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봇이 간다]산업배관 속을 뱀처럼 누비며…균열 찾고 침전물 제거 '척척'
산업 IT 2019.05.19 16:39:56#부산역 뒤편에 매설된 지 30년도 넘은 도시가스 배관 속으로 배관 검사로봇이 천천히 들어간다. 바퀴를 굴리며 이리저리 이동해 촬영한 배관 내부 모습은 실시간으로 바깥에 있는 연구자에게 전달된다. 배관 안에는 자동차 타이어 네 배 수준의 가스 압력과 철 가루 등이 있었지만 이 같은 환경을 극복하며 검사를 마친 뒤 다시 서서히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세계 최초로 로봇을 실제 가스 배관 속으로 투입해 주행과 검사에 성공한 순간이었다. 한국로봇융합연구원(KIRO)이 개발하고 있는 배관로봇은 산업 현장 곳곳에서 사람의 손길이 닿지 못하는 배관 내부를 검사·모니터링·청소·갱생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홍성호 KIRO 제조로봇연구본부장은 “해외에서 (배관로봇의) 원천기술이 개발됐지만 가스 압력이 있는 실제 배관에 적용한 것은 국내가 처음”이라고 밝혔다. ◇작동 원리는=배관로봇은 여러 개의 모듈이 일자로 길게 연결된 ‘뱀’과 같은 모습이다. 이는 직선과 곡선·T자형 등 여러 형태가 얽힌 배관 내부를 로봇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최적화된 형태다. 홍 본부장은 “배관 내부 크기의 변화와 밸브·곡관 등 주행에 영향을 미치는 장애물들이 있어 개발 단계부터 로봇의 크기와 주행 능력을 고려해야 한다”며 “최적화 설계와 주행 알고리즘을 통해 복잡한 배관을 주행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가스 압력과 철 가루는 주행을 어렵게 만드는 또 다른 요소다. 실제 부산역 인근 가스 배관에서 시범 적용을 했을 때 내부는 타이어 네 배 수준인 50바(bar·압력측정단위)의 압력이 있었다. 주행이 끝난 뒤 외부로 나온 배관로봇은 철 가루를 잔뜩 뒤집어쓴 모습이었다. KIRO의 한 관계자는 “배관 내부에 있는 철 가루는 전자부품으로 구성된 배관로봇에 치명적이기 때문에 방진 설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어려움을 딛고 현재 배관로봇의 개발은 상용화 직전까지 온 상황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9부 능선’을 넘었다고 한다. 마지막 관문은 현재 1㎞가량인 주행 거리를 10~20㎞까지 늘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연구팀은 역발상 중이다. 로봇의 배관 내 주행에 방해가 됐던 가스를 역이용하는 방법이다. KIRO 관계자는 “로봇이 배관 속을 흐르는 가스 유속에 의해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종류·기능은=배관로봇의 유형은 네 가지다. 청소·검사·모니터링·갱생 로봇이다. 이 중 청소로봇이 가장 먼저 개발됐다. 주로 제철소 배관 내부에 쌓인 침전물을 제거한다. 그전까지는 작업자가 치공구를 이용해 직접 청소했기 때문에 유독가스 위험에 노출됐으며 배관 깊은 곳까지 청소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검사로봇은 배관 내부 장애물이나 균열, 이음부 부분 등을 살핀다. KIRO는 한국가스공사·한국수자원공사와 협력해 각각 가스 배관 검사용 로봇과 상수도배관 검사용 로봇을 개발 중이다. 그중 가스 배관 검사로봇은 이미 부산역 인근 가스 배관에 적용돼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갖게 됐다. 상수도 배관 검사의 경우 그동안 미국산 장비를 써야 했다. KIRO 관계자는 “한국수자원공사에서 미국 업체의 장비를 들여와 한 차례 상수도 배관 검사를 진행했지만 1㎞당 검사 비용이 3억원이나 되는데다 로데이터(raw data·원천정보)도 받지 못해 자체 개발을 시도하게 됐다”고 밝혔다. 모니터링로봇과 갱생로봇은 각각 배관 내부 침전물 등 건전성을 확인하는 역할과 노후 배관의 코팅을 다시 해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는 “갱생로봇은 기본 자체 무게 이외에도 코팅 재료와 물 등까지 400㎏ 무게를 끌고 다닐 수 있다”고 강조했다. ◇후속과제와 전망은=홍 본부장은 배관로봇이 청소와 검사 등을 넘어서 무궁무진하게 응용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를 위해 다양한 배관에 사용할 수 있는 배관로봇을 추가적으로 개발할 계획이다. 그는 “내화학성 배관이나 석유화학 분야 등 환경에 따라 폭발·부식을 고려해야 하는 배관로봇을 추가적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로봇을 이용한 자동 접합 기술과 방사선 비파괴 검사도 후속 연구 대상이다. 홍 본부장은 “유리섬유로 구성된 복합소재 배관은 용접으로 접합할 수 없어 섬유를 하나하나 수지를 이용해 덧대는데 유독성 물질 때문에 작업자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자동으로 접합시킬 수 있는 배관로봇을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배관로봇을 향한 기업의 관심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 특히 유해 화학물질의 취급기준을 강화하는 내용의 화학물질관리법이 강화되면서 로봇을 활용한 비파괴 검사와 배관 내부 모니터링 등의 수요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홍 본부장은 “기존 작업자가 할 수 있는 영역과 검사하기 어려운 영역을 분리해 그 외 지역을 로봇이 검사하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포항=권경원기자 nahere@@sedaily.com -
[로봇이 간다] 이득희 의료로봇연구단장 "AI·빅데이터와 융합…스스로 움직이는 시술로봇
산업 IT 2019.05.06 16:10:01“앞으로 시술·수술로봇 개발이 가야 할 방향은 자동화입니다. 이를 위해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기술을 융합할 것입니다.” 이득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의료로봇연구단장은 지난 3일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본원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이같이 앞으로의 연구개발(R&D) 방향을 소개했다. 그동안 개발된 국내외 주요 수술 및 시술로봇들은 조종의 상당 부분을 인간에게 맡겼지만 앞으로는 로봇 스스로 간단한 의료작업들을 스스로 판단하고, 처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그는 “루틴하고 반복적인 일들을 (수술로봇을 통해) 자동화한다면 의사들의 피로를 줄이고, 치료의 정확성을 높일 수 있어 의료진과 환자 모두에게 더 나은 효과를 가져다줄 수 있다”고 수술로봇 자동화를 추구하려는 이유를 설명했다. 로봇의 자동화가 높아진다면 임상 현장에서는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우선 엑스레이를 비롯한 각종 광학·전자기장비 등으로 촬영한 환자의 환부와 그 주변 영상을 3차원(3D) 입체영상 모델로 만든다. 이를 바탕으로 AI가 적절한 시술계획 수립을 돕는다. 해당 계획에 따라 시술이 이뤄지도록 로봇은 스스로 자동제어하게 된다. 