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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미술의 시작 [아트씽]

[조숙현의 가까운 미술]

미술전시 인기지만, 대중 선호는 폅협한 현실

패션 '보그체' 같은, 미술 향한 '추앙체' 문제

미술현실과 미술향유 괴리 없앨 '가까운 미술'


※현대미술이란 무엇이며, 왜 우리는 바쁜 삶 속에서 전시를 관람하고 미술을 경험해야하는 것일까? 전시기획자이기도 한 조숙현 아트북프레스 대표가 ‘미술향유’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이야기 합니다. 독자들이 한국 현대미술에 좀 더 쉽게 다가가고 미술 감상의 문턱을 낮추길 바라며 쓰는 글입니다.

앤드류 와이어스 '크리스티나의 세계', 1948년, 패널에 템페라, 82×121㎝ /사진출처=뉴욕 현대미술관




현대미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 이유는 아마도, 암초와 같은 현대미술의 실체를 이해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가까운 미술’이라는 주제를 제시해준 이는 현대미술 작가였다.

“헌대미술 이라고 하면 대중들이 어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평론가나 매스컴은 역사 속의 미술이나 거대한 담론만 다루는 경향이 있고요. 정작 주변에 작가들이 있는 ‘가까운 미술’에 대해 쓰는 사람이 없어요. 그걸 조숙현씨가 한 번 해보면 어때요?”

이후 ‘가까운 미술’이라는 단어는 머릿속에 맴돌았다. 미술평론가이자 전시기획자로 활동하게 된 나의 과거를 돌이켜보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나는 2009년 겨울, 미술월간지에 취재기자로 입사하면서 현대미술 분야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기자라는 특성상 짧은 시간 안에 다양한 작가를 만나고, 현대미술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과 트렌드를 접하면서 이 놀라운 세계를 알게 되었다.

잡지사에 근무하기 전까지 현대미술에 대한 나의 인식은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런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알지 못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다양하고 재능 있는 작가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는 늘 궁금증과 함께 약간의 책임감이 들었다. 왜 세상은 이런 작가들에게 관심이 없을까? 내가 이들과 세상을 이어줄 수는 없을까? 큰 재산이나 유명세가 있지 않아도, 나는 현대미술 전시를 기획하고 글을 쓰는 나의 삶이 풍요롭다고 느낀다. 미술과 가까이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더 정확히는 좋은 예술가들에게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예술을 싫어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정작 어떤 미술을 선호하냐고 물어보면, 대중들은 아직도 인상주의 미술이나 팝아트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피카소의 성공, 고흐의 비극, 앤디 워홀의 정치력, 까미유 끌로델의 여성 예술가의 비극적인 결말 등, 드라마적인 일부 사례에 머물러 있으며 아직도 그런 이야기들이 전시나 유튜브, 출판물에서 큰 인기를 끈다. 왜 그럴까? 예술은 전문 영역이다. 그것을 향유하는 데는 전문 지식이나 자격이 필요하지 않다. 누구나 전시를 보고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으며, 취향을 가꾸어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예술을 창작하고 평가하는 것은 엄격한 전문 영역이다. 현대미술에 대한 아카데미 전공과 학술대회가 있고,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공공 기관이 존재하고, 오랜 기간 전문적으로 숙련된 예술가가 존재한다.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전업 화가를 같은 예술가의 범주로 놓아야 할까? 전자에게 인상주의 명화를 닮았다고 하면 찬사로 받아들이겠지만, 후자들은 모욕이라고 느낄 것이다. 현대미술 작가의 목표는 전 세대의 작가를 뛰어 넘는 것이다. 사회의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예술에도 전문 분야가 존재한다. 모두가 전문가가 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대중은 현대미술 창작자나 비평가의 시대보다 한 세대 뒤쳐져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대미술에 대한 콘텐츠마저도 데미안 허스트, 아이 웨이웨이, 데이비드 호크니 등의 ‘세계적인’ 슈퍼스타만 언급하는 데 머물러 있다. 누구도 우리의 ‘가까운 미술’에 대해 거론하지 않는다.

