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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논단] 의료시장 진화해야 한다

시장개방·경쟁체제로 의료환경 급속하게 변화<br>열정·도전 막는 족쇄 풀어 약점 보완, 장점은 살려야


생물체는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진화한다. 다른 환경에서는 다르게 진화하면서 종이 분화한다. 시장도 생물체와 유사하지만 환경 변화에 더 민감하게 적응하면서 진화한다. 의료 시장도 마찬가지다. 고대 인류의 원초적인 의료 시장이 근대로 넘어오면서 지역에 따라, 국가에 따라 다르게 진화했다. 수많은 보건학자들이 이상적인 의료 시장을 꿈꾸고 제안하지만 진화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상적인 모델이란 것은 없다.

우리나라의 의료 시장은 여러모로 많은 보건학자들이 흠모하는 유럽의 의료 시장과는 판이한 모습으로 진화했다. 공공병원이 주류인 유럽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민간병원이 시장을 주도한다. 주치의로부터 3차 병원에 이르기까지 단계적으로 환자를 의뢰하는 체계가 우리나라에서는 유명무실하다.

환자가 원하면 언제 어디서나 어떤 병원이든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고 병원은 의료 시장의 진입과 퇴출이 자유롭다. 환자와 병원 모두에게 편리한 시장으로 발전했다. 자유로운 경쟁의 결과 환자들이 대형 병원으로 쏠리고 병원이 없는 의료 사각지대가 발생했다. 치열한 경쟁으로 의료 수준이 고급화하고 수술 기법이 고도화ㆍ첨단화됐다. 동네 의원도 생존하기 위해 고급화하고 첨단기술로 무장하고 피부ㆍ비만 관리까지 영역을 넓혀갔다.

환경 변화에 따라가지 못한 공공병원이 소비자 외면으로 적자가 누적되는 상황이 이어지자 진주의료원 사태가 터졌다. 허리 역할을 하던 중소 병원의 역할이 애매해지면서 요양병원으로 전환하거나 전문병원으로 업종을 전환하기도 했다. 척추관절 전문병원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지나친 수술을 조장한다는 사례도 나왔다. 의료기관이 별 제한 없이 시장에 진입하게 되면서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의료직능 간의 영역 갈등이 표출되기 시작했다. 한방은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원하고 양방은 한방 침과 유사한 시술기구 사용을 주장한다. 내과는 첨단영상장비와 최소침습기술로 외과 영역을 이미 넘보고 있다.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했던 천연물 신약을 두고 양ㆍ한방 간 영역 갈등이 불거졌다.



국내 의료 시장이 점차 포화 상태에 들어가자 해외 환자를 유치하기 시작했다. 성형과 건강 검진에 이어 고도의 수술 분야까지 관광을 겸한 해외 환자는 급속히 증가했다. 그러나 해외 환자 유치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병원들이 앞다퉈 해외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마치 1970~1980년대의 수출입국 시대를 방불케 한다. 의료산업은 과거 정부에서는 신성장동력 산업으로, 현 정부에서는 창조경제 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러나 의료 시장 개방과 산업화를 향한 진화는 종종 의료 민영화의 폐해를 우려하는 이념적 프레임에 발이 묶인다. 의사의 손을 거치지 않고 진단ㆍ진료받을 수 있는 유헬스(U-health)는 의사단체의 반대로, 의료정보의 융합은 개인정보 보안 때문에, 의료법인의 해외 진출은 비영리라는 족쇄 때문에, 외국 병원의 국내 진출은 의료 민영화 프레임에 갇혀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의료 시장에서 제약과 의료기기에 이어 의료 서비스도 글로벌화하고 있다. 의료 개방과 의료 쇄국 사이에서 갑론을박하는 사이 겁 없이 진화하는 중국 의료 앞에 우리가 당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어찌됐건 우리 나름의 진화 과정에서 우리 의료 시장은 강점과 약점을 동시에 안게 됐다. 무릇 강점은 보이지 않고 약점만 보이게 마련이다. 약점을 보완하는 구실로 강점을 죽여서는 안 된다. 우리 의료 시장 내부의 갈등과 열정을 좋은 방향의 진화로 이끌어야 한다. 이윤만을 추구하는 의료 상업화는 기형화된 의료 시장을 낳기 때문에 강한 규제가 필요하고 공공병원은 과거의 공공의료 프레임에서 벗어나 공익적 가치와 특화된 경쟁력을 갖춘 진화를 모색해야 한다. 우리 의료 시장의 열정과 도전을 가로막는 족쇄는 풀어야 한다. 우리 의료 시장은 부단히 진화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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