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대영
권대영 한식인문학자
연재 중
한식인문학
3개의 칼럼 #문화
  • 한식인문학
    몇년 전 한 지상파 방송이 당차게 기획한 드라마가 조선시대 우리 음식을 잘못 이해하고 중국음식이 마치 우리 음식의 뿌리인 것처럼 표현했다가 호되게 비판을 받고 결국 그 드라마도 방영되지 못하는 사고가 있었다. 최근 지상파와 넷플릭스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도 자세히 보면 우리 음식을 왜곡하고 있는 부분이 많은데 버젓이 방영되고 있다. 드라마 작가들의 우리 음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잘못 알려진 부분을 과학적으로 검증하여 고쳐지지 않고 쉽게 음식에 기대어 흥미를 끌어가려는 풍토가 문제이다. 우리 음식의 뿌리나 본질에 있어서 비과학적인 사대주의적 발상을 못 버리고 거기에 기대어 너무나 쉽게 극을 전개하려는 사람들이 우리 음식에 대한 이해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대표적인 사대주의적 발상은 우리 음식은 중국이나 일본에서 들여와서 발전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우리 조상들이 만주지방과 한반도의 어려운 지리적, 농경학적 환경하에서 수백~수천 년 동안 갖은 노력과 좌절 속에 헤쳐나오고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 지혜가 쌓여 탄생되고 발전해 온 음식이다. 이러한 지리적, 농경생물학적, 민족적 특징을 먼저 이해하지 못하고 쉽게 중국 문헌에 기대어 우리 음식을 이해하여 왔기 때문에 많은 오류가 있는 것이다. 이런 한자 등 사대주의적 우월성이 우리 조상들의 전통적, 문화적 고유성을 파괴하고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고추가 지구상에서 퍼진 것은 인간보다 수천 년, 수만 년 먼저 나타난 새(鳥流)에 수백만 년 전에 이미 이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10~20만 년밖에 살지 않은 인간(Homo sapiens)에 의해서만 수백년 전에 퍼지고 진화되었다고 단정하여 결국 초기에는 우리 김치나 고추장이 없었고 이들의 역사를 100여년으로 축소 왜곡한 것이다. 또한 한자가 고작 수천 년도 안된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말이 다른 우리 민족이 수만 년 전부터 따로 먹어오고 발전시킨 우리 음식을 대변할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농경학적으로 보면 우리 나라와 중국의 지리적 특성이 무척 다르다. 영토의 크기, 평야의 크기 등 거의 모든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중국에 열악하다. 물론 지금의 중국영토가 고대 중국의 영토가 다는 아니지만 춘추전국시대, 삼국시대를 걸쳐 당송 시대의 영토 크기만 하더라도 우리 민족의 뿌리가 되는 만주를 걸친 한반도 영토를 다 합치더라도 비교가 안되고 농경자원도 풍부하다. 설탕만 우리나라에 있었어도 우리 조상들이 그렇게 음식을 맛있게 하는 데 갖은 고생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설탕은 중국이나 우리나라에 없었다. 만일 설탕이 우리나라에 풍부하게 있었다면 오늘날과 같이 우리 음식이 그렇게 다양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농경학적 차이는 기름(脂肪) 자원에 있다. 중국은 돼지기름, 생선기름과 같은 동물성 기름이 풍부했다. 그들은 돼지를 잡을 때도 기름을 먼저 쩠다. 기름을 이용하여 고열에서 음식을 만들고 튀기면 우선 음식이 맛이 있어지고 나중에도 먹을 수 있는 저장성도 확보하였다. 기름은 쉽게 300-400℃까지 쉽게 올릴 수 있다. 이 온도에서 요리하면 많은 향이나 구수한 냄새가 나기 때문에 더 이상 다른 맛을 낼 필요가 없다. 그래서 중국은 재료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요리 방법의 다양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중국처럼 기름이 풍부하지 않았다. 그렇다보니 맛을 내기 위하여 다양한 양념으로 맛을 내 식사를 하였다.. 참기름이나 들기름이 있어도 이들을 이용하여 음식을 튀길 생각은 해보지도 못하고 오로지 향이나 맛을 낼 때 조금씩 얹혀 먹는 정도였다. 우리 조상들은 기름 없이 물을 이용하여 아무리 불을 때도 100℃ 이상으로 온도를 올릴 수 없었다. 물은 100℃에서 끓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100℃이하에서 손으로 맛을 낼 수 있었다. 가장 쉽게 중국요리와 우리 요리를 아는 방법은 100℃ 이상에서 맛을 내면 중국음식, 100℃ 이하에서 맛을 내면 우리음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다만 지금 중국의 동북3성에 기반을 둔 청나라 요리를 이 기준으로 들이대는 데는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다. 그래서 우리 요리는 ‘손맛’이고 중국요리는 ‘불맛’이다.