이 단장은 이 같은 구상을 적용하기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빠르면 3~4년 내에 이처럼 자동화된 시술로봇을 시제품 수준까지는 내놓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단장은 의료로봇 제작 및 상용화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흐름을 읽고 유연하게 기술개발의 방향을 전환할 수 있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단장을 비롯한 KIST 연구진이 개발한 시술로봇 ‘닥터허준’의 경우가 그 대표적 사례다. 그는 “우리도 원래는 (닥터허준을 만능 중재시술로봇으로 개발하려던 게 아니라) 척추디스크 질환에 특화된 내시경 척추시술로봇으로 개발하려는 목표였다”며 “하지만 5년간 개발하다 보니 그 사이에 시장 상황이 변화했더라”고 전했다. 그가 언급한 시장 상황 변화란 전 세계적으로 대당 수십억원에 달하는 고가수술 로봇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른 것을 뜻한다. 대신 저가의 보급형 시술로봇의 수요가 확대된다고 판단했다고 이 단장은 말했다. 이에 따라 닥터허준을 모든 종류의 정밀 중재시술에 사용할 수 있는 보급형 로봇플랫폼으로 개발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국내에서 로봇수술을 가장 많이 실행했던 의사인 나군호 세브란스병원 교수도 지난해 닥터허준을 경험해보고 나서는 “이런 중재시술로봇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평가했다고 KIST 로봇개발진은 전했다. 국내 의료기기산업계의 자본 규모는 아직 선진국에 비해 적은 편이지만 로봇신기술 도입에 대한 도전정신은 매우 높다고 이 단장은 평가했다. 국내 의료진도 신기술 도입에 적극적이고, 임상 실력이 전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어 대한민국은 의료용 로봇을 개발하기에 최적지라는 분석도 곁들였다. 그는 행정당국의 보수적인 인허가 절차로 인해 어려움이 있다며 이런 환경을 개선해준다면 의료로봇 개발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단장은 “의료기기는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만큼 안정성을 매우 신중하게 고려해야 하는 의료 당국의 입장은 당연한 것”이라면서 “다만 믿을 만한 의료진과 공인된 신뢰성을 갖춘 로봇기술 전문가들이 안전하다고 인정한 기술에 대해서는 인허가 절차의 속도를 보다 높일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 -
'대당 7억' 만능시술로봇…'닥터 허준'을 아시나요
산업 IT 2019.05.06 16:07:36지난해 3월 의료기기산업계에 신기술의 빅뱅을 예고하는 소식이 전해졌다. 미국 기업 아우리스헬스가 척추디스크 치료 등을 위한 시술로봇 ‘모나크’를 개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승인을 얻었다는 내용이다. 올해 2월에는 다국적 제약사 존슨앤드존슨이 아우리스헬스를 34억달러에 인수하려고 한다는 뉴스까지 나왔다. 중재시술로봇 시장의 성장 잠재력을 다국적 기업이 내다보고 원천기술을 선점하려 한 것이다. 뒤이어 미국의 의료기기제조사 인투이티브서지컬도 중재시술로봇 ‘이온’의 FDA 승인절차를 밟고 있다. 대한민국도 경쟁에 뛰어들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최근 시제품을 완성한 중재시술로봇 ‘닥터허준’이다. 이득희 의료로봇연구단장은 “지난해 카데바(해부용 시신)로 닥터허준의 ‘전(前)임상시험’을 성공했고 현재 임상시험 등과 관련한 인허가 절차를 추진하고 있다”며 “인허가는 이르면 2년 정도 걸릴 것 같다”고 전했다. 예상 일정대로 인허가 절차를 마치게 되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상용화되는 중재시술로봇이 될 수 있다고 이 단장은 기대했다. 중재시술은 신체 피부를 아주 조금만 절개한 뒤 내시경·엑스레이와 같은 영상의료기기를 몸속에 집어넣어 환부를 치료하는 방식이다. 흔히 척추 디스크를 비롯한 신경외과 분야 질환에서 애용된다. 시술도구가 정상 경로에서 불과 몇 ㎜ 정도만 벗어나도 중요한 신경·혈관 등을 건드려 중대한 의료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정밀한 로봇을 이용하면 이 같은 실수를 줄일 수 있다. 이 단장은 “아무리 뛰어난 의사라도 인간의 동작은 1㎜ 단위로 제어되기 어렵지만 닥터허준은 오차범위 1㎜ 이하 수준을 목표로 개발하고 있다”고 전했다.닥터허준을 이용하면 1시간 이상(복강경 시술 기준)이 걸리던 시술 시간을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또한 수술대에 누운 환자를 상하좌우로 돌려가며 엑스레이 사진을 촬영했던 기존 시술법에 비해 닥터허준을 이용하면 위아래 방향에서만 촬영하면 돼 환자와 의료진의 방사선 피폭 정도를 약 절반으로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본지가 지난 3일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KIST를 방문해 닥터허준의 시연을 보니 실제로 정밀도가 상당했다. 우선 길잡이 역할을 하는 로봇팔인 가이드암이 시술도구인 ‘자동카테터’ 로봇을 정확한 시술 위치로 이동시킨다. 내시경 및 레이저 절개도구 등을 장착한 자동카테터는 이어서 약 3㎜ 크기로 피부를 절개한 뒤 모형 척추의 꼬리뼈 부근으로 삽입된다. 카테터는 척수를 둘러싼 외피(경막)와 주변 조직 사이의 미세한 틈(외강)을 비집고 들어가 정확하게 환부를 찾아내 치료하는 것으로 시연했다. 실제 임상일 경우 해당 카테터의 조종은 시술대에서 2~3m 떨어진 자리에 앉은 시술 의료진이 맡게 된다. 시술자는 환자의 체내를 3차원 영상으로 보여주는 가상현실(VR) 모니터를 보며 정밀하게 시술 부위까지 카테터를 삽입한 뒤 치료작업을 할 수 있다. 이때 카테터 로봇의 조종은 햅틱기술이 적용된 마스터컨트롤 장치를 통해 원격으로 이뤄진다. 햅틱기술 덕분에 시술자는 마치 손으로 직접 환부를 만지는 것처럼 정밀하게 힘의 강약과 방향 등을 컨트롤 장치를 통해 느끼며 조작할 수 있다. 이날 시연된 카테터 시제품은 돌출돼 신경을 누르는 척추디스크를 레이저로 태워 제거하거나 약물을 주입해 척추디스크의 유착을 풀어주는 기능을 갖췄다. KIST 측은 이 같은 척추외강 시술 이외에도 광범위한 중재시술 범위에 사용될 수 있는 만능 플랫폼으로 닥터허준을 개발하겠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닥터허준은 현재 비강을 통해 카테터를 삽입해 뇌종양을 제거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개발 완료됐다. 여기에 더해 앞으로 안구시술용으로도 활용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개발진의 포부다. 안과시술용 로봇이 개발된다면 세계 최초가 된다. 이 단장은 “닥터허준을 상용화할 경우 판매가격을 대당 7억원 정도로 잡으려고 한다”며 “해외의 수술로봇이 20억원, 30억원대에 달하는 것을 감안한다면 가격 경쟁력이 있다”고 전했다. 이 정도 가격이면 대당 수십억원씩 하는 기존의 수술로봇 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없는 대다수의 국내외 중소형 병원들도 구매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국내뿐 아니라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도 지방 중소병원들에는 수술·시술로봇 보급이 제대로 돼 있지 않은 만큼 가격 경쟁력만 갖춘다면 해외 수출에도 승산이 있다고 개발진은 보고 있다. 또한 의료로봇 단가가 국산화를 통해 저렴해지면 그만큼 시술비용도 낮아질 수 있어 환자들의 의료복지 향상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닥터허준 시스템은 가이드암과 카테터로봇, 마스터컨트롤, VR내비게이션·내시경·엑스레이의 세 가지 영상모니터, 훈련시뮬레이션 장비를 하나의 세트로 개발됐다. 기존의 복강경 시술 등은 시술자만 임상을 체험할 수 있어 다른 의료진을 교육·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야 했지만 닥터허준은 훈련시뮬레이션 장비를 두고 있어 이런 단점을 극복할 수 있다. 닥터허준의 구성품 중 가이드암을 제외한 나머지는 대부분 국산화됐다. 가이드암도 3월 ‘로봇이 간다’ 1편을 통해 소개됐던 토종모듈 로봇팔 ‘모드맨’을 적용하면 국산화할 수 있다고 KIST 개발진은 설명했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 -
