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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타는 만남 A to Z] "희망의 날개 달아드려요" 특별한 '옷장' 이야기

퀴즈 하나. ‘결혼식·장례식·면접·상견례’, 이 네 가지 순간에 필요한 것은?

혹시 눈치챘는가? 정답은 바로 ‘정장’이다. 일생일대 중요한 순간을 위한 머스트 해브 아이템(Must have item)인 ‘정장’을 공유하는 곳이 있다. 청년들 사이에선 ‘보물창고’ 혹은 ‘취업 아지트’라고도 불리는 정장 공유 비영리 단체 ‘열린 옷장’이다. 취준생들이 선망하는 억대 연봉 광고 카피라이터를 과감하게 그만두고 청년들을 위한 정장대여 서비스를 시작한 열린 옷장 김소령 대표. ‘옷이 날개’라는 말처럼, 청년들에게 희망의 날개를 달아주고 싶어 특별한 옷장을 열게 됐다는 그를 서울경제썸이 만났다.







(왼쪽부터)열린옷장 김소령(45), 한만일(35) 공동대표


안녕하세요. 열린옷장 대표 김소령(45)입니다. 열린 옷장은 정장을 공유하는 비영리 단체예요. 옷장 속에 묵혀둔 정장을 저희에게 기증하면 잘 수선해서 정장이 꼭 필요한 구직 청년들, 어르신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대여해드리는 서비스를 하고 있어요.



정장 대여 서비스라는 아이디어는 사실 조별 발표에서 나온 거였어요. 2011년 11월 희망제작소에서 진행했었던 SDS(Social Designer School) 프로그램에서였죠. 사회적 기업이나 나눔 활동에 관심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강의도 듣고 의견을 나누는 수업이었어요.

당시 같이 수업을 들으면서 마지막 과제였던 조별발표에서 나왔던 아이디어가 바로 열린 옷장이었죠. 강의가 끝나고 나서 같은 팀원들끼리 “이 아이디어를 뒤로 하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게 너무 아쉽다”는 얘기를 했어요. 그래서 각자 회사 다니면서 주말마다 모여 동아리 모임처럼 차근차근 준비하게 됐죠.



이 일을 시작할 당시, 주변에서 많은 도움과 관심을 주셔서 다행히 재정적인 문제로 힘들진 않았어요. ‘이게 공유 경제구나’라는 것을 배우게 됐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었죠. 다만 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나 불안감이 심했어요. 초반엔 이용객이 3일에 1명꼴이었거든요.

주변에서 도와주는 것에 비해 저희는 도움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정작 힘이 돼주지 못한다는 부담감이 컸죠. 정장 기증자들이 늘어나는 만큼 책임감도 막중해지는데 서비스 이용자가 없다 보니 ‘사람들이 정말 이 서비스를 필요로 할까?’라는 원론적인 질문을 수도 없이 던졌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정장을 빌려간 분들에게서 점차 좋은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어요. ‘취업에 성공했다’며 감사 인사를 받게 된 거죠. 제 도움이 누군가의 인생에 기쁨이구나, 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부터 비로소 마음의 불안감들을 다 내려놨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마치 놀이처럼 푹 빠져서 해오고 있어요.



우선 열린 옷장은 100% 예약제입니다. ‘직접 방문, 온라인 대여’ 두 가지 방법이 있죠. 저희 홈페이지에서 방문 가능한 날짜, 정장 대여 목적 등을 기입하고 예약하면 됩니다. 만약 거리가 멀어 방문이 어려운 분들의 경우엔 택배로도 정장을 보내드리고 있어요. 특히 온라인 대여의 경우 방문 착용이 어려운 점을 감안해 고객 사이즈에 맞춰 추천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요. 그동안 열린 옷장을 이용한 5만여명의 고객 데이터를 활용해 만든 일종의 빅데이터 서비스죠.(웃음)



2년 전 열린 옷장에 정장을 기증해주셨던 인천공항 직원분의 사연이 생각나네요. 정장을 기증해주기 직전까지 그 분은 인천공항에서 VIP를 담당하는 매니저로서 늘 칼주름 잡힌 양복을 멋지게 차려입고 일하셨대요. 그러던 중 스노보드 사고로 하반신을 못 쓰게 돼 휠체어를 타게 되면서 못 입게 된 양복을 모두 저희한테 기증하셨어요.

