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근을 구부리면 제법 근사한 클럽이 되고 돌멩이로 정성 들여 흙을 파내면 그럴듯한 홀컵이 된다. 딤플도 없는 ‘불량’ 공은 색깔만 화려하면 그만. 갤러리는 대부분 헐벗은 동네 꼬마들이다. 인도 뭄바이 인근 슬럼가에서 벌어지는 골프 토너먼트의 풍경이다. 이름하여 ‘슬럼 골프’. 나름대로 복장을 갖춘 ‘동네 골퍼’들이 공을 찾으러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트럭 밑 ‘벙커’를 탈출하기 위해 허리를 잔뜩 숙인다. 슬럼 골프는 인도에 불어 닥친 골프 열풍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도에는 현재 200여개의 골프 코스가 있지만 광범위한 골프 인구를 모두 수용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그래서 발달한 게 슬럼 골프다. 캐디로 활동하는 바푸 샤헤인이 처음 만들었고 100루피(약 2,400원)정도의 ‘상금’을 걸고 칠 때도 있다. 슬럼 골프계의 고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내셔널 골프 아카데미(이하 아카데미) 수강이 목표다. 더 큰 꿈은 물론 ‘슬럼 골프 밀리어네어’가 되는 것이다. 찬디가르에 위치한 아카데미는 인도 내 프로 선수를 양성하기 위해 인도골프연합이 미국프로골프(PGA)와 손잡고 2005년 문을 열었다. 인도 정부의 공인을 받은 첫 번째 ‘골프 교습소’로, 클래스 A부터 D까지 반을 4개로 나눠 운영하고 있다. 아카데미에서 코치로 일하고 있는 제시 그루얼은 “인도에서 골프는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수단에서 탈피해 전 연령층을 아우르는 스포츠로 자리잡아가고 있다”며 “모든 사회 계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아카데미를 찾는다”고 말했다. 영국 BBC 방송은 “골프를 즐기는 인도 내 인구가 5만여명에 이른다”면서 “골프가 인도의 계급 체계를 깨부수고 있다”고 보도했다.‘귀족 레저’로만 여겨지던 골프가 불과 몇 년새 아카데미 등록 회원 중 상당수가 중산층 가정의 유소년일 정도로 대중 스포츠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것. 아카데미 회원의 90%는 아버지나 어머니가 골프를 한번도 경험한 적 없는 ‘골프 1세대’들이다. 이들의 우상은 인도 최초의 유럽프로골프 투어 멤버인 지브 밀카 싱(40)이다. 유럽 투어 3차례 우승에 빛나는 밀카 싱은 2008년 PGA 챔피언십에서 공동 9위에 오르기도 했다. ‘제2의 밀카 싱’을 꿈꾸며 슬럼 골프를 만든 샤헤인은 “캐디 일을 하면서 월 4,000루피(약 9만5,000원)를 번다. 그런데 아마추어 토너먼트 등록 비용만 5,000루피”라면서 인도의 골프 붐을 이어가기 위한 정부와 기업들의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