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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총선 극진좌파 압승] 치프라스를 보는 엇갈린 시각

지지자, "중산층 출신이라 상대적 부채 없어"

반대자, "판타지로 유권자들 홀린 해리포터"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지난 1974년 7월 그리스 군부 독재가 무너진 직후 아테네에서 작은 건설회사를 운영하는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가 처음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것은 불과 16세 때였다. 그는 1990년 당시 중도우파 정부의 교육개혁에 반대해 전국적으로 일었던 대규모 학생운동의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 교과서 무료 제공과 학생 복지 혜택을 없앤 정부 조치에 항의하는 학생의 시위는 날로 격화돼 시위 중 교사가 사망하는 일까지 발생할 정도였다. 흥분한 학생들은 시험 폐지 등과 같은 급격한 요구사항들을 쏟아냈으나 치프라스는 정부 조치 철회라는 상대적으로 현실적인 주장을 내놓았다. 결국 그의 요구사항이 관철되고 교육부 장관이 물러나는 선에서 시위는 진정됐다.

고등학생 시절 학생운동에서 거둔 승리의 경험은 이후 그의 일생을 바꿔놓았다. 토목공학 엔지니어인 아버지를 따라 자신도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으로 선택했으나 그리스 정치 현실에 불만을 느끼고 정계에 투신했다. 30세이던 2006년 지방선거에서 아테네 시장에 도전해 득표율 10.5%로 3위를 기록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3년 뒤에는 시리자의 전신인 '시나스피스모스(좌파연합)' 대표로 선출돼 그리스 역사상 최연소 정당 지도자가 됐다. 이후 그리스 재정위기 속에서 긴축과 복지 축소에 반대 목소리를 내며 대중적 인기를 더해갔다. 가디언은 "위기 속에서 번성한 좌파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시리자의 정책 외에 잘생긴 외모와 뛰어난 언변, 미디어를 이용한 선거전에 능숙하다는 점이 그의 인기요인으로 꼽힌다. 그는 절대 넥타이를 매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심지어 지난해 교황을 만났을 때도 '노타이' 차림이었다. 실용성과 탈권위주의를 강조한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다. 그의 지지자들은 그가 중산층 가정 출신으로 정치권에서 뼈가 굵었다는 점에서 노동운동권 출신인 다른 좌파 지도자와 달리 "부채가 없는 정치인"이라고 치켜세운다. 그러나 반대파들은 그를 '해리 포터'에 비유하며 현실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판타지와 같은 약속으로 유권자들을 홀리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치프라스는 고교 시절에 만난 좌파운동 동지인 컴퓨터 전문가 페리스테라 바치아나와 동거하며 아들 둘을 키우고 있다. 둘째 아들의 중간 이름을 쿠바혁명가 '체 게바라'의 본명인 '에르네스토'로 지을 정도로 체 게바라의 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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