‘나는 이제 이 옷을 입지 못하지만 나 대신 이 옷을 입고 훨훨 날아주세요’ 라는 편지와 함께 보내주셨어요. 기증자의 사연을 듣고 난 후 저희도 그 정장을 대여한 취업 준비생들에게 감사편지를 모아 전해드렸어요. 편지를 보고 용기를 얻은 기증자는 2년 동안의 칩거생활에서 벗어나 2014 인천 장애인 아시안 게임에서 성화 봉송 주자가 되시면서 다시 세상을 향해 뛸 용기를 얻으셨다고 하더라고요. 기증자와 대여자 모두에게 희망을 선물해준 것 같아 너무 뿌듯했어요.



저희 열린 옷장 슬로건은 ‘누구나 멋질 권리가 있다’예요. 누구나 정장을 입는 순간 가장 빛나는 자신을 만나게 되잖아요. 경제적인 지위를 막론하고요. 면접 혹은 경조사 등 중요한 이벤트에서 최고의 나로 변신할 멋진 권리는 남녀노소 누구나 갖는 거라고 생각해요. 또 한 발 더 나아가 정장을 입는 순간이 아닌 일상에서도 모두가 멋지고 당당하게 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담겨 있죠.



(왼쪽부터)열린 옷장 안재현씨, 김소령 공동 대표, 곽지현씨, 한만일 공동대표


열린 옷장엔 12명의 옷장직(열린 옷장 직원의 줄임말)이 있어요. 자원봉사해주시는 분들도 있고요. 저희가 주7일 대여 업무를 하기 때문에 주로 평일·주말 근무 나눠서 일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직급과 관계없이 모든 직원들이 똑같은 일을 하고 있어요. 대표들도 다림질하거나 택배 포장을 하고 직원들도 아이디어 회의를 주관하거나 회계 업무를 하고 있죠. 일하는 모든 직원들이 CEO처럼 모든 업무를 속속들이 다 알아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직원들 스스로가 CEO라는 생각으로 자발적이지만 자유롭게 일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열린옷장에 정장을 기증한 서울대 김난도 교수, 개그맨 김준현씨, 앞서 소개된 사연 주인공 이민우씨, 개그맨 김준호씨 편지 모습


열린 옷장의 모토는 ‘이야기가 있는 옷장’이에요.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면 도서카드에 기록에 남듯 열린 옷장에선 정장을 대여하면 히스토리 택(Tag)이 생기죠.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처럼 정장을 주고받는 기증자와 대여자들의 이야기를 정장에 담고 싶었어요.

근데 대여자가 많아지다 보니 정장에 일일이 택을 달기가 번거로워지더라고요. 옷이 상하게 되니까요. 그래서 고심한 방법이 바로 손편지예요. 기증자와 대여자가 서로에게 감사한 마음을 손편지에 꾹꾹 눌러 담아 전해주는 거죠. 만약 제가 지금 대여한 정장을 거쳐간 사람들이 모두 합격을 했다는 사실을 알면 마치 합격 부적을 입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더 자신감이 생길 수 있잖아요. 그래서 기증자분에겐 대여자분들의 손편지를 모아 정기적으로 편지를 전달해주고 있어요. 아날로그적 감성이 담겨 있어 그런지 기증자와 대여자 모두 만족감이 높은 것 같아요.