[로봇이 간다] "국가과제로 개발한 기술은 사실상 공공재…폐쇄적 성과 배분이 로봇 상용화 걸림돌"
산업 IT 2019.04.14 16:48:44한국에 로봇공학의 체계를 처음 세운 토종 로봇 개발자 ‘0세대’는 지난 2017년 작고한 변증남 울산과학기술원 명예교수다. 그 뒤를 잇는 1세대 개발자 중에서는 본지가 최근 서울 금천구 가산동 엔티로봇 본사에서 만난 창업자 김경환(사진) 고문이 있다. 연세대를 졸업한 그는 일본 도쿄대에서 로봇 관련 석·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텍사스A&M대에서 포닥(박사후 연구원) 생활을 하다가 1990년대 후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영입돼 로봇 등을 개발했다. 김 고문에게 한국 로봇 산업의 역사를 들어본다. 김 고문은 “한국 로봇 산업사에서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인물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라고 말했다. 정 명예회장이 한국에 처음 산업용 로봇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김 고문은 “정 회장이 1970년대에 포니 승용차 프로젝트를 추진할 당시 해외 견학을 해보니 이미 로봇을 자동차 용접하는 데 쓰는 기업들이 있다고 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당시 현대차의 자동차 생산량은 한 달에 몇백 대 수준이었음에도 정 회장은 자동차 생산에 로봇을 도입해야겠다고 생각해 현대로봇주식회사를 만들었다”고 되짚었다. 한국 로봇 산업 확산의 계기는 1990년대 초반 현대차의 대미 수출 본격화였다. 김 고문은 “당시 미국 바이어들이 ‘미국에 자동차를 팔려면 (품질 관리를 위해) 용접 로봇을 쓰라’고 현대차 측에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현대차는 시범적으로 소량 도입했던 로봇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 뒤를 이어 삼성전자가 반도체 제조 공정에 로봇을 도입했고 대우·두산 등도 줄줄이 동참했다. 김 고문은 “(1990년대) 당시 우리 기술이 일본 대비 80% 수준까지 따라갔는데 한국의 중요한 대기업들이 뛰어들었으니 머지않아 일본 수준까지 올라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IMF 사태(외환위기)’가 터졌다”며 아쉬워했다. 결국 대기업들이 당장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로봇 사업을 줄줄이 포기했다. 김 고문은 “당시 대기업 중에선 현대만이 현대로보트 주식회사를 현대중공업으로 편입시키는 방법으로 로봇 사업을 지키려 했다”고 전했다. 위기에 놓인 로봇 산업에 구원투수가 나타났다. 훗날 19대 국회의원을 지낸 심학봉 산업자원부 과장이었다. 김 고문은 “2008년 당시 심 과장이 여러 성장동력사업 중 로봇만이 당장 전후방 효과를 낼 수 있다며 ‘로봇을 해야 한다’고 기획재정부 등을 설득했다”고 술회했다. 또 “심 과장의 추진력으로 ‘로봇특별법’도 만들어졌다”며 “국회의원이 된 후에는 징역형을 선고 받았지만 그가 (산자부 과장 당시에는) 한국 로봇 산업의 정책기반을 닦은 불세출의 인물이었다”고 평가했다. 특별법이 제정된 후 우리 정부는 로봇 산업을 일관되게 육성했지만 성과로 보면 실패했다고 김 고문은 진단했다. 정부가 매년 수백억 원 이상을 지원해주는데도 개발된 로봇 중 제대로 상용화된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국가연구과제의 성과를 폐쇄적으로 배분하는 것이 주요 원인의 하나로 꼽혔다. 김 고문은 “우리 정부는 (국가연구개발 과제 사업에서) 어떤 회사가 참여해 노력하면 해당 회사에 기술을 우선 이전받을 수 있게 해 독점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그 기업이 불과 직원 1~2명짜리 벤처기업일 경우 이전받은 특허기술로 제품을 한 번 만들었다가 안 되면 기업과 함께 기술이 사장되고 만다는 것이다. 로봇 분야에서 빠르게 추격해오는 중국은 다르다. 그는 “독일이나 중국의 경우 (국가과제로 기술을) 연구개발했다면 이를 ‘공공재’라고 생각해 모든 기업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소개했다. 김 고문은 로봇 산업의 발전 방안에 대해 기술 개발 자체보다 이것으로 어떤 경제적·사회적 가치를 창출할지에 대한 ‘해석’과 ‘기획’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 -
[로봇이 간다] 약사도 꺼린다는 항암제 직접 만들고 장애인 식사도 도와
산업 IT 2019.04.14 16:48:30대형 의료기관인 A병원은 항암제 조제 수급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왔다. 암환자들이 점점 대형 병원으로 몰리면서 한때 하루 평균 300개 정도였던 항암제 조제 수요가 근래에 1,200개까지 늘었다. 정작 이를 만들 인력 운용이 어려웠다. 전문 약사들이 항암제 독성물질에 노출될까 봐 장시간의 조제 작업을 꺼렸다. 4~5교대 근무로 해도 못 견디고 일을 그만두는 약사들이 생겼다. A병원과 같은 고충을 겪고 있다면 로봇이 해결사 역할을 할 수 있다. 전문 약사처럼 정밀하게 항암제를 처방전대로 만들어주는 로봇들이 연구개발(R&D)되고 있다. 과거에는 미국·일본 등에서 고가 제품을 사와야 해 비용 부담이 컸다. 이제는 국내에서도 해당 분야의 로봇이 제작되고 있다.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 자리 잡은 엔티로봇(NT Robot)이 대표 주자다. 엔티로봇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출신의 김경환 박사가 지난 2004년 창업한 한국의 1세대 로봇 기업이다. 원래 사명은 엔티리서치였다가 2015년 말 현재의 이름으로 바꿨다. 국민의 정부 후반부부터 정부의 꾸준한 육성책에도 수많은 토종 로봇 개발사들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사라져갔지만 엔티로봇은 15년간 풍파를 버텨냈다. 김 박사는 2017년까지 최고경영자(CEO)로 활동하다가 현재는 부친에게 대표 자리를 맡기고 자신은 기술 개발에 매진하기 위해 사내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본사를 찾은 본지 취재진에 김 고문은 병원용 로봇 ‘두팔케모(DUPAL-Chemo)’와 밥 먹여주는 헬스케어로봇 ‘케어밀(CareMeal)’ 등을 시연했다. 