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한 공중파 방송에서 우리 음식 100년사를 다룬 ‘한식연대기’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그 때 음식 인문학자라고 알려진 교수 J씨가 우리 음식의 발달사를 논하면서 대부분 그 뿌리가 100여 년밖에 안되는 것 같이 이야기를 전개해 크게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된 과학적인 검증 없이 그런 내용을 내보낸 방송국의 무책임에도 혀를 내둘렀다.
당시 프로그램에서 우리 음식의 시장화와 산업화 과정과 뿌리와 역사를 분별해 방송하였으면 좋았을 것이다. 우리 음식의 100년사를 다루다보니 스스로 논리적인 맹점에 우리 음식의 뿌리를 대부분 일본에 두는 모순이 발생한 것이다. 우리 음식의 시장화와 산업화의 시작을 대체로 지난 100여 년의 역사로 접근하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우리 음식의 역사가 100여 년밖에 안되었다고 주장하는 논리는 매우 잘못됐다. 마치 떢볶이의 역사가 1960년대 신당동 마복림할머니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오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당시 프로그램에서 우리 간장의 역사조차 일본의 간장에 뿌리를 둔 것 같이 이야기를 전개하는 모순이 발생한 것이다. 간장의 경우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듬뿍 담긴 오직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음식이다. 간장의 원료인 콩은 만주와 한반도가 원산지인데 우리 민족에게 준 자연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일본의 음식 발달 역사를 보면 다른 나라의 음식을 개량하여 시장화하고 산업화하는 역사로 200여 년밖에 안됐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인들이 왜 키가 크지 않고 한국인들에 비해 허약한지 연구했다. 또한 서양 사람들은 배를 오래 타더라도 죽는 사람이 많이 나오지 않는데 왜 일본인들은 많이 죽는지에 대해서도 조사했다. 그 결과 식생활의 차이가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라는 결론을 얻고 한국 음식을 포함해 다른 나라 음식에 대해 대대적으로 연구했다. 이를 통해 수많은 식품들을 개발해 자국민의 단백질 부족은 돈가스(커트렛트)로, 비타민 C와 D의 부족은 카레, 나또(청국장), 소유(醬油, 간장) 등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자연스레 많은 식품들을 시장화하고 산업화할 수 있었다. 사실 메주, 청국장, 김치의 발효 과정과 관여 미생물, 기본 메커니즘 등 많은 연구가 일본 정부의 지원으로 일본인들이 연구한 것이다. 김치의 미생물 균총, 발효 과정도 일본인 연구자들이 처음 연구했다. 간장도 마찬가지다. 수백, 수천 년 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먹어왔던 간장, 청국장, 된장을 일본인들이 과학적으로 연구해 발효균주, 발효기작 등의 발효 과정을 발표하였다.
일본 연구자들은 과학적 데이터에 근거하여 음식의 개량과 개발을 위한 연구를 시작해 오늘날의 일본 음식을 만들어냈다. 여러 발효 미생물 중 가장 효과적인 미생물을 찾아서 발효과정을 개량해 개량메주와 양조간장을 만들었다. 또한 여러 분해 효소를 연구하고 그 중 가장 좋은 맛을 내는 효소를 찾아내어 콩단백질에 직접 반응시켜 펩타이드를 만든 효소분해간장을 개발했다. 어떤 일본 과학자는 발효라는 복합공정을 거치지 않고 염산과 같은 강산을 이용하여 콩단백질을 산분해하여 단백질 분해물을 쉽고 싸고 얻어 산분해간장이라는 이름으로 팔았다. 또한 일본 과학자들은 서로 혼합간장을 만들면서 자기들에게 필요한 맛을 내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해서 간장의 대명사와 같은 기꼬만과 같은 세계적인 일본 음식기업이 나오게 됐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음식의 시장화 역사는 장터와 주막으로 대변되는 조선시대 이전으로 보아야 한다. 다만 가게와 음식점으로 대변되는 시장화의 역사는 조선 후기~해방 이후까지 100~150년 간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본격적인 우리 음식의 시장화 역사는 한국전쟁 이후 국민들의 삶의 투쟁 속에서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음식 시장화의 역사를 우리 식품 산업화의 역사로 바로 연결지어서는 곤란하다. 좀 더 분명하게 이야기하면 우리 음식 산업화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에 움트기 시작하여 해방 이후 일본의 기술과 공정, 시설을 들여와 시작한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간장을 예로 들면 해방 이후 우리 기업이 일본의 간장을 갖고 들어와 비슷하게 생산하여 팔기 시작하였다. 이는 깔끔한 우리 간장의 맛과는 분명히 다른 맛의 간장이다. 국민들은 이 맛의 간장을 또 다른 용도로 좋아하게 되고 이를 ‘왜간장’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왜간장이 우리 간장을 토대로 개발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시장에 먼저 나온 것이다. 그 결과 우리 간장은 왜간장과 구분할 필요성이 생기며 우리 간장은 ‘조선간장’으로 통용되게 됐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조선간장을 ‘왜간장과 동격의 간장으로 잘못 인삭하게 됐다. 이렇게 잘못된 간장 이름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마치 부모가 자녀와 동격으로 인식되어 버린 셈이다.
이제라도 모든 수식어를 다 떼어버리고 간장은 ‘간장’으로 된장은 ‘된장’으로 메주는 ‘메주’로, 청국장은 ‘청국장’으로 바로 불러야 한다. 우리가 한식김치, 한식인삼, 한식청국장, 한식두부, 한식고추장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만약 이런 말을 쓴다면 마치 김치, 청국장, 두부, 고추장이 다른 나라에서 들어와 한국화되었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게 될 것이다. 결국 일본 음식 200년사는 그들에게는 의미가 매우 클 것이나 한국 음식 100년사는 우리 음식 역사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다. 한국과 일본의 음식 역사의 뿌리를 거슬러올라가면 이를 확연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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