열린 옷장 오프라인 지점이 현재 서울 광진구에 한 곳밖에 없어요. 그래서 주로 서울시민들의 이용률이 높은 편이죠. 간혹 지방에서 오시는 분들도 계세요. 올해는 지방에 계신 분들도 편하게 이용하실 수 있게 온라인 서비스를 확대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저희 이용객들의 평균 연령은 27세예요. 중학생부터 70대 어르신들까지 다양한 편이지만 20·30대가 제일 많죠. 남녀 비율은 반반이에요. 일 평균 80명 정도 방문하는데 아무래도 대기업 면접이 많이 몰리는 4~5월, 10~11월에 가장 예약이 많죠. 이 시기엔 또 결혼식도 많잖아요. 지금까지 총 5만 명정도 열린 옷장을 이용했어요.

저희는 100% 정장 대여비로 수익을 얻고 있어요. 수익의 대부분은 정장을 보관하는 장소 임대료와 세탁 등의 인건비로 사용하고 있죠. 그래도 요즘엔 조금씩 여유가 생겨서 저희가 받은 만큼 베풀기 위해 여러 나눔 사업에 동참하고 있어요. 청년들 한끼 식권을 선물하는 ‘십시일밥’ 단체에 월 100만원씩 기부하고요. 취업준비생·다문화 가정·사회적 약자에게 무료로 증명사진을 찍어주는 ‘바라봄사진관’에 정기적으로 무료 정장 대여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죠.



저희만의 독특한 운영 방식 중 하나는 ‘깐깐한 기증과정’이에요. 열린 옷장이 기증받은 정장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영리단체이지만 영리(營利)하게 운영하고 있어요. 기증해주시는 마음은 늘 감사하지만 정말 좋은 정장들만 기증을 받아요. ‘만약 당신이 기증해줄 이 정장을 입고 실제 면접, 경조사에 가실 수 있나요?’라고 한 번 더 여쭤보는 거죠. 열린 옷장을 이용하는 분들의 니즈를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거죠. ‘재활용 가게’가 아니라 실전을 위한 ‘옷장’이니까요. 그래서 서비스 품질만큼은 영리기업 못지않게 깨끗하고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어요.



열린 옷장이 추구하는 목표는 기증과 공유의 선순환이에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을 넘어서서 여러 사람에게 옷이 거쳐가면서 서로의 인생도 공유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이 정장이 나비효과처럼 좋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길 희망하고요.

사실 열린 옷장은 시작부터 무료 장소 나눔, 무료 세탁 서비스 제공, 기업의 정장 기부 등 정말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지금의 자리를 유지하게 됐어요. 공유경제의 산실이죠. 저희 역시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나서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공유하고 적극적으로 도우면서 공유경제를 실현할 예정이에요.







열린옷장을 방문하는 이용객들 중에 정말 급하게 오시는 분들이 있어요. 갑자기 장례식이 생겼거나 면접이 잡힌 경우죠. 그럴 땐 불과 몇 시간을 앞두고 급하게 옷을 갖춰 입고 가시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이왕이면 온 김에 메이크업 서비스도 하고 증명사진 촬영 서비스도 할 수 있도록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점점 더 역량을 키우게 된다면 이 공간에서 일명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의 약자)를 한꺼번에 준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목표예요.





다양한 취미활동을 하는 것이 제 취미예요.(웃음) 이것저것 뭔가 배우는 걸 좋아하죠. 요즘엔 그림에 푹 빠져 있어요. 20여년간 펜들고 글을 써서 그런지 문장 한 줄보다 그림 한 장이 더 매력적으로 보여요. 쉬는 날엔 틈틈이 미술관도 다니고 직접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오랜시간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을 하는 광고 카피라이터로 지내다가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분야의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까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이었구나’라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어요. 그래서 밑바닥서부터 일일이 몸으로 부딪히며 배우고 있어요. 맥가이버처럼 다재다능한 멀티플레이어가 되는 것이 꿈이에요.

/정가람기자 garam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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