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8월25일 이혜훈 한나라당 의원은 증권업계에 민감한 법안을 발의했다. 파생상품에 거래세를 부과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증권거래세법 개정안이었다. 선물ㆍ옵션시장의 과열을 막고 세수를 확보하겠다는 것이 법 개정의 취지다. 이 법안은 1년 7개월을 끌다가 2011년 3월1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기는 했으나 증권업계는 물론이고 부산 지역 시민단체의 반대에 부딪쳐 본회의 상정이 무산되면서 결국 자동 폐기됐다.
한동안 잊혀지는가 했던 이 법안이 최근 다시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복지재원 마련을 위한 부자증세 경쟁이 벌어지면서 파생상품에 대한 거래세 부과 이슈가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정부까지 나서 파생상품의 거래세 도입을 거들고 있는 양상이다.
문제는 지금 자본시장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는데 있다. 유로존 위기와 이에 따른 글로벌 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국내 증시는 좀처럼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4월 2,049포인트까지 올랐던 코스피지수는 5월 유로존 위기가 부각된 후 하락을 거듭하면서 지금은 1,800포인트 부근까지 밀려났다. 증시가 위축되자 투자심리는 급격하게 얼어붙고 있다. 7월 들어 하루 평균 증시 거래대금은 3조6,500억원으로 지난해 평균(6조8,300억원)보다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사정은 파생상품시장도 마찬가지다. 7월 들어 파생상품시장의 하루 평균 거래대금은 54조4,000억원으로 지난해 고점이던 8월(84조2,829억원)보다 35%가 줄었다.
과세 강행 땐 시장 충격 가능성
특히 같은 기간 옵션시장 거래대금은 무려 56%나 급감했다.
이런 상황에서 파생상품에 대한 거래세 도입을 강행할 경우 시장을 급격하게 위축시킬 가능성이 매우 크다. 파생상품 거래에 세금을 물릴 경우 현물과 연계된 차익거래 기회가 줄어들고 이는 자연스럽게 거래량 감소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특히 거래세를 부과할 경우 국내 증시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외국인들이 거래비용이 낮은 싱가포르나 홍콩 등 경쟁시장으로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스웨덴이 1984년 주식과 파생상품에 거래세를 부과하자 자국 내 거래 수요가 비용이 싼 런던으로 대거 유출됐고 이 때문에 결국 1991년 거래세를 폐지한 사례도 있다.
현재 세계에서 유일하게 파생상품 거래세를 부과하고 있는 대만의 경우도 1988년 첫 도입 이후 세율을 꾸준히 낮추고는 있지만 외국인들의 시장 참여는 매우 저조한 상황이다. 지난해 현재 대만 파생상품 시장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9.5%로 한국(37.2%)의 3분의1에도 못 미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파생상품에 대한 거래세 부과가 강행될 경우 거래수요가 홍콩 등 경쟁시장으로 이탈하면서 세수 확보라고 하는 본래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하고 금융산업의 위축만 가져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건 봐가며 신중하게 추진을
파생상품시장의 위축은 그 자체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주가연계증권(ELS)이나 주식워런트증권(ELW) 등과 관련된 다양한 상품 개발도 어려워진다. ELS 등 파생결합증권 상품의 경우 위험관리를 위해서는 파생상품 거래를 할 수밖에 없는데 거래세를 부과하면 비용 부담 때문에 헤지를 할 수단을 잃게 된다. 결국 파생상품의 위축이 연관 금융상품 개발까지 어렵게 하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이 있다. 단순히 복지 재원이 부족하다고 지금처럼 증시 상황이 좋지 않을 때 거래세 도입을 서두른다면 세수확보는 하지 못하고 시장만 망가지게 할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아무리 표가 급하다고 해도 파생상품 거래세 부과와 같은 중요한 사안을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서둘러서는 안 된다. 금융시장의 여건을 봐가며 좀 더 신중하게 추진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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