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힘을 다해 슛을 던졌어요. 다시는 못 뛸 경기잖아요. 진짜 들어갈 줄은 몰랐는데 얼떨떨했어요.”
한국 여자수구 공식경기 사상 첫 골을 뽑아낸 경다슬(18·강원체고)은 경기 후 이 같이 소감을 밝혔다. 한국 대표팀은 16일 광주 광산구 남부대 수구경기장에서 열린 2019 국제수영연맹(FINA)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여자수구 조별리그 B조 2차전에서 러시아에 1대30(0대7 0대9 0대8 1대6)으로 졌다. 지난 14일 사상 첫 공식경기였던 헝가리와의 1차전에서 0대64로 대패했던 한국은 2차전에서도 완패했다. 하지만 두 번째 경기 만에 대회 목표였던 ‘한 골’을 만들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러시아는 2016 리우올림픽과 2017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에서 모두 동메달을 차지한 강팀이다. 한국 대표팀은 지난 5월 결성돼 6월부터 연습을 시작했다. 큰 점수 차로 패했으나 1차전과 비교해 공수 모두 훨씬 나은 경기력을 보여줬다. 끈질긴 수비로 실점을 줄였고 1쿼터에만 6개의 슈팅을 시도해 헝가리전 4쿼터 전체 슈팅(3개)의 두 배를 기록했다. 이날 한국의 4쿼터 전체 슈팅 수는 30개였다.
1쿼터 윤하나, 2쿼터 경다슬의 슈팅이 골대를 맞아 득점하지 못하던 한국은 0대27로 뒤진 4쿼터 중반 마침내 고대하던 여자수구 공식경기 사상 첫 골을 뽑아냈다. 경기 종료 4분16초를 남기고 오른쪽 측면에서 공을 잡은 경다슬은 강력한 슈팅으로 러시아의 골망을 흔들었다. 관중석에서는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고 벤치에 앉아 있던 한국 선수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양 팀 통틀어 최다인 12개의 슛을 던진 경다슬은 수구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경다슬은 “역사적인 순간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도록 응원해주신 관중분들과 부모님께 감사드린다”며 “무엇보다 잘 가르쳐주신 코치님과 함께 고생한 선수들에게 정말 고맙다”며 감격스러워했다. 그는 “선수들끼리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며 “이번 골은 나 혼자 잘해서 나온 게 아니라 팀원 모두가 노력한 결과”라고 말했다. 경다슬은 “골을 넣고 관중석을 봤는데 엄마가 좋아서 막 뛰는 게 보였다”며 “그렇게 기뻐하시는 모습은 태어나서 처음 봤다”고 웃으며 말했다.
홍인기 대표팀 코치는 “대표팀 모두가 개인종목인 경영을 하던 선수들인데 처음 하는 단체종목임에도 똘똘 뭉쳐 잘하고 있다”며 “남은 경기에서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은 18일 캐나다를 상대로 조별리그 3차전을 치른다.
한국팀의 역사적인 득점에 외국 언론들도 관심을 보였다. 골을 넣은 경다슬은 경기를 마친 후 공동취재구역에서 러시아 방송과 인터뷰까지 진행했다. 러시아 기자는 경다솔의 나이와 수구 경력이 얼마나 되는지, 골을 넣었을 당시 기분이 어땠는지 등을 자세히 물었다. 러시아전 심판을 봤던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디온 윌리스는 인터뷰를 마친 경다슬을 찾아 축하 인사와 함께 국기 모양의 전통 구슬 공예품을 전했다. 감격한 경다슬은 고맙다며 심판과 포옹을 했다.
/박민영기자 my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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