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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세편살] ‘새로운 관계’가 뜬다, 21세기 ‘살롱문화’ 르네상스

혼밥, 혼술, 관태기(관계+권태기를 합성한 신조어)…

복잡한 인간관계에 지친 현대인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입니다. 집단보다는 개인의 행복에 초점을 맞추고 ‘소확행’을 외치며 현재를 살아가려는 20·30세대의 흐름 속에 새로운 문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바로 ‘살롱 문화’입니다.

살롱은 원래 17~18세기 프랑스에서 성행한 귀족과 문인들의 정기적인 사교모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인문학에 대한 토론이나 시 낭송 등을 하며 문인·저술가·현학자·정치인·예술가 등의 사람들에게 ‘지적 대화’와 ‘사교’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장소로 인기를 끌었죠. 이러한 ‘살롱문화’가 최근 국내 곳곳에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재발견되고 있습니다. 수백 년 전 살롱의 모습과는 조금 달리, 지적 추구를 위한 모임에 국한됐던 이미지에서 벗어나 ‘취향’이라는 넓은 카테고리를 담고 있습니다. 인문학 토론, 피아노 연주, 집들이, 심지어 운동까지 그 종류와 형태도 다양합니다. 수 세기를 뛰어넘어 다시 부활하고 있는 살롱문화. 21세기 대한민국 청춘들에게 ‘살롱문화’의 새 바람이 불고 있는 배경과 이유는 무엇일까요?

소셜살롱 ‘문토’에서는 다양한 주제·취향을 기반으로 한 시즌제 멤버십을 운영한다. 사진은 다양한 술을 즐기고, 내 입맛에 맞는 술을 찾아가며 사람들과 함께 삶과 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생각하는 술꾼’이라는 모임 활동 사진. /문토 홈페이지






◇독서·편지쓰기·운동…얕지만 충분한 관계와 함께하는 ‘색다른 경험’

서울 합정동에 위치한 공간 ‘취향관’은 유료 회원제 기반 사교 클럽을 표방합니다. ‘취향관’은 1980년에 지어진 2층 양옥집을 개조하여 도심 속 숨겨진 ‘창작의 아지트’로써 많은 이들의 애정을 받고 있습니다. 3개월, 6개월, 1년 단위로 책정된 참가비를 내면 취향관의 ‘멤버십’을 부여받습니다. 멤버들은 정해진 기간 동안 자유롭게 이곳을 드나들며 ‘영화 비평’, ‘지나간 시간에 보내는 편지 쓰기’, ‘시를 읽고 연상되는 사진 찍기’ 등 다양한 활동을 즐깁니다.

‘취향관’은 카페앤바(CAFE&BAR), 거실, 작업실, 미디어실, 그리고 마당 등 다채롭게 구성되어 있는 공간이다. 멤버들은 자유롭게 그들이 원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경험을 공유한다. 사진은 각각 ‘콜라주 포스터 만들기’(좌)와 ‘생략하며 그리기’(우) 프로그램 활동 사진/취향관 인스타그램


특이한 것은 이 공간에 머무는 사람들은 서로의 이름이나 나이, 직업 등을 전혀 공개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기존에 본인에게 주어졌던 호칭이나 역할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그들 앞에 주어진 이야기 주제에만 집중하며 대화를 풀어나가는 것이 주목적입니다. 사회의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에서 벗어나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할 수 있는 흔치 않은 대화의 장인 셈이죠.

소셜살롱 ‘취향관’의 7월 스케쥴러 일부. 하루에 평균 1~2개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취향관’ 홈페이지 캡쳐


‘문토’ 또한 ‘취향공동체’를 지향하는 대표적 소셜살롱입니다. 문토의 이미리 대표가 SNS에 ‘퇴근 후 함께 연극 워크숍을 해보자’는 작은 제안을 했던 것을 시작으로 현재는 입소문을 타고 수많은 유료 회원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수강료는 25만 원, 준비물은 ‘편안한 마음’이라고 합니다. 문토에 존재하는 모임들이 다루는 주제는 요리·미식, 경제·경영, 음악, 글쓰기, 드링킹(Drinking) 등 광범위합니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딴짓’을 하다 보면, 더 깊게 탐구하게 되는 경우도 많고 한 권의 문집을 발행하는 등 구체적인 성과를 낳는 경우도 있습니다.

