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에 디플레이션 경보가 발령됐다. 지난달 소비자 물가가 사실상 사상 처음 마이너스(-0.1%)로 떨어지자 물가가 하락하고 경기가 둔화하는 디플레이션의 정의에 근접했다는 우려가 커졌다.
디플레이션 상태에서는 공급보다 구매력이 떨어져 제품이 팔리지 않는다. 기업은 투자는 물론 인력을 줄이고 그 결과 실업자가 양산되며 경기가 불황의 나락으로 빠져든다. 미국의 1929년 대공황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미국에서는 물가가 3년여에 걸쳐 30% 가까이 하락했고 실업자가 1,000만명 이상 급증했다. 경제 규모는 3분의2로 쪼그라들었다. 한마디로 나라가 거덜 났다.
이 같은 디플레이션의 무서움을 알기에 정부가 40조원 넘게 재정을 쏟아붓고,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사상 초유의 1%대로 인하하고,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경제5단체장을 직접 만나 임금인상을 요청하는 무리수를 두는 것이다.
충격적인 마이너스 물가에 대해 전문가들은 저유가 등 공급 요인이 컸지만 실상은 실물경제의 역동성이 떨어지고 경기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소비심리가 위축됐기 때문으로 파악한다.
경제 살린다며 기업엔 규제 족쇄
여기에 국민들의 핵심 소비 창구인 대형마트의 영업을 규제한 점이 소비 기피와 저물가 고착화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근 3년간의 출점 규제와 영업시간 제한은 물론 월 2회 일요 강제 휴무로 인해 상상 이상으로 소비가 급감했다는 것이다. 한 증권가 애널리스트는 "전국 500여개에 이르는 대형마트가 그것도 가장 손님이 많은 일요일에 두 번씩이나 문을 닫으니 내수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예컨대 통상 일요일 대형마트의 고객 결제건 수가 1만건을 넘어서고 평균 구매금액이 5만원 전후라고 보면 산술적으로 매달 5,000억원 안팎의 내수가 증발하고 있는 셈이다. 당연히 대형마트의 수많은 협력사를 비롯해 농가·지역민의 소득이 감소하고 씀씀이도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얘기다. 실제로 2012년 4월 규제의 칼날을 앞세운 유통산업발전법이 개정된 직후부터 대형마트는 지난해 말까지 무려 11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 중이다. 지갑을 열지 않게 되는 심리가 소비 전반으로 확산된 탓에 지난해 백화점 매출도 10년 만에 처음으로 뒷걸음질(-1.9%)쳤다.
얼마 전 만난 한 대형마트 점장은 "영업하는 일요일 사무실에 전화가 많이 걸려오는데 대부분이 영업 여부를 묻는다"면서 "고객들이 격주 휴무를 헷갈려 해 영업하는 일요일까지 지장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소비를 장려해도 모자랄 판에 정부가 앞장서 소비를 막고 있으니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돼가는 느낌"이라고 답답해했다.
비정상적인 상황은 이뿐만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기업하기 좋은 여건을 만들기 위해 규제를 혁파해 내수를 부양하겠다고 천명했지만 관련 공무원들은 총대 메기를 거북스러워하며 꿈쩍도 않고 있다. 게다가 서울고등법원에서 '대형마트의 영업규제는 위법'이라고 1심을 뒤집는 판결을 내렸는데도 포퓰리즘에 현혹된 정치권, 편향된 시각의 소상공인, 당리당략에 휩쓸리는 지방자치단체 등의 장벽은 여전히 굳건하다.
더 개탄스러운 일은 정부의 경제 살리기와는 정반대로 정치권의 내수 죽이기가 자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을지로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발의한 유통법 개정안과 위헌 소지를 뻔히 알면서도 정치권이 의기투합해 통과시킨 김영란법이 그것이다. 아웃렛 규제는 중소 아웃렛과 지역 상권을 살리겠다는 취지지만 결국 대형마트 규제처럼 지역 일자리는 물론 고사위기에 놓인 국내 패션업계의 소비 창구마저 없애는 우를 범할 것이라는 비판이 많다. 소비 빙하기를 몰고 올 김영란법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정부·정치권 엇박자에 성장동력 훼손
'교각살우(矯角殺牛)'. 쇠뿔을 바로잡으려다가 소를 죽인다는 뜻으로 흠을 고치려다가 정도가 지나쳐 도리어 일을 그르친다는 말이다. 정부와 정치권의 엇박자 속에 우리 경제의 내수가 교각살우처럼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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