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불과 두 달 사이 슈퍼마켓ㆍ빵집ㆍ피자가게 등 유난히 소비자 접점에 있는 업종에서 사회 이슈들이 불거져 나왔다.
선거철을 맞아 그 어느 때보다 정치권을 향한 이익단체들의 요구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것도 한 원인인데다 경기불황에 따른 소비 부진 여파까지 겹치다 보니 전국 방방곡곡에서 골목상권의 영세상인과 자영업자들의 울분 섞인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에 대한 영업규제, 대기업 빵집 사업 퇴출, 식용유 피자 논란, 정부의 카드수수료율 결정까지 올 들어 사회적인 관심을 끈 일련의 이슈들은 따지고 보면 다 맥락은 비슷하다.
지난 1월 이명박 대통령이 "재벌 2, 3세들은 취미로 할지 몰라도 빵집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생존이 달린 문제"라고 비난한 이후 빵집 사업에 진출한 대기업들이 줄줄이 철수를 선언했다. 전국상인연합회 등 전국 골목 상인들이 대형 유통업체의 거침없는 확장세로 인해 고사 직전이라고 아우성치면서 대형마트와 SSM의 영업을 규제하는 움직임이 전국 지자체에서 들불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표 위한 소상공인 살리기 정책 봇물
카드수수료 인하 논란도 마찬가지다. 대기업 카드사들이 영세 상인들에게 차별화된 카드 수수료를 부과한다며 소상공인들이 분노를 폭발시켰다. 영세 상인들은 재벌이 경영하는 백화점, 골프장, 대형마트는 수수료가 1.6% 정도인데 비해 서민업종이라 할 만한 안경ㆍ노래방ㆍ이미용ㆍ숙박업소는 2% 이상이라며 반발하자 국회는 카드수수료인하와 관련된 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유독 영세사업자, 자영업자가 많은 우리 경제 현실을 감안하면 선거를 앞둔 이 시점에 이 같은 분노와 불만의 표출은 당연한 수순이다. 또한 이 문제들은 모두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도 정부나 정치권의 해결 노력은 일시적이거나 형식적일 뿐이어서 선거철마다 되풀이된다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사실 슈퍼마켓ㆍ빵집ㆍ피자가게 같은 업종은 우리가 골목 상권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가게들이다. 바꿔 말하면 아무나 쉽게 발을 들여놓을 수 있고 그만큼 진입 장벽이 낮은 '레드오션'이라는 뜻이다. 준비가 부족한 은퇴자들은 특별한 기술도, 자본도 없을 경우 아직도 음식점이나 슈퍼 같은 레드오션 자영업을 생각하기 십상이다.
실제로 자영업자는 꾸준히 늘고 있으며 질도 악화되고 있다. 올 1월 기준으로 자영업자 수는 550만여명으로 지난해보다 3.5% 늘어났으며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25%에 이른다. 내용 면에서도 50세 이상 자영업자는 늘어나는 데 비해 30~49세 자영업자 수는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나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 이들이 생계형 창업에 나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삼성경제연구소도 지난달 내놓은 보고서에서 생계형 자영업자들이 사업이 부진하고 노후 준비가 미흡한 탓에 결국 복지 수요를 급팽창시키는 등 정치 사회적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론은 속수무책으로 레드오션에 뛰어드는 생계형 자영업자를 줄이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경기 양극화가 심화될수록, 베이비부머 은퇴자들이 더 늘어날수록 앞으로 자영업자 문제는 더욱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영세 자영업자 축소 방안이 선행돼야
정부나 정치권은 선거철만 되면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을 단순히 표밭으로만 보고 국민 정서에만 신경 쓰면서 일시적인 대증요법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자영업자들이 생계형에서 벗어나 중산층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플랜으로 접근해야 한다.
영국의 경제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한국 내 대기업 제빵 사업과 관련해 "정치권이 대기업 빵집 논쟁의 본질인 영세 자영업의 구조조정과 사회 안전망 제공이라는 문제는 뒷전이고, 유권자를 의식한 '빵 싸움'만 벌이고 있다"고 썼다. 영국 신문도 알고 있는 문제와 해결책을 우리 정부와 정치권만 모른 척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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