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우의 워싱턴 24시
미치 매코널의 항복과 니키 헤일리의 패배[윤홍우의 워싱턴 24시]
정치·사회
2024.03.10 20:26:13
미국 켄터키주는 보수적이고 기독교 색채가 짙은 ‘바이블 벨트’에 속한 지역이다. 인구 구성의 80% 이상이 백인으로 2000년 이후 줄곧 공화당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1984년 이 지역에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함께 새로운 상원의원이 당선됐는데 그가 바로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다. 그는 보수 성향 켄터키주를 기반으로 내리 7선을 하며 무려 40년 동안 상원의원 자리를 지켰고 2007년부터는 공화당 상원 원내 사령탑을 맡고 있다. 최장수 보수당 대표로 매코널이 남긴 정치적 레거시(유산)는 ‘낙태권 폐기’ 등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온 ‘보수 우위 연방대법원’의 탄생이다. 그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집권 8년 동안 미국의 보수의 가치가 훼손됐다며 이를 뒤집기 위해 모든 정치적 수단을 동원했다. 미 대선이 열린 2016년 오바마 전 대통령은 보수의 대부였던 앤터닌 스캘리아 대법관이 사망하자 메릭 갈런드 현 법무장관을 후보로 지명했는데 당시 상원을 장악한 매코널 대표가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를 틀어 막았다. 이를 통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이후 자신의 입맛대로 대법관 3명을 차례로 임명, 연방대법원의 보수화를 이룰 수 있었다. 특히 보수 성향의 마지막 대법관인 에이미 코니 배럿이 지명된 2020년은 대선을 코앞에 둔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매코널 대표는 4년 전과 달리 이를 신속하게 인준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였다. 이런 이유로 민주당에서 ‘약삭빠른 위선자’라는 거센 비판도 받았지만 매코널 대표는 ‘세계 경찰’로서 미국의 역할이라는 주류 공화당의 가치를 지키는 데도 일관성을 지켜온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공화당 강경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상원에서 민주당과 협력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한 추가 안보 예산안을 통과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그는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 상원 가결 이후 북부 켄터키 트리뷴지에 쓴 기고에서 “친구를 버리는 것이 미국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라는 근시안적이고 비역사적인 목소리가 크게 퍼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2020년 대선 뒤집기 시도도 강하게 비판했는데, 이후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부터 ‘올드 크로(켄터키산 저가 위스키)’로 불리며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오기도 했다. 그런 매코널 대표가 최근 상원 대표 자리를 내려놓으며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 선언을 한 것은 사실상의 ‘항복’인 동시에 정통 보수가 지켜온 미국의 역할에 대한 철학과 가치가 공화당에서 버티기 힘든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김동석 한인유권자연대 대표는 “매코널의 퇴장은 레이건이 상징하는 국제 동맹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보수주의가 설 자리를 잃고 트럼프가 지배하는 미국판 극우 뉴라이트가 공화당을 점령했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항마로 주목받았던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의 경선 패배 역시 매코널 대표의 퇴장과 맞물려 있다. 헤일리 전 대사는 이번 경선에서 줄곧 “세계가 불타고 있다”며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회복해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그는 한때 트럼프 전 대통령의 참모였지만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역할에 대한 인식만큼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각을 세웠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공화당원들에게 그의 목소리는 전혀 호소력을 갖지 못했다. ‘반(反)트럼프’ 인사들이 사라진 미국 공화당에서 더 이상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질주를 막을 브레이크는 없어 보인다. 삼권 분립을 기반으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던 미국의 대통령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백악관 재탈환과 함께 모래성처럼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협상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청구서를 보내겠다는 등 집권 1기보다 훨씬 극단적인 ‘미국 우선주의’를 예고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레이건 독트린이 무너진 자리를 트럼프 독트린이 차지했다”고 논평했다.
