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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11월 30일] <1563> 시노프 해전


1853년 11월30일 오후1시 오스만튀르크 북부 시노프(Sinop)항. 11척으로 구성된 러시아 함대가 정박 중인 오스만 함대를 덮쳤다. 싸움은 불과 1시간 만에 끝났다. 러시아의 완벽한 승리. 단 한척도 잃지 않고 오스만해군의 12척 전투함 중 11척을 침몰시키고 해안포대까지 잠재웠다. 시노프해전은 소규모였지만 역사의 흐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러시아를 침략자로 규정하고 오스만제국을 도우려던 영국과 프랑스는 결과에 경악했다. 대형 전함을 보유한 러시아 함대 11척의 함포 수가 722문으로 중소형함으로 구성된 오스만 함대의 360문을 웃돌았다는 점을 감안해도 일방적인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압승의 비결은 작렬탄(炸裂彈). 대포에서 발사된 운동에너지만으로 선박을 부쉈던 쇠공과 달리 새로 개발된 작렬탄은 스스로 폭발해 선체를 파괴하고 파편으로 인명까지 해쳤다. 목제선박으로 작렬탄의 파괴력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한 영국은 전함에 쇠를 둘렀다. 시노프항을 탈출한 유일한 오스만 함정이 증기프리킷이었다는 점도 함선의 증기화를 자극해 세계는 증기로 움직이는 철제전함의 시대로 들어섰다. 범선시대의 마지막 전투였던 시노프해전은 보다 큰 전쟁으로 이어졌다. 러시아의 힘을 확인한 영국과 프랑스가 본격적으로 전쟁에 끼어든 결과가 크리미아전쟁. 100년 전쟁 이래 불구대천의 원수였던 영국과 프랑스의 동맹관계가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다. 크리미아전쟁에서 패배해 흑해를 통한 대양진출이 막힌 러시아는 부동항을 찾아 동쪽으로 눈을 돌렸다. 시베리아 개발과 블라디보스토크의 요새화도 이런 맥락에서다. 부질없는 상상이 떠오른다. 시노프해전이 없었다면? 러시아의 동방진출도, 조선을 둘러싼 구한말 열강의 대립도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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