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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내가 금융지주 회장 할 겁니다"


조준희 기업은행장. 그는 한국 금융산업의 역사에서 '이단아'다. 사실 그가 은행장에 오른 것부터가 이단이었다. 그가 앉아 있는 을지로 본점의 9층은 관료들의 놀이터였다. 1급에 올라간 뒤 장관의 희망이 없는 모피아는 한번쯤 기업은행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면서 희망을 품어 보았을 것이다. 수많은 모피아들이 인사 놀이를 하는 동안 수천, 수만의 기업은행인들은 은행장 자리를 성역으로 알고 살아왔다.

지난 2010년 12월. 그가 은행장 자리에 오를 당시 사람들은 놀라움 속에서도 '그럴 수 있다'는 평가를 했다. 쟁쟁한 관료들을 물리쳤지만 이내 그의 고향을 떠올린 것이다. 현 정권의 지나간 실세 중 한 명의 고향이 '상주'였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도움 덕분이려니 폄훼하고 싶어했다. 은행 최초의 공채출신 은행장이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자랑했지만 과천과 여의도의 모피아들은 "내부 출신이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며 대놓고 비웃었다.

새로운 실험으로 청량제 역할

그만큼 그는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은행장에 올랐다. 비단 '인간 조준희' '기업은행인 조준희'가 아닌 한국 금융사에서 중요한 실험을 시작한 것이다. 그가 삐끗하는 순간 기업은행은 다시 한번 퇴물 관료의 정거장이 될 것이 뻔했고 그것은 우리 금융산업에 불행의 낙인을 찍는 일이었다. 때문일까. 호방함과 환한 웃음이 트레이드마크인 그지만 행장 자리를 맡은 후 한동안 그의 얼굴은 박제된 듯 굳었다.

은행장에 오른 지 2년 남짓. 세인은 그를 어떻게 평가할까. 호평과 비판의 편린들이 조합돼 있겠지만 적어도 은행장 자리를 흔드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의 고향을 얘기하는 사람도 없다. 각종 금융 시상식에서 그는 단골 수상자가 됐다. "왕후 장상의 씨앗이 따로 없다"는 그의 철칙은 '인사의 달인'이라는 평가로 이어졌다. 모든 대출금리를 한자릿수(9.5%)로 내리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더니 기어이 실행해냈다. 명절에 은행 소속도 아닌, 용역회사의 청소 아주머니들에게 전통시장 상품권을 주는 '따뜻한 금융'의 참모습을 수행했다.

신문 기사로서의 부적합함을 무릅쓰고 그의 행적을 일방적인 칭찬 위주로 나열한 것은 조 행장 개인을 띄우기 위함이 아니다. 우리 금융산업이 정말로 나아갈 길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되새기려 함이다.

많은 금융인은 현 정권 5년을 '암흑기'라고 말한다. 가뜩이나 후진 수준인 금융산업에 '정치금융'이라는 더러운 분칠을 했기 때문이다. 대형 금융산업의 최고경영자(CEO) 자리가 모조리 정권의 측근들로 채워지고 금융당국의 수장이 인사권을 잃어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금융인들은 한숨을 쉬기에 바빴다. 별볼일 없는 금융 공기업의 수장 자리까지 청와대가 일일이 낙점하고 남은 몇 자리를 적선하듯이 금융위원장에게 주는 처참한 모습이 바로 현 정권의 초상이었다.



정치금융 이젠 떠나보내야 할 때

한달 뒤면 들어설 새 정권을 앞두고 벌써부터 정권 실세를 등에 업고 지주회사 회장 자리를 탐내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이 정권이 뿌린 비극의 씨앗이 얼마나 독했는지 알게 한다. 여당 핵심 인사의 측근이라는 인물이 "차기 KB금융지주 회장 자리는 내 것"이라며 돌아다닌다니 참담하기까지 하다.

지금 우리가 '은행장 조준희'를 떠올리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관료 출신, 그리고 정권 실세를 타고 내려온 힘 있는 낙하산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훌륭하게 은행경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보여줬다.

현 정권이 만들어낸 지저분하고 지긋지긋한 인사 놀음과 정치금융, 이젠 그 끝을 볼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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