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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인 이슈] 두바이 통치자 '셰이크 무하마드 빈 라시드 알 막툼'

극복의 리더십 발휘냐, 실패한 공상가로 남느냐 '기로에'<br>과감한 개방정책으로 HSBC·MS등 굴지기업 속속 유치<br>글로벌 금융위기로 부동산시장 초토화…리더십 큰 상처<br>이웃 '아부다비' 지원 이끌어내느냐가 위기 탈출 관건

부왕에 안긴 유년기(왼쪽)와 UAE국방장관 시절.

"두바이 사태는 지도자가 책임지지 않는 곳에 투자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보여준다." (월스트리트저널) "두바이를 세일하는데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하던 지도자와 그의 참모들이 어느 날 갑자기 바보가 된 것처럼 생각된다." (비즈니스 위크) 두바이 통치자인 셰이크 무하마드 빈 라시드 알 막툼(60)이 생애 최대의 시련에 직면했다. 두바이의 천지개벽을 주도하며 '상상 리더십', '사막의 현자'라는 칭송을 받았던 그는 이제 두바이 쇼크를 이겨낸 '극복의 리더십'이라는 타이틀까지 얻게 되느냐 아니면 '실패한 공상가'로 역사에 기록되느냐의 갈림길에 섰다. ◇꿈을 판 아랍상인의 후예=부동산 개발업체인 에마르(Emaar)의 회장이 어느 날 셰이크 무하마드를 찾았다. 에마르의 회장은 그에게 "두바이 도심 외곽에 고층빌딩으로 이뤄진 신도시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내놓는다. 그는 즉석에서 이 곳에 세계 최고층 빌딩을 지으라고 명령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세계 최고층 빌딩, '버즈 두바이'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셰이크 무하마드의 몸 속엔 아라비아 상인의 피가 흐른다. 두바이는 천혜의 지리적 요건을 갖춘 상업의 요충지다. 아라비아 사막을 향해 10킬로미터 이상 길게 패인 좁은 바다인 '두바이 크릭'(Creek)은 아랍 무역상들의 집결장소며 밀수꾼들의 아지트다. 그의 알 막툼 가문은 이곳을 170년간 통치하고 있다. 주변의 여느 중동 국가들은 석유를 팔았지만 셰이크 무하마드는 꿈을 팔았다. 이를 위해 개방 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했다. 이슬람 휴일인 목, 금요일에도 관공서의 문을 여는 등 제도도 서구인들에 맞게 뜯어 고쳤다. 이슬람의 엄격한 율법으로 활동에 제약을 받았던 주변 중동국의 오일머니 뿐만 아니라 유럽의 자본들이 그에게 서서히 매료됐다. 그가 내놓는 계획은 공상에 가까웠지만 서구세계는 이를 위대한 상상력이라고 치켜세우며 막대한 돈을 댔다. 세계 굴지의 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 정치인들은 셰이크 무하마드를 '현자'로 치켜세우며 아첨을 떨었다. HSBC등 각국의 은행들은 경쟁적으로 두바이의 국제금융센터에 사무실을 내기 시작했다. 때마침 넘쳐나던 글로벌 유동 자금은 이들 은행의 창구를 통해 두바이로 대거 흘러 들어왔다. 두바이 금융센터는 '중동의 월가'라는 별명을 얻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시스코 등 첨단 기술 기업들도 매장을 냈다. 자신의 주변을 젊은 기술관료로 채운 셰이크 무하마드는 부하들을 무한경쟁으로 내몰며, 그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다그쳤다. 최초의 인공 스키장, 세계 최고층 빌딩, 최대 인공섬, 최고급 호텔 등 최고, 최대를 내세운 인공 구조물들이 두바이에 속속 들어섰다. 그의 욕심은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았다. 먼저 시작한 인공섬이 끝나기도 전에 더 큰 인공섬 개발 계획이 나왔고, 초고층 경쟁은 급기야 높이 1,000m에 이르게 됐다. ◇'신기루였나' 쏟아지는 비난= 욕심이 지나쳤을까. 글로벌 금융위기는 두바이 경제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사무실과 고급 저택의 가격이 반토막 나면서 경제의 중심인 부동산 시장이 초토화됐다. 이후 셰이크 무하마드의 리더십에도 상처가 나기 시작했다. 급기야 11월 25일 발표한 두바이 월드의 6개월 채무상환 동결로 전세계 금융가는 충격에 빠졌고 그에 대한 신뢰는 뿌리째 흔들렸다. 그에 대한 실망감은 두바이 조차도 중동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희생제 연휴 직전에 두바이 월드의 채무상환 동결을 발표, 투자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당할 수 밖에 없었다. 두바이 정부는 고작 5문장 짜리 성명을 내놓고 추가 질문에 함구해 버렸다. 다음날 나온 셰이크 무하마드가 성명 역시 "민감한 비즈니스 영역"이라며 "다음주 입장을 내놓겠다"는 것이 고작이었다. 통치자가 전면에 나서 사태를 수습하리라고 기대한 서구세계는 뒤통수를 맞은 게 분명하다. 수백억 달러를 떼일 위기에 몰린 서구 언론들은 연일 그를 난타하기 시작했다. 특히 전체 해외 투자자금의 절반을 투자한 영국의 반응은 분노에 가까웠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냈다. 더 나아가 지난 30년대 주민 항거를 언급하며 "두바이는 통치자에 대한 비난이 금기시되는 사회이지만 위기 이후 통제가 느슨해지고 있다"며 내부로부터의 저항을 암시하기까지 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 역시 갑작스런 금융수장 경질 등 일련의 투명성 부족 문제를 거론했다. WSJ은 "두바이에서는 소수 주주가 대주주를 견제할 장치가 없다"고 지적하고 "이는 통치자가 스스로 나서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이유"라고 꼬집었다. 