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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_레터] 광복절 경축사를 보면 한일관계의 '현재'가 보인다

한일관계 악화 때마다 주목된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일본 향한 국정방향 밝히는 주된 가늠자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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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_레터] 광복절 경축사를 보면 한일관계의 '현재'가 보인다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오전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찾은 은광여고 학생들이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치고 있다./권욱기자

매년 8월 15일 발표되는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한일 관계의 현재와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입니다. 일본 식민통치의 역사를 기억하고 광복의 기쁨을 누리는 날에 발표되는 경축사인 만큼 내용의 상당 부분을 일본에 관한 언급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죠.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발표됐던 대통령의 경축사에는 어떤 메시지들이 담겨 있었을까요. 역대 대통령들의 발언을 통해 롤러코스터처럼 변해왔던 한일 관계에 대해서도 살펴보겠습니다.

■1945년~1994년 : 어둡기만 했던 한일 관계

광복을 맞이한 대한민국. 일본과의 관계는 회복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 정부는 일본을 멀리해야 할 상대로만 인식했고 관계 회복의 의지조차 없었습니다. 당연히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의미 있는 발언은 나타나지 않았죠.

광복으로부터 20년 후에야 우리 정부는 일본과 협정을 맺고 국교를 정상화시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른바 ‘한일협정’으로 불리는 조약을 일본 정부와 맺음으로써 경제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충당하고 한미일 공동 안보 체제를 형성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죠. 하지만 과거사 청산문제에 오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일본의 강제점령에 대한 사과와 반성, 약탈 문화재 반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강제징용자 인권문제 등 여러 사안을 덮어둠으로써 역사분쟁의 소지를 남겼죠.

■1995년~ 2000년 : 50년 만의 사과로 해빙 무드 시작되나 했지만

90년대 한일관계는 빛과 어둠이 공존했던 시기였습니다. 우선 한일어업협정 개정 과정에서 독도의 영유권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1994년 11월 유엔 해양법 협약의 발효로 바다 관할권이 12해리에서 200해리까지 확대돼 거리가 400해리가 채 되지 않은 한국과 일본은 바다 경계선을 별도로 정해야 했습니다. 이 때문에 1965년 맺었던 한일어업협정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필요했습니다. 일본은 근해의 작은 섬들을 직선으로 연결, 영해기선을 새롭게 설정하고 울릉도와 독도를 자신들의 수역에 포함시켰습니다. 당연히 한국은 반발했고 두 나라 간 갈등은 극에 달했죠.

하지만 광복절 즈음 일본의 화해 제스처로 인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1995년 8월 15일 당시 일본 총리였던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가 과거 한국에 대한 식민 정책에 대한 사죄의 뜻을 밝히며 한일 관계에 한 줄기 빛이 보이는 듯했죠. 무라야마 총리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줬다. 의심할 여지없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광복절 경축사를 준비했습니다.

“우리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 관계가 불행했던 과거의 그늘로부터 벗어나 미래지향적으로 발전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이 과거 역사를 올바로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합니다.”(김영삼 대통령 제50주년 광복절 경축사/1995년 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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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2005년: 우경화하는 일본, 다시 어두워진 한일관계

2001년 일본 정부가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주장을 담은 초·중·고교 교과서를 검정 통과시키며 한일 관계에는 다시 먹구름이 드리워졌습니다. 같은 해 발표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이런 일본의 행동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았죠.

“최근 일본 내 일부 세력에 의해 역사를 왜곡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한·일 관계에 다시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역사문제는 과거만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요, 미래의 문제입니다. 우리 민족에게 끼친 수많은 가해 사실을 잊거나 무시하려는 사람들과 어떻게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으며, 미래를 안심하고 같이 살아갈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우리 국민들이 갖는 심정인 것입니다.”(김대중 대통령 제56주년 광복절 경축사/2001년 8월 15일)

당시 일본 총리였던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도 한일 관계를 경색시킨 원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야스쿠니 신사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이 합사돼있는 장소입니다. 전범 국가인 일본의 총리가 전쟁을 일으킨 과거사에 대해 사죄하기는커녕 오히려 전쟁 가해자에 예를 올린 셈이죠. 우리나라와 중국 등 전쟁 피해 국가들은 일본의 이 같은 모욕적인 행동에 대해 공식적으로 항의도 했습니다. 하지만 고이즈미 전 총리는 2001년 8월 13일을 시작으로 2002년, 2003년 연속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했죠. 2001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축사에는 이에 대한 생각도 담겨 있죠.

