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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먼저 떠난 친구들에게 조의를 표한다

박연우<문화레저부 차장>

“엄마 맘 편히 사세요.” “시험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중간고사의 계절’인 4월에 10명이 이런 말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올들어 벌써 20명의 청소년이 ‘성적 비관’으로 자살했다. 교육인적자원부 게시판에는 입시교육ㆍ경쟁교육에 대한 절규가 넘친다. “좋은 문제집은 훔쳐가고 필기한 노트를 찢어가고 친구에게 오답풀이해주는 것은 일상이 됐다.” “시험기간 하루하루가 피튀기는 전쟁입니다. 친구이기 이전에 우리는 모두 적이 돼버렸습니다.” 같은 반의 짝꿍조차도 적으로 만들어버리는 입시교육의 공포 속에서 자신들을 ‘저주받은 89년생’이라고 부르는 고1 학생들이 지난 7일 광화문에서 ‘입시 경쟁교육에 희생된 학생을 위한 촛불 추모제’와 함께 ‘내신등급 상대평가제 반대’를 외친 2시간여의 집회를 평화적으로 잘 치러냈다. 400여명의 학생들이 참가한 추모행사장은 ‘청소년이 주인이다’고 외치는 청소년들의 함성으로 가득했다. “먼저 떠난 친구들에게 조의를 표한다”는 참석자들의 발언 이후 한 여학생은 “어른들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내용에 억눌려온 시대의 종말을 선포하기 위해 우리가 모인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한 뒤 “언제까지 두발 단속을 당하고 발목 양말 벗겨지는 일을 감수하며 숨죽이고 살 수 없으니 학교로 돌아가 뜻을 모으자”고 외쳤다. 한 참석자는 “우리는 등급에 따라 나눠지는 돼지고기도 아닙니다. 친구를 밟고 올라가야 하는 입시제도는 학생들끼리 ‘배틀로얄(무인도에 납치된 학생들이 벌이는 생존게임을 그린 일본영화)’하라는 소리다. 몇백명을 죽여 겨우 1등급을 받은 학생들이 과연 행복할까요.” 얼마나 공부와 대학입시라는 절박한 상황이 몰아붙인 심리적 압박에 시달렸으면 그들이 이곳에 모였을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저몄다. 참석한 일부 학생은 “실업고 전학을 생각한다. 우리 반 30명 정원에 3명은 실업고로 옮기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 중이다”고 말했다. 실업고 특례입학을 위해서다. 내신에 대한 지나친 압박은 결국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수단으로 내신이 전락했기 때문이다. 절대평가제에서 상대평가제로 바뀌면서 어려워진 시험문제와 점수 몇점에 등급이 바뀔 수 있다는 불안감이 학생들을 거리로까지 나서게 만들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9년을 절대평가받아왔던 학생들에게 바로 상대평가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가 한사람의 인생을 결정하는 우리의 학벌만능주의에 기반한 사회구조를 그대로 놔두고 정책만을 바꾸는 정부는 이제 현장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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