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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송현] 공공기관에 자율과 책임을 허하라

조성봉 전력산업연구회장·전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공공요금 규제로 공기업 빚 눈덩이

1년 내내 평가·감사 시달려 성과 뒷전

자율·책임 뺏기면 자생력도 사라져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모건 프리먼이 열연한 무기수 레드는 가석방돼 어느 작은 마을의 슈퍼마켓에서 일한다. 그는 화장실을 갈 때마다 매니저에게 손을 들어 허락을 받으려고 한다. 매니저는 그를 조용히 부르며 허락받으려 하지 말고 그냥 다녀오라고 한다.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마음의 소리가 프리먼의 독백으로 흘러나온다. “40년 동안 나는 허락을 받고 화장실을 갔어. 이제 허락받지 않으면 오줌이 한 방울도 안 나오는 걸 어떻게 해?”

우리나라 공공기관이 딱 이 모습이다. 2007년 제정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은 제1조에서 ‘자율 경영 및 책임 경영 체제의 확립’을 목적으로 삼고 제3조에서는 ‘자율적 운영의 보장’을 기본 원칙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법 조항들은 예산, 운영 계획, 재무 관리, 경영 평가, 감사, 인사 운영 등의 면에서 공공기관을 꼼짝 못하게 얽매는 정부의 철저한 감독과 간여를 규정하고 있다. ‘자율’과 ‘책임’이 발휘될 여백 없이 정부는 공공기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

공공기관은 1년 내내 평가와 감사에 시달린다. 주무 부처 감사, 국정감사, 감사원 감사에 더해 경영 평가, 사장 평가, 청렴도 평가, 혁신 평가, e정부 평가, 고객만족도 평가 등 별의별 평가가 연중 행사로 잡혀 있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좋은 성과를 내기보다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한 포장과 행사의 달인이 돼간다.



화려한 포장과는 달리 공공기관은 골병이 들어 있다. 정부의 지나친 가격 규제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공공기관 부채는 741조 5000억 원에 달하며 부채비율은 180.6%로 이미 위험 신호가 커진 지 오래다.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담당하는 주택금융공사·토지주택공사 등은 정부 보증을 기반으로 채권 발행을 매년 늘리고 있다. 한전과 가스공사는 증시에 상장된 공기업으로서 주주들의 이해를 반영해야 하지만 정부의 엄격한 공공요금 규제로 자율적인 가격 결정이 불가능하며 재무 건전성 개선은 요원하다.

전력 공급이 시급한 인공지능(AI) 시대에 한전이 전력망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하는 것은 지역 주민들의 반대와 지방자치단체의 비협조도 있겠지만 공공기관이 갖는 제약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이제 민간 대기업이 전력을 직접 구입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려 한전의 전력 판매 독점도 위협받지만 용도별 전기 가격이 정부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상적인 경쟁이 가능할지 의심스럽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공기업은 우리의 공공기관보다 그 자율성의 폭이 크다. OECD는 ‘공기업 지배구조 가이드라인’을 통해 주인인 정부의 공기업에 대한 명확한 목표 설정과 이에 관한 책임을 강조하지만 동시에 공기업에 대한 완전한 운영 자율성을 보장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최근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전이 출자 회사들과 ‘자율 책임 경영 협약’을 체결했다. 이 협약은 OECD 가이드라인에 맞춰 자회사에 대한 모회사의 상시적 간여를 내려놓고 이사회 중심의 자율 경영을 최대한 보장하며 경영 성과에 따른 연임이나 해임 등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비효율이 눈에 보이고 간혹 비리나 문제점이 나타난다고 해서 자율과 책임을 뺏으면 스스로 개선하며 나아갈 자생력을 기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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