“그러나 저는 또 한편으로 양식 있는 많은 일본 국민들이 역사 왜곡과 총리의 신사참배에 대해 우려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국민은 일본의 확실한 역사 인식의 토대 위에 양국관계가 올바르게 발전되어 나갈 것을 강력히 바라고 있습니다.”(김대중 대통령 제56주년 광복절 경축사/2001년 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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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전 총리의 집권 시기 일본의 우경화는 계속됐습니다. 그에 동조한 일본 우익 세력의 역사 왜곡 발언도 이어지며 한일 관계는 점점 나빠졌죠. 아소 다로(麻生 太郞)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은 2003년 5월 도쿄대에서 열린 강연에 자민당 정조회장의 신분으로 참석해 “일본의 창씨 개명 정책은 당시 조선인들이 원해서 시행되었으며, 식민지 지배를 통해 일본은 조선에 대학을 설립하고 의무교육도 실시했다”고 발언했습니다. 2003년과 2005년 8월 15일 발표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축사는 이런 일본 우익세력의 발언에 대한 우리 국민의 분노를 담았습니다.

“국민 여러분은 단지 오늘을 기념만 하고 넘어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쩌다가 나라를 잃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게 되었는지, 또다시 그러한 부끄러운 역사가 되풀이되지는 않을 것인지, 어떻게 해야 후손들에게 불행한 역사를 물려주지 않을 것인지, 노여움과 원망과 부끄러움이 뒤엉킨 가슴으로 새로운 다짐을 하고 계실 것입니다.”(노무현 대통령 제58주년 광복절 경축사 / 2003년 8월 15일)

“우리가 역사에서 물려받은 분열의 상처는 친일과 항일, 좌익과 우익, 그리고 독재시대의 억압과 저항의 과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 역사에 대한 올바른 정리와 청산이 이루어져야 합니다.”(노무현 대통령 제60주년 광복절 경축사 / 2005년 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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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 2012년: 잠깐의 봄, 또다시 겨울

2010년쯤 다시 한일 관계는 화해 무드로 돌아섰습니다. 간 나오토 당시 일본 총리가 식민 지배가 초래했던 손해와 고통에 대해 사죄의 뜻을 담은 담화를 발표했기 때문이죠. 무라야마, 고노 담화에 이어 일본의 총리가 과거 국가의 잘못을 인정한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2010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축사에는 이 같은 일본의 노력에 긍정적으로 화답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일관계는 아픈 역사를 딛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말해 왔습니다. 최근 일본 정부는 총리 담화를 통해 처음으로 한국민을 향해, 한국민의 뜻에 반한 식민지배를 반성하고 사죄하였습니다. 저는 이것을 일본의 진일보한 노력으로 평가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넘어야 할 과제가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이제 한일 양국은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새로운 100년을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역사를 결코 잊지 않고 기억하면서도 함께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는 것이야말로 한국과 일본이 가야 할 바른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이명박 대통령 제65주년 광복절 경축사 / 2010년 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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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일관계의 ‘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2012년 일본이 한국의 외교백서에 해당하는 외교청서에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주장을 담은 사실이 확인되며 다시 한일관계는 얼어붙었죠. ‘한일 간에는 독도를 둘러싼 영유권 문제가 있지만,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도 국제법상으로도 명백하게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하는 독도에 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은 일관된다’는 게 일본의 주장이었죠. 이와 함께 청서는 ‘일본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일본의 입장을 대외적으로 주지시키고 있다’며 ‘한국 각료와 국회의원의 독도 방문, 한국에 의한 독도와 주변 지역에서의 건조물 구축 등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에 여러 차례 항의해 왔다’고 쓰고 있습니다. 올해에는 한국의 독도 실효지배 강화 조치에 항의해왔다는 내용도 추가됐죠. 일본의 이 같은 행위에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독도를 직접 방문해 실효적 지배의 정당성을 알렸고 광복절 경축사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언급하며 일본의 전향적인 태도를 주문했습니다.