이탈리아에서 탄생한 최초의 항암제 조제 로봇과 그 후속 외산 로봇들은 대부분 외팔이었다. 그만큼 조제가 느렸고 작업 종류에 제약이 있었다. 반면 두팔케모는 사람 상반신 모양의 몸체에 두 팔이 달린 로봇이다. 인간 약사 대비 85%의 능률로 작업 속도를 낸다. 24시간 작동하므로 전체적인 작업 효율은 휴식과 교대근무가 잦은 인간보다 높다. 가격은 5억원 선으로 정하려 한다는 것이 김 고문의 설명이다. 대당 보통 12억원대에 육박하는 이탈리아제를 비롯한 주요 외산 제품에 비하면 반값 이하다. 덕분에 국내 의료계의 관심을 사 몇몇 병원에서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엔티로봇은 임상 완료 후 연내에 상용화할 계획이다. 해당 로봇 본체는 앞면에 유리문이 달린 음압 캐비닛 내부에 설치된다. 바이러스·세균 등으로 오염된 외부 공기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로봇과 캐비닛 내부는 철저히 멸균 상태로 유지되며 내부 공기도 천장의 헤파필터로 정화돼 배출된다. 일반적으로 항암제 조제 전문 약사들은 먼저 멸균복으로 갈아입고 밀폐된 멸균실로 들어간다. 이어 좁은 음압 공간에 쪼그리고 앉아 하루에 많게는 1인당 수백 건씩 동일한 조제 작업을 반복해왔다. 그러다 보니 피로가 쌓이고 집중력이 떨어져 주사기에 찔리기도 하고 조제 과정에서 실수가 일어나기도 한다. 주사기에 찔리거나 항암제용 원액 약물에 장기간 노출되면 독성으로 유전자 변이, 임산부 유산이 일어날 수 있다. 조제 실수는 환자에게 치명적일 수도 있다. 문제 해소를 위해 로봇 도입을 추진해왔지만 이탈리아산 등 기존의 외팔제품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약사의 작업을 한 손으로는 모두 따라 할 수 없었다. 결국 약병을 집어 정리하고 수액백을 흔들고 검사하는 작업을 로봇 옆에 별도의 주변 장비를 놓고 해야 했다. 반면 두팔케모는 두 팔로 인간의 동작을 거의 비슷하게 흉내 냈다. 시연을 보니 우선 트레이에 담겨 음압 캐비닛에 투입된 약병들과 주사기를 로봇팔이 집어 안쪽 반대편 벽에 달린 작업대에 종류별로 정리한다. 이어 전자처방전에 따라 약병(바이알)들에 주사기(시린지)를 꽂아 원액 약물들을 빼 수액백에 정확한 용량대로 거품이나 불순물이 생기지 않도록 정밀하게 주입했다. 이어 잘 흔들어 섞어줬다. 엔티로봇은 앞으로 항암제 조제 로봇에 인공지능(AI) 기술도 적용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예정에 없던 절차로 약을 급하게 만들어야 할 때도 조제 프로그램을 일일이 새로 짤 필요 없이 로봇이 기존의 지식을 바탕으로 스스로 작업 과정을 창조해낸다. 이 같은 프로그램과 AI, 음압 캐비닛 등 전반적인 솔루션은 엔티로봇이 독자 개발했다. 제품의 약 70% 정도다. 로봇 본체 중 주요 부분을 비롯한 30%는 외산 제품 등을 도입해 제작했다. 아직 국내에는 멸균 로봇 제작을 위한 산업생태계가 없어 불가피하게 일본 제품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항암제 조제 로봇의 높아질 증가세를 감안하면 전문 의약용 멸균 로봇 제조 생태계 기반 구축이 범국가적 민관 프로젝트로 추진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엔티로봇은 이날 지체장애인을 위해 식탁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식사보조 로봇도 소개했다. 소형 로봇팔 2개와 전원 공급, 구동 제어를 위한 본체로 이뤄졌다. 외팔이 주류인 외산과 달리 이 제품도 양팔로 구성돼 한 팔이 밥과 반찬을 집은 뒤 다른 팔이 들고 있는 숟가락에 얹어주면 숟가락을 집은 팔이 장애인의 입에 직접 음식물을 가져다준다. 조이스틱 형태의 조작 장치가 앉은 사람의 얼굴 높이에 있어 두 손을 쓰지 않고도 얼굴의 주요 부위로 누르듯 조이스틱을 조작할 수 있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 -
[로봇이 간다] "로봇산업 생태계 구축하려면, 제조사보다 구매기업 지원해야"
산업 IT 2019.03.31 17:04:24“(두산그룹 경영층은) 저희에게 초기에 수익성보다는 더 큰 그림으로 큰 파이를 만들라는 미션을 줬습니다. 그래서 그룹 차원에서도 저희 회사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27일 경기 수원 고색동 본사에서 이병서(사진) 두산로보틱스 대표는 자신감이 가득한 얼굴로 서울경제신문과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올해 인력과 설비 투자를 한층 더 늘리고 해외 진출 시장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저희 인력의 45% 이상이 연구개발(R&D)인력인데 올해도 굉장히 많이 조직을 확장할 예정”이라며 “요즘 면접을 거의 하루에 2~3건씩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인터뷰에 나오기 직전까지 공장 증설과 증축 방안을 심각하게 논의했다”고 전했다. 현재 두산그룹의 사정이 그리 녹록한 것은 아니다. 근래에 두산인프라코어·밥캣 등의 경영 수익성이 정상궤도로 돌아왔지만 정부가 탈원전정책을 펴면서 예상치 못한 직격탄을 맞은 상태다. 그럼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것에 대해 이 대표는 “두산그룹이 로봇 사업에 뛰어들었을 때부터 세계 시장을 노렸다”며 “저희의 포부는 (글로벌 로봇) 시장에서 괄목할 만한 선도 업체로 성장하는 것인데 계획을 세운 지 5년이 지난 현재까지 큰 차이 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두산그룹은 왜 협동로봇 산업에 주목했을까. 이 대표는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나온 여러 가지 중 로봇만큼 현실에 가까운 것이 없다”고 답했다. 또 “협동로봇은 사람들의 손재주를 모방하기 때문에 굳이 제조업용 산업용 로봇뿐 아니라 물류·서비스 분야로도 펼쳐나갈 수 있는 기초 기반 기술이 된다”고 덧붙였다. 협동로봇 자체의 시장 성장성도 크지만 해당 분야에서 창출되는 파생 기술의 가치도 높다고 본 것이다. 두산로보틱스는 설립된 지 불과 4년밖에 지나지 않은 젊은 기업이다. 더구나 상용제품을 양산한 기간은 이제 1년4개월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유럽에 이어 미국·중국 진출을 추진할 정도로 자신감을 갖는 데는 철저한 시장 현장조사가 바탕이 됐다. 이 대표는 “저희가 제품을 개발할 때 196개 기업을 방문해 경영진부터 제조현장의 작업반장, 그리고 일선의 작업자까지 인터뷰하고 그분들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물어봤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로봇 제조사들의 성장을 위해 정부의 어떤 지원이 더 필요하냐는 질문에 그간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특히 지금은 로봇제조사보다 해당 제품을 구매할 수요자들도 지원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그는 “저희가 하루에도 수차례씩 고객기업 관계자들을 뵙는데 그분들 중 국내 경기에 대해 걱정을 안 하시는 분이 없더라”며 “그러다 보니 로봇을 구매하는 투자에 대해 주저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따라서 정부가 독려해 이들 수요 고객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협동로봇을 구매해 산업현장을 고도화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원=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 -