    2025.09.25 17:34:04
    양념의 한식, 불맛의 중식
  • 한식인문학
    몇년 전 한 공중파 방송에서 우리 음식 100년사를 다룬 ‘한식연대기’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그 때 음식 인문학자라고 알려진 교수 J씨가 우리 음식의 발달사를 논하면서 대부분 그 뿌리가 100여 년밖에 안되는 것 같이 이야기를 전개해 크게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된 과학적인 검증 없이 그런 내용을 내보낸 방송국의 무책임에도 혀를 내둘렀다. 당시 프로그램에서 우리 음식의 시장화와 산업화 과정과 뿌리와 역사를 분별해 방송하였으면 좋았을 것이다. 우리 음식의 100년사를 다루다보니 스스로 논리적인 맹점에 우리 음식의 뿌리를 대부분 일본에 두는 모순이 발생한 것이다. 우리 음식의 시장화와 산업화의 시작을 대체로 지난 100여 년의 역사로 접근하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우리 음식의 역사가 100여 년밖에 안되었다고 주장하는 논리는 매우 잘못됐다. 마치 떢볶이의 역사가 1960년대 신당동 마복림할머니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오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당시 프로그램에서 우리 간장의 역사조차 일본의 간장에 뿌리를 둔 것 같이 이야기를 전개하는 모순이 발생한 것이다. 간장의 경우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듬뿍 담긴 오직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음식이다. 간장의 원료인 콩은 만주와 한반도가 원산지인데 우리 민족에게 준 자연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일본의 음식 발달 역사를 보면 다른 나라의 음식을 개량하여 시장화하고 산업화하는 역사로 200여 년밖에 안됐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인들이 왜 키가 크지 않고 한국인들에 비해 허약한지 연구했다. 또한 서양 사람들은 배를 오래 타더라도 죽는 사람이 많이 나오지 않는데 왜 일본인들은 많이 죽는지에 대해서도 조사했다. 그 결과 식생활의 차이가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라는 결론을 얻고 한국 음식을 포함해 다른 나라 음식에 대해 대대적으로 연구했다. 이를 통해 수많은 식품들을 개발해 자국민의 단백질 부족은 돈가스(커트렛트)로, 비타민 C와 D의 부족은 카레, 나또(청국장), 소유(醬油, 간장) 등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자연스레 많은 식품들을 시장화하고 산업화할 수 있었다. 사실 메주, 청국장, 김치의 발효 과정과 관여 미생물, 기본 메커니즘 등 많은 연구가 일본 정부의 지원으로 일본인들이 연구한 것이다. 김치의 미생물 균총, 발효 과정도 일본인 연구자들이 처음 연구했다. 간장도 마찬가지다. 수백, 수천 년 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먹어왔던 간장, 청국장, 된장을 일본인들이 과학적으로 연구해 발효균주, 발효기작 등의 발효 과정을 발표하였다. 일본 연구자들은 과학적 데이터에 근거하여 음식의 개량과 개발을 위한 연구를 시작해 오늘날의 일본 음식을 만들어냈다. 