매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는 각 분야의 작품 발표 횟수를 통계로 낸 ‘문예연감’을,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국민들의 장르별 문화 향유를 통계로 정리한 ‘국민여가 활동조사’를 발표한다. 2020년 문예연감과 2021년 문화향수 실태조사에 따르면, 1년간 전국에서 열린 시각예술 관련 전시와 행사는 6,000여 건에 달한다. 이는 2020년 코로나 특수 상황으로 인한 감소 수치이며, 2019년 연간 개최 전시는 1만3,724건이었다. 이것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실제로 전시 피크 시즌인 가을이 되면 하루에도 서울에서 몇 개씩 전시가 겹쳐서 미술인들은 누구의 오프닝에 들러야 할까하는 고민에 빠지기 일쑤이다. 반면, 국민여가 활동조사에 따르면 국내 인구 1만여 명의 1년 총 평균 전시 관람 횟수는 4.6회이다. 이 불균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작가의 삶과 현대 미술의 현장 내부는 매우 치열하다. 하지만 외부 사회는 우리에게 무관심하다. 우리는 마이너리티이다. 우리는 비인기종목이다. 우리는 찻잔 속의 고요한 폭풍이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작은 섬이다. 우리는 수면 아래 얽혀 우리만의 ‘그것’을 추구하는 해양 생물, 암초, 해파리이다. 우리는 현대 사회에서 미미한 역할을 담당하는 경첩, 부속품과 같은 존재이다. 앞서 말했듯이, 현대미술의 영역 안에 있는 나의 삶은 만족스럽다. 다만 가끔은 두 뺨이 아스팔트 위에 짓눌린 듯한 느낌을 받는다. 아침에 눈을 뜨면 로드킬 당한 기분이 든다.

무언가를 관찰하는 데 한 세대(10년)는 시작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변화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다. 2000년대 후반에 비해 2020년대에 들어선 지금, 국내 미술계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 후반 두 번의 이례적인 미술 시장 호황이 있었다. 단색화 열풍이 불었고 국내 출신 갤러리 매출액이 증대되고 글로벌하게 활동하는 국내 작가들이 생겨났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 차원에서 문화재단이 설립되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신생되었다. 그러나 국공립기관의 종사자들은 비정규직이 늘었다. 물리적인 인프라는 폭발적으로 성장하였는데 그것을 관리하고 활용하는 전문가에 대한 처우는 제자리이다. 뉴미디어의 발달에 따라 유튜브 채널이 신생되었지만 큰 관점에서 보자면 현대미술은 아직 마이너리티의 영역에 남겨져 있다.

현대미술에 대해 떠들어대는 매체나 유튜브는 있지만, 콘텐츠에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러다가 뜻밖에 결론에 이르렀는데, 그 무조건적인 ‘추앙체’가 거슬렸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보그체’라는 글쓰기 방식이 지탄과 조롱을 받은 적이 있다. 새로운 패션, 하이 패션에 대해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는 문체에 날리는 비웃음이었다. 하이 패션과 순수 미술의 아방가르드성은 일반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지기에 낯설고 난해한 부분이 있다. 여기에 무조건적인 추앙은 접근불가능한 그들만의 리그, 혹은 우스꽝스러운 벌거벗은 임금님 놀이로 보이기도 한다. 한편으로, 추앙적인 태도의 관계가 진정한 이해와 사랑을 바탕으로 한 관계인지에 대한 일반적인 의문이 든다. 그것은 진짜 삶과 관계라기보다는 비즈니스적인 관계에 가깝지 않을까?

그리하여 지난 10여 년 간 혼자 묵혀온 이야기를 이제는 꺼내려 한다. 나를 곤경과 행복에 빠트렸던 이 가난하고 광적이며 보통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예술과 예술 세계, 그리고 예술가에 대하여. 지난 10년의 분노와 애정을 담아. 내가 보고 겪고 나름의 중간 정산을 내린 ‘가까운 미술’에 대해 지금부터 이야기하고자 한다.

화가 노석미가 그린 조숙현.


▶▶필자 조숙현은 현대미술 전문 출판사 아트북프레스(Art Book Press)를 운영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영상 커뮤니케이션 석사를 졸업했고, 전시기획자와 미술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내 인생에 한 번, 예술가로 살아보기’와 ‘서울 인디 예술 공간’이 있다. ‘강원국제비엔날레 2018 : 악의 사전’, ‘변덕스러운 부피와 두께’, ‘X-사랑’, ‘바로 오늘’, ‘Way of Life’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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