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 음악계 최고 권위의 시상식, ‘세상에서 가장 성대한 밤’으로 꼽히는 꿈의 무대, 공연 연출과 내용은 물론 무대에 선 그 자체로 오랜 기간 회자되는 곳. 바로 그래미 어워즈다. 예년이면 이미 1월말경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열리는 시상식이 끝나 후일담이 전해질 시기지만, 올해는 오는 14일(이하 현지시간) 열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 때문에 연기한 것. 장소도 스테이플스 센터가 아닌 LA 일원에서 분산 개최된다. 정확한 장소는 알려지지 않았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시대에 그래미어워즈 행사는 어떻게 열리게 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팝 장르부문 후보에 오르면서 시상식에 대한 관심도가 올라간 터다. 올해의 레코드·앨범·노래, 신인상 등 제너럴 필즈라 불리는 ‘4대 본상’의 향배도 관심사다. 유색인종, 여성 아티스트들을 홀대한다는 비판을 받아 온 그래미의 보수성을 재확인할지도 지켜볼만 하다.
◇BTS, 한국 대중음악 최초 그래미 수상 여부 주목=한국의 대중 입장에서는 BTS가 그래미 어워즈에서 수상에 성공할지가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일 수밖에 없다. BTS가 작년 8월 낸 영어 싱글 ‘다이너마이트’(Dynamite)는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상의 후보로 올라 있다. 시상식 당일 공연도 한다. 수상에 성공한다면, 그래미어워즈의 대중음악 부문에서 한국 음악인 최초 수상자라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경쟁자는 △제이 발빈·두아 리파·배드 버니&타이니 ‘Un Dia’ △저스틴 비버·퀘이보 ‘Intentions’ △레이디 가가·아리아나 그란데 ‘Rain On Me’ △테일러 스위프트·본 이베어 ‘Exile’이다. 이 중 ‘Rain On Me’는 2020 빌보드지 스태프 선정 최고의 노래에 뽑혔고, ‘Exile’은 전반적 호평이 자자한 ‘Folklore’ 앨범의 대표곡이다. 하지만 화제성 면에서 ‘다이너마이트’도 뒤지지 않는다. BTS는 최근 ‘Mtv언플러그드’,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 등 미국 내 비중 있는 이벤트에 출연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영대 대중음악평론가는 “최근 시상식 공연자 명단을 보고 나서 BTS가 수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실제로 수상한다 해도 절대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라고 말했다.
BTS는 지난 2019년 시상식에서 시상자로 처음 무대를 밟은 이래 이듬해인 2020년엔 합동공연으로 모습을 보였고, 올해는 후보에 올랐다. 미국 대중음악계로부터 계단식으로 차근차근 인정을 받아 왔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멤버 지민은 최근 AP통신과 인터뷰에서 후보에 오른 데 대해 “말로 표현하기 힘들 수준”이라며 “지금도 우리가 후보에 올랐고 공연까지 한다는 걸 믿을 수가 없다. 매우 고맙고 명예롭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대 관심사 ‘4대 본상’ 수상자도 주목=그래미 어워즈의 가장 큰 관심사는 언제나 ‘4대 본상’ 수상자다. 수상작의 공정성, 심사위원진의 보수성과 관련한 논란이 많아지면서 상의 힘이 예전에 비해 다소 떨어졌지만 최고 권위의 시상식임은 변하지 않았다.
전반적으로는 최다 부문 후보에 오른 비욘세, 지난해 4관왕의 주인공 빌리 아일리시, 그래미의 사랑을 받는 테일러 스위프트 등이 주목된다. 비욘세가 지난해 발표한 싱글 ‘Black Parade’는 올해의 레코드·노래 후보에 올랐다. 백인 경찰이 비무장 흑인 조지 플로이드를 숨지게 한 사건 이후 발매돼 ‘Black Lives Matter’(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과도 연결된다. 둘 중 하나라도 수상한다면 그는 2010년 ‘Single Ladies’ 이후 11년만에 본상을 받는다.
스위프트는 자가격리 기간 작업한 앨범 ‘Folklore’로 올해의 앨범, 싱글 ‘Cardigan’으로 올해의 노래 후보에 올라 있다. 영국 가디언은 이 앨범에 대해 “가장 예상하기 쉬운 상”이라며 수상을 예측했다. 스위프트가 앨범상을 탄다면 여성 가수 최초로 통산 3회 수상의 위업을 달성하게 된다. 지난해 본상을 싹쓸이했던 빌리 아일리시도 ‘Everything I Wanted’로 올해의 레코드와 노래 후보에 올라 있다. 영국 여성 뮤지션 두아 리파도 앨범 ‘Future Nostalgia’, 싱글 ‘Don’t Start now’로 올해의 앨범·레코드·노래 3개 후보로 올라가 있어 주목 받는다.
◇‘화이티 그래미’ 여전할까=그래미의 가장 큰 논란거리인 유색인종 뮤지션의 홀대 문제가 재현될지도 관심사다. 수상자들이 대부분 백인이라 ‘화이티 그래미’라는 비판이 수십년 째 거세다. 지난 2017년 아델의 ‘25’ 앨범이 비욘세의 ‘Lemonade’를 제치고 올해의 앨범을 받으며 벌어진 논란이 대표적이다. 칸예 웨스트, 드레이크, 켄드릭 라마 등은 평단의 엄청난 호평에도 불구하고 그래미어워즈에선 본상을 못 받은 바 있다.
특히 올해는 캐나다 출신 흑인 뮤지션 위켄드가 작품성, 대중성 모두 잡았음에도 후보조차 못 올라가 거센 논란을 부른 바 있다. 그의 4집 ‘After Hours’는 평단의 호평을 받았으며 싱글 ‘Blinding Lights’는 사상 최초로 빌보드 핫100 싱글차트에서 1년 넘게 10위 안에 머물렀다. 지난달 미 프로풋볼(NFL) 슈퍼볼 하프타임 공연을 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음악산업은 그래미를 상대로 여성·흑인 아티스트를 향한 편견과 불투명한 투표 시스템에 대해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며 “주최측인 레코딩 아카데미의 움직임이 변화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분석했다.
/박준호 기자 violat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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