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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투든 성악이든 기싸움이 필요하죠"

복서에서 성악가로… 테너 조용갑


"권투와 성악 모두 '기싸움'이 필요해요. 시합이든 공연이든 생계를 걸고 임해서 난 기싸움에 더욱 강하죠" 글러브를 끼고 있을 땐 펀치를 날렸고, 무대에 올라선 노래를 불렀다. 주어진 일마다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테너 조용갑(41ㆍ사진)의 '승부근성'은 복서에서 성악가라는 드라마틱한 삶의 변신을 가져왔다. 생활고로 기술을 배우기 위해 무작정 서울에 올라왔던 그는 서울기계기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2살에는 권투 프로무대에 뛰어들었으며 호떡 장사부터 세차까지 안 해 본 일이 없다. 성악을 시작한 것은 27살 때. 하는 일마다 최선을 다하는 그를 신뢰했던 한 목사님이 그의 목소리를 놓고 "조영남 같다"며 적극적으로 후원해준 덕에 무작정 이탈리아로 떠났고 그 뒤 14년이 흐른 지난 3일 처음으로 고국의 무대에 오르게 됐다. 공연을 앞두고 리허설이 한창인 예술의 전당에서 그를 만났다. 자리에 앉자마자 진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신다. 공연을 직전에 두고 커피를 마셔도 괜찮겠느냐는 질문에 "너무 많은 무대에 올라 긴장감이 떨어질 수도 있으니 오히려 커피를 마셔서 약간 흥분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오페라 '토스카'의 '카바라도시'역으로 3일과 5일 예술의 전당에서 국내 첫 공연을 하게 된 그는 유럽에선 신인이 아니다. 그가 유럽의 오페라 무대에 선 횟수는 300여 회. 국제 콩쿠르에 입상한 회수도 20여 회에 이른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어렸을 때부터 노래를 불렀던 '성악 신동'도 아니었다. 뭔가에 한번 빠지면 집요하게 파고든 '승부사' 근성이 그를 만들었다. "유럽에서 콩쿠르에 나갈 때는 힘든 곡만 골라서 무대에 올랐어요. 차별이 심한 유럽 무대에서 승부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남들은 콩쿠르가 이력을 쌓는 방법이었지만 그에겐 '생계 수단'이었다고 말했다. 콩쿠르에서 받은 상금으로 생활해야 했기에 더 적극적으로 임했다는 것. 수많은 직업을 거쳐 성악가로 고국을 밟은 그는 이제 자신의 삶을 위해 싸우는 일도 중요하지만 다른 이들도 돕고 싶다고 했다. "앞만 보고 달렸는데 이제 주위도 둘러봐야죠." 그는 "어렵고 힘든 사람을 도와주는 음악 학교를 만드는 게 꿈"이라며 조심스럽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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