여러 발효 미생물 중 가장 효과적인 미생물을 찾아서 발효과정을 개량해 개량메주와 양조간장을 만들었다. 또한 여러 분해 효소를 연구하고 그 중 가장 좋은 맛을 내는 효소를 찾아내어 콩단백질에 직접 반응시켜 펩타이드를 만든 효소분해간장을 개발했다. 어떤 일본 과학자는 발효라는 복합공정을 거치지 않고 염산과 같은 강산을 이용하여 콩단백질을 산분해하여 단백질 분해물을 쉽고 싸고 얻어 산분해간장이라는 이름으로 팔았다. 또한 일본 과학자들은 서로 혼합간장을 만들면서 자기들에게 필요한 맛을 내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해서 간장의 대명사와 같은 기꼬만과 같은 세계적인 일본 음식기업이 나오게 됐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음식의 시장화 역사는 장터와 주막으로 대변되는 조선시대 이전으로 보아야 한다. 다만 가게와 음식점으로 대변되는 시장화의 역사는 조선 후기~해방 이후까지 100~150년 간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본격적인 우리 음식의 시장화 역사는 한국전쟁 이후 국민들의 삶의 투쟁 속에서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음식 시장화의 역사를 우리 식품 산업화의 역사로 바로 연결지어서는 곤란하다. 좀 더 분명하게 이야기하면 우리 음식 산업화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에 움트기 시작하여 해방 이후 일본의 기술과 공정, 시설을 들여와 시작한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간장을 예로 들면 해방 이후 우리 기업이 일본의 간장을 갖고 들어와 비슷하게 생산하여 팔기 시작하였다. 이는 깔끔한 우리 간장의 맛과는 분명히 다른 맛의 간장이다. 국민들은 이 맛의 간장을 또 다른 용도로 좋아하게 되고 이를 ‘왜간장’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왜간장이 우리 간장을 토대로 개발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시장에 먼저 나온 것이다. 그 결과 우리 간장은 왜간장과 구분할 필요성이 생기며 우리 간장은 ‘조선간장’으로 통용되게 됐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조선간장을 ‘왜간장과 동격의 간장으로 잘못 인삭하게 됐다. 이렇게 잘못된 간장 이름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마치 부모가 자녀와 동격으로 인식되어 버린 셈이다. 이제라도 모든 수식어를 다 떼어버리고 간장은 ‘간장’으로 된장은 ‘된장’으로 메주는 ‘메주’로, 청국장은 ‘청국장’으로 바로 불러야 한다. 우리가 한식김치, 한식인삼, 한식청국장, 한식두부, 한식고추장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만약 이런 말을 쓴다면 마치 김치, 청국장, 두부, 고추장이 다른 나라에서 들어와 한국화되었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게 될 것이다. 결국 일본 음식 200년사는 그들에게는 의미가 매우 클 것이나 한국 음식 100년사는 우리 음식 역사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다. 한국과 일본의 음식 역사의 뿌리를 거슬러올라가면 이를 확연히 알 수 있다.
