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오늘의 경제소사/ 9월 29일] <1513> 캘리코 금지법


1700년 9월29일, 영국 의회가 캘리코 수입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인도산 면제품인 캘리코 수입으로 타격을 받게 된 모직업계의 로비 때문이다. 옥양목ㆍ사라사로도 불렸던 인도산 캘리코는 값싸고 질이 좋은데다 세탁해도 모양과 색상이 변하지 않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의류는 물론 가방과 식탁보ㆍ커튼의 소재로도 쓰였던 캘리코의 수입금지법이 발의된 시기는 1696년. 4년 동안 영국 의회는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모직업자와 중상주의자들은 캘리코 수입으로 국내산업이 위축되고 막대한 금과 은이 빠져나간다며 반대론에 섰다. 반면 지지자들은 전체 직물 가격 하락, 생산과 소비 증가, 경제발전이 촉진된다고 맞섰다. 결론은 조건부 금지. 염색된 캘리코 수입에만 문을 걸었다. 캘리코 매매로 막대한 이익을 거두던 동인도회사는 면제품을 중간재 형태로 들여와 영국에서 염색해 팔았다. 결과적으로 염색산업이 번창하고 캘리코 수입이 더욱 늘자 1719년에는 런던 외곽 모직 공업지대인 스티털필드에서 직공 2,000여명이 캘리코를 태우는 폭동도 일어났다. 영국 의회는 이듬해인 1720년 '캘리코 사용금지법'까지 만들어 국내 산업 보호에 나섰다. 마침 미국에서 면화 대량재배에 성공해 값싼 원료가 들어오고 자동직조기가 잇따라 발명돼 모직업체들이 면직업종으로 전환하거나 겸업하면서 불만도 가라앉았다. 최대 피해자는 인도. 갑자기 수요가 사라져 끝을 알 수 없는 불황에 빠져들고 종국에는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인도를 강점한 영국은 인도에서의 직조를 금지해 면을 짜는 직공은 남녀를 불문하고 손을 잘랐다. 면직공업을 시발로 산업혁명을 이룬 영국은 자유무역을 내세우며 세계시장을 휩쓸었다. 영국이 주도한 19세기 자유무역에는 숱한 규제와 금지, 인도의 눈물이 깔려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