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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이순신과 임금 그리고 백성

이순신의 충, 오직 선조 향해 있어

군사와 백성 모두 품에 안았지만 애민정신, 방종으로 흐른 적 없어

질서·공공선 어기면 반드시 체벌… 정치인 영화 편승 '忠' 왜곡말아야


"장수 된 자의 의리는 충(忠)을 좇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영화 '명량'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다.

이 영화를 본 관객이 지금까지 1,70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고 한다. 국민의 거의 5분의2가 이 같은 장면을 목격한 것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순신 장군은 현실에서도 과연 이런 발언을 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순신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만에 하나 그가 이런 인생관·정치관을 갖고 있었다면 그는 전란이 초래한 백성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왜군의 침략 앞에 철저히 무능을 드러낸 조선왕조를 끝장내야 옳았다. 그의 충이 오로지 백성에게 향해 있었다면 그들을 위해서라도 왕조는 새로 시작돼야 마땅했다.

당시 이순신은 완벽한 남해 왕국을 건설하고 있었다. 군사력과 경제력도 갖췄다. 그에 반해 조선 조정은 한마디로 껍데기뿐이었다. 조정은 툭하면 이순신에게 손을 벌렸다. 전쟁터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장수에게 비상용 식량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조정에서 쓰는 종이가 모자란다며 칭얼댈 정도였다. 어처구니없는 조정이었다.

하지만 그의 '난중일기' 어느 구석에서도 임금에의 불충(不忠)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순신의 충은 오로지 선조(宣祖)를 향해 있었다. 그는 '난중일기' 1597년 10월8일자에 실린 '송나라 역사를 읽고'에서 충성의 대상을 명백히 하고 있다.

책 속에서 송의 이강(李綱)이라는 정승은 금나라의 침략과 관련해 자신의 주전론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낙향해버린다. 이에 대해 이순신은 "무릇 신하 된 자로 임금을 섬김에는 죽음이 있을 뿐 다른 길이 없다…남의 신하 된 자로서 몸을 버려 나라의 은혜를 갚아야 할 때인데 어찌 (낙향한다는 말을) 입 밖에 낼 수 있으랴…이것이 어찌 신하 된 자로서 몸을 바쳐 임금을 섬기는 의리라 할까보냐"라고 일갈한다.

난중일기 속 다음 글귀 역시 그의 정신세계를 가르쳐준다. "국가를 편안히 하고 종묘사직을 안정시키는 일에 충성과 능력을 다해 죽으나 사나 그렇게 하리라."

물론 이순신은 백성의 고통에 둔감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삶을 의탁하려는 백성들을 어떻게 해서든 품에 안고자 했으며 그들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백방으로 고민했다. 일례로 지금의 여수 앞바다 돌섬은 애초 말들을 풀어 기르는 목장 터에 불과했으나 논과 밭을 개간해 경상도에서 넘어오는 피란민들을 정착시킨 곳이다. '국가를 편안히 한다'는 취지는 바로 이런 것이었다.



그럼에도 '어린 백성'을 사랑하는 것과 나라의 기강을 확립하려는 행위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이순신은 어느 누구보다 법치에 엄격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명령에 기일(期日)을 어기거나 근무를 태만히 한 자에게는 반드시 체벌을 가했다.

체벌만이 아니다. 1594년 7월3일에는 각 배에서 여러 번 양식을 훔친 사람들을, 7월26일에는 도망간 군사 세 명을 처형했다.

"군사를 싣고 도망간 죄로 배꾼 막동이라는 자를 효수했다"(8월26일). "격군으로 도망하다 붙잡혔기에 목을 베어 내다 걸었다"(1596년 7월16일). "헛소문 낸 배꾼 두 사람을 목을 베 효시했다"(8월25일). 힘없는 백성이라지만 단순 체벌에 그치지 않았음을 가르쳐주는 대목이다.

아무리 삶의 유혹에 나부끼는 병사나 백성들이라 해도 사회 질서와 공동선을 해치려는 자들에 대해 그는 이토록 엄격했다. 백성의 개인적 두려움이나 탐욕보다 기강확립이 우선이었다. 늘 군사와 백성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그렇다고 애민정신이 방종(放縱)으로 흐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요즘 흔해빠진 싸구려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이 혹여 영화에서 잘못 전해진 충의 개념을 제멋대로 왜곡하지나 않을지 걱정된다.

/이신우 논설실장 shinwo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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