    2025.09.12 17:36:40
    '조선간장' '왜간장'의 진실
  • 한식인문학
    음식의 발달과정을 보려면 그 지역의 농경역사와 지리적 조건을 보아야 한다. 순대만 보더라도 우리나라 순대와 똑같은 순대가 서양에도 있으나 우리는 순대를 말려서 먹는 경우가 없는데 비해 서양은 순대를 국으로 먹는 경우가 없다. 정말로 세계 특히 유럽을 돌아보면 우리 순대와 비슷한 음식이 많이 있는 것을 보면 깜짝 놀란다. 그런데 섣불리 우리 순대의 뿌리가 서양에서 온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식품학자들이 있다. 음식의 역사는 그렇게 쉽게 이야기할 일이 아니다. 어느 나라 전통음식의 뿌리를 이야기할 때 기본은 그 민족의 뿌리와 처한 역사적 지리적 환경, 즉 농경학적 토대를 바탕으로 우선 이야기하여야 한다. 순대는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에 그 민족의 기호와 음식 철학에 맞게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서양에서는 대부분 순대는 건조한 형태로 존재하여 이를 다시 요리하여 접시 요리형태로 먹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농경, 밥상문화의 영향으로 바로 만들어서 말리지 않은 형태인 순대, 순대국으로 주로 먹는다. 어느 나라든 돼지를 잡으면 어떻게든 버리지 않고 모든 것을 다 맛있게 먹으려는 기본적인 철학은 같다. 그러나 왜 우리나라에서는 순대나 돼지고기를 말려 먹는 문화가 없고 서양에는 국과 같이 먹지 않고 말린 돼지고기 제품으로 먹는지 그 문화역사적 차이를 한번 생각해보고자 한다. 그 이유는 농경학적 환경의 차이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1970년대 모 재벌이 돼지를 대량으로 사육하기 이전에는 오늘날과 같이 돼지를 대량으로 사육하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농촌에서 집마다 헛간에 돼지우리를 만들어 한 두 마리 정도를 키웠다. 사료를 주어 키우기보다는 주로 사람들이 음식을 만들고 남은 부재료나 밥 먹고 남은 음식(짬밥, 꿀꿀이죽)을 먹여 키웠다. 심지어 어느 지역에서는 돼지가 사람의 똥을 받아먹고 자라게도 하였다. 이렇게 키운 돼지를 잔치나 상을 당할 때 잡거나 어느 정도 자라면 장에 내다팔았다.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나라는 필요에 따라 돼지를 잡았다. 이에 비해 스페인과 같은 서양에서는 일찍이 사료를 먹였기 때문에 1년 농사의 개념으로 돼지를 키웠다. 즉 봄에 돼지 새끼를 키우기 시작하여 눈이 오는 겨울이 되면 먹이가 없고 사료가 부족하면 돼지를 정기적으로 잡아야 했다. 일종의 추수의 개념이다. 그래서 스페인과 같은 나라는 11월 11일이 되면 성마틴날(St. Martin Day)이라 하여 일제히 돼지를 잡는 풍습(마탄자, matanza)이 생기고 한 번에 다 먹을 수 없으니 어떻게든 나중에 먹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더군다나 겨울이니까 고기가 쉽게 상하지 않아서 잘 말리면 맛있는 음식이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유럽에는 돼지 뒷다리를 건조하며 발효시킨 하몽(jamon), 순대와 비슷한 모르시야(morcilla), 보티파라(botifarra), 소시지, 삼겹살 말린 것 같은 베이컨 것들이 탄생한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초상집이나 잔치집에서 항상 동네 이웃 사람들과 같이 나누어 먹었기 때문에 돼지를 잡아 말려 보관할 필요성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순대 먹는 풍습이 유럽, 몽골, 가깝게는 중국과 다른 것이다. 돼지를 잡으면 순대로 만들어 먹는 발상은 다른 어느 나라에서나 같고 기술이 어디서 배워야만 할 정도로 대단한 것도 아니다. 각 나라별, 각 지역별 농경과 지리적 환경, 문화적 차이가 어려움을 이겨내는 그들 나름대로의 지혜를 발견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순대 형태의 기록을 담은 중국 문헌인 시경(時經)에만 매달려서 순대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탄생의 진실을 놓칠 수 있다. 세계에는 매우 다양한 순대가 존재하는 만큼 그 나라 고유의 지리적 환경, 역사, 식문화가 다른 것이다. 이것이 우리나라 안에서도 각 지역별로 순대가 각각 따로 있고 만드는 법도 조금씩 다른 이유이다.
    2025.09.08 14:08:32
    동·서양 순대로 본 음식 문화
1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