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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라 메르켈(54) 독일 총리의 얼굴에 요즘 그늘이 지고 있다. 지난해 여름 미국에서 발생, 확산된 글로벌 신용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유럽 경제를 견인해온 독일 경제가 올 2ㆍ4분기에 전분기 대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해 자칫 미국처럼 경기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2005년 11월 총리로 취임한 이래 2년 남짓 독일 경제의 르네상스를 이끌어 왔다는 그에 대한 평가가 물거품으로 돌아갈 공산이 커진 것이다. '독일판 마거릿 대처'라는 별명을 얻은 그는 강력한 개혁 정책으로 독일 경제를 유럽의 '환자'에서 '성장엔진'으로 거듭나게 했다는 찬사를 받아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던 메르켈의 독일 경제가 유럽경제를 선도적으로 끌어내리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 경제에 불길한 징조가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하자, 메르켈 총리도 다급해졌다. 그는 지난달 23일 기자회견에서 "독일은 고유가로 인한 높은 인플레이션에 직면했고, 실업률 하락세도 조만간 끝날 것"이라며 "독일 경제가 앞으로 힘든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경기 하강 가능성을 인식했다. 세계 1위 수출대국인 독일 경제가 지금까지 용케 글로벌 신용위기의 각종 악재들을 피해왔지만, 미국에서 유럽 및 아시아 전역으로 퍼지고 있는 경기 침체와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영향권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인정한 셈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독일의 2ㆍ4분기 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1%를 기록할 것"이라며 "최근 14분기 연속 플러스 성장을 계속해 왔음을 감안하면 충격적인 수치"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메르켈도 자칫 무너질지도 모를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외풍에서 비롯된 이번 경제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그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늘리고, 사회보장보험료, 퇴직금 등 비임금 노동비용을 줄이는 조치를 단계적으로 취하겠다"고 밝혔다. 메르켈로서는 이번 경제 위기의 극복 여부에 따라 내년 9월 총선에서 승리해 재집권할 수 있는지 여부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일판 철의 여인'이라 불리며 독일 경제의 황금기를 이끈 메르켈의 리더십이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메르켈은 지난 2005년 11월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독일 총리에 올랐다. 우파 기독민주당 대표인 그는 또다른 우파정당인 기독사회당과 연합하고, 좌파인 사회민주당을 한데 묶어 대연정을 구축해 정권을 잡은 것이다. 취임 당시만해도 독일 경제는 성장률 1% 수준, 실업률은 12%에 육박할 만큼 무기력증에 빠져 있었다. 메르켈은 먼저 노동 분야에 메스를 댔다. 노조의 경영참여를 축소하고, 신규 채용자 자유해고기간도 종전 6개월에서 2년으로 늘리는 등 경직된 노동시장을 푸는 데 힘썼다. 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늘리기 위해 법인세율도 39%에서 29.8%로 낮췄다. 연금, 의료보험 제도도 현실에 맞게 개혁하는 한편 퇴직연령은 65세에서 67세로 연장했다. 부가세율을 높여 국가재정 건전화를 꾀했다. 그 결과 독일 경제는 지난 2006년과 2007년 2~3%대로 성장했고, 실업률은 2007년 8%대로 내려갔다. 각종 언론들은 독일 경제를 환골탈태하도록 한 메르켈을 만성적인 영국병을 격퇴시켜 국가 체질을 바꾼 영국의 대처 전 총리에 빗댔다. 메르켈이 독일판 철의 여인이란 별명을 얻은 것은 이 때문이다. 메르켈은 그간 이념에 과도하게 얽매이지 않는 실리주의자의 면모를 보여 왔다. 우파인 그는 기본적으로 시장주의자이지만, 대연정의 파트너인 사민당과의 관계를 고려해 최근 최저임금제를 도입했다. 또 좌파 사민당 출신으로 전임 총리인 게르하르트 슈뢰더의 개혁 정책을 이어받았다. 하지만 슈뢰더 때 소원해진 미국과의 관계를 보다 우호적으로 복원시키는 등 외교정책 방향에선 차별화했다. 국제무대에서도 메르켈은 강한 인상을 남겼다. 지난해에는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결렬 위기에 처한 EU헌법안의 합의를 이끌어냈으며, G8(주요8개국) 정상회의에서 지구온난화 대책 논의를 주도해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여성'에 뽑혔다. 뛰어난 러시아어 실력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와 각별한 친분을 과시하고 있다. 올 7월 출범한 '지중해연합'에 EU의 모든 회원국들이 가입할 수 있도록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을 설득한 장본인도 바로 메르켈이다. 메르켈은 옛 서독 지역인 함부르크에서 태어났지만, 어린시절 동독으로 이주해 거기서 자라 사실상 동독 출신이다. 특히 아버지가 개신교 목사로서 본인도 개신교도이지만, 가톨릭 정당인 기민당의 최고 자리에 올랐다. 결혼 생활은 그리 순탄치 못했다. 지난 1977년 동독에서 첫 결혼을 했지만, 4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 1978년 라이프치히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이후 1990년까지 동베를린의 물리화학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현재 남편인 요아힘 자우어 훔볼트대 교수와는 지난 1998년에 결혼했다. 메르켈 총리는 자신의 몸에서 태어난 자식은 없지만, 자우어 교수와 전 부인 사이에 장성한 아들 둘이 있다. 바그너 음악 애호가로 알려진 메르켈이 현실 정치에 발을 담근 것은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지난 1989년 신생정당인 민주부흥당에 참여하면서부터다. 헬무트 콜 전 총리는 메르켈에게 정치적 스승과 같은 존재다. 콜 전 총리는 지난 1991년 메르켈을 여성청소년부 장관으로 발탁했으며, 그가 기민당에서 뿌리내리도록 도왔다. 취임 이후 개혁 정책을 통해 독일 경제를 유럽의 으뜸으로 변화시킨 메르켈이 다시 찾아온 경제 위기에서 어떤 리더십을 발휘할지,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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