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해 중재 외교를 벌여온 미국이 앞으로 중재자 역할을 축소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교착 상태에 빠진 협상을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미국이 아니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당사국들이 더욱 나서야 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3일 미국 뉴욕포스트와 유럽 유로뉴스 등 매체 보도에 따르면 태미 브루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달 1일(현지 시간) “미국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회의를 중재하기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일을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당사국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직접 대화를 해야 하며, 전쟁을 어떻게 끝낼 지 주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발전시키는 것도 그들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도 “협상의 진전이 없을 경우 미국이 휴전에 대한 노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유로뉴스는 “외교로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미국의 의지가 계속 낮아지고 있음을 의미한다”며 미 국무부의 이번 발표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계속된 종전 중재의 전환점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대선 기간 트럼프 대통령이 ‘러∙우 전쟁을 하루면 끝낼 수 있다’고 공언한 대로 출범 직후인 2월 종전 중재에 착수했지만 별 다른 성과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올 3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30일 간 휴전은 정작 공격 중단 범위가 ‘에너지 인프라’인지 ‘에너지와 인프라’인지 같은 문제를 놓고도 미국과 러시아 간 이견이 발생했고, 무엇보다 휴전 기간 동안에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서로 공격을 주고받았다. 이에 따라 미국의 중재 의지가 크게 꺾였다는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정부가 종전 협상에 더욱 적극적으로 임하게 하려는 압박 용도도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초 보여왔던 친(親) 러시아 성향에서 벗어나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쪽에 좀 더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말 체결된 양국 간 광물협정에는 러∙우 전쟁이 ‘러시아의 침략’으로 벌어졌다는 점이 정식으로 명기됐고, 우크라이나 자원 개발용으로 조성되는 기금에 미국도 재정적 기여를 한다는 내용 역시 포함됐다. 우크라이나 정부 측은 미국이 자국에 대한 군사 지원을 중단하기로 했던 방침을 바꿔 방공 시스템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행정부는 2일 우크라이나 정부가 요청한 F-16 전투기 교육 서비스와 유지 관련 장비 등 3억1050만 달러 상당의 대외군사판매(FMS)를 승인하기도 했다. 외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프란치스코 교황 장례식을 위해 찾은 바티칸에서 15분 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가진 ‘대성당 독대’ 이후 우크라이나 쪽으로 마음을 돌렸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에 반해 러시아 측은 전쟁으로 빼앗은 우크라이나 동부 영토를 러시아 영토로 인정해달라는 입장을 고수하는 등 종전을 위해 양보할 의사가 크게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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