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발달과정을 보려면 그 지역의 농경역사와 지리적 조건을 보아야 한다. 순대만 보더라도 우리나라 순대와 똑같은 순대가 서양에도 있으나 우리는 순대를 말려서 먹는 경우가 없는데 비해 서양은 순대를 국으로 먹는 경우가 없다. 정말로 세계 특히 유럽을 돌아보면 우리 순대와 비슷한 음식이 많이 있는 것을 보면 깜짝 놀란다. 그런데 섣불리 우리 순대의 뿌리가 서양에서 온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식품학자들이 있다. 음식의 역사는 그렇게 쉽게 이야기할 일이 아니다.
어느 나라 전통음식의 뿌리를 이야기할 때 기본은 그 민족의 뿌리와 처한 역사적 지리적 환경, 즉 농경학적 토대를 바탕으로 우선 이야기하여야 한다. 순대는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에 그 민족의 기호와 음식 철학에 맞게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서양에서는 대부분 순대는 건조한 형태로 존재하여 이를 다시 요리하여 접시 요리형태로 먹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농경, 밥상문화의 영향으로 바로 만들어서 말리지 않은 형태인 순대, 순대국으로 주로 먹는다.
어느 나라든 돼지를 잡으면 어떻게든 버리지 않고 모든 것을 다 맛있게 먹으려는 기본적인 철학은 같다. 그러나 왜 우리나라에서는 순대나 돼지고기를 말려 먹는 문화가 없고 서양에는 국과 같이 먹지 않고 말린 돼지고기 제품으로 먹는지 그 문화역사적 차이를 한번 생각해보고자 한다. 그 이유는 농경학적 환경의 차이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1970년대 모 재벌이 돼지를 대량으로 사육하기 이전에는 오늘날과 같이 돼지를 대량으로 사육하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농촌에서 집마다 헛간에 돼지우리를 만들어 한 두 마리 정도를 키웠다. 사료를 주어 키우기보다는 주로 사람들이 음식을 만들고 남은 부재료나 밥 먹고 남은 음식(짬밥, 꿀꿀이죽)을 먹여 키웠다. 심지어 어느 지역에서는 돼지가 사람의 똥을 받아먹고 자라게도 하였다. 이렇게 키운 돼지를 잔치나 상을 당할 때 잡거나 어느 정도 자라면 장에 내다팔았다.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나라는 필요에 따라 돼지를 잡았다.
이에 비해 스페인과 같은 서양에서는 일찍이 사료를 먹였기 때문에 1년 농사의 개념으로 돼지를 키웠다. 즉 봄에 돼지 새끼를 키우기 시작하여 눈이 오는 겨울이 되면 먹이가 없고 사료가 부족하면 돼지를 정기적으로 잡아야 했다. 일종의 추수의 개념이다. 그래서 스페인과 같은 나라는 11월 11일이 되면 성마틴날(St. Martin Day)이라 하여 일제히 돼지를 잡는 풍습(마탄자, matanza)이 생기고 한 번에 다 먹을 수 없으니 어떻게든 나중에 먹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더군다나 겨울이니까 고기가 쉽게 상하지 않아서 잘 말리면 맛있는 음식이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유럽에는 돼지 뒷다리를 건조하며 발효시킨 하몽(jamon), 순대와 비슷한 모르시야(morcilla), 보티파라(botifarra), 소시지, 삼겹살 말린 것 같은 베이컨 것들이 탄생한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초상집이나 잔치집에서 항상 동네 이웃 사람들과 같이 나누어 먹었기 때문에 돼지를 잡아 말려 보관할 필요성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순대 먹는 풍습이 유럽, 몽골, 가깝게는 중국과 다른 것이다.
돼지를 잡으면 순대로 만들어 먹는 발상은 다른 어느 나라에서나 같고 기술이 어디서 배워야만 할 정도로 대단한 것도 아니다. 각 나라별, 각 지역별 농경과 지리적 환경, 문화적 차이가 어려움을 이겨내는 그들 나름대로의 지혜를 발견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순대 형태의 기록을 담은 중국 문헌인 시경(時經)에만 매달려서 순대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탄생의 진실을 놓칠 수 있다. 세계에는 매우 다양한 순대가 존재하는 만큼 그 나라 고유의 지리적 환경, 역사, 식문화가 다른 것이다. 이것이 우리나라 안에서도 각 지역별로 순대가 각각 따로 있고 만드는 법도 조금씩 다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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