“일본은 우리의 가까운 이웃이자 체제적 가치를 공유하는 우방이며, 미래를 함께 열어가야 할 중요한 동반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과의 과거사에 얽힌 사슬이 한일 양국뿐만 아니라, 동북아의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지체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양국 차원을 넘어 전시(戰時) 여성인권문제로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올바른 역사에 반하는 행위입니다. 일본의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합니다.”(이명박 대통령 제65주년 광복절 경축사 / 2012년 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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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현재 : 과거 부정하는 아베 신조의 일본, 최고조에 이른 갈등

아베 신조 현 일본 총리의 집권 후 한일관계는 역대 최악의 수준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아베 총리는 2015년 8월 14일 담화를 통해 “미래 세대의 아이들에게 사과라는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발언하며 과거사에 대해 사죄할 의지가 없음을 분명히 했죠.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 등 피해 국가와의 갈등은 예정된 수순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다음날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아베 총리의 담화에 실망했다는 메시지를 담았죠.

“그동안 정부는 역사인식 문제에는 원칙에 입각하여 대응하되 두 나라 간 안보, 경제, 사회문화 등 호혜적 분야의 협력관계는 적극 추진해 나간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습니다. 1965년 국교정상화 이래 고노담화, 무라야마 담화 등 역대 일본 내각이 밝혀온 역사 인식은 한·일 관계를 지탱해 온 근간이었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어제 있었던 아베 총리의 전후 70주년 담화는 우리로서는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역사는 가린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살아있는 산증인들의 증언으로 살아있는 것입니다. 어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가 아시아의 여러 나라 국민들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준 점과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한 사죄와 반성을 근간으로 한 역대 내각의 입장이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국제사회에 분명하게 밝힌 점을 주목합니다. 앞으로 일본이 이웃국가로써 열린 마음으로 동북아 평화를 나눌 수 있는 대열에 나오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앞으로 일본 정부는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는 공언을 일관되고 성의 있는 행동으로 뒷받침하여, 이웃 나라와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조속히 합당하게 해결하기를 바랍니다.”(박근혜 대통령 제70주년 광복절 경축사 / 2015년 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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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권 출범 후 과거사 청산에 대한 국민적 요구는 더욱 커졌습니다. 대통령도 이 같은 목소리를 여러 번 경축사에 담아냈습니다.

“광복 70년이 지나도록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고통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강제동원의 실상이 부분적으로 밝혀졌지만 아직 그 피해의 규모가 다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밝혀진 사실들은 그것대로 풀어나가고, 미흡한 부분은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마저 해결해야 합니다. 앞으로 남북관계가 풀리면 남북이 공동으로 강제동원 피해 실태조사를 하는 것도 검토할 것입니다.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 한일 간의 역사문제 해결에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국민적 합의에 의한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보상, 진실규명과 재발방지 약속이라는 국제사회의 원칙이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이 원칙을 반드시 지킬 것입니다. 일본 지도자들의 용기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문재인 대통령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사 / 2017년 8월 15일)

“친일의 역사는 결코 우리 역사의 주류가 아니었습니다. 우리 국민들의 독립투쟁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치열했습니다. 광복은 결코 밖에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선열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함께 싸워 이겨낸 결과였습니다.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힘을 모아 이룬 광복이었습니다.”(문재인 대통령 제73주년 광복절 경축사 / 2018년 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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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일 일본이 3개 반도체 핵심 소재의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하면서 시작된 한일 간 갈등으로 인해 일본에 대한 여론이 더욱 악화됐습니다. 국민들이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까지 벌이며 한일관계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죠. 올해의 경축사는 “저는 오늘 어떤 위기에도 의연하게 대처해온 국민을 떠올리며 우리가 만들고 싶은 나라,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다시 다짐한다”는 말로 시작됐습니다. 문 대통령의 경축사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로 닥친 국가 경제 위기를 반드시 이겨내겠다는 ‘극일(克日)’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우리는 과거에 머물지 않고 일본과 안보·경제협력을 지속해 왔다. 일본과 함께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의 고통을 실질적으로 치유하고자 했고, 역사를 거울삼아 굳건히 손잡자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과거를 성찰하는 것은 과거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딛고 미래로 가는 것. 일본이 이웃 나라에 불행을 줬던 과거를 성찰하는 가운데 동아시아의 평화·번영을 함께 이끌어가길 우리는 바란다. 일본 경제도 자유무역의 질서 속에서 분업을 이루며 발전해왔다. 국제 분업체계 속에서 어느 나라든 자국이 우위에 있는 부문을 무기화한다면 평화로운 자유무역 질서가 깨질 수밖에 없다. 먼저 성장한 나라가 뒤따라 성장하는 나라의 사다리를 걷어차서는 안 된다”(문재인 대통령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사 / 2019년 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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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은 광복 75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내년에는 지금보다 발전된 한일관계의 상황을 담은 경축사가 발표되길 기대해봅니다.
/이종호기자 philli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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