 넘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죽음이었다. 살다보면 이유 없이 나를 좋아하는 분과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는 분이 간혹 있다. 이모 선배는 이유 없이 필자를 좋아해 주셨던 분이었다. 대기업 이사까지 한 후 홀로 고향으로 내려가 거동이 불편한 노부모를 모신 분이었다. 노인 아들이 노인 부모를 봉양하는 이른바 노노(老老)봉양을 실천한 것이다. 때마다 지역특산물인 대추도 보내주시고 직접 농사지은 것이라면서 고구마를 보내주시곤 했다. 필자가 감사한 마음으로 약간의 사례라도 하려고 하면 손을 절레절레 흔드시며 완강하게 거절했다. 그냥 하염없이 주시려고만 했지 뭔가를 일절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마른 하늘의 날벼락처럼 이 선배가 숨졌다는 부고 문자가 왔다. 처음에는 믿지도 않았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아침에 그의 아버지가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어떤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그야말로 느
솔직한 교육 이야기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이게 하는 힘
프랑스의 작가인 생텍쥐페리(1900~1944년)의 소설 ‘어린 왕자’를 보면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러나 요즘의 교육이나 양육을 보면 많은 부모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중요한 것들보다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더욱 중시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인다. 아이의 키가 얼마나 자랐는지, 어떤 영어 단어를 말하고 쓸 수 있는지, 학습지 문제를 얼마나 맞추었는지 등과 같은 보이는 결과에 매달리느라 정작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이게 하는 힘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볼 여유가 없는 까닭이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어떠했을까? 아이가 태어나기 전 부모들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위해 애를 쓴다. 태아는 엄마의 뱃속에 있기에 눈으로 직접 볼 수는 없지만 태아의 생명력은 온전히 엄마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어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때로는 발로 차기도 하고 움직이기도 하는 태아를 위해 많은 엄마들이 태교를 한다. 태교는 교육의 시작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아이는 세상의 빛을 보기 전,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부모가 자신을 향해 들려주는 많은 이야기들을 통해 정서적인 유대감과 부모를 향한 신뢰라는 보이지 않는 뿌리를 형성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