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지우기'를 표방하며 출범한 박원순호가 전시 행보를 되풀이하는 역설에 빠지고 있다. 그럴 듯한 취지와 명분으로 포장돼 있지만 막상 뚜껑을 열면 알맹이가 없는 '쇼맨십 행정'에 대한 우려가 터져 나온다.
서울시는 11일부터 매주 수요일 청계광장에서 시민발언대 '할 말 있어요'를 운영한다고 2일 밝혔다. 사전에 발언을 신청한 시민이 자유롭게 시정에 관한 의견을 제시하도록 할 계획이다.
진두생 서울시의원은 "깜짝 이벤트로 시민의 감동을 얻으려는 것은 박 시장이 아직 시민운동가의 마인드를 못 버리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1,000만 시민을 이끄는 시장으로서 자기정립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박 시장이 지난해 벌여놓은 '보여주기 식' 정책은 수습 불가 상태로 올해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2011년 12월28일 서울시는 '청년층 좌절 금지 희망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취업난에 허덕이는 청년들을 위해 기획된 이 프로젝트는 총 156가지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나는야 내 인생의 설계사' '비진학은 도약이다' 등 희망찬 구호로만 가득한 프로그램은 20대의 막막한 실상과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청년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기 위한 '젊은 세대 현장 포럼' 같은 프로그램도 얼마나 실제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취업난을 타개할 수 있는 명확한 정책 제시 없이 한시적 강의나 일회성 토크 콘서트로만 도배된 행사가 남발되고 있는 것이다.
취업준비생 정모(23)씨는 "한 달 전 기대를 안고 참석한 청춘 콘서트에서 박 시장이 뻔한 말만 늘어놓아 답답했다"며 "화려한 네이밍만으로 불투명한 앞날 때문에 막막해 하는 젊은 층으로부터 호응을 끌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지난해 11월 말부터 서울시가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려는 취지로 진행하고 있는 '청책 워크숍'도 내용이 아닌 형식에만 치우친 채 구체적인 행동이 부족해 이해 관계자들의 원성을 샀다.
지난해 12월13일 노숙인 지원책 관련 청책 워크숍에 참여했던 시민단체는 서울역의 노숙인 강제 퇴거 조치를 철회해줄 것을 다른 어떤 문제보다 강력하게 요구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이 부분에 대해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서울역 광장에 마련된 응급대피소는 정원이 부족해 서울역 지하도에서만 현재 70명이 넘는 노숙인이 밤을 지새고 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집행위원장은 "강제 퇴거로 노숙인이 생존의 벼랑 끝으로 떠밀렸을 뿐 아니라 노숙인에 대한 일반인의 혐오감도 커졌다"며 "박 시장이 갖가지 쇼맨십으로 치장하고 있지만 실상은 대책 수립에 대한 원칙과 철학이 전무하다"고 비판했다.
박 시장은 또 지난해 12월24일 오전 '무박2일 투어'의 일환으로 재개발을 앞둔 백사마을을 방문했다. 민간 기업의 후원을 받아 생필품을 전달하고 박 시장이 직접 문풍지를 바르는 등 봉사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난방비 지원 등과 같은 추가적인 대책은 역시 검토조차 되지 않고 있다.
박 시장과 함께 백사마을을 찾았던 자원봉사자 장모(50)씨는 "얼음장 같은 방에서 주민들은 또 겨울을 보내야 한다"며 "시장의 봉사활동이 후속 대책 없이 일회성 행사로만 끝난다면 무의미한 일 아니냐"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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