함께 요리해 먹으며 대화하는 문토의 ‘생각하는 주방’(좌)과 상상하며 글쓰는 ‘사기꾼의 글짓기’(우) 프로그램


살롱 문화를 언급할 때 ‘트레바리’라는 독서 모임 기반 커뮤니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최근 가장 ‘핫한’ 살롱이라고 할 수 있죠. 멤버들이 한 권의 책을 읽고, 한 달에 한 번씩 ‘아지트’라는 이름의 토론 공간에 모여 책에 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주고받는 시스템으로 운영됩니다. 4개월 시즌제로 운영되며 회비는 최소 19만원부터 시작합니다. 웬만한 토익 학원 수강료 수준의 값이지만, 그럼에도 ‘트레바리’는 창업 3년 만에 유료 회원 5,500명을 돌파하며 그 규모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살롱문화’가 얼마나 큰 반응을 끌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죠. ‘독후감 제출을 지각하거나 아예 내지 않으면 클럽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엄격한 규정도 있습니다. 오히려 멤버들은 강한 책임감을 가지고, 시즌마다 재등록하는 ‘골수팬’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트레바리 활동 모습. /트레바리 인스타그램


트레바리 멤버들은 ‘아지트’라 불리는 공간에 모여 책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한다./트레바리 인스타그램




◇운동도 ‘러닝크루’, ‘라이딩크루’ 등 일시적인 모임으로

인스타그램의 ‘인증문화’ 중 대표적인 것이 ‘운동 인증샷’인데요. 사람들은 달리기, 헬스 등 자신이 그날 한 운동 과정이나 성과를 본인의 SNS에 올립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최근 ‘크루(crew)’ 결성을 통해 일시적으로 모임을 형성, 함께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점입니다.



/인스타그램 캡쳐


그중에서도 ‘러닝 크루(Running crew)’의 활동은 가장 활발합니다. 인스타그램에 ‘#러닝크루’를 검색하자 약 7만3,000개의 관련 포스팅이 나타납니다. 러닝크루들은 보통 신청을 통해 참가자들을 모집한 후 1~3개월의 활동 주기를 가지고 활동합니다. 장기적 모임이 아닐 뿐만 아니라 원하는 사람은 일회성으로 하루만 참여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진입 장벽이 높지 않고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특징 때문에 몇 년째 꾸준히 활동하는 멤버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밖에 ‘요가크루’, ‘피트니스크루’ 등 다양한 운동으로 확대되며 젊은이들이 운동크루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버핏서울’은 이 같은 20·30 직장인들을 겨냥한 온·오프라인 운동 플랫폼 스타트업입니다. 운동 목적, 거주 지역 등 본인이 원하는 운동 ‘조건’을 설정하면 그에 따라 조가 편성되고, 함께 모인 이들이 주 1~2회 총 6주간 함께 운동하게 되는 시스템입니다. ‘버핏서울’은 지난달 카카오벤처스와 컴퍼니케이파트너스로부터 무려 15억 원의 투자를 유치해 화제가 됐죠. 2017년 출범 이후 현재 벌써 5,000여 명의 유료 회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대기업도 ‘살롱 문화’를 잠재력 있는 수익 모델로 주목하고 있습니다. ‘아디다스 러너스 서울’은 아디다스가 2017년 6월부터 운영하고 있는 글로벌 러닝 커뮤니티 입니다. 해당 센터에는 러너들을 위해 단순히 샤워실과 라커룸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러닝 전문가를 두어 러너의 정신, 러닝 방법 등을 코치하고 다양한 러닝 프로그램들을 운영합니다. 러닝에 빠진 사람들의 ‘아지트’와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죠. 이 ‘아디다스 러너스 서울’은 1년 만에 가입자가 9,000만 명을 돌파하여 엄청난 반응을 얻었습니다. 피트니스 센터나 전문 학원과는 달리 러너들이 모여 쉬고 훈련하고 교류하는 ‘커뮤니티’의 성격을 가짐으로써 일종의 ‘살롱 문화’를 모방한 덕입니다.

아크로요가 클래스에 참여하고 있는 버핏서울 회원들/버핏서울 인스타그램


평일 클래스 수업 현장/버핏서울 인스타그램




◇20·30세대에서 ‘살롱문화’가 다시 번지는 이유

20·30세대가 살롱문화에 다시 빠지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유민영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자 현재 에이케이스 대표는 한 언론사 기고를 통해 ‘느슨한 네트워크는 힘이 세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더불어 ‘특수한 경험의 축적이 새로운 분류 기준이다’, ‘특별한 커뮤니티가 자산이다’라고 이야기하며 실제로 독서 기반 모임인 ‘트레바리’를 언급하기도 했죠. 한때 모바일, SNS의 발달이 초래한 얕고 가벼운 네트워크 형성이 역기능으로 비판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유 대표의 말처럼 오히려 느슨하고 유기적인 새로운 트렌드로 확실히 자리 잡고 또 사람들에게 환영받고 있습니다.

20·30세대는 ‘밀레니얼 세대’라고도 불립니다. 밀레니얼 세대란 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세대를 가리키는 말로, IT에 능하며 대학 진학률이 높은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세대’라는 불명예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을 관통하는 가치관과 성향이 살롱문화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해석됩니다. 타인보다는 개인적 삶이 더욱 중요해지고, 나에게 심리적 만족을 주는 ‘가심비’가 소비의 기준이 된 밀레니얼 세대에게 살롱은 그들의 ‘안성맞춤’ 안식처가 되지 않았을까요? ‘살롱문화’의 불씨가 앞으로도 쉽사리 꺼지지 않을 것이라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송윤지 인턴기자 yj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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