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한민국 경제상황은 앞뒤, 전후좌우가 다 막혀 있는 형국이다. 6·25전쟁 직후 폐허에서 출발했던 한국 경제는 세계가 경이의 눈으로 봤던 발전의 역사가 마침내 벽에 부닥치면서 새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중이다.
오랫동안 한강의 기적으로 칭송받아온 우리 사회는 최근 들어 이전과 차원이 다른 위기에 직면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강력한 국제경쟁력을 갖췄다고 자부해온 제조업은 중국과 일본의 협공에 의외로 취약한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한국 경제와 주력 산업을 위협하는 중국 기업의 도전이나 일본의 엔저 현상을 넘어 상당기간 지속될 구조적 현상이라는 점이다. 지난 수십년간 향유해온 '박정희 산업 모델'이 마침내 한계에 왔음을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지금과 같은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그대로 고집한다면 글로벌 경제의 작은 충격에도 한국 사회는 큰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 나온 지 오래다. 계사전의 표현 그대로 '궁(窮)'의 단계다. 그럼에도 여전히 새로운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의 답답함과 초조함은 강도를 더해간다.
박근혜 정부에 현상의 극복과 재도약을 위한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꽉 막힌 현실을 뚫기 위해 시도되고 있는 노동·공공·금융·교육 등 4대 개혁과제는 어느것 하나 제대로 풀리는 것이 없다. 당장 국회 안에 똬리를 튼 반개혁세력으로 인해 입법과정은 꼬일 대로 꼬인 처지고 포퓰리즘에 이의를 제기하는 어떤 시도도 기득권으로 무장한 이익집단에 봉쇄되는 구조다.
나라의 앞길이 막혀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곤경에 처해 있음에도 많은 사람이 기존의 방법을 고수하고 기존의 방법으로만 벽을 뚫으려 한다. 변화의 길, 즉 새로운 방식을 택하지 않으니 해결의 실마리가 찾아질 리 없다. 바로 이것이 우리 경제가 처한 위기의 본질이다.
한국 경제가 지금의 폐색(閉塞) 상황에 주저앉고 만다면 우리에게는 결코 새로운 미래가 열리지 않을 것이다. 이런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경제는 물론 정치·사회 전 영역에서 혁신적 사고와 변화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하루빨리 국가 운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궁즉변(窮卽變)은 바로 이런 의미를 담고 있다.
경제는 진화하는 생물과 같아서 기존의 틀만으로는 결코 지속적 성장을 꾀할 수 없다. 이제 우리 스스로 변화를 찾아 나서야 하고, 변화는 통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돼야 한다. 그때 비로소 새로운 길이 우리 앞에 활짝 열리게 될 것이다. 이것이 변즉통(變卽通)의 가르침이다.
한국 경제에 변화의 조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소재·부품산업이다. 이미 매년 1,000억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소재·부품 수출시장 점유율이 머지않아 세계 4위로 올라서리라는 전망이다.
바이오 부문을 비롯해 국내 벤처기업들의 질적·양적 성장세도 눈부시다. 우리나라 벤처기업 수는 이미 3만여개에 이른다. 평균 매출액 성장률도 일반기업보다 훨씬 빠르다. 일각에서는 '벤처 르네상스'의 도래로 평가할 정도다. 이들 벤처기업이 자라서 연간 매출 1조원을 올리는 2만개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경우 대한민국 경제는 탄탄한 기초 위에 올라서리라는 장밋빛 청사진도 나오고 있다.
경제 패러다임의 변혁을 추동하는 것은 결국 정부의 몫이다. 정부가 앞장서 각 부문에서 혁신과 투자를 이끌어내야 한다. 기존의 부실기업을 솎아내고 고용제도를 유연화하며 국영기업과 공공 부문을 개혁하고 교육·금융·의료·관광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을 과감히 개방해야 한다. 연기금과 복지제도의 개혁으로 재정안정을 꾀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변해야만 통할 수 있고 통할 수 있어야 지속 가능한 발전단계로 올라설 수 있다. 통즉구(通卽久)에서 구(久)가 바로 이런 단계를 뜻한다. 달리 표현하자면, 변화를 이해하는 자만이 세상의 주인으로 올라설 수 있는 법이다.
서울경제신문이 창간 55주년을 맞았다. 지금껏 그래왔듯 서울경제는 한국 경제의 변화를 선도하고 또한 대변하는 신문이 될 것이다. 다시 뛰는 대한민국, 서울경제가 함께 할 것임을 새롭게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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