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년 사이 중국 항저우·광저우 등 주요 대도시 외곽에는 이른바 ‘전기차 무덤’들이 생겨났다. 폐차장이 아니다. 멀쩡한 자동차들이 많게는 수백 대 이상씩 공터나 수풀 사이에 방치돼 있다. 중국 정부는 2000년대 후반부터 보조금을 주며 국산 전기차 생산을 독려했다. 그 결과 2018년 100만 대를 돌파한 중국 전기차 생산량은 2024년 1000만 대를 넘어 약 1290만 대에 달할 정도로 공급과잉 수준에 이르렀다. 이 같은 생산 물량을 적극 구입해온 중국 내 자동차 공유 플랫폼 업체들마저 내수 침체 속 신규 구매를 자제하고 보유 차량들을 방치하면서 전기차 무덤이 생겨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미중 간 무역전쟁 속에 선진 시장 수출길마저 막힌 중국 전기차 업체들은 넘치는 재고를 털어내려고 덤핑 수준의 할인 경쟁을 가속화하면서 공멸 위기를 맞았다. 2019년 500여 개였던 중국 전기차 기업 중 대부분이 문 닫고 현재 5분의 1 안팎만이 살아남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동종 업계 기업들이 제 살 깎아먹기 식 경쟁으로 시장 질서를 왜곡하고 경제 비효율을 초래하는 현상을 중국인들은 ‘네이쥐안(內卷) 경쟁’이라고 부른다. 공급과잉에 따른 출혈 경쟁 문제는 전기차뿐 아니라 건설·철강·배터리·태양광·가전·자영업 등 중국 경제 전반에 만연했다. 특히 태양광 패널 업계의 상황이 심각하다. 이미 전 세계 공급량의 80% 이상을 점유한 상황에서 2020년부터 생산 공장을 크게 확장한 탓이다. 업체들은 늘어난 재고 소진을 위해 덤핑 경쟁을 벌이는데 실리콘 등 원자재 가격까지 급등해 이중고에 처했다.
자국 기업 간 출혈 경쟁으로 중국 경제에 디플레이션 징후까지 나타나자 중국 정부가 감산 정책이라는 칼을 빼들었다. 이른바 ‘반(反)네이쥐안 운동’이다. 정책 당국은 올해 3월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한 정부 업무보고에서 네이쥐안 경쟁을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6월에는 덤핑 등을 막기 위한 ‘부정경쟁방지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그래도 가시적 성과가 나지 않자 시 주석이 직접 나섰다. 지난달 초 중앙재정경제위원회를 열어 “기업들의 무질서한 가격 경쟁을 규제하고 낙후된 생산력을 질서 있게 퇴출해야 한다”고 주문한 것이다. 이어 같은 달 중순에는 중앙도시공작회의를 개최해 지방자치정부들이 인공지능(AI), 컴퓨팅 파워, 신에너지 차량에 맹목적으로 과잉투자하고 있음을 질타했다. 시 주석이 직접 반네이쥐안 운동의 전면에 나서자 중국 산업 정책 당국은 태양광 업계 경영진을 소집한 회의에서 과잉 가격경쟁 자제, 노후 설비 폐쇄 방침을 정했다. 전기차·철강 등 여타 업계에서도 감산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우리 정부와 기업들은 반네이쥐안 운동이 불러올 ‘감산 쇼크’에 대비해야 한다. 중국에 원자재·부품 등을 공급하는 기업이라면 수요 감소에 따른 수출 실적 저하를 겪을 수 있다. 반대로 중국산 제품을 수입하는 기업은 현지 가격 정상화로 인한 원가 부담 압박에 대비해야 한다.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과 직접 경쟁하는 기업이라면 단기적으로는 중국의 재고 밀어내기식 덤핑 수출 공세로부터 한숨 돌릴 시간을 벌 수는 있다. 하지만 그간의 과잉 공급 경쟁 과정에서 숙련된 인력과 대규모 생산 기반, 제조 노하우를 확보한 중국 기업들이 감산을 통해 체질을 개선해 경영 효율성과 기술 경쟁력까지 높이게 되면 과거보다 더 강력한 수출 라이벌로 부상해 우리 기업들을 추월할 우려가 있다. 중국 정부가 반네이쥐안 정책 경험을 바탕으로 주요 공산품의 해외 공급 물량을 통제하며 ‘경제 무기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 정부는 가급적 연내에 네이쥐안의 성과를 내 산업 구조조정의 틀을 잡고 15차 5개년 계획이 시작되는 내년부터는 중국 경제를 질적 성장 단계로 도약시키려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 특히 생산 효율화, 기술 고도화 등에 중국의 정책 역량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국가 차원에서 일사불란하게 산업 구조조정을 진행해 경제를 재도약시키려는 중국에 밀리지 않으려면 우리 정부도 기업들과 적극 소통해 경제구조 개혁에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노동 생산성 향상과 기술 혁신을 가로막는 대못 규제들을 풀고 AI·로봇·바이오 등 신성장 사업 중심으로 산업구조를 전환하기 위해 재정·금융·세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