[로봇이 간다] 20g 무게 느끼고 작업 정밀도 0.1㎜…"사람 곁에서 일해도 안전"
산업 IT 2019.03.31 17:03:24경기 수원역에서 남서쪽으로 4㎞가량 이동하면 고색동 수원산업단지에서 ‘두산’ 로고가 걸린 깔끔한 외관의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두산그룹의 로봇 전문 기업인 두산로보틱스의 본사 겸 생산기지다. 이곳에서는 로봇이 인간을 도와 또 다른 로봇을 만들고 있다. 이렇게 인간의 곁에서 작업을 도와주는 똑똑한 기계를 ‘협동로봇(코봇)’이라고 하는데 제조·서비스 산업의 혁신을 이룰 총아로 꼽힌다. 두산로보틱스의 제품들은 두산인프라코어 인천공장에 설치돼 제조효율성을 크게 높인 사례로 주목받기도 했다. 해당 인천공장은 구내 최초로 정부로부터 협동로봇의 설치 안전 인증을 받은 ‘1호 작업장’이기도 하다. 이 생산기지를 지난 27일 서울경제신문 취재진이 탐방했다. 현장 내부는 기계가 가득한 제조공장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눈을 감고 있다면 마치 독서실이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사람의 팔과 손을 닮은 두산로보틱스의 협동로봇 ‘M시리즈’들이 거의 무소음 수준으로 작동하기 때문이었다. 현장 작업자들은 협동로봇과 불과 1m 남짓한 반경에서 함께 일하지만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 듯했다. 사람과 살짝 닿기만 해도 동작을 순식간에 멈춰 충돌에 따른 부상을 예방하는 기능이 구현된 덕분이다. M시리즈 로봇이 감지할 수 있는 외부 힘의 크기는 0.2뉴턴(N)이다. 불과 20g 정도의 무게만 얹어도 로봇팔이 이를 느끼고 작업자와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급제동한다는 뜻이다. 6개에 달하는 로봇팔의 관절 축마다 힘을 감지할 수 있는 ‘토크센서’가 탑재돼 있어 M시리즈가 이 같은 성능을 구현할 수 있었다. 이 로봇의 동작정밀도는 공식적으로 0.1㎜다. 실제로는 0.1㎜보다 더 미세한 정밀도로 움직인다고 한다. 이 회사 관계자는 “20g이면 사람이 느낄 수 있는 힘의 최소 단위와 비슷한 수준이며 0.1㎜의 작업정밀도 역시 인간 동작의 최소 정밀도 단위와 유사하다”며 “따라서 M시리즈는 사람 수준으로 안전하고 정밀하게 움직인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적이고 어려운 컴퓨터 프로그래밍 지식이 없어도 로봇 본체 및 조작 패드의 버튼을 몇 차례 누르는 것만으로 로봇의 동작 패턴을 자유롭게 입력하고 수정할 수 있다는 점도 해당 제품의 장점으로 꼽힌다. 두산그룹이 로봇 개발을 본격적으로 모색하기 시작한 것은 2014년 12월 무렵이었다. 문제는 연구개발(R&D) 인력 확보였다. 당시는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조차 협동로봇 연구자가 많지 않던 시절이라 전문적인 역량을 갖춘 인재를 확보하기가 어려웠다. 마침 두산그룹은 로봇과 유관한 기계·전기·전자 분야 등의 계열사를 두고 있어 내부 인재를 중심으로 초기에 5명으로 개발팀을 꾸렸다. 개발팀은 이듬해 1월부터 불과 6개월 만에 첫 프로토타입 제품(일명 ‘프로토K’)을 완성했다. 그 와중에 15~20개의 크고 작은 시제품을 만들고 폐기했다. 홍경태 두산로보틱스 수석연구원은 “초기에는 국내 기술로 협동로봇을 개발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프로토K를 완성하면서 국내 기술로 충분히 만들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며 “그 뒤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M시리즈 등 현재의 최종 제품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두산로보틱스의 설립은 프로토타입 개발에 성공한 후인 2015년 8월에 이뤄졌다. 최종 제품은 2017년 말 무렵 양산이 시작됐으며 이듬해 곧바로 해외 진출을 시도했다. 2018년 6월 독일의 자동화기기 전시회 ‘오토매티카’에 M시리즈를 출품한 것이다. 첫 해외 진출 시장을 까다로운 독일 시장으로 정한 까닭에 대해 이 회사의 조수정 마케팅팀 부장은 “독일과 같이 (품질에 대한 기준이 높은) 나라에서 고객의 눈높이를 맞춘 것이 입증되면 이후 다른 국가들에 진출하는 게 쉬울 것 같아서였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유럽의 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 9~10개국에서 우리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고 전했다. 두산로보틱스는 올해 4월 미국에 진출한다. 본지 취재팀이 방문한 시각 본사의 한편에서는 미국 딜러들이 M시리즈 등에 대한 교육을 받고 있었다. 중국시장 공략에도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지난해 12월 19일 중국 최대 산업자동화 솔루션 전문기업인 보존그룹의 링호우(Linkhou)사와 대리점 계약을 맺고 협동로봇을 공급하기로 한 것이다. 홍 수석연구원은 “중국에서는 아직 로봇에 대한 안전규제가 미비해 현지 업체들이 생산한 로봇이 해외 시장에 수출할 정도의 안전성능을 내지 못하고 있다”며 “그에 비해 우리 제품은 (작업자의 충돌 부상을 막기 위한) 안전정지 등의 기능을 국제안전등급상 최고 등급인 퍼포먼스 레벨 E(PL E)를 받아 충분히 경쟁 우위에 있다”고 자신했다. 두산로보틱스는 선진국의 품질과 중국의 저가 공세에 맞설 수 있는 경쟁력을 갖췄다고 자부하고 있다. 특히 안전을 위해 로봇팔이 6개 축마다 정밀 토크센서를 장착했음에도 그렇지 않은 중국제의 가격에도 밀리지 않는 3,000만원대 중후반~4,000만원 중반대의 가격을 갖췄다는 것이다. 이는 자사 로봇을 활용해 수원 제조공장의 생산성을 효율화했고 로봇의 주요 부분 중 상당수를 자체적으로 개발해 단가를 낮추는 데 성공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다만 수출이 아닌 한국 안방 시장에서 협동로봇을 판매하는 데는 제약이 있다. 국내 제조사들은 정부로부터 안전 인증을 충분히 받고 협동로봇을 출시하는데 고객 기업이 이를 구입해 자사 공장에 설치하려면 또다시 ‘로봇설치 사업장 안전 인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규제가 국내 로봇산업 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홍 수석연구원은 “해외 선진국에서는 협동로봇을 구매해 설치하는 사용자가 해당 로봇의 설치가 안전하다는 것에 대해 정부의 인증을 받지 않고 스스로 ‘자가 인정’을 선언할 수 있도록 돼 있다”고 소개했다. 따라서 “한국에서도 제조 과정에서 이미 높은 수준의 안전규격을 인증받은 로봇에 대해서는 사용자가 로봇설치 사업장 안전 인증을 자가 선언할 수 있도록 하거나 최소한 현재의 인증 절차를 사용자의 눈높이에 맞게 쉽게 개선해주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수원=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 -
[로봇이 간다] "로봇 기술 높이려면 반복 테스트 필수..수시로 실증시험토록 규제 풀리길"
