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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김과장, 왜 운전대만 잡으면 헐크로 변하지?

익명성 보장되는 차 안에서는 스스럼없이 비이성적 행동 가능<br>도로위 인간심리 과학적 분석 눈길<br> ■ 트래픽 (톰 밴더빌트 지음, 김영사 펴냄)


'어디서 이렇게 많은 차들이 나온걸까.' 운전습관과 교통체계에는 인간의 비이성적인 본성이 숨겨져 있다. 인간 내면의 축소판이자 우리 사회의 청사진인 도로를 통해 인간 사회의 모순을 분석한다. 사진은 교통체증이 심각한 미국 어느 도시의 퇴근 시간을 포착했다.


인천에서 서울까지 자동차로 출퇴근하는 김모 과장. 아침마다 꽉 막힌 도로에서 더디기만 한 거북이 운전은 그를 지치게 한다. 빨리 가려고 차선을 옮겨봐도 옮긴 차선이 막히기 시작하고 진작 옆 차선이 속도를 내는 걸 보면 속이 터진다. 속도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현대사회에서 자동차는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 중 하나다. 하지만 '내가 차선만 옮기면 더 막힌다', '공용주차장에는 언제나 빈 공간이 없다', '백화점 세일 주간에는 주변 도로가 마비된다', '고속도로가 개통돼도 1달이 지나면 다시 교통체증이 발생한다' 등 자동차로 인한 스트레스도 덩달아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독보적인 것은 상대 운전자로 인한 것. 대부분 운전자들은 스스로를 '모범 운전자(best driver)'라고 생각하면서 상대 운전자를 폄하하기 쉽지만 운전대만 잡으면 잠자고 있던 내면의 '하이드'를 불러내 폭력적으로 변하는 사실을 본인만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심리ㆍ과학 전문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자동차로 인해 쌓이는 이 같은 공통된 짜증과 궁금증을 과학적이며, 문화인류학적으로 접근했다. 특히 저자는 도로 위에서 벌어지는 현상의 이면에 잠재된 인간의 비현실적인 측면에 포커스를 맞춘다. 저자는 이를 위해 평소에 인간의 행동과 운전할 때의 행태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관찰, 자동차를 탄 인간이 일으키는 사건과 현상들의 내면을 깊숙이 파고 들었다. 평소에는 엄숙한 지킬 박사가 차만 타면 하이드로 변하는 이유는 뭘까. 차에 앉아 있으면 다른 운전자와 의사 소통할 수 없다는 데 이유가 있다. 대화 불가능 상황에서 경적이나 수신호를 사용했다가는 오히려 오해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화가 나는데 화를 낼 대상이 없으니 분노는 점점 커지면서 책임은 다른 운전자로 돌리게 된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차 안에서는 정상적인 사회 규범을 벗어난 행동도 감행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때 누군가 차 앞으로 끼어들면 그 차를 화풀이 대상으로 여기고 '본 때를 보여주겠다'며 맹추격하게 된다는 것. 책은 '왜 내 차선은 늘 가장 늦게 빠질까', '왜 보행자일 때와 운전자일 때 마음가짐이 180도 다를까', '도로 위의 사람들은 죄다 어디서 나오는 걸까' 등 대도시에 사는 운전자라면 누구나 읽다가 공감할 수 있는 교통 현상을 담고 있다. 저자는 도로에서 벌어지는 '인생 극장'을 경제학으로 확대한다. 개미들이 주가가 다 오른 후 막차를 타는 것도 밀리던 도로에서 기다리다 지쳐 한꺼번에 옆 차선으로 옮기는 것과 같은 심리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책은 최근 경제학에서 인간의 비합리적인 심리 연구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는 '행동경제학'과 맥이 닿아있다. 도로를 인간의 비이성적인 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인간극장'이라고 보는 저자의 분석처럼 인간의 심리를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면 미래는 좀 더 확실하게 보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 본다. 2만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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