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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당신의 입김이… 비트코인 키운다

■내러티브 경제학-로버트 쉴러 지음, RHK펴냄

튤립 광풍서 가상화폐 열기까지

'이야기 힘'富의 원동력으로 작용

SNS 발전에 전염성은 더 강해져

"경제학에 내러티브 도입" 주장도







세계 최대 전기차 제조기업인 미국 테슬라가 대표적인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을 매입해 지난해 전기차 판매 수익보다도 많은 최소 10억 달러(1조 1,070억 원) 이상을 벌었을 것이라고 한다. 어떤 미국 남성이 비트코인 암호를 잊어버려 약 2,600억 원을 날릴 위기라는 뉴스가 전 세계를 달구기도 했다. 아침 뉴스에서는 비트코인 가격이 5만 달러를 회복해 상승 한계선을 강하게 두드리고 있다는 소식이 흘러나온다. 요즘은 3명 이상만 모이면 비트코인과 가상화폐에 관한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이며, 이야기의 결말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가.

지난 2008년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서명이 적힌 ‘비트코인:개인 간 거래가 가능한 전자화폐 시스템’이라는 짧은 논문이 인터넷 메일링 리스트를 통해 배포됐다. 신화의 시작이었다. 논문을 바탕으로 이듬해 세계 최초의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이 탄생했다. 혹자는 비트코인을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광풍에 빗대기도 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기술에 기반 한 희소성 있는 새로운 화폐의 가치를 옹호하고 나선다. 201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1980년대 초 ‘케이스-쉴러 주택 가격지수’를 고안해 미국 주택 가격 동향의 일반적인 지표를 마련한 로버트 쉴러 예일대 교수는 비트코인에서 19세기 아나키스트의 내러티브(Narrative·이야기, 서사)를 발견했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이 “다수의 익명 개인들에 의해 민주적으로 유지되고 정부 규제로부터 자유롭다고 가정되는” 점 때문에 “특정 부류의 사람들에게 정서적 호소력을 지닌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행동경제학자인 쉴러는 “비트코인 이야기는 다소 부풀려지기도 했지만 신비로운 요소를 지니고 있고, 비전문가와 평범한 사람들도 내러티브에 참여할 수 있으며, 나아가 비트코인을 중심으로 정체성을 구축할 수 있고 이것을 통해 부자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들었다”면서 “비트코인은 전염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아나키스트 정신을 효과적으로 담아내는 내러티브”라고 분석한다. ‘2010년 후반, 자신의 정체에 대해 함구한 채 프로젝트에서 물러났다’고 하는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신비로운 인물은 마치 영웅 신화의 주인공과도 같다. 비트코인 가격은 2011년 월가 점거 시위와 함께 상승하기 시작했다. 컴퓨터가 인간의 삶을 더 많이 통제할 것이라는 것이 또 다른 강한 내러티브로 작용했고 비트코인을 구입하는 것은 마치 미래에 대한 투자처럼 여겨지게 된 것이다.



쉴러 교수의 신간 ‘내러티브 경제학’은 ‘경제를 움직이는 입소문의 힘’이라는 부제와 함께 퍼져나가는 이야기의 힘에 주목했다. 2019년 미국에서 출간된 직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퍼지기 시작하자 쉴러 교수는 “코로나19에 대한 공포 심리가 확산되면 경제를 공황에 몰아넣을 수 있다”고 경고하며 심리를 담은 이야기의 위력을 강조했다. 앞서 ‘야성적 충동’ ‘비이성적 과열’ 등을 통해 세계 경제가 의외의 비합리적인 방향으로 굴러가는 상황을 예리하게 짚었던 저자는 이 책을 “내가 평생 다듬고 발전시킨 사고의 궁극적 결과물”이라고 기꺼이 칭송한다.

책에는 비트코인을 비롯한 다양한 ‘내러티브 경제학’의 사례가 소개됐다. 세율과 세수의 관계를 밝혀 감세정책을 이끈 ‘래퍼 곡선’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얼토당토 않은 경제이론”인 래퍼곡선이 “레스토랑에서 냅킨 위에 그려진 그래프라는 이미지”에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입김 덕에 유명해졌다고 지적한다. 결국 이들 ‘이야기’는 전염병과 같은 양상으로 퍼졌고 그 결과 경제를 움직이기까지 했다는 주장이다.

쉴러 교수는 특히 “1918년 유행한 ‘스페인 독감’의 역학은 1930년대 경제 대공황이 확산된 궤적을 거의 고스란히 보여준다”면서 “대공황이라는 질병을 옮긴 것이 바이러스가 아니라 내러티브였을 뿐”이라고 짚는다. 수천 년 전의 신화와 설화가 등장 인물과 스케일을 바꿔가며 반복되듯 ‘경제 내러티브’도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책은 공황과 신뢰, 근검절약과 과시적 소비, 부동산 시장의 호황과 붕괴, 주식 시장 거품, 임금·물가 상승의 악순환과 사악한 노조 등 대표적인 9개 내러티브를 끊임없이 반복 재생산 되는 ‘영속적 내러티브’로 소개하고 있다. 심지어 오늘날에는 정보기술, 특히 소셜 미디어의 발전과 결합한 내러티브가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져간다.

저자가 ‘내러티브 경제학’을 주창한 것은 과거에 대한 학습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예측을 위해서다. 쉴러 교수는 “의학계에는 전염병 예측과 관련된 수많은 논문들이 있고 이는 단순히 통계적 방법을 사용할 때보다 질병 예측에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면서 “경제학 이론에 대중 내러티브의 전염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이러스처럼 퍼지는 이야기의 힘을 주목하고 사람들이 무엇에 대해 궁금해 하고 이야기하는지를 짚어야 어떤 경제 사건이 만들어질 지 예측할 수 있다는 의미다. 2만2,000원.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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