산업 IT 2019.03.17 17:10:09“로봇 기술을 높이려면 많이 테스트해서 보완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소방로봇 같은 재난대응 안전로봇은 시험할 만한 화재 현장을 재현하는 게 쉽지 않아요.” 서갑호 한국로봇융합연구원(KIRO) 안전로봇사업단장은 17일 경북 포항 본원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이같이 고충을 토로했다. 정부 연구과제로 세계 최초의 통합소방로봇군단 개발을 진행해 불과 2년여 만에 1차 시제품까지 내놓았지만 정작 성능을 시험할 여건을 확보하는 데 애를 먹었다. 사람이 방화장비를 갖추고도 진입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한의 화재 상황을 연출해야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여건이 아직 충분하지 않고 제도적 규제와 주민들의 민원에 가로막혀 있다는 것이다. 서 단장은 “저희 로봇 개발 현장 주변에는 불·연기를 피울 공간이 없어요. 가상으로 연기를 피우는 상황을 연출해 소방로봇 기술을 만든다고 해도 그래서는 실제로 투입될 화재 현장의 환경하고는 크게 다르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기술을 개발해도 실증하기 어렵다 보니 국산 로봇 부품의 성능과 내구성은 선진국 제품에 비해 시장에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소방로봇 같은 재난대응 로봇의 경우도 로봇 플랫폼 수준에서는 국산화율이 90%대에 이르지만 부품 단위에서는 국산화율이 많이 낮다. 서 단장은 “현재 국내 로봇들의 부품 중 상당수는 유럽·일본 등에서 들여오고 있다”며 “다만 개발 중인 소방로봇이 충분히 실증돼 현장에서 제대로 활용되고 관련 산업계의 매출로 이어진다면 부품 수요도 증가해 국산화율도 그만큼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행히 경상북도와 포항시가 협조해 재난대응 로봇 기술을 실증할 수 있는 시험단지를 구축하도록 돕고 나섰다. 테스트베드를 지어 이를 활용하려는 로봇기업들을 포항 지역 등에 유치하려고 과감히 투자에 나선 것이다. 덕분에 흥해읍 영일만 산업단지 일대에 대지 1만9,800㎡, 건축 연면적 7,508㎡ 규모로 시험단지가 지어지고 있다. 연구실·실험실·실증시험장·교육전시실 등으로 구성된다. 특히 실증시험장은 화재가 발생한 실제 건물의 상황을 재현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를 통해 화재 상황을 재현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지만 또 다른 난관이 남았다. 지역주민들의 민원이다. 서 단장은 “화재실증센터를 만들게 됐지만 여전히 불이나 연기를 피우려면 주변의 동의를 구해야만 해 실험을 연속적으로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소방관들까지 참여하는 소방로봇 실증 작업은 1년에 잘해야 한두 번 하는 데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 단장은 “최소한 실증시설 범위에서만이라도 일부 자유로운 테스트를 수시로 할 수 있도록 규제가 풀린다면 그만큼 개발 로봇의 성능을 높일 수 있고 활용성이 높은 로봇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서 단장은 단순히 기술을 개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이를 실제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써먹을 수 있도록 해야 비로소 결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오는 2022년까지 소방로봇 기술 개발이 완료된 뒤 일정 기간 실제 현장에서 기술 검증을 할 수 있도록 정부를 설득하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아울러 후속 연구과제로 실제 화재 현장을 사이버 공간 등으로 모사한 시뮬레이터 개발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실물 소방장비와 소방로봇을 가상의 사이버 기술 등과 연동해 소방관들이 실제처럼 소방로봇을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비다. 해당 기술을 응용하면 군사훈련용 시뮬레이터 개발 등으로도 이어질 수 있어 파급효과가 크다고 서 단장은 설명했다. /포항=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 -
[로봇이 간다] 정찰로봇이 생존자 찾으면, 장갑차 로봇이 화마뚫고 구출
산업 IT 2019.03.17 17:09:52“화재 발생. 소방로봇 출동!” 경북 포항에 건설된 모의화재 시험 건물. 해당 건물에서 화재 상황이 시연되자 로봇을 실은 지휘통제차량이 최대 시속 100㎞로 현장에 도착한다. 이윽고 5분도 되지 않아 7대의 로봇이 지휘통제차량 트레일러에서 하차한다. 인공지능(AI)을 탑재한 드론 형태의 정찰 로봇과 초소형 궤도차량 형태의 지상정찰 로봇이 각각 2대씩 건물에 진입한다. 정찰 로봇들은 첨단광학 센서와 레이더를 이용해 건물 벽체 너머의 짙은 연기 속에서 생존자를 찾는다. 탐색에 성공하자 장갑차 형태의 로봇이 소방관들을 태우고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든다. 차량에 달린 로봇팔로 건물 벽체와 문을 절단한 뒤 생존자를 태우고 화재 현장을 빠져나온다. 통합운용 시스템이 탑재된 붉은색 트레일러에서는 3명의 관제요원이 탑승해 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로봇 작동을 지휘한다. 이는 우리 정부가 오는 2022년을 목표로 세계 최초로 개발 중인 소방로봇군단 통합 시스템의 청사진이다. 이들 로봇의 1차 시제품 모습과 시연 장면이 서울경제신문을 통해 언론 최초로 공개됐다. 정식 사업 명칭은 ‘국민안전로봇 프로젝트’. 총사업비 680억원이 투입되는 산업통상자원부의 대형 사업이다. 산업연구원(KIET) 전담하에 한국로봇융합연구원(KIRO)이 실무 연구개발(R&D)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 이번 프로젝트는 로봇 플랫폼 4종 개발, 센서 2종 개발, 성능검증용 실증단지 구축 사업으로 이뤄졌다. 4종의 로봇 플랫폼은 지상형·비행형 정찰 로봇, 장갑형 로봇, 지휘통제차량(다중로봇 통합관제 운용 시스템)이다. 해당 로봇들과 연계될 스마트 소방장비들도 행정안전부 소관 R&D 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들 사업까지 완료되면 스마트장비로 무장한 소방관과 로봇이 서로 연동해 화마와 싸우는 ‘통합로봇소방군단’이 탄생하게 된다. 서갑호 KIRO 안전로봇사업단장은 “개별 소방용 로봇 플랫폼은 (미국·일본·유럽 등) 선진국에서 앞서 개발됐지만 이들 플랫폼을 융합 연계해 운용하는 통합관제 시스템 개발은 우리가 세계 최초”라며 “3년 내에 로봇과 통합관제 시스템을 완성하게 되면 기존의 선진국 기술을 앞지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소방로봇군단 개발의 발단은 지난 2008년 12월 40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 이천 GS리테일 냉동물류창고 화재 참사였다. 이후에도 대형 화재와 각종 안전사고가 잇따르자 정부는 2016년 소방로봇 개발에 시동을 걸었다. 4종의 소방로봇 플랫폼에 탑재될 2종의 센서(농연가시화 센서, 인명탐지 센서)는 6월 개발이 완료된다. 농연가시화 센서는 짙은 화재 연기로 육안이 막힌 캄캄한 공간에서도 생존자와 주요 열원을 볼 수 있게 해준다. 