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책임이 크네" 필자가 시인 박해진에게 이렇게 말했을 때 그는 눈만 껌벅이며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최철한에게 '독사'라는 별명을 붙인 장본인이 박해진이었다. 그 별명이 독이 되어 최철한이 슬럼프에 굴러떨어지고 말았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였다. 인사동의 주점 '평화만들기'. 소주는 팔지 않는 주점이다. 보드카에 복분자를 썩은 보복주를 앞에 놓고 한참 뜸을 들이던 박해진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 책임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네요" "책임을 가장 멋지게 지는 길이 있어" "뭔데요?" "새로운 별명을 지어주는 길이야" "한번 생각해 보지요" 필자는 상상력이 풍부한 시인 박해진이 최철한의 새 별명을 지어줄 날을 손꼽아 기다리기로 했다. 백이 우변에서 선수까지 뽑아 좌변의 요충지 백60을 점령하자 흑이 바쁘게 되었다. 흑61의 침입은 시급한 곳. 우물쭈물하다가 백이 좌변에 한번 더 못질을 하게 되면 바둑은 끝장이다. 흑67도 늦출 수 없는 삭감. 상식적으로 두자면 참고도1의 흑1로 모양을 갖춰야 하겠지만 지금은 백에게 백2 이하 6을 허용하게 되어 흑의 패색이 짙어지게 된다. 흑이 기대하는 그림은 참고도2의 흑2로 상변을 최대한 확장하는 것인데 과연 이 기대가 이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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