김흥록 특파원의 뉴욕 포커스
중금리 대출 문 닫는 저축은행…저신용자는 '불법사금융 늪'으로[파이낸스포커스]
제2금융
2024.03.04 15:57:46
2금융권인 저축은행이 조달비용 부담과 연체율 관리로 저신용자 대출을 급격히 줄이고 있다. 저신용자들은 제도권 대출이 막히면서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거나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있는 처지다. 4일 금융 업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저축은행 업계의 민간 중금리대출 금리 상한은 17.5%로 법정 최고금리 20%와 격차가 2.5%포인트에 불과하다. 중금리대출은 신용 하위 50%인 차주에게 일정 수준 이하의 금리로 공급하는 신용대출이다. 중금리대출 상한이 법정 최고금리에 육박했지만 저축은행들은 좀처럼 대출을 늘리지 못하고 있다. 저축은행중앙회 소비자포털에 따르면 저축은행의 민간 중금리대출 규모는 2022년 10조 7842억 원에서 지난해 6조 1598억 원으로 42.9%(4조 6244억 원)나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4분기 기준 신용 점수 500점 이하인 저신용자들에게 중금리대출을 내준 곳은 세람·웰컴·참저축은행 단 3곳뿐이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대출금리에는 조달금리 상승분뿐만 아니라 연체율이나 차주의 신용 평점 등 리스크 요인들이 반영된다”며 “법정 최고금리 제한으로 이를 모두 반영할 수 없다 보니 신규 대출 취급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돈줄이 막힌 저신용 차주들은 불법 사금융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금융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부 업체들조차 이자 상한선에 막혀 사실상 리테일 영업을 중단한 곳이 대부분”이라며 “당장 돈이 필요하지만 대출받을 곳이 없는 사람들은 결국 신용불량자로 떨어지거나 불법 사금융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저신용자 보호를 위해 20%로 묶어놓은 법정 최고금리 완화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출금리가 다소 높아지더라고 제도권 내에서 대출이 실행될 수 있도록 해야 금융소비자 보호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서민을 위한다며 법정 최고금리를 25%에서 20%로 낮췄지만 오히려 저신용자들을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내모는 독이 됐다”며 “대출금리는 시장경제에 맡겨서 자율로 정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광수의 中心잡기
中 무차별 공습은 이미 시작됐다 [김광수 특파원의 中心잡기]
경제·마켓
2024.02.25 21:47:11
연초부터 중국 기업들의 한국 공습이 가속화하는 양상이다. 중국 시장에서 성장 가도를 달려온 중국 기업들이 내수 부진을 탈피하기 위해 해외 공략을 가속화한 데 따른 것이다. 이미 자국 시장에서 짧게는 몇 년, 길게는 10년 이상 실력을 다지면서 상당한 내공도 쌓았다. 가격 경쟁력을 핵심 무기로 내세우고는 있지만 제품의 질이나 서비스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크게 두려워할 수준은 아니라며 애써 외면하고 있다. 한술 더 떠 중국산의 민낯이 금세 드러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자동차 시장에서는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로 떠오른 비야디(BYD)의 공세가 만만치 않다. 국내 진출을 위한 사전 단계로 인증 절차를 밟고 있다고 한다. 승인을 받고 나면 판매망을 본격 가동할 것이다. 비야디는 이미 한국에서 전기버스·상용차 판매로 입지를 다졌다. 아직까지 시장점유율은 높지 않지만 서서히 영역을 확대하는 만큼 점유율 역시 머지않아 오를 것이다. 버스나 트럭 등의 차량은 중국산에 대한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지만 이른바 하차감을 중시하는 승용차 분야에서는 중국산이 쉽사리 자리 잡기 힘들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 역시 속단할 일이 아니다. 비야디 승용차가 진출하면 어떤 성적표를 받아들지 예단할 수 없지만 일각에서는 ‘중국산’이라는 꼬리표에 대한 거부감이 옅어지는 순간 폭발력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스웨덴 볼보를 중국 지리자동차가 인수했을 때만 해도 “중국산이 된 볼보를 앞으로 누가 사냐”는 비아냥이 거셌다. 중국산인 볼보는 현재 한국에서 몇 달씩 출고를 대기해야 한다. 볼보의 전기차 브랜드인 폴스타도 지난해 국내에서 출시 직후 완판됐다. 구매자 대부분은 볼보나 폴스타가 중국 지리자동차에 속해 있는 중국차로 인식하지 않는다. 브랜드도 중요하지만 자동차라는 제품 자체에 만족하니까 구매할 뿐이다. 테슬라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 상하이에서 생산된 중국산 테슬라가 국내에 판매됐을 때도 싼 가격에 국내 고객들은 앞다퉈 구매에 나섰다. 중국에서 만든 거부감보다는 테슬라라는 브랜드를 믿은 결과다. 비야디라는 제품이 국내에서 자리 잡기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제품에 대한 만족도가 쌓이게 된다면 중국산 자동차에 대한 불신이 생각보다 쉽게 빨리 사라질 수도 있다. 알리익스프레스·테무의 공습도 쉽게 볼 일이 아니다. 국내 유통가에서는 위기감을 느끼면서도 애써 태연한 척하고 있다. ‘짝퉁 제품을 판매하는 전략으로는 한국에서 성공하지 못한다’ ‘호기심으로 한두 번씩 구매하고 나면 더 이상 이용하지 않을 것이다’류의 반응 일색이다. 지금과 같은 무료 배송을 유지하면 눈덩이처럼 커지는 투자를 감당할 수 없다거나 결국은 가격이 올라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도 흘러나온다. 이런 예측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다만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경쟁력을 키우는 일이다.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의 경쟁력은 중국에서 값싼 제품을 만들어서 중간 유통 과정을 최대한 생략해 판매 단가를 낮춘 제품으로 승부하는 데 있다. 국내 기업들은 공급망을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함으로써 단가를 획기적으로 낮춰야 한다. 중국산이 짝퉁으로 대응한다면 우리는 브랜드 가치를 높여 맞서야 한다. 고관여 제품일수록 고객들이 가격보다는 브랜드 만족도가 높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고객 데이터를 적극 분석해 개인별 니즈에 맞는 상품을 추천하는 등 맞춤형 서비스도 지금보다 세분화돼야 한다. 상대는 우리보다 28배나 인구가 많은 중국인을 대상으로 엄청난 데이터와 노하우를 쌓은 대기업이다. 중국 기업의 한국 공략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산업별·분야별로 물밀듯 밀려올 것이다. 철저한 준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패할 뿐이다. 대응 전략을 짜기 위해 지금부터 기업·협회·정부가 나서 머리를 맞대야 한다. 공들여 지켜온 시장을 해외 기업의 무차별 공습에 그냥 내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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