공상과학(SF) 영화 ‘더 프레데터’에서 외계인이 헬멧의 적외선 영상 등으로 어둠 속에서도 사물을 보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KIRO의 광학 센서는 이보다 진화됐다. 해당 센서에 적용된 AI가 현장의 연기·먼지·조도 등 상황을 판단해 다양한 광원을 최적의 상태로 조합해 식별 가능한 영상으로 보여준다. 해당 센서는 정찰 로봇과 장갑 로봇에 장착된다. 인명탐지 센서는 일종의 레이더다. 어떤 광학 센서로도 도저히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전파를 쏴 반사돼 오는 신호를 분석해 주변을 탐색한다. 벽 뒤나 건물 붕괴 잔해물 등에 묻힌 생존자도 감지할 수 있어 복잡한 건물에서 소방관이 불길이 역류(백드래프트)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일일이 문을 열거나 잔해물을 뒤지며 수색하는 작업을 줄일 수 있다. 4종의 로봇 플랫폼도 투박한 형태지만 첫 시제품이 최근 제작됐다. 완성 형태의 최종 시제품은 내년부터 로봇에 따라 순차적으로 나올 예정이다. 그중 정찰 로봇 플랫폼에도 AI가 적용된다. 덕분에 관제요원이 일일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입력된 임무에 맞춰 알아서 경로를 탐색하고 정보를 전달한다. 특히 비행정찰 로봇의 경우 연기 등으로 건물 내부구조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내부를 직접 탐색 비행하며 지도를 제작해 소방관들이 진화 및 인명구조 경로를 짜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장갑 로봇의 경우 운전자를 포함해 최대 4명의 소방대원을 태울 수 있다. 소방관들은 화재 현장 낙하물과의 충돌, 화염 등으로부터 보호받으며 건물에 진입할 수 있다. 차량 전면에 2개의 로봇팔이 달리는 데 5~6가지의 손 모듈을 용도별로 바꿔 달 수 있다. 손 모듈의 종류에 따라 벽이나 문을 절개하고, 틈새를 벌리고, 생존자를 덮친 건물 잔해 등을 들어 올리거나, 손으로 집어 부술 수 있다. 장갑 로봇 운전석에는 조종요원이 양팔에 찰 수 있는 로봇팔이 달려 있는데 이를 움직이면 차량 외부에 달린 거대한 로봇팔이 그 동작을 흉내 내며 똑같이 움직인다. 조이스틱이나 버튼으로 조작하는 것보다 훨씬 쉽고 정교하게 로봇팔을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로봇팔은 유압장치를 활용해 500㎏까지 들어 올릴 수 있다. 서 단장은 “이번 사업이 기업들에는 선진적인 기술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라며 “이번 연구과제로 직접 개발된 기술은 개발에 참여한 기업들에 우선적으로 이전하고 제품화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포항=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 -
[로봇이 간다] 협동형 로봇 왜 대세인가
산업 IT 2019.03.03 17:18:33산업계가 공장과 서비스 현장의 자동화에 나선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산업용 로봇의 도입은 아직 제한적이다. 반도체·자동차 분야 등 주력 산업 분야의 대기업들이 주로 이용하는 수준이다. 아직은 로봇이 인간처럼 정교하고 복잡한 동작을 할 만큼 기술적 발전을 이루지 못한 측면도 있지만 경제·사회적 요인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사용자인 기업의 입장에서는 로봇 구입·운용 비용이 부담스럽고 근로자의 입장에서는 일자리를 기계에 빼앗길까 봐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협동형 로봇(코봇)은 이 같은 난제를 풀 수 있어 최근 로봇 산업계의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코봇은 사람을 돕는 로봇이다. 따라서 근로자의 일자리를 빼앗기보다 생산성을 높여준다. 미국 기업 아마존의 경우 방대한 물류창고에서 화물을 정리하고 탐색하는 업무를 돕는 코봇을 도입해 근로자들의 생산성 향상을 꾀했다. 현대자동차도 자사 생산현장에 장시간 서서 차체 조립 등의 고된 일을 하던 근로자들이 앉아서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돕는 의자형 협동 로봇을 미국 현지 공장에 시범적으로 도입해 눈길을 끌었다. 생산성이 높아지면 그만큼 기업의 수익성이 향상되며 고용 창출 여력도 나아지게 된다. 그뿐 아니라 로봇 산업계에서도 협동 로봇을 개발·제조하는 것은 물론 판매와 운영유지 서비스를 제공할 인력을 더 필요로 하게 돼 전후방에 일자리 창출 효과가 생기게 된다. 코봇은 고용적대적이라기보다 고용친화적이라는 뜻이다. 코봇의 가격대도 많이 낮아졌다. 한 팔짜리 산업용 협동 로봇의 경우 초창기에는 대당 1억원대에 육박했으나 현재는 미국·독일·스웨덴 등 선진국 제품의 경우 보통 3,000만~4,000만원대, 중국산은 2,000만원 안팎의 수준까지 낮아졌다고 한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최근 개발한 협동 로봇 모드맨은 두 팔을 가진 보다 정교한 로봇임에도 앞으로 상용화에 성공하면 한 팔짜리 해외 제품들과 겨룰 수 있는 수준의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 -
산업현장 누비는 변신로봇 …'한국판 트랜스포머' 떴다
산업 IT 2019.03.03 16:45:35지난 2월28일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로봇·미디어연구소에서는 연구진이 최근 기술 개발을 마친 토종 로봇의 다음 단계로 상용화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사람의 상반신을 닮은 로봇 ‘모드맨’이다. 사용자가 원하는 용도에 맞게 산업용 로봇 팔을 마음대로 조립해 이어 붙일 수 있는 신개념 ‘DIY로봇(Do It Yourself robot)’이다. 모드맨이 언론을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개발 완료 후 이번이 처음이다. 모드맨은 산업현장에서 근로자를 도와 제품의 생산을 돕는 용도로 만들어졌다. 이런 유형을 협동로봇이라고 통칭한다. 모드맨과 같은 DIY 방식의 협동로봇이 주목받는 이유는 높은 ‘가성비’다. 산업현장에서 서로 다른 동작으로 작업하는 일반 협동로봇 여러 대가 할 일을 DIY 방식의 협동로봇이라면 한 대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 각각 다른 여러 작업을 할 수 있는 손과 팔 부품들이 마음대로 떼었다 붙일 수 있는 모듈 형태로 돼 있어 사용자가 원하는 형태로 조합해 조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모드맨은 양팔을 6~7개 축까지 이어 붙일 수 있다. 팔 모듈과 손 모듈을 앞뒤 구분 없이 다양하게 조합할 수 있다. 조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모드맨의 동작과 속도·힘 등이 달라진다. 자동차에 비유하자면 한 대의 차량이 재빠른 소형차가 되기도 하고 힘 좋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으로 변신하기도 하는 셈이다. 모드맨의 강점은 간편한 팔·손 부품의 탈착에 있다. 각각의 팔·손 모듈 연결부위를 간단히 돌려 풀거나 조이니 탈착이 쉽게 이뤄졌다. 시연 장면을 보니 불과 1분여 만에 작업자 2명이 모드맨을 조립해 완성했다. 작업자 혼자라도 2~3분 정도면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연결부위를 암수 모양으로 구분하지 않고도 ‘무성별’ 모듈들이 견고하게 결착됐다. 