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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경제]"오직 유명희”...부담스런 美의 응원

총장선거...미국 대 중국·EU 싸움으로 변질

“고래 싸움에 낀 격”...난감한 유명희

미국 대선이 변수될까





“미국은 유명희 본부장을 차기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으로 선출하는 것을 지지한다.”

지난 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차기 수장으로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지지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회원국 선호도 조사 결과에 따라 응고지 오콘조이웰라 나이지리아 전 재무장관을 수장으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자 즉각 제동을 건 것입니다. ‘고해’로 불릴 만큼 비밀주의가 특성인 선거 절차에서 이처럼 공개적인 의견을 낸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WTO 내 막강한 영향력을 갖는 미국의 돌발행동에 차기 사무총장 인선 절차는 안갯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미국 대 중국·유럽연합(EU)=미국이 이같이 나선 배경에는 WTO 내 대립구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척을 진 회원국은 한둘이 아닙니다. 미국과 전방위 패권 경쟁을 벌이는 중국이 우선 거론됩니다. 중국은 2001년 WTO에 가입하면서 수출이란 강력한 엔진을 장착, 개방형 경제 정책을 통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의 반열에 올라섰습니다. 미국은 WTO가 중국에 편향적이며 중국의 불공정한 통상 관행을 막지 못하고 있다고 줄곧 비판해왔습니다.

EU와의 관계도 녹록지 않습니다. EU와 미국은 보잉과 에어버스에 대한 불법보조금 지급을 문제를 포함해 여러 현안을 놓고 이전부터 부딪혀왔습니다. 여기에 최근 트럼프식 일방주의로 양측의 골은 전례 없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WTO에서 무역분쟁에 대해 최종적으로 판정을 내리는 상소기구의 위원 임명을 계속 막아 기능을 마비한 데 강한 반감을 품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헌데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 눈엣가시 같은 중국과 EU가 한데 뭉쳤습니다. 차기 사무총장 선거에서 양측이 응고지 오콘조이웰라 나이지리아 후보를 지지하고 나선 것입니다. EU는 과거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수탈한 역사가 있고, 현재 여러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중국 역시 오랫동안 아프리카에 거액을 투자하며 공을 들여왔습니다. 중국, EU와 이해관계로 얽힌 아프리카 출신 후보가 들어서면 WTO 내 자신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는 게 미국의 판단인 듯합니다.



중국과 EU가 동시에 아프리카를 후보를 지지하는 게 미국으로선 못마땅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설상가상 회원국 선호조사가 끝난 직후 WTO 사무국이 오콘조이웰라 후보를 차기 수장으로 기정사실화하는 상황. 미국이 관례를 깨고 공개적으로 비토권을 행사하기로 결정한 배경입니다. 한 통상 전문가는 “선호도 조사 결과 아프리카 후보로 표가 쏠리긴 했지만 이후 이견을 듣는 절차가 생략돼 미국이 공개적으로 나선 것”이라며 “만에 하나 트럼프가 재선되면 사무총장 인선이 기약없이 미뤄질 수 있다고 보고 EU 쪽에서 총장 인선을 서두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비토권 이후...미국 대선이 변수=WTO 최대 주주인 미국의 실력 행사에 선거 판세는 크게 뒤틀리고 있습니다. 미국이 입장을 굽히지 않으면 차기 사무총장 인선이 무기한 미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비토권의 지속 여부는 임박한 미국 대선에 달려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연임할 경우 미국은 지금보다 더욱 노골적으로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반면 조 바이든 후보가 대권을 쥔다면 상황이 달라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중국을 경계하는 기조는 민주당과 공화당을 가리지 않고 폭넓게 깔려 있다”면서도 “국제 협력관계를 중시하는 바이든 후보의 성향을 고려하면 WTO를 마비시키려고 하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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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싸움에 낀 격”...난감한 유명희=사무총장 선거가 강대국간 힘 싸움으로 변질되면서 통상당국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의 지원으로 유 본부장은 다시 한 번 역전극을 꿈꿀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표심이 한 쪽으로 쏠리면 패한 후보는 자진 사퇴하고, 회원국간 협의를 거쳐 만장일치로 총장을 세우는 게 그간의 관례였습니다. 거취 고민이 길어지면 다른 회원국으로부터 ‘한국이 미국 편에 서서 국제기구를 무력화한다’는 비판이 쏟아질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발을 빼기도 쉽잖습니다. 유 본부장이 물러나면 ‘혈맹’ 미국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질 판입니다. 회원국간 알력 다툼 와중에 한국을 향한 미국의 강력한 지지는 ‘참전 요구’가 돼버렸습니다. 이번 선거에 관여하는 한 관계자는 “이 정도로 선거판이 뒤흔들릴지 몰랐다”며 “(유 본부장의 거취를 포함해) 우리 뜻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세종=김우보기자 ub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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