사법기관의 독립성 또한 찾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셰이크 무하마드는 두바이 쇼크 이후 첫 언론 인터뷰에서 서구 언론에 대해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언론들이 위기를 과장해 떠들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하지만 우리의 의지는 꺾지 못한다. 우리가 호들갑 떠는 언론에 정면 대응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통치자에 달린 두바이의 미래=두바이를 위기로 내몬 장본인이지만 이를 해결할 사람도 역시 셰이크 무하마드다. 그가 오늘의 두바이를 일구었듯, 현시점에선 두바이의 재건을 위해 그가 필요하다. 셰이크 무하마드는 아랍에미리트(UAE) 건국 기념사에서 "우리의 경제는 강하고 견고하다"며 여전히 자신감에 넘쳐 있음을 강조했다. 위기 탈출의 관건은 이웃 아부다비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아부다비로부터 자금 지원은 이끌어내되 두바이의 알짜 사업은 지키는 것이 그에게 맡겨진 첫 번째 임무다. 아부다비가 '백지수표'는 없다고 밝힌 만큼 커튼 뒤편에서 협상을 통한 주고 받기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시간은 셰이크 무하마드의 편이 아니다. 여론도 불리하다. 서구 언론들은 아부다비가 두바이 소유의 에미리트항공을 탐낸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렇지만 핵심사업을 내주게 되면 두바이로서는 치명상을 입게 된다. 위기가 불거졌지만 두바이인들이 통치자에게 신뢰는 여전히 확고하다. 경제계도 "두바이 위기를 과장됐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지 언론들은 "두바이 월드는 구조조정할 필요가 있었다. 정부가 성숙하게 판단했다"며 통치자를 두둔했다. 두바이인들은 자신들의 통치자가 서구에 꿈을 팔았듯, 이번에도 그가 천부적 재능을 발휘해 두바이를 재건할 것으로 기대한다. '두바이 쇼크'는 진정국면으로 접어들었지만 셰이크 무하마드의 이제 본격적으로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유럽 로열패밀리·지도층과 두터운 인맥
승마에 재능 '스포츠광'… 모험도 즐겨
●셰이크 무하마드는 셰이크 무하마드의 나이는 출처마다 다르다. 공식 사이트(www.sheikhmohammed.co.ae)에 따르면 그는 1949년에 태어났다. 부친 셰이크 라시드 빈 사이드의 네 아들 중 세번째로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이 왕성했으며, 모험을 즐겼다고 한다. 두바이에서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마친 그를 후계자로 낙점한 부친은 그에게 서구 사회를 체험하게 했다. 1966년 그는 사촌과 함께 영국 유학을 떠난 벨 학원에서 영어를 배웠다. 이어 영국에서 사관학교를 다녔다. 이 과정에서 유럽의 로열 패밀리, 지도층과도 두터운 인맥도 쌓았다. 귀국 후 경찰총수에 이어 71년 22살의 나이에 세계 최연소 국방장관에 오른다. 맏형인 셰이크 막툼 빈 라시드가 제위에 있던 1995년 그는 왕세제로 임명되며 공식후계자가 된다. 이후 실질적인 통치자로서 팜 아일랜드, 부르즈 두바이, 부르즈 알 아랍 등 초대형 개발사업을 지휘한다. 2006년 그는 형을 이어 두바이 통치자에 오른다. 셰이크 무하마드는 스포츠 광이다. 특히 승마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다. 그 스스로 국제대회에 출전, 10여 차례 우승했으며 상금규모 300억원의 세계 최고 승마대회인 '두바이 월드컵'을 주최하고 있다. 그는 영국, 미국 등 세계 곳곳에 고급 승마장을 두고 있으며 최근에는 호주에 4억2,000만 달러를 들여 승마장을 사기도 했다. 그는 두 명의 아내를 두고 있다. 1979년 결혼한 첫째 부인은 그의 사촌이었고, 두 번째 부인은 현 요르단 국왕의 누이 동생이다. 자녀는 19명(8남 11녀)이며, 대부분이 예술과 스포츠에서 재능을 보이고 있다. 아들 라시드는 2006년 아시안 게임에서 승마(지구력 부문)에서 금메달을 땄고, 딸 아미타는 UAE의 태권도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있다. 셰이크 무하마드의 지위는 아랍어로 통치자를 의미하는 에미르(Emir)다. 그가 통치하는 땅은 에미리트(Emirate)로 부른다. 에미르는 유럽에서 '군주 역할을 하는 공작'(Prince)과 유사한 개념이며 에미리트는 공국(Principality)과 비슷하다. 셰이크 무하마드의 알 막툼 가문은 아부다비에 근거를 둔 채 170년간 두바이를 다스렸다. 1933년 근거지를 두바이로 옮기면서 알 막툼 가문은 아부다비로부터 독립한다. 알 막툼 가문은 아부다비를 통치하는 알 나이한 가문가 같은 뿌리다. 하지만 지금은 UAE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는 관계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1947년 두바이와 아부다비는 국경 문제를 두고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UAE는 7개 에미리트로 구성된 느슨한 연방국가다. UAE는 대통령과 총리를 두고 있는데, 관례적으로 가장 덩치가 큰 에미리트인 아부다비의 통치자가 대통령을, 두바이 통치자는 총리를 맡고 있다. 각 에미리트는 별도의 경찰과 과세권을 갖는다. 외교와 군사를 연방정부에서 행사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독립 왕국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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