이처럼 암수 구분이 없는 모듈 간 연결부위 결착 기술은 이번에 모드맨 연구진이 이룬 독보적 개발 성과인데 국제표준으로 채택될 수 있도록 관련 기관에 신청된 상태다. 이우섭 KIST 선임연구원은 “이번 기술이 국제표준으로 채택되면 선진국 기업들도 우리 기술을 따르게 된다”고 말했다. 모드맨에 반영된 기술적 성과는 소프트웨어(SW)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모드맨 개발진은 팔·손 모듈 등이 어떤 조합으로 연결되더라도 최적의 움직임을 계산해 동작시킬 수 있는 제어용 SW엔진을 개발했다. 로봇 팔의 움직임은 관절의 회전운동을 직선운동으로 전환해주는 사인-코사인 삼각함수의 계산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 삼각함수와 행렬을 조합한 수학식을 SW엔진이 자동으로 산출해 어떤 모듈 조합의 움직임이라도 간편하게 제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삼각함수와 행렬 등을 조합해 로봇 제어용 계산식을 자동으로 구축하는 SW엔진 개발 기법은 이미 다양한 논문으로 학계에서 제안돼왔지만 이를 실물 하드웨어로 구현해 실제로 동작할 수 있도록 로봇 시스템을 만든 것은 모드맨 개발팀이 최초라고 이 연구원은 소개했다. 모드맨 개발이 시작된 2014년 당시만 해도 협동로봇이라는 개념은 관련 연구자들 사이에서조차 생소했다. 이후 불과 5년 만에 국내 연구진은 핵심 기술을 자립시켰다. 이 연구원은 우리나라의 협동로봇 기술 수준에 대해 “(로봇 선진국인) 미국·일본·독일·스웨덴 등의 턱밑까지 추격했다”며 “어느 부분에서는 선두 그룹에 들어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협동로봇 부품 생산현황에 대해서는 “차츰 국산화가 되고 있어 경제성 측면에서도 확실히 선순환 구도가 만들어지고 있다”며 “예전처럼 로봇을 만들려면 다 외국 부품을 써야 하는 문제는 많이 개선됐다”고 전했다. 특히 모드맨에 대해서는 “(상용화할 경우) 이 안에 들어가는 부품들은 이미 100% 국산화돼 있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모드맨이 상용화된다면 국내의 관련 산업계는 상당한 전후방 경제효과를 보게 될 수 있다고 그는 내다봤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 -
[로봇이 간다]이우섭 KIST 로봇 선임 연구원 "상용화할 기업에 기술이전…국내 넘어 수출도 노려
산업 IT 2019.03.03 16:45:09“모드맨은 상용화 가능성을 고려해 완성도 있게 만들었습니다. 상용화할 기업들에 기술을 이전할 준비도 마쳤습니다.” 이우섭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로봇·미디어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지난 2월28일 연구소에서 서울경제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감을 나타냈다. 연구소나 대학 등은 경제성·실용성을 도외시하고 학문적·기술적 문제에 치우치기 쉬운데 이번 연구개발(R&D) 사업은 시작 단계부터 ‘돈이 되는 로봇’ ‘산업현장에서 쓰임새 있는 로봇’을 목표로 추진됐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 기업으로의 기술 이전 작업은 이번주부터 본격화한다. 이 연구원은 “이번 모드맨 기술 개발 사업에서는 KIST가 책임기관의 역할을 맡았지만 후속 단계로 모드맨을 상용화하기 위한 과제 사업은 국내 중견·중소 로봇 기업이 주관하고 KIST와 연구기관·대학 등이 협력하게 된다”며 “이번주에 관련 기관 등이 모여 모드맨을 상업용으로 더 발전시키기 위한 (아이디어를) 발제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드맨 개발은 2013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KIST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한국기계연구원(KIMM), 성균관대의 로봇 분야 정예 연구진이 함께 모여 당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생소했던 산업용 ‘협동 로봇(코봇)’ 시장의 발전 방향에 대해 논의를 했다고 한다. 그 결과 제조 업체를 비롯한 사용자가 자신의 목적에 맞게 자유롭게 조립해 쓸 수 있는 로봇, 즉 DIY(Do It Yourself) 방식의 협동 로봇을 개발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이 연구원은 전했다. 이 같은 공감대를 바탕으로 모드맨 개발 사업이 2014년 8월 개시됐다. KIST 의료로봇연구단장이기도 한 강성철 박사가 해당 프로젝트의 총괄책임을 맡았고 이 연구원은 해당 R&D의 실무 책임을 맡았다. 모드맨을 개발하면서 참여했던 국내 연구진의 역량이 높아지고 인재 풀도 커졌다. 이 연구원은 “각 기관이 로봇과 관련해 잘하는 분야들이 있다”며 “필요할 때는 모이고 때로는 선의의 경쟁을 하는 좋은 관계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협동 로봇은 (산업현장에서 사람과 함께 근접거리에서 작업을 하기 때문에) 동작제어용 소프트웨어(SW) 알고리즘뿐 아니라 안전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 두 가지를 모두 다룰 수 있는 인력들이 국내에서도 슬슬 양성돼 연구현장으로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성된 로봇 개발 인재 풀이 넓어지다 보니 단순히 로봇 전문 연구소나 로봇 전문 기업에만 취업하기보다 로봇과 관련된 기술을 필요로 하는 다른 분야의 산업체로도 취업하고 있다. 이 연구원은 “최근 저희와 협동 로봇을 개발했던 인재가 KIST를 졸업한 후 D건설사에 취업하기도 했다”며 “그런 친구들이 건설기계 등 여러 분야에서 로봇이 다변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연구원은 국내 기업들이 협동 로봇을 상용화해 제품화하는 과정에서 좁은 내수시장을 극복하는 것이 과제라고 분석했다. 그는 “중국의 경우 (자국산 로봇을) 외국에 수출하지 않아도 내수시장만으로 중소기업이 1,000대 이상씩의 협동 로봇을 팔 수 있다”고 소개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내수시장이 작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다”며 “그래서 로봇을 개발하면 처음부터 수출까지 생각해서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행히 국내 로봇 기업들은 초기부터 수출경쟁력을 고려한 덕분에 제품 차별화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이 연구원은 유명한 스웨덴제 협동 로봇을 소개한 뒤 “이 로봇의 경우 토크(기계에 걸리는 부하의 단위)를 측정하는 센서가 내부에 들어가 있지 않지만 국산 D사가 만든 로봇의 경우 센서를 내장해 성능을 한층 높이기도 했다”는 사례를 들었다. 이 연구원은 “국내 협동 로봇의 발전 속도가 매우 빠르다”며 “휴대폰 등의 생산 공정도 점차 로봇화가 진행되고 있는 추세여서 (협소했던) 국내 협동 로봇 시장의 발전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전망했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
이시간 주요 뉴스
영상 뉴스
서경스페셜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