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억3,000만원’
또 깼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1913~1974)가 1972년 그린 붉은색과 푸른색 포인트의 전면점화가 낙찰가 85억 원을 넘어서면서 국내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다시 썼다. 김환기의 작품 ‘3-Ⅱ-72 #220’은 27일 홍콩 완차이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서울옥션(063170) 제25회 홍콩세일에서 약 85억3,000만원(6,200만홍콩달러)에 팔렸다.
5,600만홍콩달러(약 77억원)에 시작된 경매는 200만홍콩달러(약2억7,500만원)씩 호가를 높여 경합을 벌이다 6,200만홍콩달러에 최종 낙찰됐다. 18%인 수수료 15억여원을 포함하면 구매자는 100억6,000만원 이상을 지불하게 된다. 한국 미술의 100억원대 심리 장벽까지 넘긴 셈이다. 보기 드문 붉은색 계열 전면 점화의 희소성과 높은 완성도를 감안해 국내외 미술계에서는 낙찰가 100억원 돌파를 기대했지만 이는 잠시 미뤄지게 됐다.
이번 낙찰로 국내 미술시장 최고가 순위 1~6위까지를 김환기가 차지하게 됐다. 직전 최고가 기록은 지난해 4월 케이옥션 서울경매에서 낙찰된 푸른색 전면점화 ‘고요 5-IV-73 #310’로 65억5,000만원이었다. ‘김환기의 경쟁자는 김환기뿐’임을 입증하듯 기록은 13개월 만에 자체 경신으로 새로 쓰였다. ‘환기 열풍’은 3년 전 홍콩에서 시작됐다. 지난 2015년 10월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1971년작 푸른색 전면점화 ‘19-Ⅶ-71 #209’가 약 47억2,100만원에 낙찰되면서 당시 최고가 기록이었던 박수근의 ‘빨래터’를 제치며 1위 자기를 차지했다. 이후 계속된 자체 경신은 이번까지 여섯 번이나 이어졌다. 2016년 4월에는 1970년작 ‘무제’가 약 48억6,750만원에, 두 달 후인 6월에는 1972년작 ‘무제 27-Ⅶ-72 #228’이 54억원, 그 해 11월에는 노란색 전면 점화 ‘12-Ⅴ-70 #172’가 약 63억3,000만원에 낙찰됐다.
이는 김환기가 갖는 한국 현대미술사적 업적에 단색화 열풍이 가세하면서 시장 재평가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말에는 작가가 즐겨 그린 백자 항아리와 매화가 등장하는 1954년작 ‘항아리와 시’가 약 39억3,000만원에 낙찰되는 등 구상화 가격까지 견인하는 중이다. 단색화 열풍 이전에는 백자·산·달·매화 등의 이미지가 등장하는 김환기의 1950~60년대 작품에 대한 대중적 인기가 높았으나 역전된 셈이다. 이번 최고가 경신작품은 2015년 현대화랑에서 열린 ‘김환기의 선·면·점’에서 선보인 적 있는 작품으로 당시 전시 티켓용 이미지로 사용됐을 만큼 대표작으로 꼽힌다. 지난해 4월 삼성미술관 리움이 대규모 김환기 특별전을 기획했으나 직전에 무산돼 다소 위축되기도 했지만 최근 대구미술관에서 사상 최대규모의 김환기 회고전이 개막했다.
85억3,000만원에 낙찰된 ‘3-Ⅱ-72 #220’은 김환기 작품 세계가 절정에 이르렀다고 평가받는 미국 뉴욕시기의 전면점화로 화폭을 가득 채운 붉은 장밋빛 점이 특징적이다. 김환기는 ‘환기블루’라 불리는 푸른 색조가 대부분을 이루며 붉은 점화는 4점 정도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수필과 편지를 즐겨 쓰고 일기를 매일 쓰다시피한 김환기는 1972년 1월 30일 목재를 사서 100”×80”(254㎝×203㎝)의 틀을 만들었다고 적었다. 최고가 기록을 세운 작품의 시작이었다. 이어 2월1일 밤에 캔버스를 매고 다음날 그림 그릴 준비를 마쳤다.
‘2월3일. 진종일 비. 100”×80” 시작. #220 로즈 매더(Rose Matar).’
화가는 작업이 한창이던 2월5일에는 “제 나름대로 사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적었으며 6일에는 “#220 겨우 일단락. 앞으로 한 사흘 더 해야 끝날 것 같으나 완벽엔 못 갈 것 같다. 진종일 눈. 밤, 새로 1시인데도 계속. 눈이 쌓이면 나는 흥분한다”며 몰입했다. 작품은 2월 9일에 ‘완성’된 것으로 일기에 기록됐다. 그림 뒷면에 시작 날짜를 포함한 작품명 ‘3-Ⅱ-72 #220’과 ‘whanki New york’이라고 적혀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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